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고해성사.

ㄱㅇ님 커미션 / 뮤지컬 더테일에이프릴풀스 / 공백 포함 8475자


Oh, let the sun beat down upon my face.

And stars fill my dream.

 

-Led Zeppelin, Kashmir.


 

런던의 새벽이 희부옇다. 저기 저 멀리 다가오는 달이 손짓한다. 여기 영원히 머물자. 영원히. 나와 은빛 춤을 추며 행복하자. 그래야 떠날 수 있어.

 

나의 이안테.

 

그는 손짓한다. 품 안에 잠든 연인의 얼굴을 쓸어보며. 눈물이 말라붙은 두 뺨을 감싸고, 입을 맞춘다. 새벽이 멀다. 달이 손짓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달에게 감히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참이다. 그의 세상은 오로지 하나였으므로. 그가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내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를 알고 있을까.

 

루스벤은 속삭인다. 은빛 존재에 얹어진 시간의 흐름은 둔탁한 망치 소리처럼 멀다. 그 스스로 뱉어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을. 그는 고백하려 든다. 잠든 연인에게.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그에게 창조주요, 연인이라. 또한 그의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제일지니. 루스벤이 고백하려 드는 것은 자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다. 잠든 존은 평화롭다. 새벽의 흐린 안개 속에서야 그는 솔직해질 수 있다.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란 그런 것이다.

그 날도 천둥이 치던 밤이었어. 존.

 

품 안의 온기가 기껍다. 루스벤은 연인과 함께 눈을 감고, 첫 새벽을 떠올린다. 오욕과 갈망의 날.

 

너는 살고자 나를 만들어냈지. 난 그걸 잘 알고 있었어.

 

그리고 생生에 대한 고백이 따라붙는다. 그 말을 듣고 있을까. 루스벤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도 없는 법이다. 그는 오욕과 갈망의 새벽들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그가 본 것들. 들은 것들. 그리고 감정들. 이제 루스벤은 존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손 안에 여기, 그의 연인이 있음을 안다. 그는 우습게도 시구 하나를 되뇌인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 얼굴을 붉혔더라.

 

그리고, 정말로 그 말처럼. 창백한 얼굴 한 가운데에 붉은 빛 애정이 피어난다. 루스벤은 웃는다. 첫 새벽. 그가 탄생했을 적에. 그때도 그러했다. 주인을 만난 물이 얼굴을 붉히듯이,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는 자신의 주인을 만나 붉은 빛으로 자신에게 물을 들였다.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루스벤이 속삭였을 때, 잠든 연인은 잠시간 몸을 뒤척인다. 다급하되, 동시에 다정한 손길이 따라 붙는다. 창백한 손가락이 뺨을 토닥이고. 등과 어깨를 쓸어내리고. 편안한 잠을 방해하는 것들을 몰아내려 애를 쓴다.

 

내 사랑.

 

감은 눈가에 수심이 함께 깃든다. 자신의 연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피조물이 혼돈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날의 기억을 어찌 잊겠는가. 무릇 삶의 첫 각인이란 잊히지 않는 법이다. 루스벤에게 그 날의 새벽은 차라리 고통을 처음 배운 날과 같다 하겠다. 그는 팔에 힘을 주어 자신의 연인을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디오다티 별장의 어느 새벽. 꿈속에서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욕망하였다. 누군가의 감정을 바랐으며, 또한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했다. 욕망이란 진정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 삶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 누가 욕구하고 갈망하겠는가. 생生에의 가장 강렬한 의지가 그것을 탄생시킨다. 루스벤. 피조물은 그 새벽을 기억한다.

너는 노크 소리를 들었고, 문을 열지 않으려 애썼지.

 

누가 네 문을 두드리는지 알았으니까. 루스벤은 그 말을 가볍게 흘려내려 애썼다. 고해성사의 과정에서 괴롭지 않을 존재가 어디 있으랴. 설령 그것이 은빛 새벽의 존재일지라도.

 

나도 네가 문을 열지 않기를 바랐어.

 

디오다티 별장의 노크 소리. 어쩌면 가장 무서운 소리. 유혹의 소리. 문을 열어. 날 들여보내. 너도 나를 원하잖아. 그 소리는 욕망을 잘 아는 자에게서 나왔다. 다시 한 번, 루스벤은 자신이 가장 강렬한 생生에의 의지에서. 욕망에서 만들어졌음을 자각한다. 무의식 속에 존재한 마음들, 차마 자신도 구체화하지 못한 생각들. 나는 그를 원해, 그가 내게 주는 감정들을 원해. 저 문을 열고 그를 초대하고 싶어. 피조물은 자신이 기반을 둔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그 자신이 새벽의 시간에, 어떤 악몽 속에서 탄생했으나 깊은 뿌리 안에 자리한 것은 어둠이 아니다. 한없이 삶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존재. 창조주에게 느낀 피조물의 첫 감각은 그것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뱀파이어는 감히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올 수 없으리. 그는 초대받았다. 갈망으로, 생에 대한 의지로.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그 존재를 만들어내 초대한 것이다. 그 때에 루스벤이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속삭였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구나. 대신 루스벤은 잠든 연인에게 다시 말한다.

 

너는 살고자 했어.

 

손가락들이, 배 위를 거쳐, 심장 위에 머무른다. 잠든 이의 심장 소리는 소심하리만치 부드럽다. 쿵, 쿵, 쿵. 머릿속에 들러붙은 성마른 노크 소리를 몰아내려 루스벤은 고개를 숙인다. 연인의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고. 그는 그 소리를 듣는다. 바이런이 문을 두드릴 때에 네 심장은 사납게 뛰었지. 루스벤은 감은 눈을 떠 제 연인을 올려다본다. 평화로운 얼굴. 부드러운 맥박. 그 새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숨을 내뱉는다. 귓가로 듣는 소리로도 모자라서, 그는 손을 얹는다. 손끝이 천천히 심장 소리에 맞춰 존을 토닥인다.

 

네가 죽으려고 했던 순간도 기억해. 존.

 

어쩌면, 그 행동은 저 자신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안하게 떨던 그 날의 새벽을 그는 기억한다. 날카롭게 찔려 들어오던 첫 포옹의 기억. 루스벤은 고백한다. 감히. 나 또한 실체를 얻고 싶어 욕망했다고. 내게 신체라는 것이 있어, 혹은 존재라는 것이 있어 너를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지독하게 오던 날이었다. 번개가 내려친다. 번쩍. 날카로운 빛이 하늘을 찢으니 하늘이 천둥으로 고통을 울부짖더라. 기나긴 몽유병의 나날들을 루스벤이 어찌 잊으랴. 새벽을 걷는 창백한 제 연인을 보며 그는 두 다리를, 온기를, 그리고 두 팔을 얻기를 갈망하였으니. 그를 붙잡아 다시 침대로 데려가 함께 잠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피조물의 욕망이었다.

 

너는 단도를 들었고.

 

말이 삼켜진다. 고통이 폐부를 찌른다. 어둠이라고 하여 고통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루스벤은 고개를 든다. 한 손이 존의 눈 위에 얹어진다. 그 때를 떠올리면 그에게는 오직 후회뿐이라.

 

나는 거울 앞에서 너를 끌어안았어.

 

아, 그 말에 담긴 고백.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존재는 달려갔다. 두 다리가 마룻바닥 위를 내딛고, 그는 팔을 뻗는다. 양 팔을. 불쾌함과 외설이 뒤섞인 소리가 나는 방을 향해 가던 존을. 루스벤이 끌어안았다. 와락, 당겨 안는 움직임에 꿈에 젖어 있던 눈동자가 뜨여지고.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거울 속 칼을 든 자신을 마주했다. 루스벤은 몸을 떨었다. 그 날의 기억. 너와 나 둘 모두 잊지 않을 새벽. 은빛 존재의 목소리가 젖어든다.

 

거울 속에 비친 건 오직 너 뿐이었지. 존.

 

그도 고통을 느낀다. 단도를 든 자신을 본 연인이 어떠했던가. 흘러나온 말들이 아파 그만 그는 몸을 뒤틀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다더라. 루스벤은 방 안에서 찌르듯이 날카로운 고함이 들렸던 것을 기억한다. 뭐 하는 짓이야, 존? 내질러진 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혹은 방 안에 있던 사람의 것인지. 그는 구분하지 못했다. 그가 본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추어지지 않으므로. 그러나 그는 거울과도 같은 꼴을 보았다. 그것을 기억한다. 방 안에 있던 바이런의 얼굴을 기억한다. 루스벤은 잠시, 아주 잠시 동안 자신의 이안테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눈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네가 아프지 않을까 하여. 그 새벽, 존은 필사적 걸음으로 그 곳을 벗어나고, 루스벤 홀로 남아 자신을 마주했다. 품 안에 남은 온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을 때. 피조물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끔 네게 말했어.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속삭였어. 너무 많이 울지 말라고. 그 날, 난 네게 다른 말을 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어. 나의 이안테, 내 사랑……. 너는 자유로워져야만 한다고. 그렇게 말했어야만 했어.

 

런던의 새벽 아래, 루스벤의 뺨 위로 눈물방울이 굴러간다. 뱀파이어, 피조물, 사랑, 연인. 바이런의 복제품. 생生을 향한 의지인 욕망에서 태어나, 죽음의 감각으로 자신의 창조주를 일깨운 불행한 존재. 그는 감히 자신의 시선을 연인에게 두지 못한다. 자신의 얼굴이 누구를 닮았는지를 잘 아는지라. 뒤척이던 존의 몸이 멈춘다. 눈꺼풀이 밀어 올려지고. 그가 손을 뻗어 루스벤의 두 뺨을 감싼다.

 

루스벤?

나 여기 있어, 내가 널 깨운 걸까.

우는 거야?

 

루스벤이 뺨에 얹어진 연인의 두 손을 마주 감싼다. 고개를 돌려 그 손바닥에 다정히 입술을 내리누른다. 그는 웃으며 시선을 내리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 한마디를 내뱉는다. 미안해. 존은 고개를 기울인다. 루스벤의 고개를 들어 올리고, 제 얼굴에서 돌려진 시선을 다시 마주한다.

 

안녕.

그래, 안녕.

 

사제가 자신의 고해자를 끌어안는다. 루스벤은 가만히 그 손길에 따른다. 그럴 때에는 진실로, 그에게 두 팔과 형체가 있어 다행이리라.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고해성사를 하는 중이었어.

내가 자고 있는 동안?

 

그 물음에 루스벤은 웃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안테가 따라 웃는다. 품 안에서 울리는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간지럽다. 그럼에도 심장 한 구석이 아릿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마 그 또한 슬픔이라는 것의 대가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들을게. 계속 해줘, 루스벤.

네가 괜찮기만 하다면, 내 사랑.

 

존이 고개를 들어 루스벤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아직 잠이 깃든 눈가가 흐릿하다. 그마저도 아름다워라. 루스벤이 작게 숨을 내뱉고, 존은 고개를 숙여 그 입술에 입을 맞춘다. 가볍게, 두어 번. 그리고 말한다. 괜찮아.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허락을 얻었을 때에 진정으로 자유롭다. 그의 세상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으므로.

 

내가 처음으로 햇빛을 보아야겠다고 다짐한 날에 말이야.

 

존이 몸을 돌린다. 이제 그는 온전히 루스벤에게 집중한다. 새벽은 그들만의 시간이 되고, 홀로 내뱉어지던 이야기들은 짝을 이룬다. 어둠과 어둠이 만나 사랑을 낳았다더라. 어떤 신화의 이야기처럼. 상대가 있을 때에 생겨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루스벤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가에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다정한 내 사랑. 이안테는 웃는다. 루스벤 또한, 웃는다.

 

너는 그날 아름다웠어.

내가?

늘 그래 왔지만, 너는 그 날 더더욱 아름다웠어.

 

호기심이 이안테의 얼굴에 떠오르고, 이야기를 종용하듯 손이 움직인다. 루스벤의 손 위에 얹어진다. 맞잡은 손에 화답하는 다른 손. 존 폴리도리는 눈을 감는다. 편안함이 찾아 들고 있었다.

 

너는 글을 쓰고 있었지. 새벽이었어. 악몽을 꾸는 대신 악몽을 창조하고 있었어.

그래. 런던에 오고 나서. 나는 그랬어. 날 보고 있었구나.

나는 늘 너를 보고 있었어, 내 사랑.

 

루스벤이 속삭인다. 고해성사는 엄숙하나, 고백은 달콤하리라. 이제 그는 다만 자신의 죄와 근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니. 그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복처럼 느낀다. 너는 아름다웠어. 나는 그런 너를 보며 기뻤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라도, 그것은 몸짓과 표정으로 와 닿는다.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그것을 본다. 느끼고, 들으며. 맞잡은 손을 다독인다.

 

어느 날 새벽에, 너는 런던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었어.

 

숨이 잦아들고. 연인들은 잠시간 침묵한다. 존이 기억하는 새벽과, 루스벤이 고백하는 새벽이 겹쳐 든다. 그 순간에 그들은 진실로 이어진 것이리라.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그러니 고백이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존이 루스벤의 손을 끌어 그 손등을 자신의 심장 위에 얹는다. 루스벤은 다시, 조금 더 생명력있게 뛰는 심장 박동을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 비춰 드는 해를 등지고 앉아 있었지.

내가 또 밤을 샜구나.

나를 언어로 창조하느라 그랬지. 네게 잔소리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루스벤의 손가락이 존의 코 끝을 장난스레 톡, 치고서 떨어져나간다. 그 작은 접촉에 꽃망울이 피어나듯 웃음이 터져 나온다. 루스벤은 연인이 웃는 모습을 지극히도 사랑했다. 볕을 보는 모습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 때의 너는 아름다웠어.

 

꿈결 같은 목소리로, 고백한다. 루스벤은 말을 흘려낸다. 은빛 존재는 명확한 햇살 아래 있던 더 빛나는 얼굴을 명확히 말하지 못해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어둠에서 태어났으나, 욕망을 발 아래 두고 있으니. 그저 그는 자신을 창조해낸 연인에게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이안테, 너는 새벽에 아름다워. 그건 네가 어둠 속에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야.

 

어둠 속에서 태어난 존재가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필요했을 것인가. 루스벤은 이안테에게 영영 어둠 속에 머물러 달라 부탁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했으므로. 그는 이안테에게 영원히, 영원히 자신과 함께 있자 말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연인을 행복하게 하여 주고 싶었으므로. 그러나, 천둥이 치던 밤에. 그는 거울에 비춰 들지 않던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존이 살고자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무의식 속에서 태어났으므로. 다시 한 번, 물이 그 주인을 만나 얼굴을 붉힌다. 창백함 속의 붉은 애정. 작은 슬픔에 젖은 고백.

 

너는 볕과 같은 사람이니까. 어둠을 밀어내는 볕과 너는 같은 존재라서.

 

그 빛을 존이 모를 리가 없다. 보고 있으니, 듣고 있으니. 새벽, 서로를 끌어안고 있으나 곧 해가 뜰 것임을 그도 알고 있다. 물을 따라 주인도 얼굴을 붉힌다. 부드러운 꽃잎처럼 감정이 피어난다. 그 감정은 결코 연인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안테는, 존은. 루스벤을 다독이기를 선택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그는 슬픔의 대가인지라. 루스벤의 감정이 젖어 들어 있음을 모를 리 없다.

 

루스벤.

그래서 나는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어. 내 사랑.

내가, ... 내가 너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던 것처럼?

그럼.

 

다시, 피조물은 양 팔이 있음에 감사한다. 한껏 끌어안은 몸이 따뜻하다. 연인들은 서로 맞닿음으로서 두려움을 몰아낸다.

 

네가 나를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준 거야. 존.

 

루스벤이 속삭인다. 나는 햇살마저도 사랑하는 뱀파이어야. 피조물은 고백한다. 창조주이자, 연인에게. 자신의 세상에게. 루스벤은 존의 눈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고개를 숙여 그 입술에 입맞춤을 한다. 맹세를 마무리 짓듯이. 연인들의 약속과, 다짐이 흔히 그러하듯 그것은 작은 입맞춤으로 매듭지어진다. 존은 루스벤의 품 안으로 파고든다. 한기가 든 몸이더라도 그에게는 그만큼 알맞은 사랑이 없으니. 이안테는 눈을 감는다.

 

그래서 날 찾아오기로 한 거야, 루스벤?

…….

 

피조물은 말이 없었다. 늘어진 몸에서 흘러나오는 숨이 가라앉는 것을 듣고 있었다. 졸리구나, 내 사랑. 잠들어도 괜찮아. 루스벤의 손이 존을 토닥인다. 어깨를 감싸 안아 단단히 붙잡고서. 잠으로 빠져드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질문을 던져 놓았으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여기 있는 그의 존재가 아마 존에게는 대답이나 다름없었으리라. 루스벤은 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피조물이 속삭였다.

 

그래서 널 찾아오기로 했지.

 

존의 손이 천천히 늘어진다. 그 손을 붙잡고서, 루스벤은 다시 혼자만의 고해성사를 이어 나간다.

 

초대받지 않은 뱀파이어는 들어올 수 없어. 존.

 

루스벤은 그 새벽에 자신이 갈 길을 잘 알고 있었다. 피조물의 세상은 오직 하나일진대. 그가 어디로 가겠는가. 런던의 혼잡한 골목길에 생명 하나 없을 어두운 시간에. 그는 걸어 나갔다. 두 다리로, 두 팔로 기어올랐다.

 

네가 나를 불렀어. 그래서. 나는 여기 왔어.

 

번쩍. 날카로운 빛이 하늘을 찢으니 하늘이 천둥으로 고통을 울부짖더라. 그는 빛으로 제 존재를 드러내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거기 있음을 보았다. 루스벤은 지금, 제 품 안에 다시 잠든 그 얼굴을 바라본다. 고해성사의 끝이 다가온다. 루스벤은 어둠 한 가운데 서 있던 그를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그는 그 모습을 눈에 담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포옹이 자신을 찌르고 들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피조물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숙이고 있다가, 빛이 자신을 비출 때에 그 몸을 펴 존재를 드러내었다. 나 여기 있어.

 

너를 보기 위해서 여기 왔어. 내 사랑.

 

저기 저 멀리 손짓하는 달의 말. 영원히 여기 머물자. 나와 은빛 춤을 추며 행복하자. 그래야 떠날 수 있어. 루스벤은 그 말이 옳음을 알고 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머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라. 품 안에 잠든 연인의 얼굴을 쓸어보며. 생기로 물든 두 뺨을 감싸고, 입을 맞춘다. 동틀 녘이 가깝다. 달이 손짓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달에게 감히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참이다. 그의 세상은 오로지 하나였으므로. 그가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임을. 그는 자신의 연인과 영원히 머무를 것이었다. 빛 아래에, 생명과 함께. 영원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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