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권순영(2)

영원불멸의 백호

서당 by 반야

해오름달 스무하루

악착같이 1등만 보고 살아오느라 서당 밖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남들이 다 휴가를 받고 반출이라도 써서 가족에게 가는 동안, 순영은 셋과 서당에 묶여 공부만 했다.

올해 황룡이 결정되었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승철의 목소리에, 넷은 곧장 뛰어갔다.

黃龍宣告

玄武 全圓佑 李知勳

朱雀 -

白虎 權順榮

靑龍 無名氏


주작 내에서 수석인 생원에게 황룡이 될 것을 꾸준히 제안해왔으나 그가 거절하였다. 주작에서 차석인 자는 현재 1년 생원 통틀어 보았을 때 그리 높은 순위에 있지 않았다. 서당의 규율을 원칙으로 하여, 현무에서 차석인 자를 황룡으로 등용한다. 또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여 황룡으로 등용되는 자들의 전체 성적을 공고한다. 당사자에게 전부 승낙받은 것이며, 주작 수석인 자에게도 승낙받았으니…….


다행히도 목표했던 대로 흘러갔다. 흰 눈발이 날리는 날, 순영은 벽보에 붙은 내용을 보고 셋을 와락 껴안았다. 다, 너희 덕분이라고. 이제 제 이름 정도는 끝도 없이 써서 단번에 읽을 수 있었으며, 아래에 적힌 내용마저도 하나하나 읽어본 후였다.

“축하해!”

“덕분이야.”

“혜택으로 휴가를 준다고 하던데, 어디 갈 거야?”

“집에 다녀오려고. 하루만 다녀올 거야.”

“...그래? 지훈이가, 준이까지 해서 봄에 꽃놀이 가자고 하던데?”

“응. 다녀와서 가자.”

서당에 들어오고 1년 내내 예민하게 살았는데,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헤실헤실 웃으며 서당을 돌아다녔다. 지훈이 그리 좋으냐고 물었다.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서당 모든 1년 생원이 넷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 어머니랑 둘이서 살았거든. 이리저리 굴러다녔는데 말이야. 하……. 여기 떠날 때도, 그냥 서당 수복청에 일하러 간다고 하고 왔어. 바쁘게 사느라 보러 가지도 못했네. 이제, 황룡도 되었으니 휴가 내어 다녀와야지.”

다시 실내로 들어와서 한 소리였다. .근 1년간 붙어 다니면서, 지훈과 준휘의 이야기를 얼핏 들었기에 가족 이야기는 웬만하면 꺼내질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술술 나와버렸다.

“황룡이 되면, 가명도 정할 수 있다며?”

“맞아! 순영이 너, 호시 한다며.”

준휘가 맞장구 쳐주는 말에, 순영이 양 손을 써가며 호랑이 흉내를 내려고 애썼다. 호랑이의 시선! 범 호에 보일 시! 어때? 순영의 말에 지훈은 너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지훈이 원우에게 물은 것이었다. 황룡은 황룡이고, 원우는 사자를 모시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가만히 끄트머리에서 명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잠잠했다. 그래도 아까 황룡을 확인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활짝 벌려 웃기에 쟤도 저렇게 웃는구나 했는데. 다시 평소처럼 냉하게 있었다.

“...명부 처리하러 가야 해서.”

“매주 하던 일인데?”

“어.... 아는 인물이 있어서 그런가, 좀 그러네.”

원우는 제 손에 들려있는 1월 명부의 마지막 장을 한참을 보았다.



壬辰年 一月 二十五日 寅時

嬤虎

病死

해오름달 스무닷새

“…갑시다.”

“제가... 죽은건가요?”

제 죽음을 믿지 못하는 망자는 익숙했다. 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울지도 않고, 한탄도 않았다. 그저 가벼이 한숨만 쉬었다.

“죽은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저승으로 가게 됩니다.”

“….”

그가 한참을 망설였다. 어렵게 떼어낸 입에서는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아들…. 제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본 지도 꽤 되었는데….”

“….”

“수복청에서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독립했다 싶어 부러 찾으러 가진 않았는데, 이제라도… 멀리서라도, 보고 갈 수는 없습니까? 안본지 너무 오래되어, 미안한데…….”

당연히 안된다. 저승에 이승의 인간이 오래 있으면 혼을 빼앗기는 것처럼, 죽어서 저승의 소속이 된 인간을 오래 이승에 두면 혼이 흩어지게 된다. 원우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도 안될 것을 알고 한 말인지, 별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원우는 제발 아니길 빌면서 꽃무릇을 쥐어주고 물어보았다.

“그 아들이 혹시, 권순영인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지아비도 성을 가질 자격조차 없는 비복이었는데, 일부러 권權을 붙여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했다. 아들만큼은 마음껏 인간답게 살았으면 해서, 그리 하였다고 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원우가 가만히 서서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권순영은 양반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요. 저는 같이 공부하는 전원우라고 합니다. …또, 지금처럼 돌아가신 분들을 모십니다.”

어차피 저승에 첫발을 딛고 난 후에 잊게 될 기억이니 말해줘도 별 일 없을 것 같았다. 평소 원우의 행실에 비하면 꽤 충동적인 면이 있었지만 무명조차도 잠자코 들어주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그가 눈물을 훔치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믿어주시니 저야말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일반인이 듣기에는 뜬금없는 소리일 테니 말도안되는 소리 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통달한 것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원우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전해줄 말이라도 정리해올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저기, 저 비녀… 순영이가 사준 것인데, 내 신분이 천하여 써보질 못했습니다.”

“...”

이미 영혼이 되어버려서 비녀를 쥘 수 없었다. 원우가 대신 그것을 집어들었다.

“나중에라도,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리할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염설과 그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어차피 이들은 이승의 인간이 아니라서 웬만해서는 들키지 않을 테니 괜찮았다. 평소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끌고 갈 무명도 대강 상황을 알아서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눈물을 참았다. 그가 누워있던 이불을 반듯하게 접어두고, 그 위에 명부와 비녀를 올려주었다. 미안함이 컸다. 그깟 저승의 법도가 무엇이라고, 죽음을 가족에게조차 발설하지 못한다는 것이 죄스러웠다.

순영은 꽃 가문의 기운을 유독 잘 느끼는 편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어떤 향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부 위로 작게 문양을 새겨주었다. 눈물이 톡 떨어지자 문양이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 짧은 찰나에 원우의 머릿속에는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순영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복 나가겠다.”

“아니, 들어와야하는데?!”

배웅하러 나온 지훈이 말했다. 답지않게 긴장이 되었다. 감투를 쓰고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 앞에서 감투를 벗으면 도포를 말끔히 차려입은 아들을 보여줄 수 있겠다면서. 온통 설렘으로 가득찼다. 헤실헤실 웃으며 감투를 머리에 얹었다.

“나 다녀올게.”

“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얼마나 있다가 올 거야?”

“글쎄…? 그래도 오늘 안에는 올게.”

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순영이 곧바로 감투를 썼다. 작게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지훈은 별 일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침소로 돌아갔다.


싸늘했다. 문을 열자마자 꽃무릇이 느껴졌다. 전원우의 향...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명부를 발견했다. 글을 배우고 나서 속이 이렇게 막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정도 이해는 됐다. 원우는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알리면 안될 것 같아서 꽁꽁 숨겨두다가 얼마 전에 밝혔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죽어서 어떤 일을 치르고 왔는지조차 저승의 법도를 어겨서는 안된다며 끙끙 속으로만 앓았던 놈이었기에, 이해는 됐다고.

...그래도, 이것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거 아니야? 서로밖에 없는데 이러면 안되는거잖아. 날짜도 오늘인데, 아까 헤어지기 직전까지 보던 명부에 우리 엄마 이름이 있는데 일언반구 하지 않고 덜렁 명부와 비녀만 남겨두고 데려가면 어떡하냐고.

비녀를 쥐고 한참을 흐느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처럼 매끈했다. 비녀에 눈물이 닿자마자, 창밖에서 투둑투둑 소리가 났다. 눈이나 오지, 오늘 같은 날 재수없게 비가 내렸다. 우장雨裝도 없는데.

“임진년... 일월 이십오일... 인시. ......병사.”

인생 참 기구하다 싶었다. 일년 내내 봄날 같더니, 처절하게 낙엽이 되는구나 싶었다. 넋이 나간 놈처럼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귀에 비녀를 꽂고 한참동안 명부를 봤다. 처절했다. 한 번이라도 나와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잠깐이라도 마주치면 미련이 생겨 서당에서 빠져나오게 될까 싶어 버텼는데, 이내 숨어 버릴 허상이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여기서 평생을 잠들어버리고 싶다가도, 저를 기다릴 서당의 여섯 명을 봐야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러나 몸이 물을 먹은 종이마냥 무거워서 그저 빗소리를 배경삼아 울 뿐이었다.


해오름달 스무엿새

“지훈아. 지훈아!”

원우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홀로 침소에서 잠든 저를 깨울 이는 없었다. 미적미적 일어나서 보니, 지수가 들어와있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새하얀 도포를 보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순영이가 없어. 어디 갔는지 알아? 주작에도 없어.”

반출을 내어 나간 순영이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지수는 조금 전까지 누각에 있다가 침소로 돌아갔다고 했다. 당연히 자고 있어야 할 어린 호랑이가 없어서, 놀란 마음에 곧장 준휘가 있는 침소로 가봤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지훈이 지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서당에서 낙화열병을 겪은 생원들은 침소에 생원이 없으면 극도로 불안해했다. 지훈도 대충 알고는 있었기에, 일부러 지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어머니를 뵈러 간다고 했습니다. 사월촌에 산다고 들었는데, 가보시겠습니까?”

“집? …응. 가보자. 순영이, 순영이 집 어딘지 알아.”

황룡 도포를 입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급히 도롱이와 갈모를 쓰고 서당 문으로 향했다. 혹시나 무예 터에서 잠들었을까 싶어 지수가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지훈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으려던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나무 뒤로 숨겼다. 비에 홀딱 젖은 순영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원우가 서있었다.

“……순영아. 호시야. 죽음은 널 기다려주지 않아.”

“...내가 너한테 듣고픈 말이, 겨우 그것 같아?”

“….”

“언질 정도는 해줄 수 있는거잖아.”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차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순영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

일촉즉발이었다. 순영이 원우의 멱살을 잡아 뒤로 밀쳤다. 그 위로 올라타는 순영을 보고도 지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널 미워하는게 아니라, 그냥 내 처지가 너무 기구한 것 같아서 그래. 초라하다고 느껴져서 그래…….”

원우가 손을 뻗어 순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계속 구겨지는 얼굴을 애써 펴주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네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 집에 가서 명부를 읽어 혼을 빼냈고, 저승으로 잘 인도해드렸어. 살아온 나날들이 평탄하고 죄가 없었을 테니 아마 저승의 마을로 가서 영생을 사시겠지.”

“…….”

“이거, 말 하면 안되는데 한참을 고민했어. 난 이제 너희밖에 없는데, 이 가탈 많은 내 인생에 너 같은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데…. 이 일로 너를 잃으면 어쩌나,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계속 고민했어.”

“……나는, 네가 미워죽겠어. 엄마가 간 걸 알면서. 끝내 나가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안 한 네가 너무 미웠다고.”

“…응.”

“죽음에 대해서는 네가 나에게 일언반구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 미워서….”

“…"

“죽여버리고싶어….”

순영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원우는 가만히 그를 받아주다, 겨우 몸을 일으켜 떼어냈다. 주저앉아 있는 순영에게 제 우장을 벗어서 입혀줬다. 일어나라며 팔을 잡아당겼으나 강하게 내쳐졌다.

“...뭐하는거야.”

가만히 보던 지훈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지수의 목소리였다. 저 둘에게 홀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상황을 하나도 모르는 지수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순영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힘없이 딸려 올라왔다. 백호는 현무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하나뿐인 제 백호를 데리고갔다.

나빌레라

權順榮(二), 영원불멸의 백호


열매달 스무닷새

“...그런 일이었다고.”

“좋은 일이 아니라서 말 안했고…….”

“응.”

“그날 새벽에 사형이 너무 화가 난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후 비녀를 원우에게 돌려받으면서 화해했다고 했다. 지금이야 이리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보름정도를 서로 알지 못하게 숨어서 끙끙 앓았다. 지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하나뿐인 제 백호가, 평생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백호가. 비에 쫄딱 젖어 울고 있으니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그날 순영은 침소에 데리고 가서 말끔히 씻겨주고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도 넋이 나간 것처럼 가만히 받기만 했다.

그 후에 진정이 된 것 같다 싶어 물어보았을 때도 말을 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순영이 제게 싫다는 표현을 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지수도 순순히 알겠다고 하고 물러났던 것이다. 당시에 낚아채듯 데리고 들어와서는 한마디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터라, 왜 화가 났을거라 생각했는지는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순영도 그 당시에는 지수를 완전히 믿지 않는 상태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근 2년 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영묘산 속이었다. 지난번에 지수를 따라와 본 적이 있어서 곧잘 따라왔다. 영묘산은 올때마다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다들 잠에 들었는지 꽤 고요했다. 간혹 불이 켜져 있어도 아무런 대화소리가 나질 않았다.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 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다 순영과 눈이 마주쳤다. 웬만한 길고양이들은 순영과 지수를 반겼다. 지수는 백호가 고양이과 동물이라 그렇다는 농담을 쳐주기도 했다. 가장 구석으로 들어가니 지수의 집이 보였다. 저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도 안 계시는 것 같아요. 되게... 서늘한데…?”

“저번에 왔을 때도 아무도 없었잖아.”

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겼다. 나무를 향해 가는 지수와 달리, 순영은 옆에 있는 집으로 갔다. 지수가 나무 위에 손을 얹었다. 사형. 순영의 말에, 지수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동백 향이 옅어요.”

순영이 맡는다고 생각하는 꽃의 향은, 가문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수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순영은 예민하다 느낄 정도로 잘 알아차렸다. 지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나…?”

“…….”

동백이 사라지고 문이 닫혔다. 도통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하늘에 가려면, 여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뿐인데.”

“...안 열리네요.”

꽉 닫힌 나무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이 문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어머니가 올라가셔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가, 바로 사라졌다. 둘이 올라올 수 있도록 열어 둔 나무였다. 적어도 남은 하나를 위해 열려야 했다.

“...일단 그럼, 여기서 자고 내일 새벽에 준휘한테 가자.”

“네. 좋아요.”

여기서 더 고민해보았자 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온통 심란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문을 열었다. 순영은 지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혹여나 꽃이 진 것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지수가 문을 열 때도, 방 안에 들어왔을 때도 동백의 향이 느껴지긴 했다. 거처를 옮긴 것 같지도 않았다. 지수는 별 일 없을거라는 듯 거듭 말하고 금세 누울 준비를 했다. 순영은 그런 지수의 속내를 어느정도 알기에 별 말 없이 그를 따라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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