한수

불씨

“그렇게 가기 싫어하더니… 잘 버텼어요.”

리지가 작게 웃으며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안은 리지의 무릎을 베고 길게 누운 채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피곤해요. 어울리지도 않는 근사한 옷을 입고서는, 익숙지도 않은 춤을 추고… … 그러다가 슬쩍 눈을 떠 위를 올려다보거든 부드럽게 휜 주홍빛 눈을 마주한다. 그래도 오늘 근사했어요, 안. 다정한 대답이 돌아오니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번지르르한 연회도, 시끄러운 음악도 없이 오직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던 리지의 손이 오른쪽 눈가에 닿았다.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어린애라도 된 것 같았다.

”단안경은 안 썼네요?”

”네. … 사실 눈 별로 안 나빠요. 근사해 보이려고 쓴 거죠.”

리지는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그게 뭐예요, 안 써도 멋있어요! 그 또한 입꼬리를 주욱 올려 웃었다. 대충 짐작하던 대답이었으나 기분이 썩 괜찮았다. 리지도 안 꾸며도 멋있어요… 그리 말하며 그는 손을 뻗어 리지의 앞머리를 정리했다. 한껏 신경써 올려 묶은 머리와 잘 차려 입은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일찍 파트너 신청하길 잘했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군들 매료되지 않을까. 이 사람의 곁에 자신 아닌 다른 이가 자리하는 걸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그렇게 느낀 지 꽤 오래됐다.

”리지, 졸업하면 오러가 되고 싶다고 했던가요?”

”네! 하지만 세상에 자리한 폐단을 바로잡는 게 먼저겠죠. 아직도 머글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잖아요. 어둠의 마왕의 동향도 심상치 않고… …”

리지는 그 이후로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안은 고개를 적당히 주억거리며 들었다. 얼핏 보면 귀담아듣지 않는 이처럼 보였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면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으리라. 뿌리깊게 박힌 사상을, 차별을 조그만 불씨 몇 개로 불사를 수 있을까.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마법사 사회는 그가 구태여 관여하지 않더라도 순리대로 흘러갈 터였다. 그는 순수혈통이니 손해볼 것도 없겠다, 졸업한 후에는 적당하게 조용히 살려고 했었다.

그는 다시금 리지의 주홍빛 눈을 들여다본다. 아, 그 빛을 마주하면 도저히 가만 관조할 수 없다. 폐단과 차별을 모두 불태울 수 없대도, 이 사람을 가로막는 것 정도는 내가 찢어발길 수 있을 텐데… ….

”나도 도와줄게요, 능력이 닿는 데까지는.”

”정말요?”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지는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저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 이안은 작은 결의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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