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catcher
커미션 신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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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er_apAT3Yk?si=AjS-iuc3zm-gmN3f
©윤리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까지 환자를 돌보며 서류 더미에 파묻힌 지 몇 달째였다. 강율의 피곤함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까맣게 가라앉은 눈 밑 다크서클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퇴근길에는 의사 가운에 묻은 커피 얼룩을 뒤늦게 알아채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는 소파로 직행했다. 축 늘어진 몸을 소파에 파묻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쉼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첸이 한결같이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야, 니 이러다 병원에다 뼈까지 묻는다, 응?"
"죽으면 좀 어때요.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똑같은데."
거실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티브이를 멍하니 보던 장첸이 고개를 돌려 강율을 흘깃 쳐다봤다. 강율은 그의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도 흘려버린 건지,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 장첸은 맥주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턱을 괴고 강율을 바라봤다. 죽상 그 자체였다. 이래서 어디 환자들 얼굴이나 똑바로 볼 수 있을련지, 싶었다. 강율은 장첸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웃었다. 솔직히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일은 계속 쌓여만 가고, 대타 뛰어줄 사람도 없고. 장첸은 턱을 괴고 뭔가 고민하더니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만간 마카오 한 번 가지 아이 하겠니."
강율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기대앉았다. 본인은 병원에서 일 안 한다고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건가. 내가 지금 무슨 정신으로 여행을 간다는 건지. 하지만 장첸은 자신만만하게 장난이 아니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일손도 없는데, 휴가 내기도 조금 곤란했다. 성수기라 사람이 미친듯이 몰리는 시기이기도 했고. 강율은 어깨를 으쓱하며 단호히 안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장첸은 이런 반응쯤은 예상이라도 했는지, 더 뻔뻔해진 태도로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니 없다고 병원이 망하지는 않겠다. 일단 니가 사람 먼저 살고 봐야 하는 것 아이니? 내가 니 이렇게 두는 걸 못 보겠구나."
"그래도…"
강율은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피로에 젖어 있으면서도 책임감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장첸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몇 분간 허공을 바라보다 이미 알아서 해놨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뭐야, 저거. 불안하게 만드는 저 미소 뭔데. 강율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빤히 바라 보았다. 에이, 설마. 간다고도 안 했는데 손을 써두진 않았겠지. 장첸은 한 번 한다면 무조건 하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정을 너무 잘 알기에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냥 휴가 내라. 비행기도 호텔도 예약 끝났다."
"...그럼 그렇지."
장첸의 뻔뻔한 태도에 강율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대단했다. 안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가. 제 계획에 꽤 자신만만한 모양이었다. 어떡한담. 마카오에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일을 내팽겨쳐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강율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떨구며 말했다. 하여튼 못 이기겠다니까.
"알겠어요. 대신 딱 이번 한 번이에요."
Dreamcatcher
장첸이 준비한 위조 여권은 상상 이상으로 완벽했다. 강율은 입국 심사대에 서는 내내 마음을 졸였지만, 공항 직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다. 통과한 후 강율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장첸을 바라봤다. 진짜로 그냥 넘어간다고, 이게 된다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랑 아는 거야. 장첸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아니, 짭새 새끼들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이렇게 태평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니 걱정이 너무 많다. 그런 걱정은 이미 여기까지 오는 비행기에서 다 내려놔야지."
어떻게 그러냐고 반박할 새도 없이, 그는 짐 가방을 툭툭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장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강율은 머리를 저으며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은 장첸이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안내를 받으며 모두 해결했다. 택시 기사와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평소 강율이 알던 장난스럽고 능글맞은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강율은 슬쩍 그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느낌이 달랐다. 말은 진짜 잘 하네, 같은 생각을 하며 도착한 호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했다. 황금빛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로비와 대리석 바닥, 저 멀리서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분위기까지, 강율은 문턱에 서서 한참을 넋 놓고 있었다.
"여기 엄청 비쌀 것 같은데요. 진짜 이런 데서 자요?"
"비쌀 리가 있겠니. 니 돈으로 내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걱정 하지 마라."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운데."
"니 병원 다니면서 이런 데 한 번 와보지 아이했구나. 이제라도 와봤으니까 됐다. 그냥 즐기는 편이 좋다."
장첸은 그 말을 듣고 혀를 차며 웃었다. 방에 들어선 강율은 넓은 침대와 거대한 창문 너머로 펼쳐진 마카오의 야경을 보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장첸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침대에 털썩 앉으며 생각했다. 그토록 죽상이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니 드디어 봐줄만 한 것 같았다. 저 미소를 유지시켜주고 싶었다. 다음 날, 장첸은 강율을 데리고 마카오의 대표적인 카지노로 향했다. 처음에는 강율도 이런 곳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장첸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니 머리 좋으니까 숫자 같은 거 잘 보지 않니. 걱정 말고 한 번 해봐라."
"저 이런 데 처음 와봐요. 틀리면 어떡하죠?"
"틀리면 어차피 내가 뒤에서 다 메꿔줄건데. 그냥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생각해라."
믿음을 주는 말이었다. 강율은 장첸을 믿고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베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운이 좋았던 덕분에 연속으로 이기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감이 붙은 얼굴로 장첸을 돌아봤다. 잔뜩 들뜬 얼굴이 마치 나 이거 소질 있는 거 아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이런 운 좀 쓰지 그랬냐는 말도 시시콜콜하게 주고 받았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가 카지노를 나왔다. 저녁에는 마카오의 유명한 야시장을 구경하며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봤다. 강율은 손에 쥔 꼬치와 만두를 먹으며 잠시나마 병원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은 듯 보였다. 장첸은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
"야, 니 병원에서도 이렇게 웃니?"
"웃고 싶어도 환자들 눈치 보느라 못 웃죠."
"그래?"
강율이 피곤에 젖은 얼굴로 장첸을 바라보며 작게 웃자, 그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애인은 지금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그것도 진심으로 편안한 표정으로. 이 순간만큼은 무거운 현실도, 환자들 앞에서의 책임감도 잊고 웃는 것처럼 보였다. 장첸은 그런 강율을 보며 은근한 안도감을 느꼈다. 강율을 이렇게 웃을 수 있게 하는 건 저밖에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좋았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둘은 길가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강율은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한참을 고민했다. 대체 뭘 그렇게 오래 고르는 건지,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온 신경을 잔뜩 쏟아 선물을 고르는 제 애인 옆에서 소소한 기념품을 구경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작은 상자를 하나 더 넣었다. 아무 말 없이 고른 그 선물은 강율에게 줄 특별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강율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마카오에서의 며칠은 강율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장첸과 함께한 마카오에서의 시간에 푹 빠져있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장첸과 더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귀국하면 다시 병원 일을 해야 할 현실이 싫었다. 강율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의 구름을 보다가 문득 장첸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생각보다 여행 잘 준비했네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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