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완벽함을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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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간 공개)
그 애는 정말 알 수 없었다. 땡글땡글한 눈동자. 순수한 표정과 달리 새카만 눈동자. 부드러운 머리카락. 학교 보건실에서 속삭이던 목소리. 성찬의 머리에서 비상벨이 울린다. 삐용삐용. 혹시 스위치 있는 로봇이 아니라, 막 세이렌 같은 존재는 아닐까? 노래로 선원들을 꼬시는 인어 같은 애들. 그들은 악마일까, 천사일까. 일단 꼬시는 걸 보니 악마가 분명했다. 그럼... 스위치가 아니라 날개를 찾아야 하는 걸까?
허무맹랑한 생각들이 엉킨다. 이 생각을 읽는다면, 쇼타로는 분명 며칠 내내 깔깔 웃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찬은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쇼타로를 밀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일단은 좋았으니까. 그 애한테서 나는 냄새도, 그 애의 뺨의 촉감도 모두 속도 없이 좋았으니까.
보건실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어라 애국가를 속으로 제창한 보람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서로의 관계가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오사키 쇼타로는 괜찮은 걸까? 자기를 보고 욕정한 학생이 같은 반에 있는 게? 무슨 소문이 나지도 않고, 기묘할 만큼 평화로운 날이 이어진다. 아님 내가 그 애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그 애도 나의 비밀 하나는 쥐고 있을 심산일 수도 있었다. 영악한 놈, 철저하게 완벽한 놈.
성찬은 하품을 작게 하곤, 턱을 괴며 칠판을 바라본다. 담임은 자신을 볼 때마다 이제 담배는 안 피우는 거냐고 잔소리를 했다. 네, 네. 건성으로 답을 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성찬의 머리엔 담배를 뻑뻑 피우는 쇼타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리고 여전히 쇼타로를 지나칠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여전히 그 애한테선 좋은 냄새가 났다.
그 애의 완벽함을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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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슬슬 모든 게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니면서 왜 그 애는 자신을 끌어안은 걸까? 가까워지긴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 멀어진 격이었다. 자신을 성으로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달라 할 땐 언제고, 같이 축구도 했으면서 이젠 축구 할 사람, 모집을 해도 쇼타로는 힐끔 쳐다보곤 금방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쳐도 귀를 보이거나, 뒷목을 만지며 도발을 하는 것도 없었다. 뭐, 그때 보건실에서 야릇한 짓이라도 했어야 한 걸까? 아님 그사이에 만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인 정성찬 인생에 가장 복잡한 수수께끼 같은 인간이 파고든 것이다.
쇼타로는 그 이후로 다시 완벽함을 추구했다. 하교 후에 성찬은 쇼타로를 마주쳤던 골목을 일부러 몇 번 지나친 적 있었다. 그러나 그 애는 없었다. 나한테만 허술할 거라고 했으면서. 또 미련이 한번 쏟아진다. 다시 반듯하게 웃고, 똑 부러지는 반장. 모두에게 다정하고, 뒷목부터 척추로 이어지는 선 어딘가 스위치가 있을지도 모를 만큼 로봇 같은 애. 그래, 또 생각해 보면 자신을 가지고 욕정했던 놈이랑 어떻게 친해지겠는가. 그것마저 쇼타로의 연기일 수도 있었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는 연기. 쟤는 그러고 남을 애니까. 성찬은 하나씩 포기한다. 여전히 꿈속에선 오오사키 쇼타로가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응석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걸로 만족해도 좋을 것 같았다.
성찬의 꿈은 다시 천천히 평온을 찾기 시작했다. 꿈에서 그 애가 희미해질 때쯤 성찬은 이것도 짝사랑일까, 아님 방황일까 고민에 빠졌다. 교실에서 성찬은 아주 종종 쇼타로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허술한 오오사키 쇼타로가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 애와 단둘이 대화를 하게 된 건 꽤 많은 날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동안 정말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래도 전엔 종종 여럿의 대화에 아주 짧게 섞이곤 했지만, 그마저도 없을 만큼.
도와줄까?
아, 괜찮은데....
하교 후 축구 한판을 뛰고 교실로 올라가던 날, 쇼타로는 혼자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어디로 가면 돼? 성찬이 묻자, 강당으로 가야 한단다. 성찬은 쇼타로의 손을 더 가볍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쇼타로는 한사코 정확히 반씩 들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아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는다. 가방을 챙기고 교문을 나설 때까지. 성찬은 몰래 그 애를 훔쳐본다. 깨끗한 귀. 교문을 나서면 금방 화려한 피어싱으로 다시 채워지겠지. 그리고 어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집에 들어갈 것이다. 내일 봐. 그 애는 반듯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래, 내일...... 성찬은 말을 이어 나가려다가 잠시 멈춘다. 쇼타로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 너한테만 허술한 거야. 앞으로도 허술할 거고. 보건실에서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다시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 말의 한 장본인이 눈앞에 있으면서도. 성찬은 쇼타로의 손목을 붙잡는다. 응? 동그랗게 떠지는 눈. 성찬은 아무 말 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쇼타로의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어준다.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그 애는 분명 웃고 있었다. 반듯한 웃음이 아닌, 그 애만의 웃음으로.
성찬, 프러포즈 하는 거 같아.
누가 허술해서.
무릎을 꿇게 만드네. 성찬이 고개를 들자, 쇼타로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뿌듯한 얼굴. 하여튼 귀엽게 생겨 가지고. 성찬은 튀어나올 뻔할 말을 겨우 삼킨다. 어차피 내일부터 우린 다시 아무 사이도 아닐 테니까. 그 애는 완벽했고, 그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단지 숨통을 틔울 구석이 필요했을 뿐이다. 마음껏 허술하게 굴어도 되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더라. 성찬도 이젠 쇼타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의식하지 않는 척 태연하게 굴 수 있었다. 다시 공이나 뻥뻥 차고, 골을 넣으면 세레머니를 하고. 운동장 개수대에서 수돗물을 틀자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3:1로 이긴 날, 터질 것 같은 뜨거움을 물로 식혔다. 머리가 쿵쿵 울리던 얼얼함이 단번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수돗물을 끌 때쯤, 흰색 타올이 불쑥 성찬의 시선에 들어왔다. 쇼타로랑 함께 다니던 부반장이었다. 반에서 2등 정도 한다고 했었나? 여전히 자신과 접점이 거의 없는 여자애.
이거....
아, 고마워.
근데 너 얼굴색 토마토 같아. 우리 축구 같이 뛰었나? 성찬은 수건을 받으며 농담을 던졌다.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성찬은 순간적으로 바닥을 보자, 부반장의 신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헉, 미안. 부반장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수건 빨아서 줄게, 땡큐. 성찬은 수건을 머리에 덮은 채 교실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자 몇 명의 시선이 그대로 성찬에게 몰린다. 창밖으로 구경이라도 했는지 무슨 사이냐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고백 받았냐? / 고백은 무슨. / 분위기 좋던데? /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찬은 본능적으로 쇼타로를 찾았다. 이 대화에 관심도 없다는 듯 다른 학생들과 웃는 모습. 도대체 뭘 기대한 걸까? 이런 대화를 들으면 질투라도 하는 모습을? 성찬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었다. 그 애가 미웠고, 그 애가 야속했다.
한바탕 뛰었더니 수업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긴, 언제는 들어왔냐마는.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성찬은 무의식적으로 다시 한번 쇼타로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깨 쪽에 점이 몇 개 있더라. 이제 이 기억도 흐릿하다.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는 쇼타로 덕에, 성찬은 마음껏 쇼타로를 훔쳐볼 수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수업에 집중한 얼굴이겠지. 도톰한 입술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가끔 미간을 찡그릴 수도 있었다. 성찬은 이럴 때마다 방황보단 짝사랑이 아닐까 고심하곤 했다. 누군가의 표정을 예상하는 건 애정이 기반이니까.
혼자만의 자문자답 쇼에 픽, 웃다가 다시 한번 고개를 들 때 시선이 마주친다. 그 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작게 벌리더니 혀를 내미는 게 아닌가. 혀엔 피어싱이 올려져 있었다. 성찬은 순간적으로 짧게 탄식을 뱉었다. 사람 죽이려고.... 역시 로봇이 아니었다. 분명히 세이렌일 것이다. 자신은 배에 탄 유일의 선원일 것이고. 그럼 세이렌에게 넘어갈 것이냐. 성찬은 쇼타로의 혀에 시선이 꽂힌다. 당연하지. 저 알 수 없는 미친 또라이의 바다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꿈이 지워질 때쯤, 성찬은 다시 쇼타로의 꿈을 꿨다. 이런 것도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찾을 때에 맞춰 기가 막히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키스해줘. 꿈속의 쇼타로는 성찬의 뺨을 감싸 쥔 채 다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도톰한 입술, 그리고 붉은...
.....씨발, 진짜.
그날 밤 성찬은 침대에서 여러 번 몸을 일으켜야 했다.
완벽하면서 허술한 오오사키 쇼타로를 누가 이기겠는가. 성찬은 그날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우리 사귀거나, 아님 허술한 거 그만하자고. 내가 너한테 점점 더 불순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잘 구슬리면 그 애도 이해할 것 같았다. 성찬은 잠도 못 잔 상태로 일찍 등교했고, 역시 교실엔 쇼타로가 가장 먼저 와 있었다. 안녕. 성찬이 먼저 인사하자, 쇼타로도 안녕. 작게 웃으며 답한다.
쇼타로, 내가 할 말이 있는데.... 한 걸음 다가가자,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그 애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났었다. 계속 맡고 싶고, 또 맡고 싶은 그런 냄새. 그런데 지금 그 애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성찬은 순간적으로 쇼타로의 손목을 잡아 무작정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어디로 데리고 가지? 머리가 다시 한번 엉킨다. 그나마 1교시 전까지 학생들이 오지 않을 곳은 창고가 유일했다. 아프다고 짜증 내는 그 애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이 움직인다.
아, 성찬! 아프다고!
체육 창고 문이 열리자 성찬은 쇼타로를 먼저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담배 냄새를 어떻게 빼지? 속이 터질 것 같고 머리에서 심장이 쿵, 쿵, 쿵, 쿵 요동치는 것 같다. 한여름에 축구 경기 풀 타임을 뛰는 것보다 더 울렁거린다. 붉어진 손목을 움켜쥐고 뭐 하는 짓이냐며 투정을 부리는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완벽한 오오사키 쇼타로, 허술한 오오사키 쇼타로, 나만의 비밀, 분명 오늘 그런 거 그만하자고 말하려고 왔는데. 성찬은 쇼타로를 끌어안는다. 너, 왜 담배 냄새 안 뺐어.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찬의 어깨를 마주 안을 뿐이다. 지금 자신한테선 무슨 향이 날까. 갓 마른 셔츠를 골라 입고 온 참이라 기본적인 섬유유연제 향만 날 것이다. 성찬은 쇼타로를 창고 구석에 쌓여 있는 매트리스 위에 눕히자, 먼지가 일순간에 일어난다.
화났어?
타로,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 나 지금 네가 너무 싫어. 이런 느낌의 반항. 하지만 그런 반항치곤 또 착실하게 끌어안고 있는 게, 역시 너무 어려웠다. 어떤 수학 공식보다, 축구 토론보다, 경기보다.
성찬은 고개를 숙여 쇼타로의 뺨에 입을 맞춘다. 쪽, 쪽, 소리 나는 입맞춤에 그 애는 간지러운 듯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원망 섞인 소리가 꽂힌다. 내가 훔쳐보지 말고 직접 보라고 했잖아. 성찬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그런데 왜 너는 나를 안 찾아? 불퉁한 목소리. 부반장이랑 사귈 거냐고. 허술함이 아니다. 분명 질투였다. 걔한테도 신발끈 묶어줄 거야? 걔가 피어싱 하면 꼴릴 거냐고. 낯 뜨거운 말이 잘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배 냄새 나면 들킬 테니 오늘은 조퇴해.
같이 하자.
오늘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 또 그 얄미운 웃음. 같이 조퇴를 하고, 집에 가자고. 그것도 빈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쇼타로는 겁도 없었다. 아님 다 알고 끝을 내자는 건가. 속도 모르고 응? 같이 갈 거지? 그 애는 대답을 재촉한다. 무슨 선택지가 있으랴. 성찬은 결국 수긍한다. 이제 반으로 가자. 어째 달래는 것도 자신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쇼타로는 킥킥 웃으며 성찬을 더욱 끌어안는다. 성찬,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나.
혹시 이것도 꿈일까? 성찬은 자신의 뺨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분명 꿈속에서 한정된 일이었는데. 타로, 내 뺨 좀 쳐 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에 쇼타로는 아무 말 없이 두 눈만 깜박이더니, 그런 취향이야? 작게 묻는다. 아니, 꿈인가 싶어서.... 말끝을 흐리니, 잠시 고민하다 키스할래? 이딴 말이나 하는 게 아닌가. 그래, 고맙다. 방금 네 말에 더 꿈 같아졌다.
성찬은 하고 싶은 말을 겨우 억누르고 한숨을 뱉는다. 무슨 사내새끼 입술이 저렇게 예쁘고 난리람. 뒷목에 열이 제대로 오르는 느낌이다. 그냥 눈만 끔뻑이면 꼴리는 걸로 하자. 사고 회로가 등신이 된 것이 분명하다. 성찬은 쇼타로의 팔을 붙잡고 일으킨다. 에, 키스 안 해? 아쉬운 말투. 여기서 누가 더 아쉽겠냐고. 미련한 반장아. 성찬은 결국 속마음을 토해낸다. 집 비었다며. 집에서 하자.
반듯한 반장과 놀기만 좋아하는 놈이 한 번에 조퇴증을 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쌤, 저 감기 때문에 조퇴해야 할 거 같아요. 라고 말했을 땐 의심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쇼타로가 머리가 너무 아파요. 할 땐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냥 담임에겐 운 안 좋게 둘 다 아픈 날이구나 싶을 것이다. 괜히 이 관계가 들키는 게 두려운 건 오히려 성찬 쪽이었다. 뭐,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쇼타로는 빌어먹을 완벽주의자였으니까. 삐, 삐, 삐, 삐... 도어락 버튼이 눌러지고 문이 열린다. 분명 우리 허술한 거 그만하자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애의 집이다.
동글동글한 뒤퉁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오사키 쇼타로의 속마음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너는 왜 나한테 질투를 했고, 나한테 훔쳐보지 말고 직접 보라는 말을 했냐고. 왜 사람을 미치게 만드냐고. 네 덕에 나는... 너한테 욕정한다고.
타로.
차 한 잔 줄까?
그리고 왜 너는 항상 이렇게 여유롭냐고. 짜증을 내는 순간에도, 조급한 마음을 가지는 건 자신이었다. 차 한 잔 줄까? 속삭이는 목소리가 간지럽다. 여기서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데, 결국 참지 못했다. 성찬은 쇼타로의 뺨을 감싸 쥐고 입술부터 찾는다. 순간적으로 서로의 이가 닿자, 아! 그 애는 작게 탄식이 섞인 신음을 뱉었다. 뭐가 이렇게 급해....... 살살 달래는 말투까지, 이번에도 여유로움의 승기를 잡는다.
침대로 갈까? 입술이 떨어질 때, 쇼타로가 속삭인다. 이거, 꿈이 분명하다. 몇 번 이런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애의 방은 깔끔했다. 침대는 푹신하고. 침대에 쇼타로를 눕히면서도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걸까, 성찬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마지막으로......
쇼타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뭐?
내가 남들한테도 이러는 애로 보여? 대화 주제를 잘못 잡았다. 침대 위에서 할 만한 주제는 아니구나. 그냥 우리 무슨 관계냐고 구질구질하게 물어볼걸. 어떠한 변명을 해야 하는데, 도통 변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은 쇼타로를 그렇게 봤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 다정하니까. 그래서 더 갖고 싶었을 수도, 그래서 더 스위치를 찾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쇼타로의 표정이 구겨졌고, 곧 성찬의 배를 발로 밀어낸다. 해명해. 더 이상 목소리가 다정하지 않았다. 화난 표정. 이것도 처음 보는 그 애의 표정이었다. 뭐라고 해명을 할까. 사실 해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애는 다정했고, 자신은 그 다정을 의심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쏟아지는 다정이었으니. 성찬의 해명은 곧 원망으로 바뀐다. 나한테만 허술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왜 자신을 피했냐고. 피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냐고. 하지만 원망을 쏟아내지 않는다. 그 애가 좋았으니까.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널 모르겠어.
그래서?
모르는데도 너를 좋아해.
뜬금없는 고백에 구겨진 표정은 어디 가고 입술이 멍하게 벌어진다. 네가 수업 시간에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서운했어. 그런데 나는 네 뒷모습을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어. 신발끈도 너만 묶어줄 거야. 피어싱 보고 꼴리는 것도 너 하나뿐이고, 부반장 안 좋아해. 구구절절 고백이 쏟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건...... 고백이 이어질 때, 쇼타로가 말을 끊는다. 성찬, 나 급해. 하여튼 정말 이상한 놈이었다.
오오사키 쇼타로는 언제부터 자신을 좋아한 걸까. 성찬은 쇼타로의 뒷목부터 차근차근 입을 맞췄다. 은은한 담배 냄새. 너, 담배 냄새도 일부러 그런 거지. 성찬의 말에 쇼타로는 떨리는 숨을 뱉으며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얼굴 보고 싶은데.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다.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협탁 서랍에 있단다. 그러니까 그게 왜 서랍에 있냐고. 우선적인 궁금증과 묘한 짜증이 뒤섞이지만 괜히 또 이상한 말을 했다가 분위기나 깰 것 같아서 성찬은 침묵을 선택했다.
성찬, 남자끼리, 어떻게 알아.... 성찬이 쇼타로를 뒤에서 힘 있게 끌어안자, 힉 하는 숨소리와 말이 뚝뚝 끊긴다. 내가 괜히 너를 반찬 삼았을까. 살면서 남자끼리 사랑을 하는 영상을 보게 된 원인도 넌데. 하지만 영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영상 속 남자가 교태를 떨어도, 가장 자극적인 건 꿈에서 웃는 쇼타로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성찬은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힘 좀 풀어, 응? 다른 답으로 대체한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고르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프면 그만할까? 하니, 그건 또 싫단다. 여태껏 아픈 건 엄살이었는지, 성찬이 쇼타로에게 조금 더 기대자 작게 바둥대더니 시트를 꽉 움켜쥔다. 그리고 콜록, 콜록, 숨이 턱 막히는 기침까지 쏟아내는 게 아닌가. 어깨를 웅크리는 모습을 보고 성찬은 그런 둥근 어깨를 끌어안으며 다독인다. 타로, 긴장 풀어.... 달래는 말투에도 불규칙한 숨소리만 가득하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는데. 천천히 입을 맞추자, 그 애의 몸이 작게 떨린다. 타로, 너 스위치는 없구나. 황당한 말에 쇼타로는 너 싫어.... 칭얼거리는 소리까지 낸다. 싫으면 그만하자니까. 성찬은 쇼타로의 귀를 살살 괴롭혔다. 깨끗한 귀,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선 우악스럽게 많은 피어싱을 매달고 있었겠지. 성찬의 괴롭힘에 쇼타로의 귓불에는 어느새 피어싱 대신 성찬의 애정이 가득하다.
아, 이거 싫어, 으, 싫다고.
나는 너 좋아.
그렇게 꼬실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못 하겠단다. 그래도 상태가 걱정돼 상체를 잠시 일으키자 베개로 삼켜지던 호흡이 그대로 느껴진다. 고개 돌려 봐. 붉어진 눈가와 눈물범벅의 얼굴이 장관이었다. 힘들면 그만할까? 내면에서 폭발하는 욕심을 최대한 외면한 채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그 애는 작게 웅얼거린다. 나도 너 좋아, 키스해줘.......
모두에게 단정하고 반듯한 반장을 괴롭혀도 되는 걸까? '싫다'는 어느 순간부터 '좋다'로 바뀌고, 먼저 애정을 달라 조르기까지 하고 있었다. 와, 반장 너 진짜 변태 같다. 성찬의 농담에 쇼타로는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는지 힘없는 소리만 흘린다.
여러 차례 애정을 퍼부어준 뒤, 성찬은 쇼타로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귓불부터 어깨까지, 자신의 애정이 가득한 뒤태에 마음에 걸렸지만, 이게 또 묘한 소유욕을 불러와서 그저 좋았다. 변태새끼.... 쇼타로의 목소리가 어긋난다. 성찬은 웃지 않고, 그대로 그 애의 뺨에 입을 맞췄다.
성찬, 내가 처음 아니지.
왜 준비가 다 되어 있을까.
자신을 쉬운 남자라고 착각하는 걸까? 성찬은 굳이 답을 하는 대신 질문으로 화답한다. 그러자 쇼타로는 눈을 가늘게 뜨곤 처음으로 먼저 백기를 든다. 너 꼬시려고 샀어. 하여튼 우리 반의 그 다정하고 반듯한 반장이 이렇게 완벽하면서도 발랑 까졌다는 사실을 누가 알겠는가.
네가 처음인데. 답이 돌아오자, 성찬도 쉽게 답을 해 준다. 그리고 몰려오는 또 하나의 고민. 이렇게 홧김에 한 고백과 애정을 공유한 이 시간으로 우린 어떤 관계가 되는 걸까. 다시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유도 없이 허술해지는 관계가 아닌, 정당한 이유가 있는 관계. 성찬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쇼타로는 손을 쫙 펴 보이더니, 반지는 1년 뒤에 맞추면 좋을 것 같아. 라고 중얼거린다.
분명 교내에선 우린 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러가는 그저 동급생의 관계. 그러나 누구보다 서로를 신경 쓰고, 질투하고, 좋아하는. 수업 중에 시선이 닿을 수도, 어쩌면 내일부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애가 보건실에 가면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보건실에 따라 가야 하고, 가끔 일부러 자신에게 허술하게 구는 모습을 반듯하게 정돈해 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주며. 은은한 담배 냄새에 잔소리를 하며.
그리구 성찬.
응.
앞으로 마음의 준비는 항상 하고 다녀.
무슨 말인가 싶어 성찬은 미간을 좁힌 상태로 골몰한다. 학교에서 눈맞을 수도 있잖아. 기가 막힐 만큼 뻔뻔한 말투가 그저 황당하다. 그래, 역시 세이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영악한 세이렌의 바다에 빠질 것인가. 당연하지. 숨을 다신 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세이렌은 자신을 어떻게든 살릴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쇼타로는 이상하게 완벽했고, 기묘하게 허술했다. 그 애는 정말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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