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과 난간

명단과 난간 (4)

눈물의 주인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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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후로 계속 인어에 대한 창작 설정이 등장합니다.

인어의 눈물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반짝였다고 말했다. 물론 그건 아주 고릿적부터 전해지는 전설이니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도 있다며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다만 그 전설은 진실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류건우 역시 인어가 되고서야 알았다. 인어의 눈물은 보석이 된다.

류건우의 눈물은 지느러미의 색과 같은 유색 진주였고, 그를 살린 어린 인어의 눈물 역시 그의 지느러미와 같은 색인 금빛의 투명한 황옥이었다. 눈물에서 비롯된 보석은 각자의 심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었기에 인어들은 제 눈물을 동족에게조차 숨기기 급급했고, 자연히 인어의 눈물에 관한 전설은 말 그대로 그것 하나가 전부였다. 보석에 관련된 전설임에도 사람들이 추측에 추측으로만 전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곧 그런 인간들이 눈을 번뜩일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겠지. 류건우는 수조 바닥에 떨어져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류청우가 알지 못하게 만드느라 고생했던 것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통금이 걸린 지 오래인 어둑한 겨울밤, 아주 은밀하게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들의 기척은 이제 익숙했다. 류건우는 바닥을 향해 괜히 꼬리를 펄럭였다. 달빛이 물살에 밀려 부서지며 보석을 흩뿌린 듯 반짝였다.

 

“곧 그날이니 확인은 한번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죠, 아버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던 부자의 목소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끊겼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물 속에서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는 것들이 그들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것이 무엇이냐?”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 … 어? 어?”

 

황급히 수조로 다가온 두 남자가 수조의 밑바닥을 확인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새카만 구슬들이 어두운 물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광경은 더없이 진기한 광경이었다.

 

“보, 보배 아닙니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저게 다 어디서 난 거지?”

“정신 차려보거라. 그래, 내 아주 예전에 아버님께 인어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그땐 그저 전설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진실로 그랬던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인어의 눈물은 보석과도 같아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배가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 보아라. 물에서 꺼내봐야 정확하겠지만 꼭 진주와도 같은 모양새가 아니더냐.”

“마침 슬슬 물을 갈 때가 되었으니 꺼내서 확인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게 진짜 진주면 이게 무슨 떡이야!”

 

탐욕스레 웃는 류철우와 말리지 않는 가주. 예측했던 그대로의 상황에 류건우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직 류건우가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는 이 인어를 진상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다시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 흑진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허, 그래. 이것만으로도 이미 최상품이지. 어른들께도 한 번 보이자꾸나.”

“예, 아버지!”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류건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부의 근원을 진상하는 것보다는 창출된 부를 진상하는 것이 좀 더 수지맞는 일이기는 했다. 그걸 잘 알았기 때문에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에 구역질이 솟았다. 그래도 류건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어'는 저들이 있는 앞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는 없어서, 웃지는 않는다 해도 평정은 유지해야 했다. 인어, 류건우는 왠지 류청우가 보고 싶었다. 마음이 편해지는 그 부드러운 웃음이 그리웠다.

한참을 흥분해서 떠들던 부자는 재빨리 장치를 만져 물을 갈고는 개중 최고급인 흑진주 여러 개를 주워들고 떠났다. 그 모습은 보지도 않던 류건우는 그들이 멀어지자 남은 진주들을 조심히 어루만지다 적당히 숨겼다. 저들이 이제껏 보인 언행을 생각했을 때 방금 가져간 흑진주 중 몇 알 정도는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었다.

 

“저 눈물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생각도 못 하겠지.”

 

그 진주는 류건우의 눈물이었고, 류건우가 원하는 한 자신의 눈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눈물을 만드는 것은 감정이고, 감정을 파생하는 것은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을 움직이는 인어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가주와 후계자가 떠나고 꽤 시간이 흘렀을 때, 달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습관적으로 기척을 죽이려다 퍼뜩 놀라 일부러 사박거리는 발걸음 소리,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툭툭 내려치는 소리.

 

“류청우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복잡한 머릿속은 잠시 덮어두면 그만이다. 류건우는 차분한 얼굴로 류청우를 맞았다. 류청우는 여느때와 같이 부드러운 웃음을 띤 채 류건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형.”

“몇 번이고 물어보긴 했는데 대체 왜 내가 네 형이냐.”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뭐라는 거냐.”

 

인어의 지느러미가 가볍게 수면을 튀기자 물방울이 수조를 넘어 바닥으로 튀었다. 제멋대로 튀는 물을 맞으면서도 류청우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었다. 그 모습에 류건우가 피식 웃자, 류청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웃으셨네요.”

“뭐?”

 

히히거리며 장난스레 웃는 류청우를 앞에 두고 류건우는 제 얼굴을 천천히 더듬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올라간 입꼬리가 만져졌다.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이 이상 류청우와 가까워지면 모든 전제가 망가질 것이다. 류건우가 입을 열었다. 

 

“나가.”

밤과 새벽을 가르는 어스름, 수면을 통과한 그 빛이 류건우의 눈을 가려, 류청우는 류건우를 읽을 수 없었다. 

“네?”

“오늘은 이만 가라고.”

 

갑작스런 축객령에 류청우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제껏 류건우는 류청우가 다가오면 틱틱대긴 했어도 항상 반겨준데다 간다고 하면 말없이 서운한 티를 내곤 했는데, 갑자기 오자마자 내쫓기는 입장이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류건우는 표정을 지웠다.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류건우가 기억하는 류청우였다면 아마 여기서 울먹였을 거다. 인간 류건우가 류청우를 마지막으로 본 건 류청우가 고작 열두 살이었을 때였고, 열두 살은 아직 지학도 지나지 못한 어린아이니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류건우가 알지 못한 8년 동안 제 삶의 목표를 잃었다가 극복한 류청우는 더없이 명단한 사람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읽어버리고야 마는. 그래서 류청우가 이 이상 류건우를 읽어내는 것은 허용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류건우가 그어둔 선을 넘어버릴 것 같아서.

 

“오늘은 영 피곤한데.”

 

결단을 내린 목소리에선 자연히 온기가 걷혔다. 류건우의 차가운 눈이 류청우를 향했다. 섬찟한 자극이 류청우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아니, 아니다. 류청우는 류건우가 드러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차가움은 무언가 잔뜩 날뛰는 걸 억누르는 것에 가까웠다. 그건 분명, 다정, 애정, 안타까움, 분노, 원망, 두려움,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그런데 무엇에 대한? 수많은 가설이 머릿속에 세워졌다 폐기되길 반복했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은 많은 정보를 요구했고, 그래서 류청우가 저도 모르게 수조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멈추라고.]

 

무형의 힘이 류청우를 옭아맸다. 밧줄이라기보단 부드러운 모포로 살며시 감싸는 느낌. 저를 해치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온기에 파묻혀 류청우는 얌전히 고개를 들었다. 류건우의 검푸르던 눈 한쪽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익숙한 색채, 익숙한 온기, 그리고 그걸 다루는 아름다운 인어, 류건우. 류청우는 저도 모르게 류건우의 푸른 눈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나가.]

 

저를 부드럽게 감싼 힘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에 몸을 맡긴 채 류청우는 또렷한 눈으로 류건우를 보았다. 빛에 가려진 저 얼굴에 드리운 것은 명백한 괴로움이었다. 물 속에서 흐르는 눈물, 턱선을 타고 흐르다 형체를 바꾸며 또르르 가라앉는 검푸른 진주가 여실했다. 단지 그뿐인데도 그 지극한 슬픔이 류청우의 뇌리에 새겨진 이유는 무엇이었나.

 

인어의 눈물. 인어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보석.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아주 진귀한 것이라며 칭송했다. 인어의 존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어의 전설에 열을 올리곤 했다.

다만 사람들이 알지 못한 것은 인어의 눈물은 인어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류건우는 인어였고, 그러니 그가 흘린 눈물 역시 그러했다. 류건우는 제 눈물에서 탄생한 보석을 지닌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홀릴 수 있었다. 진심이 담긴 보석일수록 이능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류건우가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 류청우가 흘리게 만든 그 보석에는 이제껏 그가 만든 보석 중 가장 강한 힘이 깃들어 있었지만, 류건우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본래 가장 귀한 것은 아끼는 법이고, 그건 모든 것을 잃었던 류건우도, 그 무엇도 잃은 적 없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류건우는 마지막 보석을 손에 쥐고 싶어질 때마다 가주와 그 후계자의 처소 깊은 곳에 보관된 흑진주를 확인했다. 귀중한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이 변해버릴까 무서웠던 탓이었고, 더불어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흑진주를 타인에게 보이는 순간, 그들의 귀한 것을 드러내며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그 순간이 바로 이 가문의 멸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었다.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없냐.”

 

얼마 지나지 않아 흑진주가 움직인 것을 확인한 류건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정말 단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진 계산이 그를 불쾌하게 만든 탓이었다. 일그러진 미간을 손으로 짚은 류건우는 자신이 류청우에게 축객령을 내린 그날부터 더 이상 반가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문 밖을 물끄러미 보다 눈을 떼었다. 그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상관 없었다. 어쨌든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으니 일해야 할 시간이었다.

 

인어. 삶의 끝에서 구원받은 이들의 총칭. 설령 그것이 원하는 방식의 구원이 아니었다고 해도, 새로운 삶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건 구원이었다. 새로이 태어난 인어의 육체는 강건했고, 손에 쥔 새로운 힘, 이능은 강력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죽음까지 내몰렸던 정신이 한순간에 멀쩡히 고쳐지는 건 아니어서 인어들 중에서도 가끔 육지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나오고는 했다. 류건우는 그 중 하나였다.

항상 헤실헤실 웃으며 저를 따르던 인어가 있었다. 류건우는 복수를 해봤자 형에게 남는 건 없다며 필사적으로 제 앞을 막던 노랗고 순둥하고 어린 그 인어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소했다. 류건우가 돌아온 이유는 복수였다. 제 가족을 처참히 짓밟고 외면한 이들을 향한 복수. 그들이 제게서 뺏었던 것과는 달리 류건우에게는 저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으니 이 얼마나 자비로운 복수냐고, 류건우는 손 안에서 빛나는 보석을 보며 생각했다. 가문의 모든 일원을 움직여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게 할 수만 있다면 류건우는 제가 가진 그 무엇을 대가로 내놓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니 류건우가 원하는 복수의 필요조건은 무감정이었다. 이미 잃은 것에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고, 살면서 닿게 될 그 무엇에도 온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 아마 그 어린 인어가 두려워한 건 바로 그것이겠지만, 그래서 그 어린 인어에게는 유감이었지만 류건우는 외면했다. 그들을 이해하는 순간, 복수의 대상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복수는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 첫 단계로 진주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가주와 그 후계자를 세뇌한 날, 류건우는 악몽을 꾸었다. 악몽이야 가문에서 버려진 날부터 8년 내내 그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그 날의 꿈은 조금 달랐다. 양친에서 류청우로, 막을 수 없이 눈앞에서 튀는 짙은 액체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낯선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뜨자, 짙은 어둠이 깔린 수조 앞에 웅크린 채 누워있는 인영이 보였다. 류건우는 달빛에 힘입어 수조 밖으로 나갔다. 그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차갑게 식어버려 눈물인지, 수조의 물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얼굴을 적신 채, 류건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영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올렸다. 일그러진 제 얼굴을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달빛 사이로 투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윽.”

 

상대는 멱살이 잡히자 잠든 와중에도 불편했는지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신음을 냈다. 류건우는 새어드는 달빛을 배경으로 빠르게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류청우…?”

 

곤히 잠든 류청우의 손이 느릿하게 류건우의 손목을 쥐었다. 숨이 영 불편한지 저를 붙잡은 힘을 떼어내려는 미약한 손길에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어낸 류건우는 자유로운 반대편 손으로 류청우의 머리를 받쳐주고는 바르게 뉘였다. 어깨가 그 모양이라 훈련을 접은 지 제법 오래 되었다고는 해도 무인의 감이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낌새를 눈치채고 눈을 뜰 법도 한데,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하기라도 한 건지 류청우는 쉽사리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머리 위를 비추던 달이 기울 때까지 평온히 잠든 류청우를 지켜보던 류건우가 머리를 받치던 손을 떼어내자, 류청우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류건우는 결국 인정했다. 더 이상 류청우에게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그 모든 것에서 류청우만큼은 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진 제 마음을.

 

“내가 네 적이면 어떡하려고.”

 

류건우는 잠에 취한 동생에게 답이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질문인 듯, 독백인 듯 나긋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류청우는 여전히 평온하게 류건우를 베게삼아 자고 있었다.

 

“뭘 믿고 낯선 사람에게 곁을 내주는 거냐.”

 

류건우는 달빛을 받아 푸른색을 내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고작해야 네 살 차이, 별 일 없이 자랐다면 적당히 데면데면하게 지냈을 사촌 동생. 그러나 지금은 제 손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탓에 이젠 아무런 관계도 아닌 아이. 지금 류건우가 류청우에게 품은 애틋함은 그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향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류건우는 류청우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아직 달빛이 사라지지 않은 새벽과 아침 사이의 이른 시간. 류청우는 조금 낯선 바닥에서 눈을 떴다. 어젯밤 분명 그는 자신의 침소에서 잠들었는데 언제 이곳으로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졸음에 겨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 류청우는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옆에는 류건우가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제 손이 류건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류청우가 조심스레 손을 떼어내자, 류건우가 스르르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릿하던 눈이 류청우를 인식하자 점점 선명해진다.

 

“일어났냐.”

“어, 네. …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냐.”

 

류건우는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살폈다. 습관적으로 확인한 주변에는 그들 외에 아무것도 없어서, 류건우는 수조로 들어가지 않은 채 류청우를 보았다.

 

“잘 잤냐. 곤하게도 자던데.”

“네.”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류청우는 낯선 침묵을 이어가다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지 귓바퀴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젯밤엔 죄송했습니다. … 제가 무거워서 불편하셨을 텐데요.”

“됐다. 익숙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오는 부정에 류청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류건우가 화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언짢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꼭 예전에도 다른 누군가가 류건우의 손을 잡고 잔 적이 있다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하지만 굳이 물어볼 이유는 없다. 류청우는 작게 고개를 든 언짢은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때 머리 위로 미지근한 온기가 얹혔다. 류건우의 손이었다.

 

“요 며칠 잠을 못 잔 모양인데. 들어가서 자라. 여긴 제대로 난방이 들어오지도 않아서 넌 추울 걸. 딱히 물어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류청우는 대답없이 하하 웃었다. 간밤에 푹 잤던 것도 있지만, 실은 당신이 나를 내보낸 날부터 칠 주야가 넘는 시간을 도통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면 류건우가 무슨 얼굴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류청우는 짓궂은 호기심을 잡아내렸다.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제 호기심이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타인을 곤란하게 만들 발언은 하지 않는 게 좋으니까.

 

“뭐야, 멀쩡한가.”

 

류건우는 웃기만 하는 류청우의 머리를 한 번 거칠게 쓰다듬고는 일어섰다. 어느새 달이 지고 있었다.

 

“나 들어간다. 너도 들어가라.”

 

류건우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수조로 돌아갔다. 기둥을 가볍게 타고 올라가 수조 위에 걸터앉은 채로 물에 발을 담그자 길게 늘어졌던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아주 짧아지고 길게 뻗었던 각진 다리는 처음 보았던 물고기의 꼬리와 지느러미의 형태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서조차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인력이, 기억에는 없지만 이전에 많이 보았던 것처럼 강한 기시감이 느껴져서 류청우는 무언가, 아주 충동적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럴 리 없다고 잡아채려는 이성을 간단히 뿌리친 류청우의 얼굴은 어딘가 후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창 밖에서는 천천히 겨울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류청우가 물었다.

 

“혹시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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