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루트 길드의 감자 길드장님
연애 감정을 가진 모브 시점에서 본 자캐의 어쩌구...
* 들어가기 전에
본 연성은 백 퍼센트 날조입니다. 곽에게 연애감정을 품은 모브는 없으며 루트 길드는 생존 및 구조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로로 신입 길드원이 가입하지 않습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__)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한다는 경험이라는 것은 머리에 연애할 생각 밖에 없는 사람들의 허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애란 시간과 감정 등의 노동력을 투입해야하는 일인만큼 상대방의 모든 조건을 따져가면서 효과적으로, 신중하게,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한다고 말이다. 박 군은 그러니까, 자기가 그런 대중문화 속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르러 박 군은 가능하다면 누구든지 붙들고 물어보고 싶었다. 공략 실패가 분명해지고 점차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에 ‘이제 괜찮습니다, 안심하십시오.’ 하고 다정하게 다독이는 목소리를 듣는다면, 말 뿐만 아니라 정말로 안심시키듯이, 그리고 이쪽을 구조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스스로가 더 기쁜 것처럼 활짝 웃어보이는 얼굴을 본다면, 다친 자신을 업어 묶고 출구를 향해 걸어나가는, 그 흔들림 없는 등 위에 놓여 가까이에서 자신을 구조한 누군가의 온기와 심장박동과 숨소리를 선연하게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냐고.
“솔직히 완전 속았거든요.”
억울하다는 듯 침낭에 몸을 묻고도 다시 벌떡 일어날 것 같은 기세로 박 군이 하는 말에, 옆자리에 누운 부길드장은 아예 그를 향해 몸을 돌려 눕고는 낄낄 웃었다.
“그런 녀석들 종종 있지. 실망했냐?”
“일단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거든요.”
그래, 완전히 속았다.
그 든든한 등과 환하게 웃는 얼굴이 내내 아른거리다 못해 병상에 누워 꿈까지 꾸었던 어느날 헌터 박 군은 결심했다. 루트 길드에 들어가자. 그래서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자. 그런 결심으로 치료에 집중해 퇴원을 하자마자 입단 신청서를 냈고 마침내 첫 루트 길드 정기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건강하게 다 나은 것을 보면 좋아해주려나, 그런 기대로 출발 날짜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 날 만난 것은,
일단 박 군의 기억 속에 있던 그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상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자는 옷이라고는 기능성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처럼 가까이 가고싶지도 않은 현란한 등산복 차림이었고, 직전까지도 일을 하고 온 듯 푸석한 얼굴에는 수염이 삐죽삐죽 제멋대로 멋없게 자라 있었으며, 소집 직전의 짧은 시간마저 알뜰하게 쓴 듯 담배 냄새가 퍽퍽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 속 다정 쾌남 구조대원 아저씨는 간 곳 없고, 후줄근한 동네 등산 아저씨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한,
“작네…?”
“뭐임마?”
분명 그 넓은 등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박 군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리몽당한 인상에 결국 그는 솔직하게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해버렸고 째려보는 눈빛과 함께 힐난도 돌아왔다. 못마땅하다는 듯 팍 구겨지는 인상이 사납기 그지없어,
저 기억하세요?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도 채 꺼내지 못하고 아까부터 살갑게 대해준 부길드장 뒤로 슥슥 숨는 것이 고작이었다. 봐주자, 함만 봐주자. 신입이잖아. 마냥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부길드장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둘 사이를 중재했다. 자, 신입. 인사하고. 겨우 그런 말로 숨을 틔워주어 박 군은 어색하게 몇 번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혹시 형이라고 불러도….
너 몇 살이냐?
어렵사리 용기를 쥐어 짜낸 말에는 칼같이 경멸의 시선이 돌아왔으므로 결국 박 군은 준비했던 모든 말이 무용해지는 것을 느끼며 쓸쓸히 던전을 향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만 떠들고 자라. 캠프 주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크, 또 혼날라 싶은 기분에 박 군은 얼른 목을 움츠렸다. 주변을 돌아보는 묵직한 발소리가 이내 끊겼다. 휘적휘적 뒤집는 모닥불에서 오르는 불티를 보다가 박 군은 소근소근 목소리를 낮췄다.
“불침번은 계속 길마님이 서신대요?”
잘 준비를 하는 양 길게 하품을 하고 바로 누우며 부길드장은 다소 성의 없이 대답했다. 어어, 하는 소리는 하품 소리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의 무성의함이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벌써 며칠이나….”
“한 달까지는 괜찮던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이 참에 해보라고 할까?”
으아아, 아뇨. 질색하는 박 군의 목소리에 부길드장은 큭큭 웃고 나직히 말을 이었다. 그런 능력이니까. 안 자고 안 먹고 그 정도까지는 버틸만하대.
지치더라도 모두가 조금씩 지치는 것보다 한 사람만 지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거지, 공략에 있어서는. 졸음기가 섞인 대답에 박 군도 바로 누우며 불만에 찬 시선을 넌즈시 모닥불 쪽으로 한 번 던졌다. 그놈의 효율. 여기 와서 길드장 입을 통해 오 십 번도 더 들었을 말에 그는 입을 삐죽였다.
다정함은 간 곳 없고 철저하게 효율만 따지는 후줄근하고 퉁명스러운 헌터. 나는 저런 사람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하고 역시 한 눈에 반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허상이라고 박 군은 다시금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잠들기 전 불가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던전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시간 중 최소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 정도는 잠으로 사라지는 시간이다. 하루의 일부가 접혀있는 셈이다. 즉, 잠들지 않는다면 그 하루는 남들보다도 훨씬 길 것이다. 그것이 며칠동안 이어진다면 더더욱, 잠들지 않는 그는 남들과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접혀 사라지는 그 시간동안 홀로 깨어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노랗게 타는 모닥불 불빛이 우묵하게 그늘진 얼굴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박 군은 눈을 감았다.
던전 공략 막바지로 들어가면 전투가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벌써 몇 마리째인지 모르는 몬스터를 베어내며 박 군은 내리쳤던 검을 다시 거두었다. 그 짧은 찰나에도 시야 한 구석을 노리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보고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푸라기가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고 사라지는 지푸라기 병사를 보고 박 군은 더 늦기 전에 기력을 쥐어짜내어 그쪽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격에 얻어맞고 나뒹구는 적과 그의 사이로 곧 익숙한 모습이 비집고 들어왔다.
“일단 이쪽은 됐다. 물러서 있어.”
“아직…, 아직은 괜찮습니다!”
말 뿐만이 아니라는 것처럼, 박 군은 다시 일어나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몬스터의 몸에 칼을 꽂아 넣었다. 한 번 길게 몰아쉬는 숨 뒤로 자신의 것이 아닌 길드장의 작은 한숨이 따라붙었다. 언제나처럼 불만스럽게 삐뚜름한 입매에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물고, 그는 한숨 다음으로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을 덧붙였다.
“오른쪽 어깨.”
“예?”
담배 때문에 웅얼거리는 발음인데도 묘하게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덜 나았어. 한 석 달은 더 조심해.”
박 군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다른 쪽 전투 상황을 보고 합류하기 위해 길드장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기억하고 있었네요? 조금 멀어진 등에 대고 그렇게 더듬더듬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째 보아온 시큰둥한 등만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누가 술 가져왔어.”
“신입도 있으니까 한 잔만 봐주라, 이제 곧 클리어잖아.”
“신입한테 아주 좋은걸 가르치는군.”
나른하게 오르는 취기를 느끼며 박 군은 며칠사이 익숙해진 옥신각신에 실없이 웃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완고하게 꾸짖고 있는 길드장은 이내 몇 번 더 말이 오가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부길드장의 손을 들어줄 것을 지금의 박 군은 안다. 짜증 섞인 투덜거림과 한숨과 함께, 이미 마셔버린 것을 어쩌겠냐는 듯. 그 어쩔 수 없는 승인에 그럼 또 부길드장은 조금 다른 이야기로 그의 언짢은 기분을 풀어줄 것이다. 가령 지금처럼.
“기타 쳐주라, 현철아.”
배시시 웃음과 함께 건넨 부길드장의 청유가 곧 주변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노래해, 노래해. 그렇게 일제히 웃으며 박수까지 박자 맞춰 치는 모습에 박 군도 하릴없이 그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이 화상들. 안 하겠다고 버티는 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온갖 타박을 하던 길드장은 결국 인상을 벅벅 쓰며 짐을 뒤졌다. 손때 묻은 통기타의 모습에 환호와 박수가 번졌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의 소리 사이로 어딘가 쓸쓸하게 들리는 기타 선율이 이어졌다. 저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거나 그 연주를 경청하는 사이에서, 박 군 또한 두터운 손 끝으로 현을 짚는 그림자 드리운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무뚝뚝하고 그의 연주처럼 고요하게 쓸쓸해보이는 얼굴. 그런 얼굴의 당신도 던전 밖에서는 남들처럼 웃을 때가 있을까. 울 때는 또 있을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하게 잠든 얼굴을 보일 때가 있을까.
칭찬을 바라는 것도, 무심하게 던지는 친절을 돌려받는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세상에서 오직 효율적인 것만 가치있는 것처럼 굴면서,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가장 비효율적인 일을 택한 사람. 그 비효율적인 일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음을 상기하며 박 군은 술을 쭉 비운 종이컵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아, 큰일났다. 이런 걸 보고싶다고 생각하는걸 보면……. 나는 역시 당신이 좋은가보다.
애초부터 쓴 적도 없었던 탈퇴서를 마음으로 접어 종이컵과 함께 불길에 던져 넣으며 박 군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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