记录

S#

커미션 신청본

©미르

S#1 현관- 강율의 집/밤

강율, 가죽 가방을 든 채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다. 퇴근길이다. 가녀린 손이 도어락을 닫더니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든다.

현관을 열자 짧은 일자식 복도가 펼쳐져 있다. 안은 어둡지만 미약하게나마 불빛으로 부엌 등이 밝혀져 있고, 인기척이 들린다. 뚜벅, 뚜벅. 아주 느린 걸음. 율의 놀란 눈 클로즈업. 급박한 음악 삽입. 눈을 점점 확대해서 잡다가 복도 끝 센서 등이 켜진다.

장첸, 담뱃대 물고 가만 서 있다. 전신 풀샷. 고개 까딱, 내리더니 대사 내뱉는다.

장첸: 왜 이렇게 놀라니. 못 볼 거라두 봤서?

율: 못 볼 거 봤죠. 첫 번째, 아직 일어나서 움직이면 안되는 아저씨가 여기 서 있는 거. 둘째, 실내 흡연은 안 되는데 지금 담배 물고 계시네요. 특히 환자는 절대 안 돼요.

건조한 표정의 강율,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장첸의 입에 물려진 담배 빼앗는다. 장첸의 어이없다는 표정, 잠시 화면에 담기더니 카메라 아래로 내려가 허리춤에 찬 칼 클로즈업 된다. 칼이 여전히 화면 잡히는 새에 장첸의 낮은 목소리, 대사 삽입된다.

장첸: 니는 참, 무딘 것 같다야. 범죄자가 앞에 있는데 놀라지도 않고.

강율의 시선, 천천히 아래의 칼로 향하지만 놀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율: 위태롭고 치열하게 살다 보면 무뎌지더라고요.

장첸: 기래서 허리춤에 찬 칼을 봐도 놀라지 않는 기고?

율: 그런 것도 있고. 아직 아저씨는 제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죽일거면 벌써 죽였지. 아니 근데 흉기는 다 뺏었는데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예요?

장첸: (낮은 웃음) 역시 의사 선생님은 다르구나야.

율: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침대에 가서 누워나 계세요. 아저씨 아직 막 움직이고 그럴 상태 아니라니까... 아니 진짜 저 화내요?

강율, 장첸을 지나친다. 가방에서 차 키와 지갑을 꺼내어 선반에 올려놓던 차,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 돌린다.

장첸: 니는 이름이 뭐이니.

멀리서 느릿하게 훑어오는 시선에 강율, 흘러내린 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 (경계, 흥미. 그 사이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율: 강율이요. 외 자 이름. 근데 왜요. 불러주시게요?

장첸: 허. 어이에서 강 선생으로 바뀐 거면 아주 포상 아이니?

율: 저는 또 천하의 장첸이 다정하게 율이 씨- (늘어지는 음) 하고 불러주시는 줄 알았죠.

장첸: 내는 이름 아이 부른다.

율: 못 외워서요?

장첸: 늬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부르믄, 기어이 중한 사람이 되거든.

율: 그렇다면야... 강 선생, 아저씨가 적당하겠네요.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서 누워 계세요. 아저씨. 의사로서 명령입니다.

장첸, 눈 옅게 감았다가 뜨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간다. 느릿한 걸음에는 미련이 아니라 여유가 담겨있다. 율, 가방을 마저 정리하고는 고개를 내려 제 두 손을 바라본다. 손 클로즈업.

피가 잔뜩 묻어있는 것 같은 환각을 본다.

과거로 화면 전환.


S#2 (과거) 강율의 집/밤

똑같이 피가 묻어있는 손 클로즈업. 이번에는 환상이 아니다.

환히 밝혀져 있는 거실과 부엌. 쓰러져서는 벽에 기대있는 남성. 금방 응급처치를 마쳤는지 흉터 투성이인 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그 붕대 마저도 피로 금세 물들어 있다. 자상에다가 출혈량이 상당하다.- 강율,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묻는다.

강율: 그래서요, 당신 뭐 하는 사람이죠? 왜 그런 꼴이 되었는지 설명해요. (뜸 들이다가)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버릴 테니까 알아서 대답 잘 하시고.

장첸, 밭은 숨 몰아쉬다가 떨어트린 고개 다시 올린다.

장첸: 그래도 신고는 아이하는구나. 신기하다야. 근데 늬는 테레비도 아이보고 사니. (낮은 웃음) 겁이 없구나. 좋다. 내 감옥에서 칼침을 맞았는데, 병원차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거든. 그래서 이 꼴이 난 거고. 어때, 만족하니?

강율: 환자를 신고 할 생각은 아직 없고요. 가서 침대에 누워요. 몸부터 회복하고 이야기 더 나눠보죠? 그러다 진짜 죽어요. 상처 겨우 봉합해놨는데 덧나거나 터지면 그 쪽이 위험한 거라고요. 감옥보다 황천길이 빠를 수도 있어요.

강율, 장첸에게 오른손을 내민다. (P.O.V와 로우앵글샷.) 장첸의 시점에서 올려다본 장면이다. 율이 내민, 피 묻은 손은 작고 가녀리다. (그 손이 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스름한 달빛 사이로 전해지는 열기. 장첸은 픽 웃고는 그 오른손을 잡는다.


S#3 (현재) 강율의 집/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율의 손, 클로즈업한 화면. 아까와는 다르게 피가 묻어있지 않다.

율: 그래, 어차피 금방 떠날 사람. 이름이든 얼굴이든 머릿속에 새겨봤자 뭐 하겠어.

율, 지친 몸 끌고 너른 소파에 앉는다. 한여름 밤의 열기가 무덥다. 홧홧한 귀. 더운 숨.

S#4 씬들과 강율의 집/밤

율이 장첸의 상처를 봐주는 장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대화를 나누는 장면. 화면이 달력 넘어가듯이 빠르게 전환 된다. 대여섯 씬이 넘어가고 나면 다시 그 현관문 도어락 앞이다. 역시나 같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듯 내뱉는다.

율: 다녀왔어요.

-자고 있겠지. 대답을 기대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술 냄새와 거실에서 다시 인기척이 느껴진다. 율, 빠른 걸음으로 알코올 내음의 근원지를 찾는다.

율: 아저씨, 술 마셨어요?

장첸, 식탁에 앉아서는 술병을 쌓아놓고 있다. 아직 채 두잔도 마시지 않은 듯 싶다. -그래서 취한 것 같지는 않다.- 알 수 없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장첸: 니 기다렸다.

율: 같이 마시자고요?

장첸: 그래.

짧은 대답에 강율, 식탁에 앉는다. 마침 술이 고프던 상황. 잔을 들고 함께 마시기 시작한다. 어두운 거실에 식탁 위 등만 켜져 있다.

오늘따라 술이 받지 않는 것인지, 신세 한탄을 늘어놓아 저도 모르게 과음을 한 것인지 점차 강율의 얼굴이 붉어지고 몸짓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식탁 위에 잔뜩 쌓인 술병 클로즈업. 강율, 어지러운지 머리를 붙잡는다.

그와 대조되게 다음 화면에 잡히는 장첸은 전혀 취한 기색이 없다.

기우뚱, 하는 순간 취한 강율이 바닥에 쓰러지고 장첸의 스산한 눈이 화면에 잡힌다. 허리춤에서 사냥용 칼을 꺼내든 장첸, 허리를 숙여 바닥에 늘어진 강율의 목에 나이프를 가져다 댄다.

장첸: 어째 내를 보고도 신고를 아이했니?

강율, 놀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시나 없다. 평온한 표정으로 가만 올려다본다. 까만 눈동자에 장첸의 얼굴이 담긴다.

율: 한 번 죽을 뻔했잖아요. 돌아가면 뻔하지.

강율, 몸을 일으키자 장첸 웃음 터트린다. 나이프를 내리고 흉터투성이 거친 손을 율의 목께에 가져다 댄다. 여린 살에 나이프 끝이 닿아 생긴 상처가 선연하다. 그 부위를 쓸어내린다.

율: ... 근데 이래 놓고 떠날 거죠?

장첸: 아니. 생각이 바뀌었다.

율: 거짓말.

장첸: 어이 하면 믿겠니.

율: ... 이름. 이름 불러봐요.

강율, 나른한 눈으로 장첸 올려다본다. 허리를 숙인 장첸 이제 율의 위에 올라타더니 목께의 상처로 입을 가져다 댄다.

장첸: 강율, 율아.

귓가와 상처에 닿는 숨. 이름. 목소리. 강율이 웃는다. 더운 한여름 밤의 숨이 점차 섞이더니 희미한 식탁의 등이 깜빡이다 빛을 잃는다. 까맣다. 온 세상이. 어스름한 달빛조차 그들을 비추지 않는다.


#쿠키 영상.

역시나 무더운 한여름 밤이다. 거실 불은 어둡게 꺼져 있고 티브이 불빛만 번쩍거린다. 그러나 달이 밝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소파에 앉아 가만 TV를 보고 있던 강율, 곁에 앉은 장첸에게 시선 돌린다. 어딘가 장난기 어린 표정이다.

장첸: 왜. 뭐이니. 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강율: 아저씨. 너 말고, 강율. 그날 밤에는 잘만 부르더만.

장첸: 먼저 오라바이-하고 부르면 내도 부르지.

강율: 예? 꿈도 꾸지 마십쇼. 아저씨.

장첸: 내 답도 같다. 강 선생.

강율: 아니 한마디를 안 져요?

장첸: 이쪽이 지면 장첸이 아이지 않겠나.

강율: 예... 하얼빈의 장첸이시지.

강율,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 돌린다. 그 모습 바라보던 장첸이 옅게 웃는다. (흥미-> ?로 넘어가는 듯한 웃음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강율. 강율을 바라보는 강첸. 이상하리만치 율의 귓가가 새빨갛다.

-엔딩 크레딧.-


***감독노트***

1. 첫 번째 조명.

뭔가 어두운 누아르라 밤을 많이 넣었어요. 그래서 같은 장소에서 어떤 연출을 줄까 하다가 부엌과 식탁 등은 각각 장첸과 강율의 경계심을.. 나타내는 장치로 넣었습니다. 어두운 곳에 둘이 함께 있다라는 의미는 서로를 믿을 수 있고 등을 내어줄 수 있다. 라는 뜻이거든요. 뭐가 튀어나올지... 뭘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어둠은 신뢰의 의미입니다. 자 그럼 같이 봅시다. (부엌 등-> 장첸, 거실 등-> 강율)

타임라인 씬2->씬1->씬3->씬4

1-1 씬1

거실은 어둡지만 부엌 등 (장첸의 조명)은 밝혀져 있습니다. 경계심을 거둔 강율과 다르게 아직 장첸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는 말이죠.

1-2 씬2

거실과 부엌등이 활짝 켜져 있죠? 둘 서로 다 경계하고 믿지 못한다는 겁니다.

1-3 씬3

역시나 거실 등 (강율 경계심 장치)은 어둡습니다.

1-4 씬4

여기가 참 재밌는데요. 장첸이 강율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부엌 등이 깜빡이다가 꺼집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둘은 서로를 신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 거예요.

1-5 쿠키영상

이 역시 거실 등, 부엌 등 둘 다 꺼져있고 티브이 불빛만 번쩍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친해졌네요. 사궈라. 사랑을 해라.

2. 이름.

이름이라는 건 참 소중한 겁니다. 니 내 누군지 아니.라는 대사에 되받아친 장첸의 대사가 돈 받으러 왔는데 그것까지 알아야 되니? 였습니다. 그래서 율의 이름을 부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건 관계의 형성을 뜻하는데 굳이 그걸 하고 싶어할 것 같지 않았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시 구절이 유명합니다. 장첸이 강율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떠나지 못하게 된거에요...

3. 반복되는 씬과 장소

클로즈 업 된 손으로 부터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바뀌어 시간이 이동한다거나 씬1과 씬4가 모두 현관에서 시작하여 들어오는 장면을 넣는다거나... 일부러 규칙성과 반복을 주었습니다. 규칙과 반복은 누구에게나 심리적 안정을 줘요. 매일 다른 사건들이 터지며 하루하루를 살던 장첸이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주신 타임라인과 그 세밀한 서사까지는 조금 다를 수는 있으나!! 연출 상 그리 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ㅠ 아니 드림이 너무 맛있어요. 건조버석드림 언제안좋아하지... 관계성이 너무 좋아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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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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