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과 난간

명단과 난간 (3)

기억하지 못할 존재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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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류청우는 여전히 수조 앞에 있었다.

누군가를 향해 웅크린 듯 어딘가 비어있는 자세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류청우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수조를 보자, 인어는 물 속에 잠긴 채 잠들어있었다. 머리로는 인어니까 물 속에서도 숨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불안해서, 류청우는 습관대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살폈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달빛이 꽤 많이 기울어졌고, 시원하던 공기에는 늦가을의 냉기가 섞였다. 자신이 의식을 잃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깨달은 류청우는 혹시 모를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고 문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아직 자신 외의 인기척은 없었다. 인어의 존재라는, 알아선 안 될 것을 알아버린 류청우를 단죄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었다. 류청우가 안심하고 뒤돌자, 인어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이름도, 무엇도 모르는 처음 만난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좋을지 잠깐 고민한 류청우가 건실한 미소를 띄웠다.

 

“안녕하세요. …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인어는 고개를 저었다. 류청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의사소통에 어려운 점이 있으신가요.”

 

이 말에도 인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인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지 조금 잠긴 목소리가 묵직하게 류청우의 발치를 감쌌다.

 

“그건 아니야. 말해야 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 ... 다행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겐 내가 말할 수 있는 거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 …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그래, 고맙다.”

 

류청우는 인어를 향해 빙긋 웃었다. 인어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진 걸 보니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인어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인어는 잠시 기척을 살피다 류청우에게 말을 걸었다. 차분한 미성이 낮게 깔렸다.

 

“누구 오는데.”

“아, 네.”

 

류청우가 인어를 보았다는 것을 들키는 건 절대 좋지 않다. 인어도, 류청우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인어가 류청우에게 눈짓하자, 류청우는 기척을 죽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인어는 달갑지 않은 걸음소리를 들으며 표정을 지웠다. 차가운 눈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했다.

 

“그래서, 이번 진상품으로 아주 진귀한 것을 가져왔다고.”

“예, 아버지.”

 

미닫이문이 소리를 내며 사람이 지나갈 틈을 내었다가, 도로 닫혔다. 이윽고 남자 두 명이 방에 들어왔다. 인어, 류건우는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이, 이건 무엇이냐?”

“하하, 놀라지 마십시오, 아버지. … 인어입니다. 설화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그 인어요. 실제로 존재하더군요.”

“인간의 몸과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그 인어란 말이냐?”

“그럼요. 지금 눈 앞에 있지 않습니까? 전하께 아주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기회에요, 8년 전 사건을 만회할 기회라구요.”

“그건 네놈이 그 짓만 안 했어도 없었을 문제가 아니냐. … 그래도 아주 제대로 된 물건을 찾아왔구나. 그건 잘했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참을 수 없이 가증스러웠던 탓에 저도 모르는 새 꽉 쥔 주먹을 흘긋 본 인어는 슬그머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제 목적이 뭐가 되었든 지금은 이들에게 밉보이지 않는 게 좋았다. 인어가 아무리 이능을 부릴 수 있는 존재라 해도 어쨌든 물 밖으로 나가면 그 힘이 약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래. 곧 마마의 탄신 연회가 있으니 시기를 보아 진상하도록 하자.”

“예, 아버지. 저는 조금 더 보고 가겠습니다. 살펴 가십쇼!”

 

하나는 갔다. 인어는 남은 하나, 류철우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그때와 지금의 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한때나마 같은 가문의 일원으로 엮였던 이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한 탓이었다. 물론 그런 일말의 기대마저도 지금의 류건우에게는 무의미했기에 류건우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류철우는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류건우가 갇힌 수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히야, 다시 봐도 참 대단하단 말이지. 어떻게 진짜 인어를 잡은 거지? 캬아.”

 

잡혀준 거다. 인어는 평범한 어구나 장비에는 결코 걸리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이능이 그런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게 인어들이 이제껏 전설로만 취급되던 이유였다. 다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류철우에게는 인어를 잡은 게 무슨 구국의 공처럼 느껴졌다. 그런 상황을 노렸던 류건우는 묵묵히 류철우의 발언을 기억했다.

 

“전설 그거 하나도 틀린 것 없네. 인어들은 절색이라더니.”

 

이건 좀 기분이 나쁘다. 제깟 게 뭐라고 다른 존재의 외모를 평한단 말인가. 류건우는 이 말도 머리에 새겼다. 나중에 되갚아야 할 것들이었다. 류철우는 한참동안 수조 앞에 선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별빛만 남아 캄캄해진 바깥을 보고서야 꾸물거리며 떠났다. 필요없는 인기척이 전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류건우는 목소리를 내었다.

 

“너 아직 거기 있지.”

“...”

“뭐, 그래라. 물어볼 게 있었는데.”

“무슨 일인데요?”

 

인어에게 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즉시 튀어나오는 류청우를 보며 류건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류청우는 멋쩍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목덜미를 쓸었다.

 

“그,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다면.”

“이름.”

“네?”

“계속 너라고만 부를 순 없잖아. 내가 여길 나가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해.”

“아.”

 

류청우는 이 인어가 딱히 제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류청우의 어린시절, 누군가와 함께 누운 잠자리에서 들었던 인어에 대한 전설은 대답을 망설이게 했다.

 

“그, 제 이름을 알려드려도 괜찮은 건가요.”

 

류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차갑고 수려한 얼굴에 의문이 깃든다. 혹시나 오해라도 했을까 봐 류청우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예전에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인어는 함부로 이름을 알려주지도,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는다고, 인어가 인간에게 이름을 알려달라 하는 건.”

“반려, 혹은 그에 상응하는 영혼의 짝.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맞는 말도 아니지만. 누구한테 들은 건진 모르겠는데 그 정도로 무거운 건 아니라고.”

 

류청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흔쾌히 대답했다.

 

“류청우입니다.”

“그래, 류청우. 별건 아니고, 여기가 어딘지 알고 싶은데.”

 

류청우는 잠시 말을 골랐다.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저 인어가 다시 터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니까. 어차피 잡혀 온 마당에 숨겨봤자 의미가 없기도 했고. 다만 자신에게는 인어를 도울 힘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한양 북촌에 있는 류씨 가문의 가택이에요. 이곳은 심부여서 타인의 출입이 어렵긴 합니다만.”

“최심부에 있는 게 가주의 처소가 아니라 류청우, 너라는 건 좀 이상한데.”

“... 하하.”

 

생판 남의 앞에서 자신이 더 이상 무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 유폐당했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었던 류청우는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인어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대강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너도 대충 비슷한 처지인 모양인데.”

 

물에 잠긴 채 가만히 손끝으로 수조 벽의 무늬를 덧그리던 인어가 툭, 말을 뱉었다.

 

“류건우.”

“네?”

“내 이름. 뭐라 불러야 할지 헷갈렸던 거 아니냐?”

“아.”

 

류청우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고, 내심 이 인어의 이름이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걱정되었던 건 인어에게 중요하다는 이름을 그렇게 쉽게 알려주는 인어가 어디서 뭔가 잘못 말했다 일을 당하지는 않을지, 그런 것이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는 말고. … 넌 안 그러겠지만.”

“어, 그… 감사합니다…?”

“오냐. 그래서 묻는데 지금은 몇 시쯤 됐냐.”

 

안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를 쉬이 드러내는 류건우를 걱정스레 보던 류청우는 이어지는 당부에 슬쩍 마음을 놓고 살며시 창을 열어 달의 위치를 가늠했다. 오늘은 초하루였고, 본래 보였어야 할 가느다란 초승달은 이미 진 지 오래였다. 그 사실을 전하자, 인어, 류건우는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턱에 손을 올렸다.

 

“여분 옷이 있으면 좀 부탁하고 싶은데.”

“네?”

“여분 옷. 없으면 말고.”

“아, 그, 있기는 한데.”

 

류청우가 빠르게 달려가 옷을 가져왔다. 아주 좋은 옷은 아니지만, 류청우의 성격처럼 정갈한 옷이었다. 류건우의 지시대로 옷을 수조 앞에 둔 류청우가 얌전히 눈을 감았다. 부글거리는 물방울 소리가 잠시 들리다가, 찰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곧 옷감이 스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제 됐어.”

 

조심스레 눈을 뜬 류청우가 몸을 흠칫거렸다. 새어드는 별빛에 보이는 것이 분명한 인간의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물속에서 하늘거리던 우아한 지느러미는 어디로 가고, 새카만 머리카락과 유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남성이 두 다리로 서 있었다. 류청우는 멍하니 서서 남자를 보았다. 류건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 너무 빤히 보고 있으니까 좀 그런데.”

 

그제야 류청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어, 그래.”

 

류건우는 아까보다 또렷해진 눈으로 류청우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그냥 꼬꼬마였던 아이가 이리 장성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열두 살 어린아이에게 8년은 정말 긴 세월이니까. 그 순하던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잘못한 사람을 가두는 이 심부까지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부당한 일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가서 쉬어, 누가 오는 것 같으면 알아서 들어갈 거니까.”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에 묻어난 다정에 류청우의 심정이 덜컥였다. 알 수 없는 반응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얼른 가라는 류건우의 재촉에 류청우는 얼떨떨하게 방을 나섰다. 제 처소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면서도, 류청우는 그 인어, 류건우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물 밖에 나와 두 다리로 선 기분은 꽤 묘했다. 익숙하던 공간이 낯설어진 기분도 묘했다. 그래서 류건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의 흔적이 묻은 기둥, 그럼에도 꼼꼼히 관리되었다는 게 여실히 보이는 깨끗한 창호지. 그러나 이 방을 채우는 가구라곤 지금껏 제가 있던 수조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류건우가 기억하기로 가주와 그 직계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무언가를 숨기는 곳,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류씨 가문의 성물도, 치부도 모두 이곳에 머물다 제자리를 찾아갔으니까.

이전까지만 해도 류건우는 이곳, 가문의 최심부를 이런 일로 오게 될 거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류건우는 명백히 방계였기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류건우가 최심부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우연과 우연이 드물게 겹친 결과였다. 그리고, 가문에서 지워진 지 8년이 지나고서야 귀한 물건의 자격으로 들어온 최심부는 정말로 별것 아니었다. 그래, 류청우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류건우는 미간을 짚으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곳에서 류청우를 보았을 때의 복잡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문은 진즉에 저를 버렸고, 가문과 저를 잇던 유일한 끈인 양친은 8년 전 가주와 그 후계자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다른 친척들은 그 모든 것을 방관했다. 그리고 류건우는 가문을 없애고 그 모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찢는 과정을 견뎌냈다. 그래, 인어가 된 류건우가 육지로 돌아온 이유는 그것이었는데.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저를 아득바득 살려낸 어린 인어가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걸 애써 떨쳐내고 돌아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류건우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았다. 생각할 건 많았고, 머리는 아팠으니까. 류건우는 애써 머리를 굴렸다.

 

“일단 나가자.”

 

류철우의 손에 일부러 잡혀 오긴 했지만, 어쨌든 수틀리면 바로 도망칠 곳은 필요했다. 자칫하다간 정말로 어딘가에 갇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수가 있었으니까. 류건우는 필요한 것을 머릿속에 정리한 후,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몸을 숨기기 적합한 곳으로 통하는 이동진을 그려두기 위해서였다.

 

동이 트기 직전의 어두운 새벽, 류건우는 다시 최심부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 말은 아침이 되어 류청우가 수조가 있는 방에 들어섰을 때, 류건우는 다시 수조에 들어가 인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아직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수조 안, 새카만 비늘만이 빛을 머금은 모습을 본 류청우는 조용했다.

 

“일찍 일어났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어서요.”

 

류건우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류청우는 모르겠지만, 류건우에게는 류청우가 보이는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익숙했다. 제 습관을 따라한 것도 있고, 어린 나이에 무술을 배우며 얻은 습관도 십여 년 정도 보다보면 눈에 익기 마련이었으니까. 류건우는 조용히 류청우를 보았다. 모든 계획의 끝에서 류청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류청우를 어르고 달래 방에서 내보낸 류건우는 칠흑같은 눈을 내리깔았다. 다음 일을 수행할 적당한 시점이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류청우는 매일같이 류건우를 찾아왔다. 류청우에게서 그 이유를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류건우는 류청우가 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저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류청우는 어쨌든 최심부에 유폐된 몸이었고, 그 이유로 가족조차 류청우를 찾아오기는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항상 류청우의 눈이 반짝이긴 했지만, 그건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겠나. 류건우는 대강 생각하며 류청우가 재잘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류건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가주 부자가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뭔가를 몰래 하기도 그랬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채 시간만 때우기엔 불안했으니까. 류건우는 그런 핑계를 대며 류청우가 찾아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류청우.”

“네, 형.”

 

류청우는 류건우를 알지 못한다. 류건우가 그렇게 만들었다. 인어의 힘을 담은 노래가 류청우에게 손을 대어 류건우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그럼에도 류청우는 어릴 적에 불렀던 것처럼 어느새 자신을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어둑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 류건우가 류청우를 물끄러미 보았다.

 

“형?”

“너는 왜 나를 형이라고 부르냐? 멀쩡한 이름 놔두고.”

 

제 딴엔 나름 진지한 질문이었지만 그걸 들은 류청우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가, 멋쩍게 웃었다. 이어진 대답은 그보다도 가관이었다.

 

“그냥, 왠지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생판 남을 형이라고 부르는 놈이 어딨냐.”

 

여기요, 하는 것처럼 말갛게 웃는 얼굴에 류건우는 그냥 호칭을 포기하기로 했다. 류청우가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게 놔뒀다는 말이었다.

 

“끼니는 따로 챙기지 않네요.”

“인어는 인간의 정기를 먹고 사니까. 지금은 너희 후계자가 풍기는 걸로도 충분해.”

“아…”

“보는 건 난데 왜 네가 죽상이야.”

 

류건우는 가볍게 팔을 휘저었다. 제 손끝에서 일어난 물거품은 새어드는 노을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래봤자 물거품은 물거품이라 곧 사라졌지만.

 

“너는 왜 여기 처박혀 있냐. 그렇게 혈기왕성한 놈이.”

“그건, … 어깨를 다쳤거든요. 일상생활은 괜찮지만, 힘이 들어가면 어깨가 아파요.”

“그, … 미안하다.”

“이젠 괜찮아요.”

 

그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가주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중간 과정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류건우는 조용히 류청우에게 사과했고, 류청우는 작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어릴 때 인어에 대해 이야기해준 사람이 있다고 했지.”

“네.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또 무슨 얘기를 들었었냐.”

“음, 인어에게 이름은 중요한 거라던가.”

“전에 얘기했던 거였지. 그래.”

“인어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던가.”

“그것도 맞지.”

“인어의 눈물은 보석이 된다던가.”

“또?”

“인어와 입을 맞추면 잊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류건우는 제가 묻는 것들에 성실히 대답하는 류청우를 보았다. 류건우가 류청우에게 물어본 이야기는 류건우와 류청우가 모두 어리던 시절, 잠이 오지 않는다며 베개를 껴안고 와서는 멀쩡히 자고 있던 제 품에 안겨드는 동생을 재우기 위해 해 주던 이야기였다. 류청우의 기억이 제대로 지워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었지만, 막상 확인하고 나니 입이 썼다. 그래도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원망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류건우는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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