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반작용의 법칙
천경조
형의 귓가에 속닥거린다.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긴다.
돌아오는 말은 없고,
손은 다시 끌어당겨지지 않는다.
나의 집에서는 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똑 똑 하고 두 번,
문 안과 밖을 확인하듯, 이곳과 저곳에 동등하게.
“형, 무슨 책 읽어?”
“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대. 진공이라서”
“응, 우주가… 소리가 왜?”
“소리는 파동이고 공기를 매질로 전달되는데, 우주에는 공기가 희박해. 진공 상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조용히 하라는 말이다.
형아, 근데 우리는 지금 우주에 있는 게 아니잖아.
아. 그게 아니라 나는 여기에 있고 형은 우주에 있구나.
- 서로의 세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
나 천경조와 노이지는. 사는 세상이 다르다.
처음 만났을 때가 어땠더라. 그때 나는 금방이라도 중력에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끌어올리며 면접장에 들어갔다.
거긴 내가 경험했던 어떤 면접장보다도 어수선했다. 내 다음, 다음번 순서였나 어느 지원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부림 같은 춤을… 노래도 없는 곳에서 아주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춤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췄다.
누구 하나 함부로 웃지도 못하는 경직된 공기가 팽창하다가 펑 하고 터지듯 별안간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더니 맥이 빠질 만큼 분위기가 완화되어 버렸다.
솔직히 나는 그때 공기가 희박해져서 아무 소리도 듣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됐다.
사실 그 공기가 거북할 만큼 너무 무거웠다.
첫 출근 날.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포기에는 응당 책임이 따른다. 말도 못 하게 한심한 사람과 입사 동기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묶이는 수모도 감수해야 하는 거라.
노이지라는 사람은 놀랍게도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이제 뭐 나는 거의 놀라지도 않게 됐다.
노이지에 대해 더 말해보자면, 새로운 것을 하나 가르치면 원래 알던 것 세 가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머리가 나쁘고,
그런 주제에 감히 경계심도 없이 덤벙거리고, 그래서 주변을 곤란스럽게 하는 대형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고는 자세를 납작 엎드려 손이 닳아지도록 빌고, 지도 민망하기는 한지 어설프게 웃는다.
그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교훈을 얻지 못한 건지. 곧바로 다른 실수를. 그래서 고작 신입사원인
내가 노이지의 폭탄급 업무 재해를 수습하기도 했다. 물론 반대급부로 얻게 된 평판의 이점이 있었음은 인정한다.
아무튼 이 시끄럽고 하루를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여자를,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계제도 없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될 리 없으니까. 아, 당연히 그 반대도 성립하고.
사는 세계가 다르다니까.
그런데 어떨 땐, 나도 실수를 한다.
그냥 조금 화도 나고 답답하고 진정할 게 필요해서
회사 탕비실서 텀블러에 독주를 채우고 있었다. 뚜껑을 밀폐하기 직전이었는데.
하필이면 노이지가 바로 뒤에 있다는 걸 몰랐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나도 가끔 한다.
그 이후로 노이지는 어설프게 능글맞은 미소를 띠면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마치 서로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듯이.
설탕을 끈적하게 입힌 과일이나, 애매하게 빨간 떡볶이, 광물이 된 고구마 맛탕을 들이댄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한번 포기하니까 쉽다.
시간이 흘러서 어떤 날, 나는 실수를 했다.
나를 위한 게 아닌 무대를 침범하는 실수를.
노이지가 한 연쇄 폭탄적 실수보다 더 큰 실수여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주도 아닌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닌가. 이번엔 내가….
새벽 네 시 삼십 사 분. 503호.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먼지 묻은 텀블러가 굴러온다.
싸구려위스키에 졸인 불어터진 과육을 내민다.
*<집 지키기 놀이>, 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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