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은 아직 멀었고, 우리는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니까
미내님 생일 축하를 이런 식으로 하는 미륵불은 어떠세요
나인은 직감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 끝에 기어코 손을 맞잡은 채로 애정을 토로할 것이라고. 그런데 그 날이 당최 언제란 말인가. 몇 시, 몇 분이 되어 날 괴롭힐 거란 말인가? 명확하지 않은 사실은 고난이 되어 삶에 밀려 들어온다. 그것도 타자로 인하여 내가 흔들려야만 한다니. 무슨 이런 모순이 가득하냔 말인가. 나는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으로 힘들지 않고자 했는데, 되려 보류하는 사실이 독이 되어 목구멍을 뒤흔든다. 좁게 만들어 숨 쉬기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어처구니 없기도 하지.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싫어한다. 긴 시간동안 애정해왔기에 이제는 습관조차도 알게 된 그 흔적, 형태, 모든 것이 얄밉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렇다. 나는 그 모든 나날들 사이 당신을 조금씩 원망하기라도 했지, 애정한 적은 없다. 처음부터 주어진 애정의 총량은 변치 않았다.
나는 시온 라피우스를 사랑한다.
에이브 나인은 시온 라피우스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게 시온 라피우스가 에이브 나인을 사랑하는 양과 동일하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으레 인간이라는 것은 자신이 품게 되는 마음 만큼 상대에게 붙어있고자 하고, 시온 라피우스는 24시간 중에 10시간을 넘게 경호의 문제로 붙어 다님에도 모자란다는 듯이 밤에 데이트를 신청하고 쉬는 날에 함께 놀자고 연락까지 보내왔다. 지긋지긋하지도 않나, 자신을 똑바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 따위 난 당장 따귀를 쳐서 혼내고 싶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데. 당신은 내 마음 한 길도 모르면서 좋답시고 웃고 있다. 애정에 가까운 시늉이나 거짓을 선보여도 그것 조차 귀하다는 듯이 손을 받쳐 웃으면서 내 속을 뒤흔든다…….
아, 얄팍하고 미운 사람. 그래. 난 너를 미워한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더 미워하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나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널 헐뜯고 싶어질 것이다. 그 떄가 온다면 나는 너의 입술을 삼킬 것이고, 귓가를 물며 야단 칠 것이다. 손을 맞잡은 것 탓에 혐오감이 밀려와 헛구역질을 서너 번 하더라도 놓지 않고 어디 한 번 견뎌보자, 누가 지는지 따위의 마음으로 개길 것이고, 기어코 식은땀 질질 흘리면서 온갖 말을 외쳐둘 것이다.
나는 너를 원망한다.
에이브 나인은 시온 라피우스를 원망한다.
그런데 그게 또, 에이브 나인이 시온 라피우스를 죽이고 싶다는 단어와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라. 때에 따라 나를 뒤숭숭한 꿈으로 인내하는 너의 숨통을 쥐어 뜯어 버리고 싶다가도- 그래요, 나는 기어코 이런 진창에 빠져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겠지 싶어하며 납득하게 된다.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이상, 이 신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모조리 손을 붙여 긁어내고 싶다가도 네 입맞춤이 닿은 곳이면 괜히 간지러워 건드리지도 못하게 된다.
낭패다.
이렇게까지 정을 줄 생각은 없었다. 너는 내 0순위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다 하여 순위 밖으로 밀려난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 적절한 틈을 맞추기 위해 몇 번이나, 몇 시간이나, 며칠, 몇 달, 몇 년이나 내가 노력했는지. 넌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성질이 나쁜 인간이고 진실 따윈 개나 주라지 하고 감추고 싶은 작자니 영원토록 비밀로 두어 네 속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더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기꺼이 그러자고 하는 청년의 낯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저 얼굴 탓에 많은 걸 그르치고 말 것이다. 나는 저 낯짝으로 인해 많은 걸 실패하고, 또 성공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에이브 나인은 주먹을 쥐었다가- 금방 손에 힘을 풀었다. 무용한 짓이다. 나는 널 애틋하게 여기니, 이런 무분별한 차별 따윈 감히 행할 수도 없다.
손 잡는 것이 ‘실수로’ 3시간이 넘었어도 더 닿아있고 싶다니. 가끔 가다가 네가 하루는 더 내 집에 묶여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 싶다니. 때로는 바보같이 구는 것이 귀엽다고 여겨져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니. 천지가 뒤흔들려도 내 인생에서 이렇게나 비루하고 비참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감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답을 듣지 못한다니. 나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만 할까. 네 턱을 쥐어 뺨을 내려치는 것에도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면 달라질까. 아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너의 계기 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귀중한 자리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옳다.
아. 이야기의 엔딩은 멀었고, 내가 꿈꾸는 진정한 미래에 너는 없을지언데, 나는 이 한순간이라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발악을 하게 된다. 몇 없는 짐을 챙기며 에이브 나인은 다음 날을 그리워한다. 시온 라피우스를 그리워한다. 거울에 손을 붙이고, 상대가 저를 만나면 조심스레 붙잡을 손 부터 생각해본다. 그것조차 허락을 이젠 안 받고 눈치로 정도껏 잡았다 마는 것이 얄밉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어도 남의 시선에 민감하니 모두가 안 보는 틈을 찾아 입을 맞추고 드는 그 치가 괘씸하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죄가 없고, 사람에 빠진 사람에게 악행을 물 수 없는 법이다. 네가 차라리 자아라도 강해 나와 실컷 부딪혀가며 서로 주먹질 하는 사람이었다면 때린 정이라도 있어 주춤거리겠는데 그럴 틈도 없이 순종적이게 구니 나는 기브 업 사인을 올릴 수 밖에 없다.
목에 손을 올리고 그것을 감싼 뒤 움켜쥐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그 순간 만큼은 너를 온통 가진 것 같아서, 나는 감히, 멋대로, 그런 꿈을 꾸다가 끝내 네가 죽고 말아 또 꿈에서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너는 내게 독이고, 해독제이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정해지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만드는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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