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는 것에 대하여.
푀이즈앙.
항상 묻던 질문이 있었지. 어떤 느낌이야. 사랑을 한다는 건.
푀이는 사전을 읽었다. 알 수 없는 단어가 나올 때면 항상 손에 든 두꺼운 책을 뒤지고 뒤져서 확실한 정의가 나올 때까지 읽어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것은 알기 위한 욕심에 가까운 일이었겠지만, 푀이에게는 일종의 의식에 가까웠다. 단어 하나를 내면화한다는 것은 경험과 활자가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그래서 푀이에게는 요즘 하나의 의문점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건 뭘까.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적어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는 있었다. 바로 -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길고 긴 문장들을 읽어내리다 보면 푀이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건 조금 다른데 말이야.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들도 들어맞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푀이는 글을 썼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나는 순간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렇게 공책에 수백번 새긴 단어들은 다음과 같았다. 귀애. 애인. 연정. 애정. 사랑한다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두 번째 정의로 넘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요소가 들러붙었다. 남녀간의, 남녀가, 이성이. 그 단어에 가두기에는 내 감정은 너무 큰데.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닐까. 글을 배우며 비롯된 고민 중 하나는 자신이 느끼는 것들이 종종 언어의 틀에 가두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느낌과 언어는 달랐다. 감정은 언어에 가두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고민을 즈앙에게 말했을 때. 즈앙은 예의 그 수줍은 태도를 거두고 단호한 말로 시집 하나를 건넸다. 읽어 주면 좋겠어. 나 또한 너와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그 때 나에게 하나의 답을 주었던 시야.
푀이는 그날 이후 그 시집을 손에 달고 다녔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그러나 예언자라기보다는 현실에 대해 설파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푀이는 생각했다. 책장이 넘어가고, 푀이가 공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시집을 읽는 날이 어느 정도 지나갔을 때. 푀이는 하나의 번개치는 듯한 문장을 찾았다. 대화에 대하여. 예언자에게 학자가 물었다. 우리에게 대화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푀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집의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에 내가 찾던 것이 있을까. - 그리고 그대들이 말을 많이 하는 중에 하는 생각들은 반쯤은 중얼거림이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허공 속에 사는 새이고, 말들의 새장 속에서는 날개를 펼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날아오를 수 없어서이다.- 푀이는 선 자리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문장을 중얼거렸다. 생각은 허공 속에 사는 새이고, 말들의 새장 속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날아오를 수 없어서이다. 그 때 푀이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누군가 들려 주었던 한 철학자의 일화를 떠올렸다. 목욕을 하던 중 뛰쳐나가 외쳤다던 말. "유레카!" 푀이는 할 수 있다면 자신도 뛰쳐나가 그 단어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푀이의 이성은 하나의 발견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을 위한 것이었다.
그랑테르가 사랑하던 소설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극도로 후각이 발달한 한 천재는 냄새로 세상을 본다. 관념적인 것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는 코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이해한다. 이해, 배려, 이성은 냄새가 나지 않아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그가 나무 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다가,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온 몸이 그 향기로 가득 찰 때까지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가 그제서야 내뱉는다. '나무'라고. 푀이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 부터 발달한 감각이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푀이는 아직 성장중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글은 그의 정신을 발달시켜주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니, 푀이가 글을 배우며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어를 배우는 순간은 푀이가 세상을 배우는 순간 중 하나였다.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읽던 그날 밤. 푀이는 깨달음의 순간을 보았다. 가끔 생각은 새와 같아서 말의 새장에서는 날아오를 수 없어. 내가 언어에서만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 푀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손에는 여전히 시집이 들려 있었다. 무언가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가 아닐까. 푀이는 처음으로 공장에 가서 기술을 배우던 날을 생각했다.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종종 내가 지금 습득한 것이 오직 한 길이고 또한 진리라는 생각으로 그곳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여유를 가진 채 둘러보면, 세상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이 있다. 푀이는 글을 배우기 시작한 자신이 되려 스스로를 언어라는 틀에 묻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것은 나의 눈을 틔여 주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야. "유레카!"라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푀이는 어쨌거나 소리를 질렀다. 신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희를 담아서. 나는 또 하나의 길을 볼 수 있는 눈을 찾았구나.
그래서 푀이는 즈앙에게 책을 돌려 주며 대화의 시작을 끊었다. 나 그 시집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 라고. 즈앙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나도 그래. 그래서, 너는 어떤 답을 찾았어? 즈앙의 웃는 얼굴에 푀이는 잠시 뒤로 물러날까 생각했다. 즈앙은 자신이 무언가를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곧 두려움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수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어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내가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밀어낼 리가 없지. 그것은 일종의 신뢰였다. 함께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응당한 믿음이자, 또한 - 푀이의 이해에 따르면 - 애정이었다. 그래서 푀이는 시집을 펼쳐 대화에 대하여 자신이 깨달은 순간을 설명했다.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부정하는 답이었다고. 즈앙은 푀이의 말을 듣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뿌듯함이었을까. 푀이는 자신이 무언가를 새로이 아는 순간을 즈앙이, 정말이지 다정하게도, 좋아한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이 견문을 넓히는 것을 이리도 좋아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말을 마쳤을 때. 즈앙은 웃는 얼굴로 조용히 시집을 푀이의 손에 들려 주었다.
네 거야.
왜?
내가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네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해서 네 것을 나한테 이렇게 주면...
가끔은 내 것이었지만, 남에게 더 어울리는 것을 발견하면 난 들고 있을 수가 없어.
......
네 거야. 이제부터. 네가 깨달은 것이랑 같이.
그 다정함. 사려깊음. 푀이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즈앙이 드러내 준 감정이 자신의 언어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푀이가 깨달은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과 같았다. 누군가 알아 준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럴 때 보면 즈앙은 참 대담했다. 즈앙이 건네 준 시집은 말하자면 그런 표현이었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니 나도 기뻐. 생각을 드러낼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즈앙이었기에. 아, 혹시. 푀이는 가만히 손에 들려진 시집을 보다가 툭 내뱉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나봐. 즈앙의 얼굴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종내는 붉은 얼굴로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푀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이 시집을 도로 건네며 대화에 대해 말하려다 망설이고 이내 두려움을 거둔 채 늘어놓았던 과정들이, 즈앙이 자신의 손에 시집을 들려 준 그 순간들이, 즈앙이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던 탓이었다. 다른 의미로 명확한 것. 그러나 문자나 활자의 틀에 가두기는 어려운 것. 푀이는 기어이 이렇게 내뱉었다.
아직은 설명 못 해. 내 언어가 내 감정을 가뒀어.
......
날 것이라 거친 단어인 걸 용서해. 즈앙. 그런데,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나는... 뭐라고 답을 해 줘야 할까.
괜찮아. 사전에 적혀 있는 사랑만은 아니야.
적어도 내가 깨달은 것에 따르면. 푀이는 시집을 들고 시선을 돌려 즈앙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사전의 말을 빌릴래. 너는 내가 아끼고 열렬히 좋아하는 내 사랑이고, 지금은 그게 내 감정이야. 한 켠에 걸려 있는 시계가 초침 소리를 냈다. 똑, 딱, 똑, 딱. 시집을 들려 준 그 손의 행동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낸 말이 어우러진 하나의 순간이었다. 두 가지의 길을 찾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유레카. 한 번 더 외쳐도 좋을 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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