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저편까지

마음을 담아,

내가 키운 S급들 | 송태원 드림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D+1400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송태원이 시간을 확인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시선이 시계에 머무르는 것은 찰나이기는 했으나 주변에서 그를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연락이 도착한 것인지 송태원이 드디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직원들의 눈치 속에서 화면에 띄워진 글자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태원은 답장을 보내고 점심시간을 알렸다. 그러고는 혼자 사무실로 향하는 것이다.

각성자 관리실의 실장실로 돌아온 송태원은 자리에 앉기 전에 화분을 살폈다. 부분적으로 색이 채워진 투명한 꽃다발에는 적절한 냉기가 흘러나와 요즘 같은 계절에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해 주었다. 관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꽃이 공간과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송태원의 조언 덕분이었다. 송태원은 조심스럽게 얇은 꽃잎의 끝을 매만졌다. 그러면 시원한 공기만이 청정하게 묻어나왔다.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화분 앞에서 검게 물든 액정만 잠시간 응시하던 송태원이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의 한쪽에는 간식 몇 가지가 작은 쪽지와 함께 놓여있었다. 쪽지에는 일하는 송태원의 모습을 그려낸 낙서와 ‘송태원 실장님께’라는 말이 어딘가 어설픈 서체로 적혀있을 뿐이었다.

본인이 담긴 쪽지를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쓸어보던 송태원은 서랍을 열었다. 소중하게 넣어두었던 깔끔한 구성의 편지지를 한 장 꺼낸 송태원은 적당한 펜을 고르고도 한참이나 편지지를 방치해야만 했다. 난처하다는 듯 입가를 매만지던 송태원이 흘깃 시계를 확인한다. 이윽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한 글자씩 반듯하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가,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사가의 화분이 있는 사무실은 무척 쾌적합니다. 덕분에 모두 나가는 것을 괴로워합니다. 막상 일이 생기면 조금 전까지 비가 쏟아지더라도 거짓말처럼 그치더군요. 그러니, 사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투덜거림이 많다는 것은 사가도 모르지 않으시겠지요. 그것이 서운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같이 식사할 때면 반찬을 두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관례이지 않았습니까. 퇴근이 가까운 시간에 사무실에 잠깐 들르는 것으로는 아쉬운 모양입니다. 사가를 도와주려는 것도 다들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그래서, 글씨 연습은 잘되고 있습니까. 모두에게 특별한 명함이 생겨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들 자랑하는데 어째선지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간식과 함께 남기신 메모지는 방금 확인했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명함으로 받는 것이 보관하기도 쉬울 것 같습니다. 편하게 자랑할 수도 있겠군요.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준비해 주신 간식을 먹을 수 없으니, 간식에 대한 것은 퇴근하고 편지를 읽으신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뇌물이나 협박이 되는 것일까요. 사가는 어느 쪽을 좋아하십니까. 지금이면 옆에서 운전하고 있을 테니 알려주십시오.

제가 이 편지를 드려도 사가는 지금, 이 순간을 알고자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사가,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가의 송태원.


깔끔하게 편지지 한 장을 채운 송태원은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책상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놓아두고 간식으로 손을 뻗었다. 몇 가지의 간식은 사무실에서 먹기 편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지를 돌아다니는 차에 맛있는 것을 발견하고 틈을 타 가져다 둔 것이 틀림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송태원 자신이 그러한 것들을 사다 주고 싶었으나 송태원은 항상 느렸고 요령이 부족했다. 마카롱을 작게 한 입 베어 문 송태원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주변의 디저트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날카로운 눈이 적당한 곳을 포착했다. 가게의 정보를 정독한 송태원은 편지지의 잉크가 마른 것을 확인하고 꼼꼼히 접는다. 편지지와 함께 꺼내두었던, 그와 짝을 이루는 편지봉투에 봉하고는 안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옷 위로 손을 툭툭 두들기며 몇 번을 더 확인해 보아서야 송태원은 안심하고 실장실을 나섰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