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네번째 미츠이

대만태섭

백업용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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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이 히사시 인생에서 미츠이는 세 명이었다.

첫번째 미츠이, 아버지.

두번째 미츠이,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미츠이, 본인.

그리고 오늘. 미츠이 히사시 인생에서 미츠이가 한 명 더 늘어날 것 이다.

……아마도?

 

*

 

미츠이와 미야기는 연인이었다. 사귄 기간은, 대략적으로 7년 하고도 5개월 정도. 시작은 미츠이의 졸업식이었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경했다. 덩치 큰 남고생-심지어 한 명은 이제 성인인- 둘이서 질질 짜는 꼴은 제법 웃겼다.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구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평생 놀림감으로 자리 잡아 살자 리버스를 땡기게 할지도 몰랐다. 사실 그날 처음으로 미야기가 우는 모습을 보았기에 더 기억에 남기도 했다. 안 운다면서도 얼굴을 필사적으로 가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미야기가 알게 된다면 한 대 맞을 게 분명했으니 말로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튼. 7년의 연애를 하다 보면 따라오는 것 중 하나는 결혼 여부였다. 사실 7년 정도 연애했다면 사실혼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미츠이는 의외로 낭만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호텔 방에 장미꽃을 흩뿌리고, 촛불로 하트를 만들어, 그 속에서 멋진 대사와 꽃다발을 건네며 프러포즈를 한다던가. 멋들어진 정장과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나? 고민하던 미츠이는 미야기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 또한 꽤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야기가 원한다면 자신이 입을 의향 또한 있었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걸어 모두의 축복 속에서 맹세의 키스를 한다던가. 이런 것들에 대한 낭만이.

물론 사회의 편협한 시선에 따르면 멋들어진 정장과 웨딩드레스는 개뿔, 혼인신고서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아직 일본은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았으니까. 근데 이건 외국을 나가면 해결되지 않을까? 미츠이는 언젠가 미야기와 함께 당당히 결혼식을 올릴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표에 영어 마스터하기를 추가해 넣었다. 일단 결혼식은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

프러포즈였다.

그래서 미츠이는 프러포즈를 준비하기로 했다.

 

*

 

“밋치…… 진심이야?”

미야기와 자신의 사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양가 가족들과, 대학에서 만난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뿅친놈과 친구들-지들이 이렇게 불러달란다-, 그리고, 어찌 보면 모르는 게 더 어색한 북산 농구부들과 사쿠라기 군단. 어라, 의외로 많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은 미츠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사쿠라기를 바라봤다. 사쿠라기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가 싶더니, 제 옆의 미토를 쿡 찔렀다.

“요헤이…….”

그러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을 보낸다. 제 몫의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마시던 미토의 표정이 곤란함으로 물든다. 미츠이는 뭐라도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미토를 바라봤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 왁스 칠을 그만둔 머리카락 끝부분을 매만지다가, 어색하게 웃는다.

“음. 그런 프러포……즈는. 료칭이 화내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료칭이…… 그런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잖아요. 응, 응. 옆에서는 사쿠라기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료칭이 밋치를 때릴지도 몰라. 그날 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는 사쿠라기에 골이 아파오는 것만 같아 관자놀이를 꾹 누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챈 미토 또한 미츠이 놀리기에 합류한다. 맞아요, 그 나이에 또 이빨 나가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결국 미츠이는 둘의 이마에 사이좋게 딱밤을 놓고 나서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불꽃 남자 미츠이 히사시의 프러포즈 대작전.

미야기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탄생한 작전이었다. 탄생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작전을 구성하고 있는 건 대략적인 것밖에 없었다. 장미꽃잎이라던가, 하트 모양 촛불이라던가 하는. 그러던 도중 미츠이는 미야기의 충고 중 하나를 떠올려낸다. 미츠이 씨는 제발 뭘 할 거면 누구한테 묻고 하세요. 이때껏 해온 여러 가지 기행들에 질리다 못해 치를 떨며 한 소리였다. 자신의 아이디어만이 가득한 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츠이는 자신의 연락처를 뒤적였다. 미야기의 말대로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미야기의 말을 들어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상황은, 현재로 돌아온다.

“그러면 뭐 어떡하면 좋을 거 같냐.”

“음…… 글쎄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게 제법 얄밉다. 눈을 가늘게 뜨고 미토를 바라보던 미츠이는 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여전한 얼굴로 웃는 미토가 짜증 났다.

“어이, 하나미치. 너는 미토한테 어떤 프러포즈를 받고 싶냐.”

그래서 미츠이는 질문할 상대를 바꾸기로 했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해야지 않겠냐. 아까까지 웃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당황한 표정의 미토가 미츠이에게 뭐라 하기도 전에 사쿠라기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엉? 나는 요헤이라면 다 좋은데.”

그러면서 다시 허니브레드를 조지기 시작한다. 왐마야~. 얼굴이 빨개진 미토와 허니브레드를 입안 한 가득 넣고 행복해하는 사쿠라기를 번갈아보던 미츠이는 턱을 괴며 히죽거렸다.

“청춘이구만?”

“이 나이에 청춘은 뭔 청춘이에요…….”

 

*

 

으, 추워. 미츠이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시린 볼을 손등으로 꾹 눌렀다. 왜 부른 거냐 뿅.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미였다. 매고 있던 목도리를 끌러 잘 개어 옆에 놓아둔다. 진동벨이 울릴 때까지 기다려 받아온 아메리카노는 따뜻했다.

“어, 별 건 아니고. 미야기에게 프러포즈 하고 싶은데 마땅한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그래서 나에게 온 거냐 뿅?”

“아무래도 그렇지. 의견이나 좀 내봐라.”

“하…….”

후카츠가 한숨을 내쉰다. 다급히 덧붙인 친구 좋다는 말이 뭐냐, 하는 소리에 질린 듯한 표정이 된다. 사실 이러는 게 아예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미야기 때문에 술에 꼴은 미츠이를 챙기는 것은 언제나 후카츠였다. 가끔씩 마츠모토가 챙기긴 했지만, 높은 확률로 후카츠였다. 그런 일이 한 두 번 반복된 이후로, 미츠이는 미야기에게 서럽거나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후카츠를 붙잡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즉 미야기와 자신의 연애 때문에 가장 고생한 사람 중 한 명이 후카츠였다. 사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친해지지 않았겠지만. 지금도 나름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후카츠 너도 사와키타가 해줬으면 하는 프러포즈 같은 건 있을 거 아냐.”

“사와키타가 여기서 왜 나와 뿅.”

“……아니야?”

“아니다 뿅.”

미친. 의도치 않게 친구의 연애 사정을 알게 된 미츠이가 입가를 가리며 경악한다. 니들도 그…… 슬슬 사귈 때도 되지 않았냐? 몇 년째야 이게. 사와키타가 그 지랄을 하는데 어떻게 사귀냐 뿅.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 말에 미츠이는 미야기에게서 전해 들은 사와키타를 떠올린다. 미야기가 뭐라고 했더라. 후카츠 씨, 후카츠 씨 하면서 우는 게 짜증 난다고 했던가. 그리고 후카츠에게서 전해 들은 사와키타를 떠올린다. 언제나 자기 앞에 서기만 하면 어른인 척하는 어린애가 된다고 했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도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면서 들러붙기는 또 잘 들러붙는다고. 그게 짜증 나면서도 좋아서 떨쳐낼 수가 없다고. 그랬었던 거 같다.

“몇 년 째지?”

“누구 쪽에서? 뿅.”

“사와키타.”

“아마, 3년일 거다 뿅.”

걔도 참 징하네. 뒷머리를 만지작거린 미츠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연애사도 복잡해 고생하는 친구에게서 의견을 들어봤자 자신만 찝찝할 게 저명했다. 시간 내줘서 고맙다. 끌러둔 목도리를 다시 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느새 커피는 다 마신 채였다. 빈 컵을 반납하려 들어 올렸다가, 미츠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올린다. 언제나와 같은 표정을 한 후카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부르냐. 적당히 맞장구치며 대답하자 후카츠가 다 마신 제 몫의 컵을 건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심플이 베스트 뿅.”

그 말에 눈을 깜박이다가 씩 웃는다. 누가 그걸 모를까 봐.

 

*

 

< 야

사와키타

넌 프로포즈 하면 어떻게 할 거냐

?? >

근데 이거 첫 연락 아니에요?

< 어떻게 할거ㅑ고

< 냐고

아니 뭐 >

레스토랑같은 곳에서 하겠죠; >

근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 그래?

고맙다

????? >

¹ 아니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고요

¹ 저기요

¹ 야

¹ 미츠이 >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던 사와키타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진짜 뭐야? 료타한테 말해줘야 하나? 네 애인 이상하다고?

 

*

 

어렵네. 여러 가지 의견들을 모아 쓴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여백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점에서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들고 있던 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미츠이는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의견도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헉 소리 나올 만큼 화려한 것들이 많아 제명당한 지 오래였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종이 한구석에 적힌 ‘폭죽으로 결혼하자 쓰기’-코구레의 아이디어였다. 이 말을 들은 아카기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서, 미츠이는 웃음을 참느라 꽤 고생했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줄을 죽죽 그어 지워낸다. 이랬다간 뺨 맞고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 얼굴이 붉게 물들 만큼 화내는 미야기를 상상해본다. ……귀엽네……. 당사자가 들었다면 미쳤냐며 한 대 때릴 부분이었다. 잡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휘휘 젓던 미츠이는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빽빽한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반듯히 접어 한 구석에 밀어 넣었다.

처음부터 다시 하자.

어렵게 채운 것들이라도 거슬릴 때가 있다. 펜을 쥔 미츠이가 종이에 미야기와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낸다. 부디 오늘이 다 가기 전에 계획을 마무리 지을 수 있길 바라며.

그날 미츠이 방의 불은 밤새도록 꺼질 일이 없었다.

 

*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복장, 오케이. 반지, 오케이. 정신머리, 오케이.

모든 게 오케이였다. 옷케—, 쿄오노 미츠이와 이이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한 번 더 정리한다. 오랜만에 한 왁스 칠은 익숙하지 않아 머리를 세 번 정도 더 감았어야 했다. 일찍 일어나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어. 빳빳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양 볼을 세게 내려친다. 얼얼한 통증에 있던 정신까지 전부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알겠냐, 미츠이 히사시. 오늘만큼은 정신 똑바로 차려라.”

거울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내뱉는 목소리가 비장해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때려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살짝 빨개진 볼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미츠이는 오늘의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일단, 미야기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고.

바다에 가서 반지를 건네며 청혼.

완벽하군. 주변인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다닌 주제에 제법 단출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토와 하나미치의 말대로 미야기가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후카츠가 말대로 심플한 것이 베스트였다. 미츠이는 굳이 따지자면 장미 꽃잎을 깔고 촛불로 모양을 만들고 하는 화려한 걸 더 선호하긴 했으나, 프러포즈를 받는 것은 자신이 아닌 미야기였다. 그걸 생각하면 자신의 취향 보다는 미야기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맞았다. 일생일대의 사건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서는 안 되니까.

마지막 장소가 바다인 것은 별 의미 없었다. 미야기가 가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했으니까. 바다와 미야기의 관계를 미츠이는 모른다. 그냥, 단순히. 나쁜 기억이 있다면 자신으로 인해 뒤덮길 바랐고, 좋은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에 자신이 새로 들어가길 바랐다. 그것뿐이었다.

어째 경기를 뛸 때 보다 더 긴장하는 것 같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애써 무시한 미츠이가 시간을 확인한다. 약속 장소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지금 출발하는 것이 딱 맞았다.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다. 차 키를 챙겨 주머니에 넣은 미츠이는 문손잡이를 잡고 심호흡을 한 번 더 했다. 좋아, 가자!

 

*

 

미츠이씨 >

어디에요?

 

< 카페 앞에

미야기 너는 어디냐

 

선배 옆이요 >

 

뭐?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옆을 보면 언제 왔을지 모를 미야기가 창문 너머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미츠이가 놀람에 따라 차체도 살짝 덜컹거린다. 창문 너머로 웃음을 터트린 미야기는 익숙하게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오다 사라진다. 으, 추워라. 잘게 몸을 떨다가도 따뜻한 히터 공기에 축 늘어지며 시트에 몸을 파묻는다. 그 모습이 꼭 고양이 같아서 미츠이는 살짝 웃었다. 손이 닿은 뺨은 차가웠다. 미츠이 씨 손 따뜻하네요. 그러며 웃는 모습에 다행이네, 하고 마주 웃어준다.

“추위도 많이 타는 놈이 뭘 이리 얇게 입고 왔냐.”

“에이, 어차피 차 타고 이동하잖아요.”

넉살 좋게 웃는 미야기는 추위가 적당히 가시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어디 가요? 미야기의 볼에서 손을 뗀 미츠이가 기어를 당기며 핸들을 잡았다. 글쎄, 일단 영화부터 보자.

 

*

 

영화는 그럭저럭 재밌었다. 영화를 본 후에 간 레스토랑에서 먹은 밥은 맛있었지만 양이 적어-애초에 미츠이와 미야기가 먹는 양을 생각하면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고깃집을 가는 게 더 나았다.- 타코야끼를 사 먹었다. 갓 나온 타코야끼는 더럽게 뜨겁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홀랑 입에 넣었다가 나란히 입천장이 까지기도 했다. 까진 입천장은 아직도 얼얼했다. 혀를 움직여 입천장을 쓸어보다 따끔거려 그만둔다. 그리고 쓸데없이 눈에 띈 못난 브로콜리 인형에 홀려 인형 뽑기에 3만원을 버리기도 했다. 결과는, 뭐.

“근데 이걸 3만원이나 버려서까지 뽑을 필요가 있어요?”

성공적이었다. 뽑은 인형은 제법 크기가 있어 미야기의 품속에 꼭 들어갔다. 너 닮았잖냐. 툭 내뱉은 말에 미야기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저랑요? 와…… 안경 맞춰야겠네요, 미츠이 씨. 그러더니 입을 삐죽이며 애꿎은 브로콜리 볼만 죽죽 잡아당긴다. 아니, 진짜 닮았는데. 뚱한 표정 하며 그 복슬복슬한 머리하며. 누가 브로콜리고 누가 미야기인지 모르겠구만. 당연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러다가 미야기가 화내는 건…… 귀엽겠지만 귀찮았으므로.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날이 아니던가. 그런 날에 미야기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차가 움직인다. 조용한 차 안에서는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야기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졸려?”

“조금요…….”

“졸리면 자, 깨워줄게.”

그 말에 눈을 깜박이다 알겠다며 시트를 뒤로 조금 젖힌다. 몸을 몇 번 뒤척이던 미야기는 금세 잠이 들었다. 품에는 브로콜리 인형을 껴안은 채였다. 그런 미야기에 작게 웃은 미츠이는 노랫소리를 조금 줄였다. 밤이라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눈이 부실까 싶어 선바이저를 펼친다. 간간이 닿아오던 가로등의 불빛마저 차단된다. 그에 만족한 미츠이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가고자 한 해변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변에 도착하고 나면, 곧바로는 아니더라도. 프러포즈를 할 것이다. 미야기 료타에게.

 

미야기 료타. 미츠이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고에<<?? 휩싸이고는 했다. 나는 네가 좋다. 이 세상을 전부 바쳐서라도 널 사랑하고 싶어. 네가 이걸 알게 되면 무겁다고 진저리치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전부 너와 함께하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네 얼굴이었으면 좋겠고, 잠에 들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것 또한 네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너에게 슬픈 일이 생긴다면 그 일 전부 내가 가져가고 싶고, 내가 행복한 일이 생긴다면 이 행복을 전부 너에게 주고 싶다.

미야기, 알고 있냐. 네가 미국에 갔을 때.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갔을 때 말이야. 그때는 마땅찮은 연락 수단 하나 없어서 네가 그렇게 떠나면 나는 무력하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지. 네가 그렇게 떠나가고 매일 술을 마셨다. 네가 그렇게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반년 정도를 그렇게 폐인처럼 살았던 거 같다. 후카츠랑 아카기, 코구레가 많이 고생했지. 걔네가 아니었다면 난 널 다시 만나기 전까지 그러고 있었을 거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닿지 않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라도 않으면 난 정말 미칠 거 같아서. 음성사서함에 무언가를 남기면 언젠가는 들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얼마나 울었던지. 코구레의 말을 빌리면 그때 흘린 눈물을 모으면 강 하나쯤은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거다. 안 그래도 지구는 물 부족이라던데, 차라리 잘 됐지 않냐.

4년. 4년이다. 네가 미국에 있던 시간이. 종종 네가 귀국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만나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는 널 보며 울 거 같아서. 볼품없게 울고 질척거리며 다시 만나면 안 되냐고 애원하게 될 거 같아서. 그래서 너랑 만난다고, 오지 않겠냐고 하는 연락을 전부 무시했다. 음성사서함에다가 미련만 잔뜩 남긴 사람치고는 웃긴 발언인 것을 안다. 하지만 널 직접 만나는 건 많이 다르잖냐. 무엇보다 네가 잘 지내길 바랐다. 나는 이렇게 무너져도 너만큼은 반짝이며 빛나길 바랐다. 사랑하는 이가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있다고 해도 그건 난 아니었다.

그래서 우연히 만나게 된 너를 보고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분노였다. 너는 왜 그렇게 죽상인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거냐. 네가 먼저 헤어지자 했으면서 왜 나보다 더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거냐. 날 버리고 갔으면 잘 지내야지. 내가 무너지고 스러져도 너만큼은 잘 지내야지. 근데 왜 너는 나랑 비슷한 꼴이었냐. 도대체 왜 감당도 못 할 이별을 흩뿌리고 간 거냐. 날 위한다는 그 말은 날 무너지게 만들었고 널 위해서라는 내 자기 위로는 네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야기. 난 아직도 이해 안 가. 4년이 뭐라고. 팔천여 킬로미터가 뭐 대수라고. 내 애정은 그 정도로 식을 만큼 미지근한 것이 아니었는데. 네가 원한다면 몇 년이든, 얼마가 떨어져 있든 기다릴 수 있었는데. 네 안의 나는 그리도 못미더웠냐.

날 발견하고 짓던 네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럴 거면 왜 헤어지자고 했냐는 내 말에 창백해지던 네 얼굴이 기억난다. 네 대답 또한 선명히 기억난다. 내 미래를 가로막는 벽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던가. 우스웠다. 너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될지언정 미래를 가로막는 벽은 절대 될 수 없는데 말이다. 고작 그까짓 이유로 날 떠났다는 게 화가 났다. 그럼 아직 날 좋아해? 그 질문에 넌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날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나는 결국 너를 사랑한다.

너 또한 결국 나를 사랑하겠지.

참일 수밖에 없는 명제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울었고, 너 또한 울며 나에게 안겼다. 꼭 맞춘 것 처럼 내 품에 들어오는 널 껴안으며, 다시는 놓지 않겠다 결심했다. 네가 떠나가고자 해도 끈질기게 매달리리라 결심했다. 너에게는 내가 있어야하고 나에게도 네가 있어야 하니까.

우린 아무리 돌고 돌아도 끝내 서로다.

그러니까, 미야기.

이제 슬슬 종점을 찍을 때가 되지 않았냐?

 

*

 

날이 춥다. 찬 바람이 훅 불어온다. 겨울의 바다는 무시할 바가 못 되었다. 옷매무새를 좀 더 여매며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다. 바다다. 그렇게 중얼거린 미야기는 어느새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상태였다. 미야기. 네? 응. 손가락을 까닥이자 자연스레 몸을 숙여 다가온다.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에 미츠이는 자기의 목도리를 미야기에게 둘러주었다.

“날이 추워.”

그러면서 쪽, 입을 맞췄다 떨어진다. 우와. 작게 감탄한 미야기가 뒷목을 매만진다. ……고마어요. 언뜻 보인 귀 끝이 붉다. 다시 몸을 뒤로 뺀 미야기는 차 문을 닫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미츠이는 한숨을 내쉬며 핸들 위에 이마를 얹었다.

솔직히 긴장해서 죽을 거 같다. 토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심장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심장 내뱉기라니. 꽤 징그럽겠네……. 실없는 생각을 하며 주머니를 매만진다. 그 속에 들어있는 반지 케이스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거절 당할 가능성은 염두하지 않았다. 그야, 미야기는 미츠이를 사랑하니까. 다만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긴장되는 일들이 있다. 미츠이에겐 그 일이 지금이었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낸 미츠이가 크게 심호흡을 한다.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나, 미츠이 히사시.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안전밸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모래 밟히는 소리가 선명하다. 미야기와의 거리에 반비례해 심장소리도 커진다.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다. 온갖 감정을 내리담고 눌러담아 한마디 한마디가 무거운 말들이었다. 하지만 네 앞에만 서면 그 모든 것들이 바스라져 사라진다. 그 사실이 분하면서도 아쉬웠다. 사람의 감정을 형태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는 분함도 아쉬움도 느끼지 않고 내 감정을 온전히 보일 수 있을텐데.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보일 수 있을텐데.

네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됨을 증명할 수 있을텐데.

파도가 밀려와 발 끝을 적시고 물러난다. 겨울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일듯 매서웠다. 추위도 잊은 건지 바다를 바라보는 미야기를 끌어다 안는다. 품 속에 꼭 맞는 크기가 사랑스럽다. 미츠이 씨? 의아한 듯 던지는 물음 또한 사랑스럽다. 미야기는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새 차게 식은 몸을 제 코트 안으로 욱여넣는다. 미야기는 이 자세를 싫어했다. 멋이 없다면서. 다만 왠일로 오늘의 미야기는 얌전했다. 따뜻하네요. 심지어 품 속으로 좀 더 파고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미츠이는 문득 깨닫는다.

지금이라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과감하게 저지르라고.

“……미츠이 료타, 이름 예쁘지 않냐.”

“네?”

씨발……. 속으로 욕을 삼킨다. 프로포즈를 하랬더니 구닥다리 플러팅을 하는 이 주둥아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잘도 나불거리는 주둥아리에는 따로 자아가 있는 거 같았다. 쿵쾅이는 심장소리가 미야기에게 닿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이 자세에 이 거리면 듣기 싫어도 듣게 될 거 같긴 하다만.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줄 수 있는 성이야. 솔직히 미야기 히사시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난 네가 미츠이가 됐으면 좋겠다. 아니, 물론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네가 싫다면 난 기꺼이 미츠이를 버리마. 하지만, 그 뭐냐, 네가 미츠이를 가지게 되면, 그러면. ……네가 내거라고 도장찍어두는 거 같아서, 어. 뭐. 그런거다.”

흐트러진 말들을 겨우 주워담는다. 알아볼 수 있는게 하나도 없었지만, 아예 흘러내린 것 보다는 나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미야기를 밀어낸다. 주머니에서 수백번은 더 만졌을 벨벳상자를 꺼낸다.

“그러니까,”

달칵. 몇 번이고 들었던 선명한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 보석이었던가, 아니면 바다였던가. 방황하는 시선을 애써 바로잡고 미야기를 똑바로 쳐다본다. 어딘가 멍한 바보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마저 귀여워서, 미야기는 자신을 평생 책임져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미야기였으니.

“저랑, 결혼해주지 않겠습니까.”

말했다. 겨우 말했다. 혀를 씹을 뻔 했고 목소리와 손은 볼품없이 떨렸고 조금 울고 있는 거 같지만. 괜찮다. ……괜찮나?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머리속은 엉망이었다. 이게 맞나? 밤새도록 외워가며 준비한 멘트도 침착함도 온데간데 없었다. 미츠이는 잠시 자신이 이런 프러포즈를 받는 상상을 해봤다. 음. 조금 싫을지도.

무엇보다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 반응 없는 미야기가 제일 무서웠다. 아직 일렀던건가? 그러면서 언뜻 바라본 손은, 아.

“미츠이 씨.”

미야기의 말소리가 상념에 빠지려던 미츠이를 끌어낸다. 조금 긴장이라는 것을 해본 미츠이는 미야기를 바라봤다.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지 않아 표정을 보기 어려웠다.

“저는, 남자고.”

얘가 지금 뭐라는거지??

“그게 문제였다면 시작도 안 했어.”

“정식적으로 혼인 신고서도 못 낼거고……”

“미국에 가자. 내가 열심히 공부 할게.”

“그리고, 저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

“너보다 좋은 사람은 없어.”

“그리고, 그리고…… 또……”

“……미야기.”

갑갑하다는 티를 내며 말을 끊어낸다. 움찔거리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온갖 변명을 대며 거절하려 드는 모습에 상처받았을 거다. 미야기의 거절이 진심인 줄 알고 놓아 줄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야기의 방어본능이며, 사실은 미츠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 다가간 미츠이가 미야기의 뺨을 감싼다.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면 방황하는 눈동자와 시선이 맞는다.

봐라, 미야기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한다면.

“나는 네 진심이 듣고싶어.”

어떻게 이런 표정을 짓겠는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농구공같다는 생각을 했다. 놀란 감정 뒤에 숨은 기쁨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야, 내가 농구공이랑 대화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면 금세 입술을 삐죽인다.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냐. 히죽이며 웃는 얼굴이 얄미웠다. 작게 정강이를 걷어차면 금세 아프다 엄살을 부린다. 그리 세게 차지도 않았는데. 불퉁히 중얼거린 말이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하, 그런가. 툭, 맞닿은 이마가 따뜻하다.

“그래서 미야기. 대답은?”

입을 몇 번 어물거리다 결국엔 꾹 닫는다. 미야기는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뼈저리게 경험했으니. 그렇기에 진실에 침묵하되 거짓을 내뱉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뱉은 말로 인해 하는 후회는 지겨웠다. 결혼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잘게 떨리는 손을 숨긴다. 기뻤지만 기쁘지 않다. 행복하지만 불행하다. 질척이는 감정이 미야기를 좀먹는다.

센 척은 미야기의 특기였다. 그 특기로 제 겉모습을 꾸며왔다. 옛날에 썼던 가면처럼. 하지만 미츠이의 앞에서는 유독 그러기 어려웠다. 정확히는, 미야기는 언제나처럼 센 척을 했지만 미츠이는 그것을 정확히 간파해냈다. 눈이 오던 옥상에서도, 산왕과의 경기에서도, 항상.

미츠이 앞에 선 미야기는 언젠가의 9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형을 겹쳐보았냐고 하면, 글쎄. 미츠이는 미츠이였다. 미야기 료타의 형인 미야기 소타가 아닌 생판 남인 미츠이 히사시. 겹쳐본 적이 한 번도 없냐고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그건 그 누구보다 미야기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면 미야기는 어째서 언젠가의 9살로 돌아가는 걸까. 왜 형에게 했던 것 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는 걸까. 왜, 항상. 미츠이는. 미야기의 여린 속내를 드러내게 만드는 걸까.

“저로도 괜찮아요?”

그건 아마도.

“당연한 걸 뭘 묻고 그러냐. 이 미츠이 히사시는 미야기 료타 네가 아니면 싫다고.”

평생을 이방인으로서 살아온 미야기의 정착지가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의지할 수 있고, 언제나 돌아갈 곳이 되어주는. 미야기가 온전히 미야기 료타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정착지가.

자신이 아니면 싫다며 짓는 웃음이. 닿아오는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하고 다정해서. 미츠이는 언제나 미야기를 수렁에서 꺼내주어서. 미야기는 울었다. 그 눈동자에서 눈물을 한가득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당황해하면서도 제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투박하지만 다정하다. 미츠이 씨, 위로 엄청 못 해요. 시끄러워.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어이, 미야기. 너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미츠이는 말투는 꽤 진심 어린 말투였다. 그래서 미야기는 한 번 더 웃었다. 주책이에요. 너는 사람이 걱정을,

끝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가볍게 닿았다 떨어진 입술은 짠맛이 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미츠이를 보던 미야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눈물은 그쳐있었다. 그럼에도 미츠이는 제 볼을 감싼 손을 내리지 않았다. 미츠이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려 부드럽게 감싸 쥔 미야기가 웃었다. 그 어떤 때보다 환하고 밝게. 그리고 행복하게.

“부디, 결혼해주세요.”

놀란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뻣뻣이 굳은 몸을 끌어안는다. 다시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낸다. 여기서 더 울었다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테니. 하, 하하. 짤막하게 끊어 웃던 미츠이가 미야기를 꽉 끌어안는다. 그 압력에 숨이 막혀오면서도 떨어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고마워, 미야기.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됐어요. 그 말에 미츠이는 억울한 듯 대꾸한다. 날 못 믿는 거야? 정말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 미츠이에 미야기가 키득거린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미츠이의 반응이 재밌었으니 그저 가만히 안겨있기만 했다. 한참 말을 늘어놓던 미츠이는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미츠이 씨? 미야기. ……사랑해. 그러면서 얼굴 곳곳에 입술을 꾹 내리누르는 미츠이에, 미야기는 웃었다. 저도 사랑해요.

이미 미츠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야기의 평생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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