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겸

[규겸] 난기류

캠퍼스물 (2023.06.26)


 

 

*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가. 굳이 굳이 너를 보게 되고, 유독 네가 하는 모든 어설픈 행동들에 발작처럼 붙어 챙기게 되는 것. 김민규는 그것을 그저 자신의 성정이라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틱틱 대면서도 결국 다정하게 대하는 것은 김민규의 오랜 버릇이었고 성격이었다고. 여기에 이석민의 다소 미덥지 못한 행동들과 벙벙한 표정은 김민규를 자극하기에 다소 알맞은 조건들 이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조각이 정말 틈 없이 맞아 떨어진 것처럼. 어느 새 이석민의 옆에서 그를 챙기는 담당은 김민규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대학 내 모임이라면 늘 빠지지 않고 나타나서는 한바탕 놀고 나면 어느 새 김민규 옆에는 자석처럼 이석민이 있었고 이석민 옆에는 김민규가 있었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민규가 이석민 외에 남을 챙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이석민이 김민규의 손만 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석민은 다정한 김민규를 놀리기 바빴고, 김민규는 남의 손을 타는 이석민이 눈에 거슬렸었다. 생각하기에 그랬다. 유독 휘두르는 것에 약해 바람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며 헤헤 웃는 저 모양새가 걱정 됐다. 저러다가 뒤통수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무나 믿다가 또 울면서 자길 찾아오면 어쩌나. 애교가 많고 착한 데다 귀엽고 다소 순종적인 그가 선배들 사이에서 예쁨 받는 것을 보면 김민규의 잔소리는 다소 늘 수 밖에 없었다.

 

  너 누가 종교나 물건 판매 같은 거 맡기면 거절할 줄은 알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인마.

 

  무슨 사춘기에 반항하는 자녀처럼 자신의 잔소리에 유독 세게 나오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도. 으휴, 으휴. 한숨만 나왔다. 딱히 더 뭐라곤 하지 못했다. 어차피 네가 울면 내가 거둬 갈테니까. 유독 이석민에게만 붙는 이 시선과 쪼르르 따라가는 귀,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늘 그를 생각하면서도 김민규는 버릇처럼 혹은 최면처럼 되뇌였다. 그는 자신의 동생 같은 거라고. 미덥지 못하지만 가끔은 예쁜 동생. 귀여운 애기. 

 

*

 

  1학년 때에는 보통 김민규의 덩치나 외모에 비해 장벽이 낮은 성격 등을 이유로 빠져 고백해 오는 사람들이 잦은 편이었다. 잘생겼지, 키 크지. 그런데 다정하고 유쾌한 성격. 아무렇지 않게 남을 챙기고 드는 성격은 남을 오해하도록 만들기도 했었다. 허나 유독 그는 고백을 받지 않았고, 그 기간이 길어지고 그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의 이름 앞에 ‘철벽’이 붙고 고백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CC가 되면 나중에 힘든 일만 많아지고 말만 많아진다는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냥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본인의 속내였었다. 연애의 설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머릿속 어디 하나가 고장 난 것처럼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까지도 연애를 했었기에, 정말 고장난 것은 아닐 텐데. 본인도 좀 의아하긴 하지만 괜히 후회할 짓을 하긴 좀 그래서. 그래서 그는 1년 내내 솔로였고, 그 옆에는 만년 솔로인 이석민이 붙어 설마 의리 때문에 연애 못하냐는 놀림만 받아야 했었다. 으휴, 으휴. 저 날렵한 코를 집게 손으로 집어 흔들고 싶었지만. 예쁘게 웃으니 그냥 봐줬다. 인상만 찌푸리며 먼저 걸어가면 이석민은 괜히 말 끝 늘여 더 붙으며 삐졌냐 물어오니까. 삐진 척 조금 하다가 그냥 서로의 자취방에 놀러 가는 게 일상 다반사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석민이 물었다. 넌 사랑해 본 적 있냐? 뭐 놀랄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헛소리를 해올 때면 공감이 전혀 안 될 때가 많을 정도로 감성적인 그였으니까. 김민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젓지도 않았다. 그가 굳이 사랑에 대한 잡념을 하게 만든 그의 시험범위만 볼펜으로 툭툭 건드렸다.

 

  “징하다, 징해. 너 중간 망했다매.”

  “야 뇌도 휴식이 필요하잖아. 나 진짜 연기 날 거 같아.”

 

  김민규는 그와 똑같은 시험 범위 안에서 마저 밑줄을 긋다 가도 에휴 한숨 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같은 과목 듣는데 니가 바닥 깔아주겠지.

 

  “어 해본 적 있어. 왜? 넌 없어?”

  “아니. 나도 해본 적은 있지! 날 뭘로 보는 거냐?”

  “초등학교 때 말고.”

  “...연애 말고 짝사랑. 짝사랑은 해본 적 있다니까, 진짜.”

 

  어련하시겠죠. 김민규는 만나 본 적도 없는 이석민의 어린 시절 짝사랑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보다 낯을 가려 어색해 하다 가도, 어쩔 줄 모르고 시선만 이리저리 굴러가는 어린 이석민을. 눈에 선한 그가 상상 속에서 혼자 만의 이별을 맞이 한 채, 누군가의 품에서 엉엉 우는 장면까지 선했었다. 그러다 가도 문득 그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슥슥 지워 보기도 했다.

 

  “대학 와서는 없어?”

  “글쎄... 너랑 노느라 정신 없어서 소개팅이며 미팅이며 해본 적도 없잖아.”

 

  하긴 생각해 보면 1년을 유독 둘만 있는 것처럼 지내기는 했었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우연찮게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날 유독 망충해 보이는 이석민에게 술잔이 많이 돌아갔고 잔뜩 취한 그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데려가야만 했었다. 그냥 단순히 옆에 앉았다는 이유로. 그 뒤로 미안해 하는 그가 간식이며 뭐며 사주는 통에 말도 트고 신상 정보도 트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해볼까? 소개팅?”

  “주변에서는 왜 안 찾고?”

  “이미 무슨, 그거 같아. 로맨스 영화에서 개그만 하는 조연.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 없을걸?”

 

  유독 그가 거슬리는 이유. 또 하나. 이석민은 키도 외모도 성격도.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유독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약한 편이었다. 남들을 웃기는 데에는 그렇게 환한 자신감으로 나서는 그가, 유독 이성에게 어필할 때에는 비극 로맨스를 먼저 상정하는 것이었다. 되지 않을 거라고. 그 또한 그 말을 버릇처럼, 혹은 주문처럼 되뇌였었고, 김민규는 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에휴. 해보세요, 미팅이든 소개팅이든. 넌 너를 너무 모른다니까.”

  “그래? 그럼 다른 사람도 너 만큼 날 많이 알아줬음 좋겠네.”

 

  또 히히 웃으며 볼펜을 끼적거리며 낙서하는 이석민을 바라보다가, 김민규는 왜 이렇게 자신의 가슴이 꽉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 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얘를 옆에 두고 답이라는 것을 제대로 잡아 볼 수 있었던 적이 얼마나 되었던 가. 비논리. 무논리의 실체와도 같은 이도겸. 그저 바람과 같이 흩날리는 그의 작은 노랫소리와 함께, 그 생각도 멀리 날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 때 답을 미리 찾았어야 했었다는 것을. 그 때의 김민규는 아직 알지 못했었다.

 

  *

 

  여느 때와 같이 과 모임을 갔다가, 처음으로 김민규가 먼저 취하게 되었다. 유독 잔이 그에게 많이 돌아가던 것도 있었지만, 그에게 친한 척을 하며 자꾸 머리를 헝클고 짓궂게 대하는 선배를 흘겨 보다 또 답답함에 몇 잔 더 들이켠 것도 이유가 되겠다. 이번엔 석민이가 민규 챙겨야겠네? 그런 말을 장난처럼 내뱉는 소리가 얼핏 들렸고, 유독 신이 난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려 왔다.

 

  “당연하죠. 누구한테 얼만큼 배웠는데.”

 

  가자, 민규야. 자신에게만 들렸으면 하는 목소리가 문득 들려오고, 자신보다 더 큰 김민규의 팔을 어깨에 두른 채 이석민이 일어나면 온 세상이 흔들거렸다. 왁자지껄한 소음들이 점차 멎어가고, 자신의 몸무게를 어떻게든 지지하며 저벅저벅 걷는 이 사람이 내 친구 이석민이 맞는 지. 눈을 찡그린 채 옆을 쳐다 보면 슬쩍 땀이 비져 나온 이석민의 옆 얼굴이 보였다. 콧대며 입술이며.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말했다. 

  "너 진짜 잘생겼다고 한 번만 말해봐. "

  “내가? 스스로? 어렵네.”

 

  헛헛하게 웃는 거 바라보다가, 그냥 말았다. 그래. 너 아는 거 나만 이어도 뭐 썩 나쁠 거 없다. 그렇게 생각 했었다. 처음으로 기댄 그의 무게에서 나는 향이나, 조곤조곤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가 좋아서.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나도 챙기는 거 잘하지?”

  “다 나한테 배운 거네, 뭐.”

  “아니라고. 네가 맨날 챙겨 주니까 챙겨 줄 틈이 없었던 거거든?”

 

  그러고 보면, 유독 자신이 유별나게 그를 챙기긴 했었다. 옆에 두고 싸고 돌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자기 아니면 안되는 사람처럼 굴긴 했었다. 그게 어린 나이에 오른 치기 어린 독점욕이라는 것을, 그 날의 김민규는 역시나 몰랐었다.

 

  “...너한테 배운 게 많긴 해.”

 

  그러나, 그가 자신을 챙기기 시작했을 때. 문득 그게 가슴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좋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었다. 이게 술을 먹어서 그런가? 자꾸 옆에서 자기가 넘어질까 안절부절 하며, 혹여 라도 토하진 않을까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는 그의 다정함이 좋았다. ...너는, 원래부터 그렇긴 했었지. 문득 이석민이 신입생 환영회 때 자신의 옆에서 어설프게 말을 걸고,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헤헤 웃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너의 다정함이 먼저 눈에 들어서.

 

  “민규야, 나.”

 

  석민아, 나. 분명 그 때부터 너를...

 

  “나 여자친구 생겼어. 이제 안 챙겨줘도 돼, 인마.”

 

  좋아했던 것 같은데. 김민규는 어지러운 풍경 속에서 이석민의 목소리가 흩날리는 것을 느꼈다. 사랑을 깨닫는 순간 나는 소리는 종소리도, 천사의 노랫소리도 아니었다. 무언가 덜커덩, 불시착하는 소리가 났다.

 

  그게 짝사랑이 시작되는 소리임을, 민규는 너무 늦게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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