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도시

불면도시 (1)


“그럼 퇴근해 보겠습니다.”

가볍게 닫히는 문소리 뒤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작게 한숨을 쉰다. 책상은 제 주인의 성격을 닮아 지나치게 텅 비어 ‘편승주’라는 명패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흔한 필기구나 모니터도 없이 명패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상을 손끝으로 두드려보다 몸을 살짝 기대 걸터앉았다. 손목을 무겁게 조이는 시계는 벌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은 고사하고 물이라도 마시고는 있는지 걱정되던 순간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내근직 비서에게 상사 책상에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을 딱히 보이고 싶진 않아 재빨리 몸을 일으키니 뭔갈 두고 간 까만 머리를 틀어 올린 비서가 보일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새하얀 머리칼이 빼꼼 튀어나왔다.

“먼저 가라니까…. 안 갔어요?”

예상 밖의 타이밍에 원하던 인물이 모습을 보이자,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문 뒤에 숨어있던 형체는 빠른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동안 고개만 내밀었던 몸을 사무실 안으로 밀어 넣더니 품에 몸을 던져 안겨 왔다. 사무실 안에서 흡연하는 인간이 대체 누군지 몸에 어울리지도 않은 담배 냄새가 짙게 묻어있었다. 냄새에 인상을 잠시 구기니 금세 눈치를 보고 떨어지려 해 팔에 힘을 더 주어 끌어안았다.

“어디가.”

“냄새나니까…. 나 택시 타고 가도 된다고 연락 보냈는데. 왜 안 갔어요?”

“내가 승주 널 두고 어딜 가.”

상사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짧은 말투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작은 머리통이 품에 고개를 푹 묻고 한숨을 쉬었다.

“이현 씨는 요즘 맨날 말도 잘 안 듣고 고집만 세고….”

“승주 네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고집이 아니라 당연한 거고.”

제 얼굴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괜히 볼을 한 번 꼬집었다. 누르는 대로 푹 들어가는 따끈하고 말랑한 이 사람이 용산 한 가운데에 고층 빌딩을 박아두고 늙은 여우들이랑 기 싸움을 해내는 유망한 젊은 기업인의 외아들이란 사실은… 늘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편승주는 여전히 말랑했다. 손에 눌리는 감촉이 좋아 몇 번 더 눌러보니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둘만 있는데 이현 씨라고 할 거야?”

“음… 그럼 진이현?”

제 이름 석 자를 부르고 나서 편승주는 뭐가 재밌는지 혼자 푸스스 웃고 슬그머니 품에서 벗어나 사무실 의자에 내려두었던 서류 가방을 챙겼다. 금방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시선을 제 얼굴로 고정한 채 쳐다본다. 네가 먼저 발을 움직이면 맞춰 출발할 테니 가라는 무언의 지시. 살짝만 기울여도 맞닿을 것 같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치고는 모호한 거리감은 서로가 코흘리개였던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니 이젠 익숙했다. 바쁜 부모 대신 외로웠던 가정 환경 속에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저밖에 없어서 그런지 편승주는 늘 피고용인인 자신에게 응석을 부렸다. 사람 착각하기 좋게.

***

곧 있으면 자정이 될 시간임에도 도시의 불빛은 꺼질 생각이 없었고, 도로 또한 잠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흔히 상석이라고 불리는 뒷자리를 내버려두고 굳이 조수석에 앉은 제 상사는 진이현이 면허를 딴 이후로 늘 그 자리를 고집했고 여전히 그곳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배는 안 고파?”

“아까는 안 고팠는데, 갑자기 배고파졌어요.”

“먹고 싶은 거는?”

“음… 아. 나 그거 해주면 안 돼요? 설탕 토스트?”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니 옆에서 작게 키득 웃는 소리를 낸다.

“왜 오늘은 뭐라고 안 해요? 늦은 밤에 단 거 먹는 거 싫어하면서.”

“그건 승주 네가 자꾸 매일 디저트 먹고 자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니까 그러지. 오늘은 늦게까지 고생했잖아.”

“그럼 맨날 고생하면 매일 밤 단 거 해줄 거예요?”

부쩍 들어 자주 묻는 이상한 질문들. 끝없이 저를 시험이라도 들게 하는 것처럼, 편승주는 늘 조용하고 소심하게 보낸 지난 시간을 홀랑 까먹은 것처럼 답지 않게 질문하는 일도 무언갈 요구하는 일도 많아졌다. 사람이 나이를 계란 한 판 채우면 성격이라도 바뀌는지 딱 올해 생일이 지난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안 되지. 승주가 그렇게 고생하면 내 잘못인데. 그럴 일 없어야지.”

“그게 왜 현이 잘못이에요?”

“내 일이니까.”

흔히 말하는 ‘경호’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용주의 ‘안전’에는 건강도 포함이 되어있으니, 무리한 과로나 건강 적신호는 제 책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와서 딱히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제가 아프면요?”

“컨디션 관리 못 해준 내 잘못.”

“그럼 제가 일을 망치면요?”

“내근직 비서를 똑똑한 사람으로 갈아치우지 못한 내 잘못.”

“그럼… 제가 울면요?”

“뭐?”

핸들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평소에 작게 웃는 거 말고는 보이는 표정 변화도 적은 편승주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소리가 나온다. 운전 중임에도 신경이 온통 조수석에 쏠려 곁눈질로 살펴보니 폭탄 같은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오히려 평온했다.

“그냥. 다 현이 잘못이라고 하는 거 같아서. 우는 건 현이 잘못 아니잖아요. 그냥… 울게 된 원인이 문제인 거지.”

“누가 울렸어?”

“아뇨.”

“근데 왜 그런 말을 해?”

“그냥. 다 현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편승주는 말을 그냥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미도 없이 이런 말을 걱정 삼아 건넬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장 작은 머리통을 안아주고 어르고 달래 속마음을 실토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달리고 있는 도로 위에서는 같이 죽자는 소리밖에 더 되지 않았으므로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서둘러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한강을 지나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금방 도달하는 그 집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픽 쓰러지던 것을 일으켜 세워 겨우 욕실에 밀어 넣고 아까의 ‘설탕 토스트’를 만들었다. 편승주는 씻고 나오니 노곤한지 눈에 힘이 잔뜩 풀려서는 식탁에 대충 걸터앉아 프렌치토스트라는 이름을 알려줬는데도 여전히 설탕 토스트라고 부르던 것을 입안 가득 집어넣었다.

“그래서 아까 그건 무슨 얘기야?”

먹는 데 집중을 하는 건지, 아니면 대답하기 싫어 회피하는 건지 먹기 좋게 잘라둔 토스트를 대답 없이 입에 넣는다. 이미 몇 조각을 입에 넣어둔 상태에서 더 들어갈 공간도 없어 보이는 작은 입에 토스트가 쏙 집어넣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참을 오물거리던 입이 멈추고 흰 우유를 반 잔이나 들이켜고 나서야 편승주는 입을 열었다.

“음… 그냥. 가끔은 현이 잘못이 아닌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런 거죠.”

“내가 24시간 내내 승주 네 옆에 붙어있는데 내 잘못이 아닌 일이 어떻게 생겨.”

“글쎄요. 그냥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서는 더 대화하고 싶지 않은지 이번엔 토스트를 세 조각이나 콕콕 찍더니 그대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결국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편승주는 늘 여과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선 지나치게 방어적이어서, 오히려 그걸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굳이 자극해 봐야 더 꽁꽁 숨어버릴 테니 잠시 숨을 죽이고 캐낼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말없이 토스트를 입안 가득 채우고 씹는 머리칼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고개가 제 쪽으로 기운다. 바짝 붙은 얼굴에 놓인 번들거리는 입술이 치아가 음식을 으깨는 속도에 맞추어 조금씩 오물거리며 움직인다. 한참을 입술에 시선을 두고 있으니 어느새 입안에 있는 걸 다 비워낸 편승주가 입을 열었다.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승주는 입도 작구나 싶어서.”

“그게 뭐예요. 저번엔 발 작다고 뭐라구 하더니.”

“뭐라고 한 게 아니라, 구두 찾으러 가면서 보니까 새삼. 그렇게 느꼈다고.”

“그래도 딱히 작아서 불편했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맨날 현이랑 있으니까….”

포크를 쥐고 있던 걸 놓고 제 손 위에 손을 살포시 겹쳐 올려둔다. 한마디 정도의 크기 차이가 나는 작은 손끝을 살짝 움직이며 손장난을 친다.

“나 우유 더 먹을래요.”

말하면서도 계속 간지럽히는 손끝을 살짝 쥐었다 놓고 몸을 일으킨다. 사소한 심부름부터 큰 부탁까지 대꾸도 없이 묵묵하게 해왔던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정말 위화감을 느꼈다. 이토록 의뭉스러운 질문과 대답 회피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제 상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오는 일밖에 없었다.

“다 먹었어?”

“응. 이거만 마시고 양치하고 잘 거예요.”

“그래. 내일은 아침부터 바쁘니까 일찍 자자. 더 늦게 자면 피곤해.”

편승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우유를 마저 비웠다. 금방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잘 준비를 할 줄 알았더니 그대로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 제가 치우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왜?”

“아니에요.”

편승주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굴더니 금세 꼬리를 내빼고 도망갔다. 빤히 보던 눈길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졌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동도 없었다. 건조하고 밋밋해 보이지만 반짝이던 눈이, 늘 제게만은 따뜻한 표정이 그토록 조용하던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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