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1

겸해 판타지AU 조각글

放浪 by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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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이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것을 보아하니 어느새 정오가 다 되어가는 듯했다. 건조한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뺨을 스쳐 생채기를 내는 거친 모래알의 감각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표피를 긁고 가는 횟수도 지금까지 합하면 열세 번째 정도였던 것 같다. 세계의 종족들이 본디 가지고 있는 피부라는 것 자체가 모래가 아무리 베어내도 살갗이 벌어지지 않을 만큼 고도의 진화를 거쳐온 것인지, 평소라면 고려하지도 않았을 생각에 매몰된 채 윤해주는 앞에 가는 검은색 뒤통수를 보며 나아갔다. 그늘과 양광이 푸르게 교차되던 녹음의 울창한 정경과 달리 온통 난색으로 뒤덮여 환각처럼 일렁이는 사막의 아지랑이가 책에서 일컫던 신기루의 조짐과도 같았다. 물론 그 과정 중에 오아시스 하나 상상할 정도로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한 빈도는 극히 적었지만 말이다.

얼마나 걸었는지 대강 가늠하고 있어도 출발지에서의 거리만 파악할 수 있을 뿐 도착지까지 소모되는 것들을 정확히 계산하기엔 유사 안내자 역할을 부여받아 먼저 나아가는 이재겸은 평소처럼 짜증 섞인 말조차 없었다. 열기 가득한 침묵 속에서 영 맞지 않는 환경에 말라비틀어지는 새싹처럼 윤해주의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꺼풀도 어느새 반까지 내려왔다. 속눈썹에 맺힌 흙먼지가 깜빡이면 눈물처럼 흩날렸다. 짧게 살아온 생이지만, 고생이라 칭할 법한 사건들은 몇 겪어봤으니 내성은 충분히 기른 것 같았어도 인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몸 상태는 아마 무의식적인 오만의 결과임이 분명했다. 이전에 만들었던 거 그냥 마실 걸 그랬나, 생긴 게 늪지대 골렘이 뱉어낸 오물 같아서 이재겸에게 미룬 채 자신은 마시지 않았던 수제 제작 물약이 문득 떠올랐다. 본의 아니게 자기반성 시간을 이리 가져야 한다는 것이 윤해주 입장에선 조금 억울한 느낌이기도 했다.

“…겸아, 이대로 사막에 묻혀 죽는 것까지 염두하고 있는 건 아니지?”

“…”

“음… 혹시 걸으면서 기절한 거야?”

“… …조용히 안 해?”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는 이재겸은 그런 윤해주의 상태를 비실거린다로 인식하는 듯했다. 그 오크 발 씻은 물을 나한테만 먹이니까 그렇게 된 거 아냐. 덧붙이는 말로 하여금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윤해주를 바라보던 이재겸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아, 그 생각하고 있던 게 이렇게 겹치네. 굳이 말로 꺼내지 않고 미미하게 웃으며 윤해주가 시선을 살짝 피했다. 지레 찔리는 걸 딱히 티 내지 않았음에도 이재겸은 긴 한숨 후에 노려보던 눈을 앞으로 돌렸다.

“물론 그 약 안 먹었어도 여기선 내가 제일 쌩쌩했겠지만.”

“그런 것치곤 아까 물을 잔뜩 마시던데.”

“야, 그게 누구 때문인데 이 대현자의 코딱지 같은 자식아.”

“코딱지는 좀….”

“나 지금 화 낼 기력 아껴야 되니까 닥치고 있어 봐.”

일상 같은 말이었다. 다만 습관처럼 자만하는 투나 핀잔을 주는 문장에 가벼운 제스처가 따라오기 마련이었음에도 어쩐지 다른 곳에 주의가 쏠린 듯 걷는 내내 이재겸의 어깨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 삐삐 -라고 하지만 이재겸이 직접 이름을 붙여준 적은 없다.- 를 달고 다녀 반은 꽉 차게 가려졌던 몸 일부가 텅 비었으니 그 모양새가 윤해주의 눈에 더욱 선명히 보였다.

삐삐 -그러니까 이재겸은 어썸플레임팔콘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지만- 가 멀리 날아간 지도 하루가 꼬박 지났다. 소식이라도 물어오라고 이재겸이 날려 보내긴 했지만, 이 모래 바다 한복판에서 추락하고 거대 개미귀신의 소용돌이에 빠져 먹이신세가 된 게 아니면 금방 돌아왔어야 했다. 적어도 윤해주의 계산 안에선 그런 결과가 존재함이 당연했다. 윤해주보단 아니더라도 기사단 소속이면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개념 정도는 갖추고 있을 이재겸 또한 그걸 인식하고 있었겠지만, 의문스럽게도 삐삐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전전긍긍하거나 곤란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사막에선 소식을 물어오는 체감 시간이 이리 긴 게 당연한 일인가? 윤해주가 이재겸의 배경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진 않았지만, 적어도 현 상황에 뚜렷한 돌파구 없이 막연히 하늘 위로 고정된 별에 의지한 채 발걸음만 늘리고 있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저기 겸아. 너희 집이 한 곳에만 있지 않는다는 건 아는데, 보통 이동 루틴이 좀 빠른 편이야?”

“….”

“나는 이 지역에 대해 많이 모르니까 함부로 말 얹긴 좀 그런 거 알아. 근데 주변에 아직도 뭐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삐삐…도 안 돌아온 지 꽤 되었고.”

“….”

“… …겸아?”

보통 조용히 하라고 몇 번 더 말하면서 짜증내기 마련이었지만, 어쩐지 침묵하고 있는 이재겸에 윤해주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물음표 하나로 이재겸의 검은 뒤통수를 조금 오래 바라보던 윤해주는 걷고 있던 폭을 넓혀 속도를 좀 내더니 이재겸과 나란히 하고선 목을 살짝 빼 이재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걸으면서 기절한 건가? 대개 말 같지도 않은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재겸과 같이 다니면 그 말 같지도 않은 일들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에 쉬이 넘길 수 없는 가설을 대고 윤해주는 반쯤 감겼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런 윤해주의 시선 끝으로 보이는 이재겸의 눈은 평소 태양에 반사되어 금색으로 깜빡이는 것 없이 눈두덩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걸음은 더 빨라지지도, 더 느려지지도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실눈 뜬 것도 없이 아주 지긋하게 감은 얼굴의 표정은 평소의 인상보다 조금 더 유순하게 눈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 이렇게 걸으면서 기절할 수도 있는 거구나. 타인이었다면 윤해주가 말 한 번 걸고 깨워서 그럴 리가 있나 싶었겠지만, 어쩐지 이재겸에겐 말을 건다거나 어깨를 잡는다거나 구태여 깨우지 않은 채 그럴 리가 있구나 하며 보이는 결과를 순순하게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이재겸과 나란히 걷고 있던 윤해주의 걸음이 다시금 이재겸의 뒤로 위치하려는 듯 살짝 느려졌다.

“그렇게 된 거구나… 내가 한 5분 뒤에 깨울게 겸아.”

“…더위 먹었냐? 깨우긴 뭘 깨워.”

“아, 눈 감고 있길래 기절한 줄 알았어.”

더위는 윤해주가 먹었네, 축 늘어져 있던 눈이 벌어지자 가늘게 찢어져 보이는 틈 사이로 금색의 빛무리가 얇게 일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단순히 윤해주의 말을 날카롭게 받아치는 답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반, 아니 그보다 좀 더 내려온 윤해주의 눈꺼풀을 보면 어쩐지 이재겸의 말에도 신빙성이 있는 듯 보였다. 녹음 사이로 들던 볕에 따라 밝아지던 갈색은 어디 가고 속눈썹 그늘 아래서 피곤하게 어두워져 있는 윤해주의 눈동자를 힐끔 보더니 이재겸은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쉬게 하고 싶은데 네가 징징거리는 것도 그렇고…”

“징징거리는 거라니…”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어라. 주변을 좀 봐.”

이재겸의 말대로 윤해주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여전한 난색의 아지랑이 투성이었다. 선인장과 회전초, 가끔 아른거리는 모래 바위와 지평선을 기준으로 갈라진 모래 산과 태양. 뭐가 특별한 게 있어서 보라고 한 게 맞을 텐데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정경에 윤해주는 의아해하며 다시금 이재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있어?”

“하, 얘 진짜 더위 먹었네? 이게 안 보인다고?”

“다 똑같이 보여서… 특별한 게 있는 거야?”

“지형이 바뀌었잖아.”

이재겸은 자신이 보이는 곳으로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하나씩 집었다. 북쪽부터 두 곳, 북서쪽은 세 곳, 그리고 자신과 윤해주, 둘이 있는 곳 근처를 빙글 돌리더니 이재겸은 뻗었던 팔을 다시금 내렸다. 이재겸이 가리킨 곳들 전부 모래가 유난스레 솟아있거나 구멍처럼 움푹 파여 있었고 특히 이재겸과 윤해주 주변은 넓게 둘러서 길이라도 난 것처럼 둘을 크게 동그라미 쳐놓고 있었다. 기척이나 진동이 있었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흔적을 알아차린 이후에도 건조한 백색소음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체력이 많이 빠지긴 했나, 윤해주는 괜스레 제 목을 매만졌다.

“주변에 좀 특이한 흔적들이 보이긴 하네. 그럼 아까 눈 감고 있던 게 기척이 느껴져서 그랬던 거야?”

“어. 보통 사막은 모래 밑으로 돌아다니는 애들이 많거든. …야, 나보고 기절했다느니 뭐가 어째?”

“말을 해도 답이 없길래. 내 나름대로 걱정했던 건데….”

“이 레드캡의 발냄새 같은 놈이…”


는 완성되지 못한 글이라 역사 속에 묻을지 퐁님께 일부라도 보여줄지 고민하다가 그냥 보여드립니다…

정확히는 퐁님의 어떤 세상의 끝 엔딩 이후를 이어서 쓰고 싶었는데 기력과 아이디어 고갈 이슈로 정말 조각이 되었다.

“데저트 스콜피온?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네. 너희 도시 사람들은 원래 이름을 좀 단순하고 싸구려처럼 짓나?”

“싸구려라니… 음, 그래도 나름 공인된 몬스터 사전이었는데. 넓게 보급된 걸 보면 나름 신빙성 있지 않을까.”

“아 그 멍청한 책? 거기에 뭐 난폭하다거나 사막의 암살자라고 적혀 있었지? 나도 봤어. 전부 다 헛소리야.”

“너희 부족은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 거야?”

“어, 우리는 얘를 안타레스라고 불러. 나그네의 친구이자 여신의 선물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너무 길어서 말이야. 아무튼, 생긴 게 조금 징그러워서 그렇지 심성은 착한 몬스터인데 분명 그 저자라는 사람이 괜히 자극해서 화만 돋운 것 같다에 내 등에서 떼어낼 수 있는 비늘 하나를 건다.”

“그것까진 안 걸어도 될 것 같은데…”

“그만큼 내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거라고 꽉 막힌 놈아… 아무튼! 얘가 나왔으니까 이제 우리 부족은 금방 찾을 수 있겠다.”

“이 몬스터 하나로 금방 찾을 수 있는 게 맞아?”

“당연하지. 보통 얘가 있으면…”

이 부분이 생각나서 쓰다가 결국 쓰고 싶었던 부분을 못 넣게 되는 이슈 발생

해주의 말투나 행동을 좀 곱씹으려고 지난 세션 기록과 썰들을 뒤적거리긴 했는데 역시 본 오너님 캐입은 못 따라 가는 듯 싶습니다… 퐁님은 이재겸 오너를 해도 되겠지만 난 아직 무리무리

뭔가 저 부분으로 이재겸이 속한 집단이 도시와 얼마나 달랐는지, 몬스터에 대한 인식이 해주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표현해보고 싶었고 (이건 가물가물하지만 이전 썰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 같았어서 아마 그 부분을 곱씹다가 썼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제일 큰 건 사막에서 지친 해주를 꼭 표현하고 싶었던 ㅈ ㅔ 사심… ><

끊긴 부분 이후엔 거대 사막 전갈이 모래 밑에서 튀어 나오고 해주가 활이랑 화살 잡는 순간 이재겸이 얘는 친구라 박박 우기면서 안경척 모드로 설명하다가 거대 사막 전갈을 해주와 같이 타고 진짜 사막의 난봉꾼인 거대 사막 지렁이를 잡은 후에 이재겸네 부족과 마주하게 되는 전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강 퐁님의 머릿속에 잘 생각해주시면… 압도적 감사…

이건 약간 그뭔씹 자체 세계관 설정 주저리인데 전갈 몬스터의 이름은 전갈자리 중 가장 밝은 별에 따왔고 생긴 거나 실제 전갈의 인식과 다르게 AU 내에선 상당히 우호적인 몬스터로 설정하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적대적인 몬스터는 사막 지렁이 (이름은 별다른 것 없이 웜 아니면 샌드웜이라 지었을 듯해요) 이고 사막 지렁이는 이재겸네 부족처럼 사막을 유랑하는 여행자들의 식량으로 많이 쓰이는 그런… 느낌으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잡은 후에 이재겸네 부족과 만나는 전개로 이어가고 싶었고 전갈 몬스터에 나그네의 친구이자 여신의 선물이란 칭호를 붙인 이유는 사막에서 대개 저 전갈 몬스터를 만나면 목적지나 도우미에게로 안내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 선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런 호칭을 붙였습니다… 저기 나오는 여신은 사막 내에서 공통적으로 숭배되는 (숭배하는 사람들만 숭배하지만) 사막의 유일신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집트 신화의 세크메트를 따와서 제 딴에선 풍요와 죽음의 여신? 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 그 저자라는 사람이 괜히 자극해서 화만 돋운 것 같다< 라는 대사로 해당 여신의 이중성을 따서 인식 차이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십덕발언 구구절절… 죄송합니다…

하여튼 언젠가 쓰겠지 하고 미루다가 영영 못 쓸 것 같아서 방생합니다… 늘 은혜로운 글을 받고선 코나 후비면서 쓴 글이 썩 영양가는 없지만… 해주를 사랑하는 제 마음은 알아주시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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