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겸] 나의 잃어버린 것을 위하여
한국 오컬트물 조각글. (2024.02.26)
이하 내용에 삽입된 소재들은 모두 허구 창작입니다.
무당, 굿 등 무속 신앙 소재 포함됨.
(제목 모티브: 잠비나이 -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
*
그 해엔 사람이 많이 죽었다. 바다라는 게 원래 그랬다. 사람은 태초로 돌아가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너희들이 땅에 오른 것이 불경하다는 듯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곤 했다. 어릴 땐 그러한 모든 위험을 막아 줄만큼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었다. 그 당시 우리를 지키는 것은 신령님과 하나님, 부처님 뿐이었다. 바닷일을 할 때 제발 노여워 하지 마시라고 굿을 하고, 작은 폐교 안에 예배당을 만들어 기도를 했다. 거대한 뜻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도 하찮고, 부드러웠다. 운명에 늘 휩쓸릴 수 밖에 없는 존재감들이었다.
김민규는 어린 시절 그 거대한 뜻에 대항하던 무모한 때를 떠올리곤 했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섬에서 태어나 바다가 제 것인 줄로만 알던 그 이전부터, 우리를 집어 삼키는 것이 바다와도 같은 운명인 것을 깨닫게 된 그 이후까지.
‘그들’이 살던 곳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못하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작은 분교밖에 없던 그곳.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뭍으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태어난 뒤로 쭉 당연한 것처럼 살았었다. 그래서 섬의 모든 것들이 익숙하고 제 세상이었다. 거기에 자신과 같은 해에 태어난 다정한 친구까지 있다면, 겁이 많은 민규에게 있어 두려울 것은 생각보다 없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이석민이었다. 빠른 생일이었지만 섬에 있는 동갑 친구는 서로 뿐이라 형 동생에 대한 분쟁도 없었고 형제처럼 자주 투닥거리긴 했으나 서로를 생각하는 모양이 예쁠 정도였다.
어른들도 섬을 뛰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좋아했다. 늘 밝고 착하고 싹싹해서. 모두가 그들의 부모인 것처럼 잘 챙겨주곤 하던 것이 그 시대의 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던 그 해에는. 거대한 뜻에 인간은 별 수 없었다. 가족을 잃은 누군가는 말 역시 잃고 그늘이 지고 있었다. 섬 전체에 그늘이 졌다. 해도 잘 뜨지 않았다.
결국은 뭍에서 무당이 한 명 올라왔다. 섬에 낀 액이 보인다고. 이 액이 너희에게 모두 칼을 겨눈다고. 섬이 노하고 하늘이 노하고 바다가 노했노라고 무당이 이야기 했고 사람들은 그걸 믿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무당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굿이 시작되고 배들이 드나들던 항구에는 굿하는 소리 만이 가득했다. 심장처럼 둥둥 거리는 북소리도, 귀를 찢을 듯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도 모두 위협적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어른들 뒤에서 그것을 구경했다. 어느 새 맞잡은 손에 식은 땀이 나도 놓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석민의 상태가 이상했다. 모두들 자신의 앞가림에 바빠 아이들을 지켜볼 틈이 나지 않았기에, 유일하게 옆에 있던 민규가 그것을 빨리 알아챘다. 자고 일어나면 늘 그가 없었다. 있더라도 발바닥이 새까만 상태로 오래 잠들곤 했었다. 밤에 어딜 다녀 오냐고 물어도 그는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일생을 봐온 친구로써, 그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지라. 그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 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조바심이 났다. 굿을 하는 와중에 널 뛰는 무당의 눈길이 아무 죄도 없는 자신을 꾸짖는 것만 같고. 자주 넋이 나가는 석민의 변화를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자는 석민의 손만 꽉 쥘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어느 날은 겁을 삼키고 밤 늦게 일어난 석민을 따라 나섰다. 그는 산을 타고 올라 자신들이 늘 걷던 고랑까지 올랐다. 어느 덧 산 꼭대기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오래된 나무 앞에 섰다.
민규는 뒤에서 그가 하는 모양을 살폈다. 석민은 옆에 있던 돌을 잡아 나무 밑둥을 파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가끔씩 사납게 굴곤 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기세가 매서웠다. 나무를 죽일 듯이 파기 시작하는 손길이 억셌다. 뒷목이 서늘해지고, 온몸이 굳었다. 그럼에도. 석민이 돌을 던지고 맨 손으로 그곳을 파려고 할 때,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가 그를 껴안았다.
“석민아. 제발... 그러지 말자. 응?”
울면서 빌었고, 자신을 쳐다 보려던 시선이 툭 꺼졌다. 갑자기 정신을 잃은 그를 눕혀 놓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어린 민규는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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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임시로 머물던 거처에 어떻게든 용기 내어 찾아간 민규가 문을 열자 무당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쳐다 보았다.
“홀렸어. 아주 제대로 홀렸어.”
그 말에 민규는 식은 땀이 흘렀다. 어떻게든 보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람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석민이 어떡해요? 간절한 구조 요청에도 낯 하나 바꾸지 않았던 무당이 그를 가만히 쳐다 보았다.
“꼬리도 많은 놈한테 걸렸다. 섬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고, 괜히 어린 놈한테 심술이나 부리는 거야. 나무 밑이 신령님 잠자리 인데, 봉분을 파서 화를 돋우는 거지.”
모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도리어 홀린 것처럼 그 말을 듣다가 민규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둔 것이었다. 무당은 코웃음을 쳤다. 민규는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었다가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누르듯 이야기 했다.
“석민이 좀 살려 주세요.”
-
“민규야 괜찮아?”
여느 때처럼, 바닷바람에 탈이 나 일주일을 꼬박 누워 지냈던 자신을 돌보던 그 때처럼. 석민은 걱정스럽다는 듯 민규를 쳐다 보았다. 이내 들고 있던 초코파이도 선뜻 건네고. 민규는 괜찮다며 밀어냈지만 그 행위가 도리어 그의 걱정을 더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았다.
“석민아.”
“응?”
“내가 구해 줄게.”
석민에겐 다소 뜬금없는 소리였다. 이게 미쳤나. 그런 소리를 내뱉어도, 귓가는 솔직하게도 빨갛게 올라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민규는 어젯밤 만났던 무당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보름이 되기 전까지, 생각해 봐. 그 여우새끼한테 네 친구 간을 줄 지. 아니면 네 간을 나한테 줄 지.
비유였다. 영감이 예민한 민규를 무당은 예전부터 살피고 있었고 이미 주변부터 꼬인 팔자 덕분에 변을 보기 직전인 친구의 얘기까지 듣자 하니 데려갈 때가 된 것 같아서. 민규는 조금 망설였다. 원래부터 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석민 앞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곧, 그러겠다고 이야기 했다. 무서워 죽을 거 같아도. 아닌 밤중에 공동 변소에 같이 가자고 말하는 석민의 말에는 늘 투덜거림도 없이 같이 가주던 그였다. 호기심 많은 그가 섬 안에 있던 동굴에 같이 가달라고 이야기 해도. 민규는 조금 망설이긴 했어도 늘 그와 함께 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름을 하루 앞둔 밤에, 석민이 민규와 만나자고 했다. 어른들 몰래,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눈치 좋은 민규는 알았다고 했고, 곧장 무당에게로 가 그 이야기를 전했다. 무당은 곧 무엇인지도 모르는 피 한 컵 분량과 부적을 쥐어 주었다.
밤이 되자, 그가 만나자고 한 산꼭대기에 올랐다. 무당이 직접 짚어 준 제 몸 위치에 부적을 붙이고 피를 적셔 냄새를 감춘 채. 나무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석민과 마주섰다.
“민규야.”
“응.”
“나 요즘, 힘들어. 네가 날 안 믿는 것 같아서.”
그의 눈에 어느 새 그렁그렁 눈물이 찼다. 아직 섬에 남아 있던 형들이 그에게 모진 말을 할 때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막아서던 것이 민규였다. 그 정도로 그가 상처를 잘 받고, 늘 햇볕과 응달을 오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번 이석민 보다 그 안에 있는 여우 새끼를 노려 보느라.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싶었다. 그러다 가도, 김민규는 곧잘 영특하게 굴 줄 알았다.
“내가 ‘뭘’ 안 믿는 것 같은데?”
“...”
평소 그랬던 것처럼 바로 달래지 않았다. 잠시 석민 쪽에서 숨을 골랐다.
“나. 그냥, 나. 난 이석민이잖아. 니 친구.”
그래. 친구. 문득 그 단어에 시선이 흔들렸다. 친구. 친구는 맞는데. 이번엔 민규 쪽에서 숨을 고르고, 곧 석민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무당이 말했다. 이 여우 새끼는 굶주렸다고. 생선의 간 조각으로는 모자라서. 겁 없이 인간을 노리고 있다고. 늘 무언가 욕구에 휘말리게 되면 그리 영특한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석민은 간 안 먹어, 이 새끼야.”
민규는 울음을 꾹 참으며 그렇게 내뱉었다. 곧장 구름이 달을 가렸다. 응달 아래 이석민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 보았다.
“누가 그래?”
석민의 얇은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갔다. 눈은 그대로 인데, 입가만 쭉 올라가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민규는 곧장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음에 뒷걸음 치려 다가, 이내 이를 꽉 물고 멈췄다. 그대로 굳은 그에게, 석민은 손을 뻗었다.
“누가 그랬어? 안 먹는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지척에 닿았다.
“어떤 년이 그랬겠지.”
“...”
“새파랗게 어린 사내아이놈 간 하나 대신 팔아 그 입에 풀칠하겠다고.”
네가 덫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 바로 앞까지 닿았다.
그 해엔 사람이 많이 죽었다. 달리 말하자면, 죽어 사라진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가 바다에 수장되어 사라진 다음엔,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없어진 간은 누군가의 어금니에 뜯겨 사라진 뒤였다.
산짐승을 잡으려면 덫을 놓아야지. 어부가 물고기를 낚는 것도 마찬가지야. 싱싱한 지렁이 하나 모가지를 바늘에 꿰어 적기를 기다리자. 큰 놈이 물기를 기다리는 거야. 배 불러 몸을 불린 여우 한 마리를 잡으려면, 아무래도.
민규는 그런 사실들이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공포를 목전에 두고 나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 하나가 제 시야를 가려 주었다.
“여우 새끼가, 몇 개월 커봐야 여우 새끼지.”
김민규는 그대로 석민의 품을 안았다. 곧장 그의 간 쪽으로 손톱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곧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꽹과리 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괴로운 그의 비명이었다. 이미 옷 안으로 온통 푹 젖은 피를, 그에게 모두 묻히려 푹 안았다.
야밤에 문득 잠에서 깬 석민을 위해 같이 변소에 간 날. 돌아오는 길에 달이 너무 커서, 잠시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 있었다. 둘 다 어둠과 귀신은 그렇게 무서워 하면서, 서로 손을 잡고 마을 바위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넌 뭍으로 가면 뭐할 거야?”
“글쎄. 노래나 부르고 싶은데. 근데 딴따라 한다고 혼날 거 같아.”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는 석민의 얼굴을 문득 쳐다 본 적이 있었다. 달빛에 밝은 얼굴이 샐쭉하니 예뻤다. 가끔, 그 뺨에 입 맞추고 싶단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만큼이었다. 김민규가 자신을 버려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악몽으로 인해 울며 자신에게 안겼었던 그의 품을 다시 떠올리며, 김민규는 무서워 죽고 싶은 그 순간에도 울며 버텼다.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그를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는 뭍으로 가면, 너랑 같이 있고 싶었다고. 네 노래 들으며, 그냥 그렇게 있고 싶었다고 얘기라도 해볼 걸.
동이 트면 비명이 멈췄다. 밤새 그 좁은 동네에 비명이 그리 쉴 새 없이 울렸는데도 나와보지 않던 마을 사람들이 그제야 그 자리를 찾았다. 쓰러진 석민을 안고 울고 있는 민규를 바라보다가, 마을 사람들을 헤치고 무당이 나와 그들을 살폈다.
새끼라 다행이었지. 얘도 그 여우 새끼도.
이따금씩, 석민과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 때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울보 이석민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어린 마음에도 자신의 행복을 제치고 늘 빌었던 소원들. 어느 정도는 들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민규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했다. 집안 어른들과 이야기를 끝낸 뒤, 무당과 같이 뭍으로 가는 배를 탈 때에도. 떠나는 자신을 보며 우는 이석민을 볼 때도.
마지막 밤, 그에게 쉴 새 없이 되뇌었던 말을 다시 곱씹었다. 괜찮아.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 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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