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승주

편승주 片勝柱

미련이란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리운 감정

♬ Claude Debussy, Clair de Lune(달빛) (클릭 시 유튜브로 이동합니다.)

편승주 片勝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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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 / A RH+ / ISFJ

174cm / 53kg

몸을 가볍게 흔드는 기척에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부르는 소리는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제 이름임을 안다. 어깨 위에 눌러 앉은 졸음에 눌려 침대에 앉아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어머니는 조용히 손을 잡았다. 맞닿은 온기는 따뜻했고 엄지 손으로 조심스레 손등을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간지러웠다. 네, 나갈게요. 허공에 대답이 퍼지자 그제야 어머니는 마주 잡았던 손을 떼고 침대 곁에 쪼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셨다. 10년 동안 반복된 평일 아침 일과였다.

편승주는 날 때부터 잠이 많았다. 언제나 침대 한구석에 웅크려 잠을 청하는 게 하루 일상의 전부였다. 승주의 부모님은 잘 울지도 않고 얌전한 아들이 기특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많았지만, 글자도 곧잘 배우고 말도 금방 하니 걱정을 덜었다. 유년기부터 무던히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였던 승주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는 게 귀찮았고, 일어나서 뭔가 행동해야 하는 일들을 번거로워했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은 것처럼 날아가니 승주는 매번 어떤 설명과 행동 보다는 잠을 택했다. 그런 승주를 보고 부모님은 우리 승주 키 많이 크려고 많이 자는 구나. 하고 웃었다.

국민 학교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급격히 말수가 적어졌다. 환경 변화로 애가 스트레스받았겠거니, 하고 넘겼었는데 첫 여름 방학을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집에서 늘 조용하던 승주가 사고라도 친 걸까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간 학교에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애가 청각 장애가 있는 걸 숨기시면 어떡하냐고. 승주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져 눈물만 흘렸다. 한참을 울어 기운이 다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오자 멀뚱멀뚱 브라운관을 쳐다보고 있는 승주의 동그란 뒤통수에 대고 승주야. 하고 부르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승주야. 좀 더 크게 부르자 그제야 승주가 고개를 돌려 뛰어와 안겼다. 그게 이름을 듣고 뒤를 돈 것인지, 그저 인기척이 들려 돈 것인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작은 변화를 무시했던 것은 그저 무관심이 아닌 무심한 다정이었는데, 그게 칼이 되어 돌아왔다. 승주의 손을 잡고 간 병원에서는 고작 중이염이라고 했다. 그 작은 염증이 승주를 갉아 먹었단 사실이 암담했다. 그날 이후 승주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지금껏 지키는 삶의 약속 중 하나를 했다.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기. 새끼 손을 걸고 했던 약속은 여태껏, 편승주를 이루는 것들 중 하나였다.

편승주는 일상에 힘을 내어 살아가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들을 흉내 내고 싶진 않았다. 날 때부터 주어진 기력이 사람마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본인한테는 없다고 생각했다. 뭐든 적당히 설렁설렁 사는 모습이 언제든, 어디로든 훌쩍 떠날 부랑자 같다가도 또래들처럼 오락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한량처럼 보이진 않았다. 청력 손실에, 어음명료도가 한참 떨어져 뭐든 대꾸가 느린 승주에게 무던히 애정을 쏟아부었던 것은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말은 없었지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꼬박꼬박 다니던 병원에서 들리지 않는 것과 들리는 것을 셈하던 승주는 매번 반복되는 실험과 같은 치료에 겨우 들리는 소리마저도 듣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실은, 귀가 덜 들리는 것도 승주에게 주어진 기력이 소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여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괘씸한 생각도 종종 들어서 그 이후로는 노력도 멈췄다. 들리지 않아도 승주에게는 여전히 남아있는 감각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보는 것을 제일 잘했다. 작은 흠이나 남들은 신경 쓰지 못할 작은 요소까지 잘 기억했다. 사람과의 소통이 되도록 적은 것 중에 꼼꼼한 승주에게 어울리는 일을 고심하던 아버지는 본인이 하던 일을 이어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푸는 것, 또 어떤 사고를 하는 과정이 고요 속에선 꽤 할만한 일이어서 승주는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최대한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다. 자신 때문에 인생을 헌신한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별일이 없으면 그냥 흐르는 대로 살고 싶었다. 생각하는 게 좀 귀찮았고, 사는 건 두 배로 귀찮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말을 걸거나, 교류하는 것을 꽤 어려워했다. 사람과의 교류는 고도의 생각과 포장이 필요한 일이어서, 귀찮음을 넘어 정답이 없는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물론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거듭 학습하고 고쳤지만, 날 때부터 주어진 심성이 심약한 건 여전해서 언제나 타인을 상대할 때는 고전했다. 주어진 기력이 적은 만큼 천성도 소심해서 작은 일에도 혼자 머리를 굴리며 낑낑거리기 일쑤였는데, 그마저도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러다가도 며칠 뒤면 새까맣게 잊었다. 편승주는 먼저 들쑤시지 않으면 남에게 일절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할 일 없이 쳐다보던 브라운관에서 ‘플랜더스의 개’를 방영했었다. 그걸 열심히 보고 크던 승주는 복슬복슬하고 큰 강아지를 꼬옥 껴안고 자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와 약속을 하기 이전의 일이어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작은 강아지보다는 커다란 개가 좋았고, 반들반들한 털을 가진 개보다는 복슬복슬한 개가 좋았다. 종종 밖을 거닐다 개를 마주치면 빤히 쳐다보곤 했는데, 차마 만지고 싶다거나 다가가고 싶단 생각은 안 했다.

한참 성장통을 겪으며 매일 같이 잠에만 빠져있어도 한 소리 듣지 않던 시절에, 목이 말라 깬 눈앞에 귀뚜라미가 앉아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라 기절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벌레는 종에 상관없이 무섭고, 싫었다.

어머니와 입맛이 비슷해서, 단 디저트를 좋아했고, 맵고 뜨거운 음식에 약했다. 정반대 입맛인 아버지는 단 걸 싫어했고, 뜨겁고 매운 걸 잘 먹었는데 그런 아버지와 연애하며 쌓인 한이 있는지 어머니는 매번 승주를 데리고 작고 예쁜 디저트 가게를 다니는 걸 즐겼다. 그래도 가끔은 단 걸 못 먹는 아버지를 위해 이따금 고구마나, 밤 같은 상대적으로 덜 단 디저트를 손에 들고 갔다. 아버지는 싫은 소리 몇 마디 하며 한두 개 집어 먹었고, 이틀 뒤면 디저트는 자취를 감췄다. 너네 아버진 솔직하지 못하다며 툴툴거리는 어머니의 곁에서 웃었다.


편승주는 사는 내내 어떠한 일이 들이닥쳐도 그러려니 하고 긍정적인 것을 넘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무책임한 낙관성을 꽤 보이며 살았다. 아니면 말구요. 되면 좋고…. 딱히 모든 것을 좋고 즐겁게 여기진 않지만, 그럼에도 모두 이유가 있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작은 염증이 귀를 망가뜨린 것도, 회사 사람들 속에 섞여 한참 생일 축하를 받고 드물게 먹는 술기운이 몸에서 올라와 한껏 기분 좋았던 날에, 캄캄한 도시에서 라이트조차 켜지 않고 달려오던 음주 운전 차량이 뒤를 덮친 것 역시도. 어쩌면, 세상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아직 답장도 보내지 못한 휴대 전화에 남아있는 받은 메시지 2통 때문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지 말고 본가로 와서 생일 케이크 같이 먹자고 하던 어머니의 문자, 너네 엄마 지금 초에 벌써 불까지 붙였으니 빨리 오라던 아버지의 문자가…. 지금쯤 폭신한 고구마 케이크 위로 떨어질 촛농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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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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