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허술함을 주의하세요
그 애는 정말 이상했다. 일본인 이름을 가졌으나, 유달리 한국어를 잘하는 2-A반의 반장. 중학생 때 한국으로 넘어왔단다. 타고나게 좋은 성격, 귀엽게 생긴 얼굴, 모범생, 그리고 빼지 않고 모든 걸 다 좋아하는 미련함으로 그를 싫어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성찬은 그 애가 기묘하게 싫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웃는 그 눈매가, 싫은 티 하나 내지 않고 빳빳하게 웃는 모습이, 한결같이 웃는 모습이 꼭 로봇 같았다. 인간 같지 않았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그 애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 애가 가진 속성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무던한 속성.
2년 연속 같은 반이지만 대화 한번 제대로 안 해 본 사이. 그저 서로의 이름만 알고 있는 동급생. 그 애는 내 이름을 알까? 어느 순간부터 쌓였던 질문은, 어느 날 완벽하게 해소된다.
정성찬, 수업 쨀 생각 하지 말고 쇼타로 좀 교무실 오라고 해.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멋대로 꿈꾸던 성찬의 탈출이 허무하게 무산된다. 이동 수업 덕에 아무도 없는 교실. 아니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다. 곤히 잠든 단 한 사람. 오오사키 쇼타로였다. 범생이가 어쩐 일로 이동 수업도 안 가고 앉아서 곤히 자고 있는지. 성찬은 괜히 마른침을 삼킨다. 깨워도 되는 건가? 꽤 조심스럽다. 이렇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서. 단둘의 대화가 영 이상할 텐데. 어떤 대화에 섞일 때도 누군가가 꼭 있었다.
새근새근 숨소리. 성찬은 옆자리에 앉아서 잠든 쇼타로의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인간은 인간이구나. 아님 스위치가 꺼진 걸까. 성찬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쇼타로의 뒷목을 바라본다. 슬쩍 보이는 살결에 점이 여러 개 박혀 있다. 아, 씨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너 뭐 해?
언제 깬 걸까. 헉, 하는 숨소리와 함께 성찬은 한 걸음 뒤로 밀려난다. 쇼타로는 자신의 뒷목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기울인다. 응? 뭐 묻었어? 태연한 말투. 그리고 반듯한 웃음. 그러니까, 성찬은 저 한결같은 웃음이 싫었다. 그래. 정성찬은 오오사키 쇼타로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놈이 왜 사내 새끼 뒷목을 훔쳐봐? 자문자답에 빠른 절망이 찾아온다. 아니다, 응큼한 생각이 아니잖아. 혹시나 스위치가 있을까 봐.... 그 어떤 답도 모두 오답 같고 핑계 같아서 성찬은 목소리를 다듬는다.
담임이 너 불러. … 미친, 목소리를 다듬어도 긴장을 했는지 목소리가 어긋난다. 그 애는 풉, 작게 웃었다. 고마워, 성찬. 그 애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오오사키 쇼타로는 정성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의문이 풀린다.
그 이후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찬은 학교에 나와서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달려 나가서 축구를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아주 가끔 인력이 비는 날엔 쇼타로가 종종 도와주기도 했다. 공부도, 축구도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소위 말하면 재수없는 부류.
어느 날은 2:0 으로 이긴 후, A가 쇼타로한테 어깨동무를 하더니 너는 축구 어느 팀 좋아하냐? 라고 물었고, 그 애는 나 축구 안 보는데.... 말을 흐렸다. 아하하, 웃음소리가 민망하지만 한결같았다. 엥, 뭐야. 축구도 안 보는데 어떻게 좀 하냐. 재미없다는 A의 말. 그리고 다음 날 A는 성찬에게 쇼타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걔 진짜 특이하지 않냐? 성찬은 아무런 대꾸도 않는다. 너무 특이해서, 뒷목에 스위치 있으면 어떡하냐 걱정까지 했다는 말을 숨기며.
성찬은 정말 애매한 위치였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수업도 자주 빼먹었으나, 양아치는 아니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몹쓸 짓도 하는 부류는 더더욱 아닌. 그냥 공부보다 축구가 더 좋은 부류. 그러나 오오사키 쇼타로는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공부에 관심도 있고, 성격도 둥글둥글한. 원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부류. 그런 애들은 다들 저렇게 로봇 같을까?
성찬, 이거 A가 주래.
축구공이 휙 넘어온다. 성찬은 순간적으로 축구공을 잡곤 바보같이 눈을 깜박였다. 다음에 또 사람 비면 끼워 줘. 재미있더라. 표면적인 말이 흘러간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 팀) 좋아해. 대화의 흐름 따위 맞지 않았지만, 성찬은 얼떨결에 말한다. 쇼타로는 그렇구나. 담백하게 대꾸하며 자리를 떠났다.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아무래도, 그날 몰래 그 애 뒷목을 훔쳐본 죄가 지워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분명 아무런 흑심도 없었는데 계속 변명만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변명을 할 수록 미친 변태새끼가 되는 느낌에 성찬은 혀라도 깨물고 싶었다.
그 애의 허술함을 주의하세요
오오사키 쇼타로는 지각을 한 적 없었다. 등교 시간 사십 분 전에 와서 정리를 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느긋한 지각을 하고 있는 정성찬은 등굣길에서 그 애를 만났다. 어울리지도 않는 뻗친 머리카락. 최대한 못 본 척, 고개를 숙였지만 먼저 인사를 걸어온다.
안녕, 성찬.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무렇지 않게 네가 어쩐 일로 지각이냐며 스몰토크라도 시전했을 것이다. 어쩐 일로 머리 세팅도 안 했냐고, 이 일을 농담처럼 넘겼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성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인사를 받는다. 안녕. 그리고 시선은 그대로 그 애의 귀에 꽂힌다. 원래 쇼타로가 피어싱을 했었나? 아니다. 그럼 무조건 벌점일 텐데. 하나도 아니고 우왁스럽게 많다. 성찬이 걸음을 멈추자 덩달아 쇼타로도 걸음을 멈춘다. 왜? 무슨 일 있어? 이 태연한 목소리. 제 속도 모르고. 이번엔 제발 목소리가 어긋나지 않길 바라며, 성찬은 겨우 입술을 열었다.
너, 귀에....
아, 맞다. 쇼타로는 자신의 귀를 만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귀에 꽂혀 있던 피어싱을 빼낸다. 벌점 먹을 뻔했네, 고마워.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 안되는 게 나뿐인가. 성찬은 또 한 번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 그 애는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해도 유연하게 넘어갈 대답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미련할 만큼 완벽한 성격 덕에 귀 뚫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건가? 멋대로 상상이 이어진다. 귀를 뚫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제야 조금 그 애가 인간처럼 보였다. 헛점을 보이고 싶어하는 유형은 아닌 게 분명했다. 야, 오오사키. 성찬의 말에 쇼타로의 걸음이 멈춘다.
너 뒷머리 뻗쳤어.
에, 정말?
으아, 웃긴 소리와 함께 그 애는 자신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아, 진짜 이젠 좀 인간 같네. 성찬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아프다고 구라 쳐. 성찬의 조언에 쇼타로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쇼타로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야, 타로. 너 뒷머리 뻗쳤어. 이런 말을 들어도 오늘 늦잠을 자서.... 자연스럽게 웃어넘겼다. 나름 도와주려고 한 건데. 완벽한 삶을 꿈꾸는 것 같아서. 역시 알 수 없다.
성찬은 동급생과 대화를 하는 쇼타로는 가만히 바라본다. 왜 잠든 모습을 몰래 훔쳐봤을 땐 피어싱 자국을 보지 못했을까. 한번 보고 나니까 이렇게 잘 보이는데. 그리고 눈이 마주친다. 쇼타로는 얄밉게 웃어 보이더니, 눈을 감곤 귀를 보여준다. 씨발.... 2학년 A반 반장은 빌어먹을 영악한 또라이가 분명했다.
정말 짜증나는 일은, 그날 밤 성찬은 쇼타로를 반참 삼아 한 발 뺐다는 점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컴컴한 천장 위 눈을 감고 귀를 보여주는 오오사키 쇼타로. 분명 자신을 놀리는 게 분명했다. 분노로 몸을 일으켰는데 이상하게 반응은 아랫도리가 하고 있었다. 미친 게 분명하지. 아무리 그래도 같은 남자 동급생한테 발정을 하냐.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그다음에 생각나는 건 잠든 쇼타로의 뒷목에 난 점들이었다.
그 뒷목 한 번 손으로 감싸 쥐고 싶다. 귀를 한 번만 만져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애랑 뭘 하고 싶은 거지? 손바닥엔 허연 백탁액이 퍼진다. 오오사키 쇼타로를 영악한 또라이라고 욕할 것도 못 된다. 너는, 그런 놈한테 발정까지 했으니.
남자를 상대로 설 수 있나? 최근 성찬의 고민은 단 한 가지였다. 마음에도 없는 상대가 성적으로 보인다는 것. 분명 로봇 같다고 생각한 상대가 자신에게 인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눈이 마주치면 샐쭉 웃으면서, 귀를 만진다거나 괜히 자신의 뒷목을 만진다거나. 자신이 뒷목을 훔쳐본 것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따로 말을 섞진 않았다. 하루에 겨우 시선이 두 번 정도 마주치나. 딱 그런, 평소와 같은 관계.
시선이 마주치면 늘 성찬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반장, 놀리는 건 좋은데 내가 네 상대로 딸쳤다는 걸 알아도 계속 놀릴 수 있을까. 하지 못하는 말이 쌓인다. 축구나 하자. 몸이나 혹사시켜야지. 오늘 점심 먹고 축구 뛸 사람. 항상 뛰는 놈들만 우르르 모인다. 그리고 뭉실뭉실 다정한 목소리가 하나 꽂힌다.
나도 하면 안 돼?
거절해야 한다. 인원도 충분하고, 다음 기회에 하자고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오오사키 쇼타로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로봇이 아니라, 마법사인가? 성찬은 또 등신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흉한 상상 하나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원인이 다시 붙었다.
1:1 무승부. 보통 무승부도 성찬은 씩씩거리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씩씩거릴 틈도 없었다. 공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쇼타로가 쫄래쫄래 따라왔으니까. 물론 아무 대화도 없었다. 평소 걸음이 빠른 편이었고, 그 애는 걸음이 약간 느렸다. 이 상황에서 맞추는 것도 자신이었다. 나, 레알 마드리드 경기 봤어. 침묵을 깨는 건 그 애였다. 재미있더라. 근데 나는 바르셀로나(*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 팀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경쟁팀)가 더 좋아. 속삭이는 목소리. 평소 누군가가 경쟁팀을 좋아한다고 했으면 반박으로 시작해 열띤 토론까지 이어졌어야 했는데, 성찬은 아.... 말을 흐린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심심했는지 쇼타로는 성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얼굴을 쑥, 들이민다. 코가 닿을 것 같은 거리. 가깝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쇼타로.
응?
성찬, 그때 나 성으로 불렀잖아.
그건 친한 사이끼리 하는 거 아닌가? 분명 그렇게 들은 거 같은데. 성찬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자 재촉하는 말투로, 응? 쇼타로. 타로라고 해. 조금 더 가깝게 밀착하자 성찬은 결국 굴복한다. 그래, 타로. 쇼타로. 그러자 거리가 원상복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성찬은 여기서 좆된 걸 감지했다. 귀에 난 피어싱 자국이 이상하게 꼴렸다. 헐렁한 체육복 사이로 보이는 뒷목에 난 점까지.
근데 너, 왜 자꾸 나 훔쳐봐?
......무릎 꿇고 빌까. 아님, 훔쳐본 거 아니라고 정색을 할까. 머릿속에 다급하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 애는 자신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 앞으로 보고 싶으면 훔쳐보지 말고, 직접 봐. 다정한 말투와 달리 그 내용은 야릇하다.
땀 뻘뻘 흘리고 공이나 찼더니 그 애는 꼴리는 말만 하고 있었다. 당장 뒷목을 감싸 쥐고 뒷목에서 어깨, 허리에 점이 몇 개는 있는지. 스위치는 있는지. 그렇게 폭력적으로 굴어도 계속 웃고 있을지 모든 걸 확인하고 싶다. 그래, 머리가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있잖냐, 오오사키 쇼타로. 나는 네가 그럴수록 개쓰레기 상상만 할 수밖에 없어. 성찬은 하고 싶은 말은 겨우 삼키고 그 애의 말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단정하고 올바른 반장 쇼타로와, 축구에 미친 정성찬.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고, 시선이 마주치는 수도 점점 들어든다. 며칠 동안은 꿈에 그 애가 나와서 괴로웠다.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끌어안는 팔이 생생해서. 벌어진 입술 틈으로 낮은 신음을 흘리고,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까지 생생했는데 접점이 사라지니 그 꿈도 옅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 평범한 날로 돌아오는 거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정성찬의 편이 아닌 게 분명했다. 하교 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애를 만났을 때. 귀에는 피어싱이 빛나고 있었다. 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그 애와 눈이 마주친다. 안녕. 다정한 인사. 그리고 시선이 어긋난다. 곧 쇼타로는 발로 담배를 비벼 끄곤 먼저 자리를 떠났다. 말투만 다정하지 눈빛은 냉랭했다. 이게 오오사키 쇼타로의 진짜 모습 아닐까.
성찬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 애한텐 담배 냄새가 일절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좋은 향이 났다. 강박적 완벽주의자가 분명하다. 무언가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그런데 쇼타로는 이상하게 성찬에게만 두 번이나 들켰다. 우연인 건지, 자신을 시험하는 건지, 아님 자신에게만 유독 허술해지는 건지. 성찬은 답을 찾지 못한다.
자신은 허술했지만, 그 답이 무엇이든 쇼타로의 완벽주의는 지켜주고 싶었다. 엄청나게 노력하는 타입 같았으니.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모르는 척을 하며, 괜히 혹여나 담배 냄새가 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쇼타로를 지나칠 때마다 숨을 깊이 들이쉬기도 했다. 여전히 그 애한테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렇게 완벽한 모습을 유지할 때마다 성찬은 그날을 기억해냈다. 담배를 피우던 오오사키 쇼타로, 귀에 피어싱을 한 채 등교를 할 뻔한 오오사키 쇼타로. 아무도 모르는 반장의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었다. 염치없게도 여기서 가장 흑심을 가진 자신이.
그 애는 자신에게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았다. 따로 불러서 어제 본 건 비밀로 해 달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비밀을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학교에선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오히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대화를 섞지도 않지만 시선이 종종 마주칠 때마다 성찬은 더 이상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마주치는 시선. 고개를 돌리는 건, 이제 쇼타로 쪽이었다.
누가 화장실에서 흡연하냐.
담임의 말로 불시 검문이 시작된다. 가방 다 꺼내라. 성찬은 순간적으로 쇼타로를 바라본다.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얼굴. 그래, 숨겼겠지. 학교에 들고 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런 완벽주의자의 가방 안에서 담배가 툭 떨어진다. 믿을 수 없다는 담임의 표정과 동급생들의 표정.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 밝혀질 일인데, 이상하게 성찬은 그 애의 비밀을 자신만 알고 싶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상하게 생긴 소유욕이 분명했다. 그 애를 지켜주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런 고상한 감정은 이미 개나 준 지 오래였다.
쌤, 그거 제 건데 반장이 주웠나 봐요. 졸지에 비흡연자 인생에 흡연자 꼬리를 달게 생겼다. 그 애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게, 진짜, 빌어먹게 귀여웠다. 머리에 혹이 생기고 거한 벌점과 함께 반성문까지 써야 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 반장 오늘 안 왔냐?
보건실에 누워 있는다던데.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담임한테 맹세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어쩐 일로 쇼타로가 자리에 없었다. 생각보다 허약하네. 로봇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최근 그 애는 인간다운 행동을 몰아서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스위치 한번 찾아보겠다 몰래 훔쳐보다가 들키는 일 따위 없었을 텐데.
아파서 끙끙 앓는 모습이 상상된다.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그 애에 대한 생각을 했는지, 아픈 모습 정도는 금방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야, 정성찬. 어디 감.
보건실.
지금?
손 베였어.
멀쩡한 손을 감싸 쥐고 괜한 아픈 척 엄살을 피웠다. 도착한 보건실, 선생님은 어디 갔는지 창문만 활짝 열려있다. 그리고 흰색 커튼. 쇼타로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디 아파? 성찬의 걱정에 쇼타로는 푸하, 웃음을 터트린다. 네가 거짓말하라며.
그래, 정성찬은 또 오오사키 쇼타로의 수에 빠졌다. 그것도 자신이 알려준 바보 같은 방법에. 네가 올 줄 알았어. 간지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그럼 안 아픈 거지? 성찬은 속은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졌고,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아, 성찬. 내 뒷목 만져볼래? 이상한 제안을 하지만,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네가 로봇이라고 생각했어. 뜬금없는 고백. 그 애의 목덜미는 부드러웠다. 으하, 간지러워어....... 기울어진 쇼타로의 머리카락이 자신의 어깨에 닿는다. 그리고 쇼타로는 두 팔을 뻗어 성찬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스위치라도 찾은 거야?
그 애는 이미 모든 정답을 알고 있었다. 응, 그런데 너 인간이더라. 허술하고, 허술해. 쇼타로는 그 말에 웃음을 한참 터트렸다.
사람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한번 목덜미를 만졌다고, 다음엔 귓불을 그리고 뺨을 만지고 싶더라. 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건 이상한 관계니까. 사귀는 것도 아니고, 친구인 관계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있지, 왜 나를 도와줬어? 쇼타로가 속삭이자, 성찬은 몸을 뒤로 슬쩍 물린다. 와, 이러다가 설 것 같은데.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답한다. 네 비밀은 나만 알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내 비밀 하나 더 알려줄까? 쇼타로의 뺨이 성찬의 뺨에 닿는다. 성찬은 거절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나 너한테만 허술한 거야. 앞으로도 허술할 거고.
심장이 쿵쿵쿵쿵, 뛴다. 이거 고백일까? 그럼 우리는 어떤 관계가 되는 걸까. 자신한테만 허술해질 테니, 네가 알아서 자신을 잘 지키라는 오만한 고백에 왜 심장이 뛰는 걸까.
성찬, 너 섰어. 오오사키 쇼타로는 생각보다 더한 미친 또라이였다. 그러니까 그 애는 정말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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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인사하는 바다코끼리
너ㅠ무ㅠ좋ㅠ아ㅠ요ㅠㅠㅠㅠㅠ진짜 오오사키쇼타로는 살아있는 구미호 어쩌구저쩌구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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