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도시

불면도시 (2)


며칠 바쁘고 말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는커녕 얼굴이나 겨우 마주하고 자면 다행일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갔다. 편승주는 짧은 이동 시간엔 조수석에 웅크려 쪽잠을 잤다. 그 정도로 피곤하고 정신이 없었다. 편승주보다 체력적으로 꽤 여유가 있는 자신조차도 부쩍 피로함을 느낄 정도니 그 작은 몸으로 얼마나 힘들지 예상이 되어 안쓰러웠다.

일전에 봤던 텅 빈 눈은 제 착각이었는지, 피로감이 원인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캐낼 명분 또한 없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그랬다. 시키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해야 하지만, 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것도 제 의지로 먼저 나서는 것은 되도록 삼가야 했다. 편승주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실질적 고용주인 ‘회장’은 좀 달랐다. 지금도 편승주가 제게 좀 휘둘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탐탁지 않아 하는 인물인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승주의 컨디션을 챙기는 게 더 급했다.

“승주야. 다 왔어.”

“응…. 몇 시에요?”

“미팅 40분 전.”

“…그럼 30분만 더 눈 감을래요. 같이 눈 좀 붙여요.”

10분 전에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분명 빠듯할 텐데도, 편승주는 꼭 저를 배려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고 큰일 날 정도의 중요한 미팅은 아니지만, 일이란 건 시간 약속이 곧 신뢰였으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못해도 20분 전엔 출발하자고 했겠지만, 피로에 상한 얼굴을 보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25분 뒤로 알림을 맞추고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뻑뻑한 눈가 위로 어둠이 찾아오니 괜히 옛 생각이 났다.

***

편승주와 처음 만난 건, 17살의 여름이었다. 무덥고 습했던 장마 기간이 끝나고 태양 만이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에 더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품이 좀 큰 긴팔 셔츠를 입고 혼자 공원 벤치에 웅크려 울고 있던, 지금보다 더 작은 편승주를 만났다. 딱히 낯선 사람을 위로하는 재주는 없지만, 울고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뭐했으니 그저 옆에 앉아 그늘에 더위를 피하는 척이나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앉아 있으니 어느새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새빨개진 얼굴로 뛰어와 그 애 앞에 서서 뭐라 다그쳤다. 대답을 듣지 못하자 곁에 있던 날 쳐다봤다. 수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길래, 더 오해를 사기 전에 뭐라도 해명해달라고 걜 쳐다보니 아무 말 없이 흘리던 눈물을 마저 삼켰다.

오해받기 좋은 침묵 때문에 경찰도 아닌 어른들에게 동행 요청을 받았고, 말이 좋아 요청이지 강요와 협박에 가까운 말에 그대로 끌려간 집은 ‘양반댁’이었다. 그 비싸다는 서울 땅에 마당을 지나 복층으로 된 전원주택을 보니 뭔가 잘못됐단 걸 느꼈다. 막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오해 한 번 잘못 받으면 인생 꼬이기 쉽다는 걸.

“…그래서 그냥 위로해 주려고 옆에 앉아 있던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갑고 깨끗한 얼굴의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곁에 앉아 걱정스레 쳐다보면 여자가 대신 입을 열어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 하자면, 내일이 생일인데 그게 너무 싫어서 집을 나간 거였고 이 집에선 그게 금지옥엽 외동아들의 납치 소동인 줄 알았단다. 말뿐인 변명에 신뢰를 올려준 건 차를 타고 여길 오는 내내 그리고 제 말이 끝날 때까지도 제 옷 끝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은 작은 손 덕분이었다. 남은 빈손 하나로는 하염없이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옆에 꼭 붙어 있으니 이젠 정말 뭐라도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생일이 왜 싫어?”

걔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눈물만 흐르는 얼굴이 더 축축이 젖어가는 걸 보니 암담함까지 느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하나도 모르겠는 작은 애를 달래려고 머리를 열심히 돌렸으나 사회생활 경험이 충분치 못한 17살의 제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냥 흔히 친구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품에 걔를 안고 등을 작게 토닥였다. 그러니 그제야 소리마저 삼키던 눈물을 토해내듯 엉엉 울었다. 바보처럼 우는 어린애를 품에 안고 서러워서 주체하지 못하고 떨리는 몸을 천천히 두드렸다. 길지 않은 시간 내로 잠잠해진 몸을 품에서 떼어내고 쳐다보니 팅팅 불어 터진 만두 같은 얼굴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인 걸 인지하기도 전에 웃음이 먼저 터졌다. 내가 웃자, 걔는 조금 당황한 눈치더니 마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뿔난대. 한마디 붙여주니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도리질했다. 왜 생일이 싫은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싫은 것보다 좋아하는 게 더 많아졌으면 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 모를 걔를 응원하고자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미안한 부탁이지만, 오늘 하루 자고 가줄 수 있을까요?”

오해도 풀렸고, 간단히 다과 대접을 해준다는 것을 거절하고 돌아가려 나섰지만,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은 저를 붙잡는 말에 걸음을 멈췄다. 뜬금없는 부탁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여자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승주가… 누굴 붙잡고 그러는 애가 아닌데, 아까부터 보고 있어서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집 쪽으로 돌려 쳐다보니 2층 창문에 양손을 꼬옥 대고 제 쪽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숨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봤자 머리통 끝자락이 여전히 보였지만.

“음… 고등학생이라서요. 부모님께 말도 없이 외박하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어머, 정말요? 어른스럽길래 그렇게 어린 학생인 줄은 몰랐네. 혹시 싫은 게 아니라면, 전화해 줄 테니 하루 정도만 어떻게 안 될까요? 우리도 승주가 생일이 왜 싫은지는 잘 모르거든요. 둘 다 바빠서 애를 봐줄 시간이 없으니 하룻밤 정도만 봐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거듭 부탁하는 어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다시 집에 발을 들여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 통화를 기다렸다. 부모님이 제 귀가를 요청하셨으면 좋겠단 바람과는 다르게 돌려받은 전화에서는 ‘현아, 거기서 뭐 실수하지 말고 말 잘 듣고 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로 꼬셔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흔쾌히 허락이 떨어지자,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갈아입을 옷을 꺼내준다며 승주의 어머니는 먼저 자리를 일어나셨다. 그래도 제 귀가를 바랄 줄 알았던 부모님의 가벼운 배신에 허탈감을 느끼며 텅 빈 거실에 앉아 집을 조금 둘러보니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내키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오늘 하루 자고 나면 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 몸을 일으켜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걸음이 가까워지니 계단에서는 작게 뛰는 소리가 났다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도망갈 거면서 왜 지켜보고 있는 거지?

"승주야? 나 오늘 자고 갈 건데. 문 안 열어 줄 거야?“

문을 잠가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크에 대답이 없어 문에 대고 그렇게 외치자, 잠깐의 정적 뒤에 문고리가 살짝 열렸다. 잘 쳐줘야 이제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승주’라는 애는 문고리를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문을 조금 더 열어 들어오라는 것처럼 굴었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 꼴로 들어간 방은 볕이 잘 들어오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승주는 손님맞이는 처음인지 방에 덩그러니 서서 우물쭈물해서 먼저 침대에 잠깐 앉아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옆을 두드리니 그제야 쭈뼛쭈뼛 제 방인데도 어색하게 다가오는 꼴이 웃겼다.

“승주는 성이 뭐야? 아, 이름은 아까 아주머니가 말씀해 주셨거든. 나는 이현이야. 진이현.”

이 정도의 대답을 해줄 거라고 예상했으나 승주는 한참 말없이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바닥만 내려다봤다. 사람 달래는 것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어서 여전히 답답했다. 혼자 꼼질 거리는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자 놀랐는지 제 얼굴 쪽으로 고개를 확 쳐들었다.

“승주, 성 뭐냐니까?”

얼굴을 마주하고 한 질문은 피하기 어렵겠지? 싶어 재차 물으니 그제야 작게 ‘편….’ 이라고 답했다. 편 씨.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성씨가 꽤 신기했다. 그런 것치고는 어딘가 익숙한 것 같기도 했고.

“내 이름은 들었어?”

작게 고개를 도리질로 또 말없이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진이현이야.’ 하고 말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못 하는 건 아닌데… 소심을 넘어 방어적인 태도에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오늘 밤이 지나면 끝이란 생각이 들자 사고가 더 이어지진 않았다. 통성명하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이내 방문이 열렸다. 작은 바구니에 갈아입을 옷이며, 간식을 챙겨온 승주 어머니가 보였다.

“허락도 없이 돌아다녀서 죄송해요. 승주한테 이름 알려줬어요.”

“괜찮아요. 먼저 어딨는지 알려줄 걸 그랬네요.”

“편 씨는 처음 봐요. 승주 이름이랑 되게 잘 어울리는 예쁜 성 같아요.”

“승주가 편 씨라고 대답을 해줬어요?”

“네? 네. 편 씨 아니에요?”

대답을 들은 승주 어머니는 말없이 승주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맞아요. 편승주.’ 하고 승주를 빤히 쳐다봤다. 단편적으로 지켜본 가족들 사이를 보니 불행한 가정사가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금지옥엽 외아들이라고 하니 사랑을 안 받은 것도 아닐 텐데. 묘하고 어색한 이 분위기는 ‘가족’의 것이라고 부르기 어려워 가시밭이 따로 없었다. 이런 공간에서 잠을 자야 한다니 오늘은 기필코 잠을 설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렇게 잠에서 깨니 오후 1시 45분. 미팅 15분 전이었다.

먼지가 날리는 포근한 과거의 햇살 잔상이 여전히 눈앞에 남아있었다. 필름 끊기듯 툭 끊겼던 꿈 뒤로 이어질 그날의 밤이 제 인생을 바꿔놓은 것과도 같았고, 제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자는 얼굴은 어린 시절과 크게 달라 있지 않아서인지 제 감정도 여전했다. 승주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어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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