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크루

[시간크루] 기억을 뜨다 (백업)

하지만 나는 너를

백업 by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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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날짜: 2022.01.22

*미래의 설정을 일부 공식 스크립트를 참고해 엄청나게 날조했습니다. 주의…


이야기는 어느 날 크루아상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고개를 들며 시작한다. 실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닌 끝이라고 불러 마땅한 순간이었다. 어지러운 책상, 방 구석을 뒹구는 서류 더미 틈에 주저앉은 크루아상은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방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에 시선을 아래로 다시 내려보았다. 급하게 휘갈겨 제대로 읽기도 힘든 글씨로 절반 정도의 분량이 메워진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제 손에 펜이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걸 적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국장실?"

방을 한 번 바라본 것만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바로 깨달았다. 평범한 수리공인 자신이 국장실에 와볼 이유는 없었을 텐데도 여기에 몇 번씩이나 출입한 기억이 있다. 뭐하러 들어왔더라? 생각이 나질 않아. 크루아상은 그제야 제 기억에 매우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금 하고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근 몇 년간의 기억이 누가 가위로 오려내기라도 한 듯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 시선을 둔 노트에 적힌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

크루아상은 눈앞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흔적이 가득 남은 방은 굉장히 익숙했지만 꿈에서만 보았던 건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흐릿했다. 분명 이곳에서 매일같이 함께한 존재가 있었다. 모든 시간을 나누었던. 하지만 이제는 분명 없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불 꺼진 모니터를 가만 바라보았다. 비치는 것은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너는…… 누구야? 작게 읊조렸으나 이 역시 닿을 리 없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이 노트는 분명 기억을 잃기 전까지 붙들고 있던 거였지. 여기에 실마리가 있겠다 싶었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글씨는 마구 뭉개져 한 문장을 읽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크루아상은 하나하나 신중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분명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여기에.

시간관리국 국장, 시간지기, 다른 시간선의 나. 

노트의 맨 첫 장에 적힌 것은 이름이었다. 아마도 크루아상이 기억해야만 하는 존재. 이 글자를 보아도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크루아상을 몹시 괴롭게 했다. 기억해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아예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아플 정도로 뛰는 심장이 크루아상 대신 그를 기억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좋은 추억일 뿐이지만. 단 하나도 잊고 싶지 않지만 전부 적을 시간이 없다. 하지만 내가 시간지기에게 최고의 수리공이 되겠다고, 함께 지루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자고 약속했던 것만은 잊어서는 안 돼.

"함께 지루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자고……."

입 밖으로 직접 내어보니 몹시 익숙한 말이다. 누군가 몇 번이나 자신에게 다시 들려주었던 것만 같은. 그런데 왜 잊었을까? 왜 읽어도 도로 생각나지 않을까? 보통 영화나 소설 속에서 기억상실에 걸린 주인공들은 이런 메모를 보면 기적적으로 기억이 돌아오고는 하던데.

노트는 시간지기와 크루아상이 함께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맥락도 없이 나누었던 대화의 중간만 적혀 있거나, 바다에 가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관리국에서 보낸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어서 이해하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급하게 적은 내용다웠다. 크루아상은 안 그래도 읽기 힘든 글씨 탓도 더해져 아주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곧 손이 멈췄다.

하지만 내가 모든 걸 망쳤어

미안해

이건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

사라진 것은 그에 관한 기억뿐. 자신의 과오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경솔하게 기계를 만들어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혔다는 일을. 그래. 분명 자신의 잘못이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명에게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몫이다. 그런 일이었다.

하지만 대신 짊어져 준 누군가가 있었어. 크루아상이 한 개의 실수를 덜어낼 동안 백 개의 실수를 덜어내 주던 누군가가. 끝내 백 개의 죄책감마저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어딘가로…… 누가, 어디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조금 떨렸다.

내 잘못된 판단 탓에 시간선이 너무 많아지고 말았다. 시간지기는 나를 도와 시간선을 잘라내다가, 자신이 사라지는 광경을 너무 많이 보고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했다. 시간의 구멍으로 떠나겠다고 말하고 방금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 탓이다. 내가 시간지기에게, 수많은 자신을 지우게 만들고 말았다. 그것을 떠나기 직전까지 알아주지도 못했다…….

시간지기가, 시간의 구멍으로. 크루아상은 자신이 이 노트를 적은 이유를 깨닫는다. 시간의 구멍은 빠지면 모든 이의 기억에서 잊히고 마는 곳. 그러니까 시간지기는 분명 모든 관계를 끊고 싶어서, 크루아상이 더는 자신을 찾지 않았으면 해서 떠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크루아상은 잊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시간지기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지기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시간지기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내 힘이 되어주었는데도.

나를 원망하겠지. 최고의 수리공이 되겠다는, 지루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내가 모든 시간선에서 연을 끊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던 거겠지.

하지만 나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

네가 나를 영원히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나는 너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만나고 싶어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노트에 적힌 내용은 여기서 끝났다. 이걸 적은 것은 아마도 시간지기가 떠난 직후, 시간의 구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 동안. 글씨 하나하나에 기억하는 모든 것을 적고자 했던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작 몇 분만에 노트 반을 빼곡히 채운 자신은 무슨 심정이었던 걸까. 크루아상은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이를 향한 감정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크루아상은 눈물을 닦으며 당장 만나러 가자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발을 붙드는 것들이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꼬이고 늘어나 엉망이 된 시간선. 여기가 먼저다. 함께 감당해주려다 떠나버린 시간지기를, 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기 전엔 다시 만나봤자 의미가 없어. 지금 다시 만나봤자 또다시 짐을 함께 지게 할 뿐이다. 모든 시간을 해결해야만 한다. 내가, 내가 책임지고…….

국장이 된 크루아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하게도 망가진 시간선을 잘라내기 위한 시스템의 정비였다. 이제는 혼자서 손짓 한 번만으로도 시간선을 잘라낼 수 있던 존재가 없었으므로. 그다음으로 한 일이 바로 시간의 구멍에 빠져버린 쿠키들을 구하는 구조대를 꾸리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시간지기를 구멍에서 도로 데려올 방법은 빠진 모든 쿠키를 구하는 일밖에 없었다. 시간지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시간관리국의 국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 크루아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이 지금 국장의 일보다는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아마 시간지기는 다시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새까맣게 잊었을 거라 생각할 테니 만나러 오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 안에서 구조대가 구멍을 드나드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그걸로 크루아상이 시간지기를 찾으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주지는 않을까. 보잘것없고 얄팍한 희망을 걸고서 구조대를 움직였다.

크루아상은 개인적으로도 가끔 구멍을 찾았다. 자신이 몇 분간 절박하게 남겨놓은 메모를 읽고 또 읽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 시간여행기에 몸을 실었다. 구조를 위해서도, 연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누구도 동반하지 않고서 심연 같은 구멍을 한참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이 구멍이 나를 집어삼켜주면 좋겠다, 실수인 척 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종종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괴로움보다는 짊어져야 할 책임이 더 컸다.

"요즘은 샌드위치를 다시 조금 사가네."

얼마 전 들린 가게에서는 친구가 말했었다.

"조금?"

크루아상의 손에는 1인분치고는 좀 많은 양이 들려 있었기 때문에 말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 웃었다. 친구도 자신의 말이 이상했던 걸 눈치챘는지 따라 웃었지만, 덧붙인 설명에 크루아상은 웃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것도 조금은 아니지만. 전엔 여기서 한두 개 정도 더 사갔었잖아. 그래서 식사량이 늘었나 했는데, 국장이 되더니 다시 줄어서. 혹시 일이 너무 많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건 아니지?"

"아냐. 제대로 챙기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건 그냥, 같이 먹던…… 누가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애매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잘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크루아상조차 메모로만 알고 있는 상대니까. 그랬구나, 늘 시간지기의 몫을 더 샀던 거구나.

시간지기도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처음 말없이 집어갔을 땐 당황했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집어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해서 직접 불러내서 주기도 했다.

관리국으로 돌아온 크루아상은 노트를 뒤져 적힌 글씨를 한참 읽었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전부 잊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네가 구멍으로 들어가더라도 나만은 널 기억해줬어야 하는데. 넌 날 위해서 모든 걸 해줬는데 나는 기억조차 해줄 수가 없었다.

시간지기를 대신해 국장이 된 이후로 수많은 칭찬을 들었다. 원래부터 국장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한 국장. 책임감 있는 국장. 하지만 크루아상은 자신이 지금 지고 있는 게 국장으로서의 책임인지, 아니면 시간지기를 그렇게 만든 책임인지 잘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완벽한 국장 같은 게 아니다. 크루아상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 몰려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서 움직일 뿐이다. 내가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시간선을 잘라나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네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 시간선을 자르는 일이 시작되고, 크루아상은 다시 국장실에 있었다. 국장실 창문 너머로는 완전히 박살나 관리국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버린 중앙시계가 한눈에 보였다. 시간지기가 크루아상을 위해서, 크루아상만 열 수 있게 고쳐주었던 설비다. 이 또한 이제는 닳을 대로 닳아버린 노트에 적혀 있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결국 자기 손으로 부숴야만 했다.

시간이 망가지고 모든 직원이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매진하며 시간관리국 정비소는 폐쇄되었다. 개인적인 추억도 물론 가득했지만, 무엇보다 노트에 써 있는 일의 6할 정도가 정비소에서의 일이었기에 크루아상에게는 배로 쓰라린 일이었다. 관리국에서 함께 보냈던 장소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나는 아직도 네 얼굴 하나 기억해내질 못했는데.

그래서 크루아상이 그를 추억할 장소라고는 이제 국장실뿐이었다. 기억을 잃은 직후에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심지어 열쇠마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곳. 자신이 관리국에서 마지막을 보내야만 한다면 마땅한 장소는 분명 여기다.

국장실에서 모니터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늘 그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확실히 지금의 크루아상은 수리공 시절과는 꽤 달라졌기에 국장이었던 시간지기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겠지. 시간지기를 직접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내가 너를 알아볼 수 있을까?"

때늦은 자신 없는 말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노트는 통째로 외울 정도로 읽었다. 구멍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찾아갔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얼굴도 목소리도 알지 못하는 지금, 크루아상에게 시간지기는 소설 속 등장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는 수백 번 읽었지만, 과연 실존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크루아상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제 와서 약한 소리 해봤자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모든 책임을 다한 크루아상이 이 시간선과 함께 사라져, 잊힌 시간이 모이는 시간의 구멍으로 흘러간다면 분명 둘은 다시 만날 수 있다. 넓고 깊은 시간의 구멍에서 아무리 헤매더라도 시간지기를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찾아낼 수 있어?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상대를?

네가 찾을 수 없는 곳까지 숨어버려 평생 어두운 구멍을 헤매다니게 된대도, 그것 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의 속죄로서 받아들여야 하겠지.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가라앉혔다. 그동안 정말로 열심히 했다. 자신이 망쳐놓은 모든 시간을 책임지는 건 종종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일었지만 결국에는 해냈다. 최고의 수리공이 되지도, 함께 지루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 과거의 나는, 아니, 우리는 다시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걸로 크루아상의 역할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너를 다시 기억해내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시간의 구멍에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본 크루아상은 잠시 여기가 어디인가 생각하는 어이없는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몇 초 뒤 자신의 행동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방금 시간선이 사라졌는데 여기가 어디겠는가. 온통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그다지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드디어 모든 일을 완수했다는 뿌듯함과 해방감이 더 컸다. 그리고 마침내 네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는 기쁨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구멍은 누구도 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크루아상은 이 안에 살고 있는 이를 적어도 한 명 알고 있었으니 주저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어디선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시간지기는 내가 자신을 기억한다는 걸 알고는 있나?

"시간지기, 있어?"

그래서 이름도 불러보았다. 당연히 묵묵부답이었다. 시간지기는 가위질 한 번으로 시간선을 잘라낼 정도로 유능한 존재였으니, 원한다면 구멍에서도 언제든 틈새를 열어 크루아상을 지켜볼 수 있었겠지. 그러니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나주지 않은 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직전 크루아상의 눈에 누군가 들어왔다. 떠다니는 파편 같은 게 아니라 분명히 '누군가'였다.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의식하지도 못한 새 그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한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네가 나고 내가 너인데, 내가 널 못 알아보면 누가 널 알아본다는 거야.

"시간지기."

이윽고 시간지기와 마주하고, 크루아상은 확신에 차 이름을 불렀다. 상대의 얼굴에는 늘 짓던 미소가 있었다. 그래, 늘 짓던…… 늘 너는 이런 표정이었다. 글뿐이던 기억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떠난 건 나야~."

"약속 못 지킨 것도 미안해."

"네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사과의 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기쁨뿐이었다. 그날 약속하고 바랐던 미래의 모습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뻐."

어떤 미래든, 네가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나도 그래~."

수고했다는 듯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무엇보다도 따스했다. 어둡고 어두운 시간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더라도, 너와 함께라는 사실은 그저 축복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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