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치👓⚖

[젠가람] 토끼 모자

W.mayo 님 커미션

젠가람 by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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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만 믿어보라니께. 진짜 좋아할 거여.”

“그래도..”

“아, 나를 못 믿는겨?”

믿지.. 믿는데, 이건 너무.. 어린 아이들이 할 만한 것 아닌가? 히라코는 본인의 가슴을 탕탕 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요즘은 어른들도 많이 하고 다닌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아이가 좋아한다고? 가람은 어색하게 머리 위에 얹어진 토끼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손 모양이 길게 내려와서 끝에 달린 풍선을 누르면 토끼 귀가 까딱까딱 움직인다는, 요새 현세에서 유행 다 지난 건데 이제 소울 소사이어티에 들어와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런 모자였다.

아이의 상사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면 때문에 어설프게 씌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자인 줄은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아이젠은 제 앞에서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는 이의 심부름을 가고 없었다. 지금이 딱 좋은 기회라면서 집무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제게 건넨 것이 바로 이 요상한 모자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루콘가에서 열린 시장에 갔을 때 어린 아이들이 이 모자를 쓰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기는 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의 기능을 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이런 것을 좋아할 지 잘 모르겠다. 그의 상사는 본인만 믿으라면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 지만 아주.. 아주 , 솔직하게 말하자면 믿음이 조금 안 갔다. 왜냐하면 전에도 이런 식으로 놀림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 세계에 적응을 덜 한 상태였으니까 속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는 그게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를 않지만, 정말 민망했던 기억은 선명해서 다시는 그에게 속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기억이 안다. 너무 괴로우면 기억을 지운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조금만 집중을 해도 금방 기억이 나겠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관두기로 했다.

“여 가만히 있어라잉.”

“어딜 가는데..”

“나야 일을 하러 가지, 어딜 가것냐.”

그의 손에도 서류가 잔뜩 들려있었다. 하긴, 가끔 뺀질거리기는 해도 일을 다 빼먹고 도망가는 타입의 대장은 아니었다. 그저 하기 싫은 것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지, 그걸 정말로 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적은 별로 없다. 별로 없다고 말하는 건 어쨌거나 한두 번은 있다는 뜻이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하던 아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가람은 눈동자를 굴리며 히라코를 잘 살피고, 서류에 써 있는 내용들도 잘 살폈다. 그러자 낌새를 눈치 챈 그는 미간을 대번 구기며 투덜거렸다.

“아, 거참.. 소스케 자식 또 한 소리 하고 갔구먼.”

“그런 게 아니라..”“어쨌든 난 갔다 온다.”

그는 문을 열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소스케가 제게 신신당부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도 조금 웃기고 귀여웠다. 서로 그런 식으로 잘 지내는구나.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어딜 가더라도 평화를 지켜보는 일은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가끔은 차라리 죽여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 기도 했으면서, 이렇게 갈등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제 죄 때문인가, 저라는 것이 원래 그런 존재인 것인가.

갑자기 드는 복잡한 생각에 저는 고개를 숙였다. 양쪽 끝에 두꺼운 금색으로 된 링으로 묶인 머리카락 위로 보들보들하고 손아귀에 딱 잡힐 것 같은 토끼 손이 있었다. 이걸 이렇게 누르면 된다는 건가. 저는 그것을 손아귀에 쥐었다. 과연 그 속에는 공기를 넣어주는 풍선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꾹 누르면 공기가 전달되어 부풀어 오르는.. 뭐, 그런 식의 장치인 것 같았다.

꾸욱 누르자 탄탄하게 손아귀에 느껴지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거울이 없어서, 제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토끼 귀가 오르락 내리락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꾹 꾸욱 꾹 꾹꾹 꾸욱. 양손으로 토끼 손을 잡고 눌렀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당연히 그가 히라코일 줄 알았다. 역시 또 놀려먹는 게로구나. 고얀 것. 한 마디를 해주려 고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자리에는 아이젠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키득거리며 웃던 건 뒤를 지나가는 5번대 대원들이었다.

분명 더 늦게 온다고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당황해서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그리고 뒤늦게 손아귀에서 힘을 했다. 민망해지고 예민해지자 갑자기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귀가 잘 느껴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진 저는 어버버하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꾸욱 다물었다. 그는 그 많던 서류를 다 돌리고 온 것인지 빈손이었다. 아니, 아예 빈손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던 제 중얼거림을 기억한 것인지 아이스크림이 담긴 걸로 추정되는 검은 봉투를 들고 있기는 했다.

이거 민망해서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군, 그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이 또한 대원들이 지나가면서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활짝 열었던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제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대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어? 아.. 서류를 건네러 간다고..”“음. 6번대로 가야하는 그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나간 시각은요?”

“얼마 안 되었다.”

“그렇다면 오실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시겠군요, 저희 대장님 수다 떠는 걸 좋아하시니까.. 아, 선생님께서 드시고 싶다고 하신 아이스크림입니다. 초코 맛이 다 떨어져서 바닐라 맛이라도 사왔는데 어떠신지요.”

“고맙게 잘 먹으마.”

마치 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이거 민망한데. 어쩐지 민망한 기억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 같은데. 내 다시는 그 자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 건네주는 아이스크림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스치는 손가락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다.

..?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니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문득 아이의 상사의 말이 떠올랐다. 금마가 안 그래 생겨가지고, 귀여운 걸 억수로 좋아하니께 함 만 믿어봐라, 참말로.

아, 그럼 지금 이것은 제가 귀엽다는 뜻인가? 하지만 밖에서 급하게 뛰어오느라 열이 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가람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다시 토끼 손을 잡았다.

“소스케야.”

“예.”

“왜 나를 보지 않는 것이냐?”

그야.. 하고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저는 잡고 있는 토끼 손을 힘주어 눌렀다가 풀었다가 반복했다. 침묵이 흐르자 공기가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푸슉 푸슉 소리가 잘 들렸다.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저를 한 번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휙 돌리는데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가 점점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오호. 이것은 완벽하게 저를 보고 하는 반응이로구나. 괜히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귀여운 걸 좋아한다더니, 이놈 이 선생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우습기도 하면서 반대로 저도 그가 너무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제게 장난을 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히라코에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했다. 정말로 아이는 이런 것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어째서 몰랐을까. 알아도 알아도 모르는 것투성이이기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무리 알려고 해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목덜미가 붉어지는 것을 보니 오히려 제 장난기가 차올랐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서자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는 움찔하면서 놀란다. 가까이 올 줄 몰랐던 것인지,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것인지.. 후자라면 기분이 조금 나쁠 수도 있겠으나 정신이 없으면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저도 제가 이런 걸 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단지 일을 하러 다녀왔을 뿐인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허리를 살짝 숙이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 그리고 토끼 손을 눌렀다. 귀가 불쑥 올라오면서 아이의 볼을 스쳤고, 생긋 웃으며 반대쪽 귀를 올리자 이번에도 슬쩍 볼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그는 한숨을 쉬었다. 가지런한 손가락 위로 올라간 안경이 뿌옇게 변했다가 원래의 투명함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몇 번 더 토끼 귀를 올려 그의 볼을 쓸어내렸다.

“이런 걸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리 빨개졌느냐. 꼭 잘 익은 고구마 같구나.”

제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장난기를 느꼈는지 얼굴을 가린 손을 조금 내린 아이는 한 번 더 한숨을 쉬면서 흐트러진 앞머리와 안경을 잘 정돈했다. 그리고 최대한 저를 바로 바라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 보인 그는 제가 토끼 귀를 한 번 더 올리자 이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버렸다.

귀여웠다. 아이는 언제나 그랬지만, 소스케는 제게는 언제나 귀여운 아이이고 소중한 아이지만 오늘따라 더 귀여워 보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주접이라도 떨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토끼 모자 하나 썼다는 이유로 얼굴이 이렇게 빨개지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손을 뻗어서 그의 볼을 쓸어내렸다. 손등에 닿는 살결이 보드라우면서도 뜨거웠다. 더 이상 장난을 쳤다가는 식지 않을 정도로 열이 날까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은걸 참지 못하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러자 그는 다 안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거 아닙니까?”

힐끗거리는 밝은 눈동자를 보다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분명 장난을 그만 쳐야겠다고 생각한 게 방금 전이었는데 아이의 행동은 그 마음을 바로 접게 만들었다.

“내가 어때 보이느냐?”

“예?”

“말해 보거라. 이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토끼 손을 두 번 눌러서 귀가 까딱거리도록 만들었다. 아이젠은 바닥과 가람을 여러번 반복해서 힐끔거리더니,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치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는 대충 예상이 가지만 그래도 귀로 직접 듣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었다.

“그..”

그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 집무실이 침묵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잘 들리지 않아서 귀를 기울이려다가 문득 토끼 손이 제 귀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모자를 벗기 위해 토끼 손을 잡아 위로 올렸다.

거의 동시에 제 모자를 손으로 꾹 누른 이는 새빨개진 얼굴을 절반만 반댓손으로 가리면서 다시 말을 했다.

“그, 귀.. 여우십니다. 정말로.”

“……”

“정말..”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 것인지,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선생님 정말로 귀여우십니다.

그는 진지하게 말하며 저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제법 단단하고 밝은 눈동자가 저를 향하고 있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느닷없이 속에서 열이 쭈욱 올라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혈관이 뛰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아, 장난을 친다고 쳤는데 아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구나. 제 행동에 민망한 게 아니었다. 아이의 반응에 민망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진심으로 저를 귀엽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약간 민망하면서 뭐랄까.. 기분이 좋다고나 할까.

분명 이런 것은 질릴 때도 되었다. 귀엽다거나 예쁘다거나 잘생겼다거나 소중하다거나.. 상대의 마음으로 저를 평가하는 말들은 질려야 했고, 질리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 사이로 나온 그 말이 얼마나 심장을 울리는지, 제 귀에는 제 심장이 뛰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 고개를 숙이자 아이의 손이 저절로 떨어졌다. 이걸 벗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갑자기 머리를 누른 행동은 과했다,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는 아이에게 손을 휘적거리면서 제 눈을 가렸다. 젠장. 장난을 친 것은 저였는데, 어쩐지 꼬인 것도 저인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난 아이스크림은 저를 구원해주는 구세주와 같았다. 후다닥 돌아서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풀썩 앉는 바람에 소파가 살짝 흔들렸지만 괜찮았다. 아, 덥다. 이럴 때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크흠.

헛기침을 하면서 손부채질을 했다. 멀리 서 있던 아이젠은 가람의 옆으로 다가와 천천히 앉았다. 아쉽게도 아이스크림이 절반은 녹아가고 있었는데, 솔직히 우리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먹어야겠다고 말만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저와 아직도 붉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똑딱똑딱 초시계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아이와 단 둘이 있음에도 아주 드물게 다른 사신이 빨리 왔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난을 치게 만든 히라코라거나. 아니면 다른 누구라도.

민망함에 한숨만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저를 불렀다. 응? 하고 옆을 돌아보니 아주 단호한 결심을 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목울대가 울렁이도록 침을 꼴깍 삼킨 이는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약간 답답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길다면 길지만 실은 굉장히 짧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술을 우물거리는 그는 겨우 말 한 마디를 뱉어냈다.

“제가.. 눌러봐도 됩니까..?”

“음?”

“그러니까 선생님의.. 모자를..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토끼 손을 어루만졌다. 이걸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망설였던 것인가? 순간 헛웃음을 칠 것 같아서 어금니로 혀를 살짝 깨물었다. 이미 아이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보고 싶으면 하게 해줘야지, 제가 별 수 있겠는가. 가람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젠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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