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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그래도 당신은 끝까지 살리고 싶다고 말해줄까요? / 옥타비아

종종걸음 by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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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족이 되길 권유했을 때 혹했던 것은 진실이다.

인자하고 다정하며 다소 장난기 넘쳐도 따뜻한 품을 알려주고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배워 알고 있음에 단어 그대로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알고 있던 사실이 뒤틀리고 본래 가족들이 어떤 사랑을 나누는지 궁금했을 때 망설임없이 묻게 될 정도로 찬란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표본을 구한다면 바로 당신을 떠올릴 만큼, 그만큼 혹했다. 어쩌면 당신에게 가족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당신을 가족으로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몰랐던 것을 그때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수많은 가정을 들고 들면서도, 결국엔 주저했다.

난 당신의 아이와 달리 무엇도 알려줄 수 없는 사람이라. 그 자리가 한 없이 높아보였다.

남이 보기엔 좁고 어두운 우물일지라도 그 곳은 내 세상이었다. 태양은 늘 내 머리 위를 돌고 달은 가끔 날 향해 은은한 빛을 비춘다. 봄엔 벛꽃이 여름엔 매미소리가 가을엔 단풍낙옆이 겨울엔 소복이 쌓인 눈위로 발자국을 새긴다. 신기하게 좁은 한켠의 공간속에서도 사계절이 있고 밤낮이 존재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이 성장함을 알 수 있었다. 불교의 무상(無常)에는 한 가지의 뜻만이 있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말하는 단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하며 변화한다고 한다. 비좁은 내 세상조차도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언젠가의 난 그 끊임없는 변화 속의 찰나를 그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니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할 수 밖에 없다면 그 찰나만이라도 기록해 남기고 싶었던 건지, 그저 멋져보이던 단어에 조합이었는지는. 이제와 사라져버린 과거 자신의 작품 의도를 명확히 떠올리려는 건 시간 낭비겠지.

그런, 무상의 이치아래 계속해서 변화해온 자신은. 변치않는 영원 속에서 찰나를 놓지 못해 사는 이를 꼭 붙들어 안게 되었다. 그 영원은 값을 헤아리기도 어려웠으며 속이 불구덩이 같았다. 내 작은 캔버스론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긴 커녕 담기도 어려울 것이란 것쯤 바로 알 수 있었다. 억겁의 세월간 쌓인 것을 겨우 스무해 살아와 번데기껍질을 벗어나려 끙끙대는 애벌레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어쩌하나, 설령 불에 탄다 할지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싶었다. 자신은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이제야 감정의 상을 드러내는 사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었을 때 당신이 저를 껴안아 주었듯이, 당신의 이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순 없어도 긍정했던 때와 같이, 재판 중 황당한 제안에 제 나름의 답을 찾아 해메었던 일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몸이 타들어가진 않았다. 세상의 모든것은 불변하지 않는다라는 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 신기하게도 각오와 마음가짐만 달리하면 영원의 색 마저도 담을 수 있을만큼 세상이, 캔버스가 넓어진다.

지금에 이르러 말한다. 나는 당신이 사랑했던 찰나들을 알고 언젠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자신이 행운이 될거란 믿음은 딱히 없다. 당신 꿈을 이룰 능력같은 것도 없고. 다만 기나긴 삶을 살아온 자애가 살아숨쉬게 할 짧은 순간정도는 되고 싶었다. 이것또한 오만임을 안다. 허나 천재는 늘 속에 오만을 품지 않는가? 여느덧처럼 콧방귀를 뀌며 웃어보였다.

나도 그래도 괜찮았거든. 상처입은 껍데기는 충분히 느낀 뒤 벗어내고 또다른 감정을 칠해나가며 살아가기에. 솔직한 나를 표상하는 일엔 상처가 늘 동반한다는 것을 두고두고 배웠음에도 이랬다. 이상하게도, 너희는 내 자신이 솔직할 때 가장 솔직한 말을 나누어주는 이들이라. 이게 기만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나, 나는 아마 그런 식으로 너희의 상을 읽었던 것 같다. 상처받을 수 있음을 학습해도 그런식으로 전부를 알고 싶었고 갖고 싶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허나 재밌지 않아? 불완전하기에 완벽해지고 필시 멸하기에 영원히 남기도 해. 전부를 포기할 만큼 갖고 싶어지듯. 무수한 순간속에서 변화하는 사람이기에 알수록 즐거운 것들이 많아.

그렇기에 옥타비아, 나는 당신이 이만 변치않는 영원에서 벗어나 언제든지 변해도 이상하지 않는 무상을 받아들이길 바라.

뭐 못할 게 있어?

응, 모두를 위한 미래를 그릴거야. …아, 근데 이건 이미 아는 애들이 있네. 다음건 꼭 먼저 알려줄게.

전원 다 초대해야지 물론. 나도 그걸 무척 바라거든.

이젠 아냐. 착한 일하라고도 요구할거야.

배우님이 그러고 싶다면. 무섭다면 내가 먼저 뻗을게.

아직도 여전히 따뜻하기만 한데!

그거 전부터 궁금했단 말이지.

나비가 되었구나.

응, 그치만 그게 잊혀짐은 아냐.

과거에 붙들린다더라도 너는 그렇게 미래를 살아가줄테니까.

원래 캔버스는 울고 상처입은 위로 예쁜 그림이 만들어져.

답이 필요해?

난 괜찮아, 옥타비아.

이건 전부 당신에게서 배운 자애를 표상하는. 간단한 일이었어.


“ 그 누가 잃고 싶어 할까. ”

“ 메루도 누구한테 푸딩 하나 빼앗기면 불같이 화를 내. ”

“ 하물며 그게 사람이면 얼마나 슬프겠어. ”

당신이 뱉는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여본다. 밀어내지 않기에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박자가 빠르던, 거칠어지던, 느리고 조용하던. 두근거리는 박동은 체온보다 더 사람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보이지 않음에도 묻은 고개로 금빛 머리칼이 햇빛커튼처럼 내려졌음을 안다. 당신이 웃던 낯을 상상하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보였다. 일전, 당신같은 찬란한 태양빛사이에선 내 눈은 무엇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지금만큼 당신이 훤히 보인 적이 없었던 기분이다.

아마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모를테지.
그렇지만 하나만은 알아.
보라색 튤립은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었지.
그치만 스노드롭의 꽃말을 알아?
꽃말은 다른 꽃과 합할 때 또 뜻이 변하기도 한댔어.
그때의 당신이 어떠했던 간에.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우리는 또 한차례 변할 수 있어.

“ 이해해. ”

당신도 충분히 희망을 품어도 돼.

“ 바보. ”

“ 두고두고 싫어할거야 그건. ”

“ 이제라도 메루가 좋아할 일들 가득가득 해야 해. ”

“ 진작에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묵음이 들렸다.

“ 으익, 그 말 너무 늦었잖아- ”

“ 그치만 늦은 가운데선 가장 빨리 말해줬으니까. 용서할까. ”

“ ……. ”

“ 나도 네가 무척 보고싶었어. ”

“ 이제야 널 보고 안 것 같아. ”

(멘션…멘션 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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