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인 토가사쿠

축제에 갈 뿐인 토가사쿠

토가사쿠

“축제?”

“네! 옆 마을에서 열리는 건데, 매년 굉장해요!”

니레이는 자신의 수첩을 펼쳐 그 축제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규모도 크고, 불꽃놀이도 이 근처에서 가장 화려하게 하기로 유명해요! 다른 마을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야시장이 활발하고요. 물론 우리 마을 축제가 아니니 꼭 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모처럼이니……. 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는 바람에 니레이는 더 신이 났다.

“나도 작년에 가봤어. 유명할 만하더라~”

“그렇죠! 요즘은 인터넷을 타고도 화제라고요. 지역 신문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래요!”

“내도 봤다. 홍보 전단도 여기저기 뿌리드만! 올해는 불꽃놀이도 더 크게 한다고 말이제.”

“맞아요! 평생 불꽃놀이만 만든 장인을 불렀대요. 섭외하기 엄청 어려운 사람이라던데, 굉장하죠!”

“헤에, 재밌을 것 같네~”

“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가보고 싶어요!”

동그란 두 눈이 반짝였다. 1반 전체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친구가 저렇게 말하는데 싫다고 할 사람은 없었다. 기대에 화답하듯 한 명씩 입을 열었다.

“내는 좋다! 장인의 불꽃놀이라면 거짝에도 멋진 미학이 담겨 있을 것 같고! 꼭 보고 싶구마!”

“불꽃놀이란 말이지~ 재밌겠는걸.”

“물론 스기시타랑 사쿠라도 갈 거지? 반 단합으로 다 같이 놀러 간다고 하면 우메미야 씨도 기뻐하실 테니까~”

마지막 호명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메미야를 언급한 이상 스기시타가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상대로 스기시타는 잠시 머뭇거렸을 뿐,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스오가 방긋 웃는 얼굴로 사쿠라를 보았다. 사쿠라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죄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당연하리란 기대를 품은 눈빛들엔 어떤 힘도 쓸 수가 없다. 멋쩍게 시선을 피하며 사쿠라는 간신히 대답을 뱉었다.

“가, 가든가…….”

“그럼 결정됐네요! 학교 끝나고 상점가 앞에서 만나요!”

한층 밝아진 낯으로 니레이가 말했다. 그렇게 해산하려나 싶을 때, 스오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하하, 다들 유카타 입은 모습 볼 수 있겠네.”

유카타? 한 단어에 꽂힌 이들이 재빠르게 서로 눈치를 살폈다. 남고생들끼리 우르르 몰려가는 데에 유카타를 떠올리는 사람은 보통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입어볼까? 싶어진다. 혹은 입자고 주변을 설득하는 사람이 나오거나. 아니나 다를까, 니레이와 츠게우라가 반색하며 나섰다.

“유카타 좋네요! 모처럼이니까 제대로 챙겨입는 것도 나쁘지 않죠!”

“글체!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는 것도 누군가에겐 미학이겄제! 그라믄 우리도 입어볼까?”

“뭐어?”

다른 사람들이 다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축제에 가는 거니 기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웅성거림은 하나둘 수긍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미안, 나 집에 맞는 유카타가 없어.”

그런데 그때 안자이가 두 손을 모으며 사과했다. 중학생쯤부터 안 입었거든~ 그러자 몇몇이 따라 말을 더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도~ 고등학생 정도 되면 축제라도 편한 복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니레이는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되는 사람만 유카타를 입고 어려울 경우엔 편한 복장으로 모이기로 결정되었다. 교실은 금세 축제에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래도 다들 같이 가준다니 기뻐요! 저기, 스오 씨랑 사쿠라 씨도 유카타 입으실 건가요?”

“응, 다들 맞춰 입고 싶은 거라면 입을게.”

“오……! 사쿠라 씨, 사쿠라 씨는요?!”

니레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사쿠라를 불렀다. 스오 옆에 서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사쿠라는 흠칫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라고?”

“유카타요! 아, 혹시 없는 거라면 사쿠라 씨 한 분 정돈 빌려드릴 수 있어요. 저 사이즈가 안 맞아서 못 입는 게 있거든요!”

전에 가봤던 사쿠라의 집을 생각하면 유카타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여벌 옷도 달리 없다고 들었는데, 그 휑한 집에 유카타가 있을 리 없다. 니레이의 예상이 맞았는지 사쿠라는 얼굴을 옅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쩔 수 없지…… 하는 중얼거림은 덤이었다.

 

  ✴ 

 

 “우와, 사람 진~짜 많네요!”

다문중 1학년이 옆 마을에 도착한 건 축제가 한창 시작될 무렵이었다. 노점이 끝도 모르게 늘어서 있고, 그 길을 따라 사람이 가득했다. 이 정도 인파라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행인들에게 치여서 금방 일행을 놓칠 것 같았다.

“사람 억수로 많네. 서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겄다.”

“핸드폰 전파도 잘 안 터지는 모양이야. 헤어지면 연락하기도 쉽지 않겠는걸.”

“앗, 정말이네요. 다 같이 다니기도 어려울 테니 아예 합류 지점을 정해둘까요?”

“응. 그게 좋을 것 같네.”

니레이가 언제 챙겼는지 모를 축제 안내 팸플릿을 꺼내 들었다. 오오, 주변에서 짧게 감탄했다. 팸플릿을 펼친 니레이를 중심으로 다문중 1학년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길 한복판에 덜컥 남고생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 몸을 부딪쳐가며 제 갈 길을 갔다. 옆으로 빠지기도 어려운 인원이라 니레이는 서둘러 팸플릿을 읽어나갔다.

“아, 여기! 이 언덕 공원에서 모이는 거 어때요? 불꽃놀이 할 때쯤 올라오면 만나기도 쉽고 불꽃놀이도 잘 보일 것 같아요.”

“괜찮은데? 그렇게 하자.”

“다들 알았제? 언덕 공원이다! 불꽃놀이 시작하믄 거기로 모이는기다!”

“오케이, 알았어!”

“접수!”

집합 장소를 확인한 아이들이 대여섯 명씩 뭉쳐 흩어졌다. 팸플릿을 넣은 니레이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따로 행동하게 되면 다 같이 온 보람이 없어진다. 물론 그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덜어지진 않았다.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스오가 니레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쩔 수 없지. 우리도 구경하러 갈까?”

“네에, 그렇죠. 사쿠라 씨, 가요…… 어?”

니레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까지 서 있던 사쿠라가 보이지 않았다. 사, 사쿠라 씨? 당혹감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는 군중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스오도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익숙한 검고 흰 머리카락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자리를 뜨는 친구들과 인사하던 츠게우라와 키류가 둘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꼬, 뭔 일 있나?”

“츠게우라 씨! 사쿠라 씨가 안 보여요!”

“먼저 다른 애들이랑 움직인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말도 없이 혼자 움직인 거면…….”

“에이, 애도 아이고. 사쿠라도 사나이인데 괜찮겄제! 별일 없을 기라!”

걱정 가득한 얼굴로 사쿠라를 찾는 니레이에게 츠게우라가 말했다.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만큼 집합 장소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면 이따 만나기도 힘들 텐데, 어쩌지. 니레이가 좀처럼 걱정을 덜지 못하자 옆에서 스오와 키류가 그를 다독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선 핸드폰으로 연락해보자.”

“응, 지금은 그게 최선일 것 같네~.”

“아……. 네! 그러면 전화를 해볼게요.”

니레이가 핸드폰을 열어 사쿠라의 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걸어 신호음이 가는 걸 몇 차례 듣는 동안, 네 사람은 길 가장자리로 옮겨왔다. 가장자리 한구석을 꽉 채운 상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도 사쿠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와 함께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니레이는 통화를 끊었다.

“안 받네요. 전파가 약해서 그런지 연결이 잘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메일을 보내두는 게 낫겠어요.”

“하는 수 없네. 일단 우리도 이동해볼까. 계속 여기 서 있을 순 없으니까.”

“그게 좋겠다. 오히려 돌아댕기다 마주칠 수도 있으니께.”

그 이상 좋은 수는 딱히 없었다. 니레이가 사쿠라에게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언덕 공원에서 모이기로 했단 메일을 보낸 뒤, 네 사람은 다시 인파에 섞여 축제 구경을 시작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먹거리와 구경거리가 그들을 반겼다.

  

 

“뭐야? 다 어디 갔어?”

사쿠라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는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파에 놀라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일행과 떨어진 모양이었다. 교복을 입고 왔으면 녹빛이 우글거려 알아보기라도 쉬웠을 텐데, 다들 사복이나 유카타를 입은 탓에 눈에 띄는 점이 없었다. 평소 이목을 끄는 헤어스타일도 별별 사람이 다 모이는 판에선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염색모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었으나, 그중 후우린은 한 명도 없었다.

이대로 서 있기도 뭐하니 일단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녀석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사쿠라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양옆에서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잔뜩 흥분해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이런 식으로 정신없는 곳을 돌아다니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축제에 올 생각을 안 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고 있어서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처럼 다 같이 오자고 하기에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제 실수라도 일행과 떨어져 혼자가 되니 그때 생각이 났다. 차라리 길가 옆으로 빠져 있는 게 나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 앞에서 오던 사람과 부딪혔다. 예상치 못한 단단한 몸통이 사쿠라를 그대로 튕겨냈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사쿠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이대로면 넘어지겠다 싶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려 할 때 누군가 손을 덥석 잡았다. 어? 붙들린 손에 의지해 중력을 버텨냈다.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사쿠라?”

“토가메?”

짧게 흔들리는 흑발과 언젠가의 녹음綠陰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빛. 소란 속에서 딱 한 사람의 얼굴만 시야에 가득 차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읏챠.”

힘주어 당기자 사쿠라의 몸이 덜렁 딸려 올라왔다. 바로 세워지면서 어정쩡하게 떴던 발이 땅에 닿았다. 손에 닿았던 온기가 떨어졌다. 토가메가 멋쩍은 낯으로 사쿠라를 살폈다.

“이런 데에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에. 다친 데는 없어?”

“어, 응. 멀쩡해.”

사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다친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한 토가메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평소처럼 사자두련의 점퍼를 걸친 상태였다.

“유카타 입었구나. 잘 어울리네에.”

“윽……. 이, 이건 니레 녀석이 다 같이 입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응, 좋아 보여서 말한 거니까아…….”

다급하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사쿠라를 보며 토가메가 작게 웃었다. 짙은 남회색에 흰 스트라이프 패턴이 포인트인 유카타는 처음부터 사쿠라의 것인 양 딱 맞았다. 사쿠라는 유카타 같은 거 안 입을 줄 알았는데, 하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다 들어갔다. 지금 말했다가는 가뜩이나 부끄러워하는 사쿠라가 화라도 낼 것 같았다. 사쿠라는 대충 흘려버렸지만, 잘 어울린다고 말한 건 진심인데. 괜히 더 자극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게 나을 듯했다. 토가메는 화제를 찾다가 사쿠라의 양옆이 빈 것을 깨달았다.

“여기는 혼자 온 거야?”

“아니, 우리 반 녀석들이랑……. 너는?”

“쵸지네랑 같이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흩어져버렸어.”

“그러냐……. 아무튼 잡아줘서 고맙다.”

그때 뒤쪽에서 사람들이 비켜달라며 두 사람을 밀고 지나갔다. 아까처럼 넘어지진 않았지만, 몇 걸음 밀려나 하마터면 금세 둘이 떨어질 뻔했다. 계속 사람이 몰려드는 걸 본 토가메가 말했다.

“후우린을 찾아야 하는 거면 같이 다닐까? 나도 쵸지네를 찾아야 하고, 여기 계속 서서 대화하긴 어려울 것 같고.”

“어? 어…….”

동행은 얼결에 결정됐다. 두 사람은 길 가운데에 서서 이야기하는 대신 사람들을 따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후우린도 사자두련도 계속 바깥쪽만 서성이진 않을 거다. 가만히 한 곳에 있어도 인파를 뚫고 여기까지 돌아오기 어려울 거란 토가메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마주칠 수 있을지는 토가메도 선뜻 추측할 수 없었다.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는커녕, 축제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걷는 중에 호객 행위로 산 링고아메를 건네며 토가메가 물었다. 연락은 해봤어어? 연락? 응, 핸드폰으로. 아……. 생각 못 했구나아. 모, 못할 수도 있지! 지금 할 거야! 괜히 성을 낸 사쿠라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열었다. 화면에는 신호가 약하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응? 이게 뭐지. 고개를 갸웃하며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보았지만, 이전 메시지만 뜰 뿐 새로 뜬 메시지는 없었다.

“아, 사쿠라도 그러네. 내 핸드폰도 먹통이 됐거드은.”

“어? 왜?”

“사람이 이만큼 많으니까아.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 통화가 안 되더라고. 문자도 잘 안될 거야.”

토가메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사쿠라의 핸드폰에 뜬 것과 똑같은 메시지였다. 그, 그럼 어떡해? 당황하는 사쿠라에게 토가메가 줄 수 있는 대책은 하나뿐이었다. 뭐어, 직접 찾아다녀야지.

 ✴

 

 축제는 커다란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골목까지 동원해 노점상을 열고 있었다. 가장 큰 길이 강가를 향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불꽃놀이를 진행한단 건 금붕어 낚시 노점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토가메와 사쿠라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후우린과 사자두련을 찾았지만, 그들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었다. 게다가 노점상에 말을 물으면 꼭 무언가를 팔거나 게임을 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양손 가득 먹을 것이나 경품을 들고 다녀야 했다. 사쿠라는 고기를 다 먹고 남은 꼬치를 야키소바가 있던 종이 그릇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대체 얼마나 더 돌아다녀야 하는 거야?”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에. 사람도 더 늘어나는 것 같고.”

토가메가 짧은 꼬치로 타코야끼를 찍어 사쿠라에게 내밀었다. 꼬치가 찍힌 구멍으로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왔다. 꼬치를 받아 호호 불고 입에 넣으니 바삭한 겉면과 부드러운 속이 어우러져 지친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맛있네. 후후, 그치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남은 타코야끼를 전부 나눠 먹었다. 종이 그릇이나 꼬치는 길 가장자리에 있던 쓰레기통에 전부 버렸다.

“오, 꼬마야! 너 후우린 맞지?”

다음 골목을 찾아보기 위해 걷던 중, 누군가 사쿠라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상점가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 있었다. 크로켓집 사장이었다. 다른 마을에서도 올 정도로 야시장이 크다더니, 아예 다른 마을 가게들도 점포로 참가한 모양이다. 토가메가 옆에서 눈을 깜빡였다.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하면 알긴 하는데……. 두 사람이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사장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거참 섭섭하게 말하네. 옆은 친구인가 보지? 크로켓 가져가라! 오늘 좀 많이 들고 왔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의 직원이 크로켓을 척척 포장했다. 거절할 틈도 없이 사쿠라의 손에 크로켓 두 개가 쥐어졌다. 여기서까지 상점가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을 줄 몰랐던 사쿠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누……, 누가 달랬냐고! 그보다 다른 녀석들은 못 봤어?! 1학년……!”

“다른 녀석들?”

사장과 직원이 서로를 마주 봤다. 먼저 무언가를 떠올린 건 직원이었다. 그가 사장에게 츠게우라, 키류 같은 익숙한 이름을 대자 사장도 뭔가 생각난 듯 손바닥에 주먹을 맞부딪혔다.

“아아, 아까 봤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네. 널 만나면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거든.”

“엉? 날 보면?”

“그래, 그 녀석들도 널 찾는 거 같던데.”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언덕 공원 쪽으로 오라더라.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뒤따라온 말은 분명 사쿠라를 향한 전언이었다. 토가메와 사쿠라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곧 사장과 직원에게 인사하고 돌아 나왔다.

“집합 장소를 알게 돼서 다행이네에. 이제 어쩔 거야?”

“응?”

“불꽃놀이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아. 미리 가 있으려고?”

“글쎄…….”

다들 그쪽으로 온다면 굳이 더 돌아다닐 이유가 없긴 하다. 그 외에 달리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사쿠라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토가메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고민이 끝나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모처럼인데 제대로 구경하고 가는 건? 일 년에 한 번뿐인데 아깝잖아아.”

“어? 음…….”

하기야 이것저것 사 먹긴 했어도 축제를 즐겼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같은 반 녀석들을 찾기 위해 점포에 말을 물을 때마다 얼결에 산 게 대부분이었으니 당연했다. 사쿠라가 머뭇거리는 걸 보던 토가메는 언제 샀는지 모를 고양이 가면을 그의 머리에 얹었다. 엑? 사쿠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 머리에 쓰인 걸 만졌다.

“아니, 이건 또 언제……. 넌 어떡하려고? 너도 사자두련 녀석들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

“아……. 실은 난 아까 잠깐 연락됐어.”

그리고 그건 아까 타코야끼 가게에서 덤으로 받은 거어.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뭐야, 타코야끼 가게에서 가면을 왜 줘? 황당해서 물어보자 토가메가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아. 주길래 그냥 받았어. 같은 속도인데도 사쿠라 쪽이 반걸음 정도 늦었다. 거기에 맞추듯 토가메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 사쿠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가게네. 그러게에. 토가메가 웃었다.

“그보다 연락이 됐다고? 언제?”

“전화는 아니고 메시지가 와서. 이쪽도 언덕 공원으로 오라더라아.”

“뭐야, 우리랑 같네.”

“으응. 그러니까 같이 움직이면 어떨까 해서.”

비는 시간도 같고, 목적지도 같은 거얼. 그 말도 맞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굳이 혼자가 될 필요도 없고, 시간 때우기엔 혼자보단 둘이 낫다. 툭툭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들을 피해 옆으로 한 발짝 붙어 섰다. 사쿠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은 일행을 찾느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야시장을 차근차근 돌았다. 얇은 종이 그물로 금붕어를 잡다가 물고기에게 화를 내고, 길거리 흔한 솜사탕을 나눠 먹었다. 토가메는 의외로 다트 던지기에 소질이 있었다. 그는 어렵잖게 따낸 고양이 인형을 사쿠라에게 선물했다. 뭐야, 왜 날 줘? 사쿠라랑 닮은 것 같아서어? 이……, 이거의 어디가?! 받는 사람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미지수다.

분명 한 바퀴 돌았던 곳인데도 목적이 달라지니 새롭게 느껴졌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어도 불편하지가 않았다. 토가메가 이상한 콧수염 가면을 썼을 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내내 걸어 다녀 피곤할 만도 한데, 마음이 들떠 힘든 줄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밌었다. 혼자 움직였다면 몰랐을 테다.

골목 하나를 빠져나올 즈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슬슬 불꽃놀이가 시작될 것 같았다. 우리도 슬슬 가야겠네에. 두 사람은 인파로 이루어진 물결을 가로질러 공원으로 향했다. 서로 놓치지 않도록 거리를 좁힌 채였다.

경사가 낮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니 한적한 공원이 나왔다. 이쪽에도 불꽃놀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큰 길가보다는 확연히 수가 적었다. 이 정도면 합류 지점으론 안성맞춤이다. 두 사람은 제 친구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안 보이는데.”

“아직 안 온 거 아닐까아.”

토가메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쵸지의 이름이 들렸으니 사자두련의 두목일 거다. 사쿠라의 핸드폰에도 수신되지 않던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니레이와 스오가 계속 연락했던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붙들고 고군분투하는 동안 토가메가 통화를 끝냈다. 후우린은 어디래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쿠라는 알림이 멈추기를 수 초간 더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해 내용을 확인하니 자신들은 이제 공원에 올라갈 거란 연락이었다. 이것도 십여 분 전에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것이다. 사쿠라는 글자 그대로를 토가메에게 전했다.

“쵸지네도 이 앞이래. 비슷하게 오겠네에.”

“어. 아마 곧…….”

그때 강가 쪽에서 밝은 빛이 쏘아 올려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며 하늘이 반짝였다. 와아, 멀지 않은 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하늘을 몇 번이고 수놓는 눈부신 광채. 암흑에 새겨지는 불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쿠라는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와…….”

“사쿠라 씨!”

“카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니레이와 다른 아이들이 다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고, 반대편에선 사자두련이 몰려왔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별수 없이 사쿠라는 토가메에게 인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

퍼엉! 한 번 더 불꽃이 터지며 강렬한 붉은 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짙은 녹음에 얼핏 노을이 낀 것 같았다. 어……? 기시감을 느끼기 전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사쿠라 씨, 늦어서 죄송해요!”

“사쿠라! 혼자 괜찮았나!”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사쿠라를 감쌌다. 아니, 잠깐! 흔들지 마! 당황해 내지른 말은 폭죽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 탓에 사쿠라는 하마터면 자리를 뜨려는 토가메를 놓칠 뻔했다.

“엇, 야, 토가메!”

분명 친구들에게 지르는 고함은 죄 빛에 잡아먹혔는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선명했다. 토가메에게도 닿았는지 그가 이쪽을 돌아봤다. 사실 대단한 말을 하기 위해 부른 건 아니다. 그래도 평소 해본 적 없는 말을 하려니 쑥스러움이 앞서 얼굴이 붉어졌다. 열 오른 얼굴이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불꽃의 빛으로 착각되거나.

“다, 다음에 또 놀아!”

눈을 깜빡이던 토가메가 미소 지었다. 인사하는 손짓에 마주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저 녹빛이 퍽 익숙하게 느껴졌다. 순간 느껴졌던 기시감은 착각 같았다. 사쿠라는 마음 편히 웃었다. 펑, 다시 한번 불꽃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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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게우라 대사에 지인 분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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