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아서 책

잠깐 by 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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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중철 24~32p 사이 예상 4000원 (최종 페이지가 어떻든 확정 가격입니다)

에피소드 두개 수록

1

카인 나이트레이는 미숙하고 의지 되는 마법사였다. 모순적인 서술이지만 정말 그랬다.

마법관에서 가장 어린 미틸보다 카인의 마법사 경력이 짧다고 한들, 위대한 재앙의 이변을 해결하는 데는 마법이 아닌 다른 능력도 필요했고. 어린 나이에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기사단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보니, 카인의 미숙함은 사소한 것이 되었다. 마법사 경력이 가장 짧은 마법사라도. 카인은 여차할 때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패이자, 주변 상황을 넓게 보고 진정할 수 있는 지휘관이었다.

미숙함은 타이노가 비교해야 더 두드려지는데. 마법관에 있는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비교대상으로 썩 알맞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한때 세계를 정복한 세계 최강의 마법사. 마법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혹독한 기후에서 오랜 시간 존재 해, 어떠한 역사가 된 북쪽 마법사들. 그들 옆에 선다면 웬만한 마법사는 다 미숙한 모지리가 되는 게 당연했으니까. 당연한 건 폄하될 이유가 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단단하고 탄력 있는 몸을 만들고 싶다면 강화 마법을 쓰기보다 단련을 먼저 떠올리니, 레녹스와 카인은 똑같은 유형 같지만 전혀 달랐다. 레녹스 램은 서투른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을 쓰지 않는 마법사고. 카인은 서투른 마법사였으니까. 마법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편합니다. 그러다보니 무심코, 어쩌다보니 먼저. 레녹스의 행동 근거가 되는 마법사로서의 경험이 카인에겐 없었다. 결론은 동일해도 도달하는 길이 다르면 같다고 할 수 없지.

닿기 전까지 타인을 볼 수 없는 재앙의 상처도. 레녹스라면 탐지 마법이 있다는 걸 알지만. 갈고 닦은 감을 쓰는 게 더 편하니 감에 기댔으리라. 카인은 그런 발상을 아예 하지도 않고 날카롭게 다듬은 직감을 활용했다.

이런 미숙한 마법사다보니, 중앙 나라 영광의 거리 근처에 있는 막사에 잠깐 들리는데 빗자루를 챙길 리가. 먼 곳이면 오즈에게 부탁하겠지만 영광의 거리는 그렇게 먼 곳도 아니고. 현자의 마법사로 받은 임무라면 시급할 테니 빗자루를 탔을 테지만. 카인 나이트레이 개인이 잠깐 상황을 보는 게 다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굳이?

마법사란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찝찝한 형태로 그 사실이 밝혀져 기사단장 직을 박탈당했으니. 중앙 나라 기사단과 연관된 곳에는 마법사인 티를 내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도 아-주 조금은 있었지만. 도보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그거였다. 걸어갈 만한 곳이잖아. 굳이?

큰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네.

기사단장이 마법사래! 위대한 재앙과 맞서는 현자의 마법사가 됐대! 퍼레이드에서 손을 흔들어줬어! 서쪽 나라에서 걸어 다니는 지옥이라 불리는 마물을 잡았대! 소문으로 들은 게 많다보니, 볼일을 끝낸 카인이 마법사처럼 막사를 떠날지 수습 기사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수고 많았어. 카인은 그 말과 함께 도보로 귀가해, 전형적인 걸 기대하고 무서워하는 이들을 실망 시키고 안심 시켰다.

카인 오늘 영광의 거리에 다녀왔다면서요. 시장에도 가셨나요? 설렘을 품고 다가올 리케를 카인은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으응, 아니. 그렇게 대답하면 리케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겠지. 할 일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동료에게 시장에도 가서 유행하는 게 뭔지 알아봤어야죠! 어린애다운 떼를 쓰는 건 신의 사도답지 않지만. 그래도 아쉽긴 아쉬워서, 평소보다 기운 없이 그런가요……. 대답할 걸 생각하면 한 번 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구경만 하지 말고 뭐라도 사갈까.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시장 앞에서 재정을 살피고 있던 카인의 주변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도 못 들었고 그런 낌새도 없었는데. 재앙의 상처로 보이지 않게 건 사람과 마법사지 물건과 자연 현상은 아닌지라. 카인은 고개를 들었고.

구름이 떠있을 하늘에 빗자루만 붕 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마법사. 오웬은 아니야.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마법사고. 얄궂게도 한쪽이지만 눈을 공유하고 있으니 오웬은 카인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럼 누구지? 찬찬히 빗자루를 살피자 답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빗자루에 탄 상대가 보이지 않아도. 커다랗고 푹신푹신한 망토 조각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으니까.

“아서!”

카인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자, 정답을 맞히면 찍는 잘했어요 도장처럼 손뼉이 맞닿더니 햇살을 등진 왕자님이 나타나더니.

“카인 한 가해?”

한가하지 않아도 한가해지는 마법의 주문을 말했다.

오늘은 오즈님도 임무가 없으시고 리케도 마법관에 있지? 아직 낮이니까 저번에 다 못한 수업을 이어해도 괜찮을 거야. 같이 돌아갈래?

공무가 일찍 끝나 마법관으로 가는 길에 카인을 발견한 아서는 반가움에 덜컥 내려왔고. 한가하냐는 마법의 주문도 내뱉었으니. 어디서 놀다가자, 어디 구경하고 가자. 딴 길로 샐 줄 알았는데. 곧장 마법관으로 돌아가자니 아쉽기도 했고 다행이기도 한 일이라. 카인은 흔쾌히 웃으면서 마법 주문을 외웠지만…….

응, 어라? 어? 주문을 외워도 빗자루가 나타나긴 커녕, 허공에 뜬 공기만 손에 잡혔다. 빗자루를 수납하는 마법은 알아도 다른 곳에 있는 빗자루를 부르는 마법을 모르는데 야단났네.

멀리 둔 도구를 가져오는 마법, 전에 히스한테 배웠는데. 그걸 응용하면 되려나? 카인. 그 마법은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소파까지 옮기는 간단하고 가벼운 것만 가능해. 마법관에서 영광의 거리까지 빗자루를 어떻게……. 옮길 수 있다면, 그건 오즈님이 아니면 힘들 거야……. 히스클리프가 들었으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라고 막았을만한 헛생각을 하는 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서가 카인의 빈 손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자루의 선단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내 빗자루가 있으니까 괜찮아.

밤이 온 바람에 마법을 쓸 수 없는 오즈님.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인 현자님. 그 다음 승객은 빗자루를 두고 온 카인이 될 줄이야. 아서는 자기 뒤에 카인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아니 많이 신이 나 들뜬 태도를 숨기지 않았고. 카인은 기사에게 검이 생명인 것처럼 마법사는 마도구와 빗자루가 생명이구나. 앞으로는 빗자루도 잘 챙기자. 반성하면서 하늘을 갈랐다.

혼자 즐기는 빗자루 비행의 묘미는 다양했다. 있는 힘껏 마력을 뿜어내 속도와 바람을 즐기는 것도 좋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을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면서 즐기는 것도 좋고. 비행 생물과 마주치게 되어 시작되는 모험 또한 묘미니까. 둘이 타는 빗자루 비행의 묘미도 똑같지만. 혼자 있을때는 할 수 없는, 둘이니까 할 수 있는 특별한 비행 묘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전에 현자님이 알려주셨는데.”

대화지. 아서의 입이 평소보다 열 배는 바쁘게 움직였다.

“현자님 세계에도 이렇게 하늘을 나는 도구가 있대. 비행기라고 하는데. 기잉기잉하고 운다는 거야. 신기하지? 혼자서 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고 하셨어. 마법과학으로 만들어진 공중전함이나 비행선이 가장 비행기랑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혼자서 하는 비행에선 할 수 없는 묘미를 즐기게 되어, 말문이 트인 아서와 다르게 카인은 어, 으응, 어. 사뭇 어색한 태도를 보였다. 공중에서 손을 쥐었다 피질 않나. 어정쩡하게 앉아 있다가 허리를 쭉 피질 않나. 부산스럽게 시선을 움직이지 않나. 평소 카인이라면 좋은 청자가 되어 줄 화제에도 영 집중하지 못하지 않나…….

하늘을 나는 뱀도 없고 떠다니는 뱀도 없는데. 아서가 카인의 이상한 상태를 알아차렸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못 알아차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여기는 아서에게도 카인에게도 익숙한 중앙 나라의 하늘이고. 카인이 꺼려하는 뱀도 안 보이고. 목적지는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관인데. 문제가 될만한 것도 없고 긴장할 것도 없는데. 뭘까? 의아한 아서의 다리에 작은 바람이 닿았다. 자연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손이나 발을 휘두르면 저항하면서 따라오는 공기의 흔적 같은 바람이었다.

카인이 헛발질할 만큼 상태가 이상할 이유가…….

헛발질……?

2

"인간인 척 하던 카인 나이트레이가 죽고 마법사로서의 저주 받은 인생이 새로 시작됐네. 무슨 기분이야? 네 소감이 궁금해 기사님."

진심으로 궁금한 것처럼 다가오지만 절실한 무게가 없고. 아무렇게나 나오는대로 툭 던진 말이라기에는 날카로워 베이기 쉽다. 이런 때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오웬의 질문은 무시해도 좋은 게 있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게 있어 태도를 확실하게 굳혀야 하는데. 이 시기, 그러니까 이 질문을 받은 카인은 아직 그 구분이 서툴렀다. 서투른데다 이상한 곳에서 성실하고 정직했다. 누가 물어보는데 어물쩍 넘길 수 없어.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 대화의 기본은 경청과 반응이야. 하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니 신중해야 해. 자칫 잘못하다가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골탕 먹게 되니까. 오웬의 말은 여린 부분에 달라붙어 흠집을 내고 그 흠집을 후벼 파 커다란 구멍을 만들 때가 많았다. 그 속에 안 들어가게 조심조심 움직여야겠지.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카인은 그 사실을 주의하면서 생각에 잠겼고, 주의한 것 치곤 빠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험한 표현을 담아 늘렸지만 요지는 '마법사인 걸 공표 당했을 때 어땠어?'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는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질문한 당사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과 달리 카인의 표정은 담담했다. 당연한 걸 말했다는 듯이.

행동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배가 고프니까 다른 것보다 먼저 식사를 챙기고. 졸리니까 다른 걸 뒤로 하고 숙면을 취하고. 거창하지 않아도 자기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 아닌가. 모든 이들의 행동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카인은 대부분 이유와 함께 움직였다. 수용할만한 지지대가 있으니 흔들리지 않는 게 카인 나이트레이였다.

마법사인 걸 숨기고 살았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마법사인 걸 보였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모순 된 곳이 없으니 카인은 태평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운 부분도 많았다. 언제까지나 거짓말하고 살 수는 없었지. 평생 속이고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멍인 줄 알았던 검푸른 흔적이, 위대한 재앙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현자의 마법사의 증표였다니. 흉악한 북쪽 마법사의 습격이 없고,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있었어도. 카인은 검은 백합 표식을 멍으로 착각해 똑같은…… 더 큰 실수를 저질렀을 게 뻔했다. 대련하다가 다쳤나? 훈련을 봐주다가? 뭔지는 모르지만 멍 주변에서 열이 나는 걸 보아하니, 가만 두면 안 되겠다. 욱신 쑤시는 오른 팔 아래를 잡고 찾아갔다가 진실을 마주하고……. 지금보다 상황이 안 좋아졌겠지. 

평생 은폐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해도 상황이 좋을리가. 

기사의 덕목은 신의였다. 본디 기사란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살고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 싸우며,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것인데. 언제나 진실만을. 카인은 마법사임에도 거짓말을 했다. 마법사 왕자님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데도 침묵을 지켰다. 당신이 나의 기사구나. 멋있어! 그 감탄에 걸맞은 이였나?

하늘을 날아본 적은 없고 애초에 마법을 써본 적이 드물지만 카인은 마법사였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습성이 남아있는데. 거짓말로 콱 눌러 막은 부분을 외면하면서 언제까지 살 수 있었을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왕자라는 입장이 있어, 자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 마음에 무척 솔직한 어린 마법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나로서는 나답게 정직하게 살 기회를 얻은 거니까."

오웬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태도는 이게 아닐 테지만. 어쩌겠어? 기사단을 습격한 마법사를 막기 위해서, 그 손에 죽을 뻔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카인은 마법을 썼다. 검과 비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하찮고. 상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실력인데도 지키기 위해서 주문을 외웠다. 그 결과 꿈이던 기사단장 직에서 내려오게 됐으며 귀를 따갑게 하는 소문과 성가신 입장이 따라오게 됐지만.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었다. 동료가 위험한데 자신의 안위만 살피고 치부를 숨기는데 급급해 움직이지 않는 건 카인이 되고 싶은 기사가 아니었으니까. 카인은 기사로서 지키기 위해서 선택했다.

그러니까 죽었다느니,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마법사의 인생이 저주 받았다고도 생각 안 해.

정말 마법사로서 저주 받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카인은 거짓말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마법사인 걸 숨기고 살라고 당부했던 모친을 떠올렸다. 자식의 끔찍한 삶을 막고 싶었다면 거짓말을 시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짓을 할 수 있었다. 마법사는 약속 어기면 마력을 잃게 되니까. 타인 앞에서 마법을 쓰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하면 됐을 텐데. 그게 아니라도 어릴 적에 아무 약속이나 잡고 어기게 만들면 됐을 텐데. 카인은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마법사로 자랐다. 부모님이 보기에 걱정 되기는 하지만 그런 수단을 쓸 정도로 저주 받은 인생이 기다리는 건 아니라는 증거였고.

마법사인 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지 진솔하게. 진실되게 사는데? 오히려…….

"최악."

먼저 물어봤으면서. 갑자기 없어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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