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인 토가사쿠

온천 여행을 갈 뿐인 토가사쿠

토가사쿠

“당첨, 당첨입니다!”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호했다. 사쿠라는 얼떨떨한 낯으로 통에서 굴러나온 구슬을 바라봤다. 손톱만큼 작은 구슬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어느 모로 보나 금색이다.

“운이 좋은걸! 금색은 1등이라고!”

이전에 도와줘서 고맙다며 공짜로 경품 응모를 권한 상인이 사쿠라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눈에 띄게 경직되어 있던 사쿠라가 흠칫 놀랐으나, 상인은 호쾌하게 웃을 뿐이었다.

“뭐, 뭔데?! 1등이 뭐 어쨌다고?!”

“하하, 실감 나지 않아서 그래? 봐, 금색 구슬을 뽑으면 온천여행권을 준다고! 그것도 최고급 료칸의!”

그는 상품 목록을 다시 보여주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그가 가리킨 가장 윗줄에는 금색 구슬 그림과 함께 ‘최고급 온천여행 패키지 2인권’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최고급? 온천여행? 머릿속이 뱅글뱅글 돈다. 추첨 응모가 뭔지는 안다. 당첨은커녕, 응모해본 경험도 없을 뿐이지.

“정말 이걸 준다고?”

“그렇다니까. 자, 이게 당첨권이야.”

상점가 사람들에게 받은 온갖 선물에 종이 티켓 두 장이 추가되었다. 구경꾼들에게 축하받으며 인파를 빠져나온 사쿠라는 손끝에 들린 당첨권을 보았다. 온천여행 같은 거, 가봤을 리가 없는데.

 

 

“그래서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던 거구나아.”

“그, 그래! 나쁘냐!”

“아니이, 그런 건 아니고.”

토가메가 작게 웃었다. 사자두련과의 경계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친 토가메는, 사쿠라가 무언가 고민한다는 걸 눈치챈 사람처럼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가 근처에 나란히 서서 사쿠라가 받은 사보텐 빵을 먹으며 둘은 ‘최고급 온천여행 패키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쿠라는 단 한 번도 이런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경품 응모 같은 걸 하려 했다가는 응모권을 훔친 것 아니냔 의심부터 받아야 했고, 같이 갈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땐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가기도 한다는데, 사쿠라에겐 데려가 줄 어른이 없었다. 그러니 여행 패키지에 당첨되어봤자 난감하기만 한 거다. 일단 받았으니 가기는 가야겠고, 온천이 있다는 곳의 지명은 처음 들어 생소하고, 당첨권은 정확히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고. 뭘 먼저 해결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게다가 누굴 불러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2인권’이라는 걸 보면 누군가를 데려가야 하는 듯한데, 스오나 니레를 부르자니 한 명만 부르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애초에 온천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직접 물어보는 건 좀 멋쩍다. 반 녀석 중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첨권을 양도할 수도 있단 건 생각지도 못한 탓에 사쿠라는 제 몫의 여행 티켓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머리를 싸맸다.

“가자고 하면 누구든 같이 가주지 않을까아.”

“그런가……?”

그러던 중에 토가메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은 토가메는 어느 정도 사쿠라의 고민을 이해했다. 친구가 많으면 한 명만 선택해야 할 때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 사쿠라는 그렇게 표현한 적이 없지만, 선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가질 미안함을 고쳐 말하자면 부담이란 단어가 맞을 테다. 선택이라는 건 남은 쪽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으니까. 이대로면 사쿠라는 누구도 고르지 못하고 온천여행도 날려버릴 듯했다.

“아니면 나랑 가든가?”

“엉?”

사쿠라가 돌아봤다. 토가메는 나른한 웃음을 띤 채 사보텐 빵을 한 입 뜯어먹었다. 입에 넣은 것을 전부 삼킨 다음에야 토가메가 덧붙였다.

“온천, 좋아하거드은.”

거짓말이 아니다. 일본 내를 여행한다면 온천에 가고 싶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최고급 온천이라면 꽤 근사하겠지. 온천여행 패키지에 당첨됐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내심 부럽기도 해서, 토가메는 제법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차피 후우린의 누구와도 가지 못하겠다면 후우린이 아닌 사람하고 가는 건 어떠냐는 거지이. 사쿠라가 괜찮다면의 이야기지만.”

그 말은 사쿠라가 토가메를 재고하기에 충분했다. 사쿠라는 빵을 마저 씹으며 고민에 빠졌다. 물론 후우린이 아닌 사람과 간다면 그건 그거대로 다들 섭섭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를 콕 집는 것보단 낫지 않나……. 게다가 본인이 온천을 좋아한다며 말을 꺼냈는데, 면전에서 거절하긴 미안하다. 길지 않은 논리를 통해 결론을 내린 사쿠라가 물었다.

“진짜 괜찮아? 나랑 가는 건데?”

토가메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친구랑 가는 거니까 더 좋지.”

 

 

 

 

당첨 패키지는 괜히 1등 상품이 아니었는지, 교통편까지 지원됐다. 익숙지 않은 사쿠라를 대신해 토가메가 예약을 전반적으로 모두 알아보았는데, 마침 돌아오는 주말에 공실이 있었다. 공짜인 만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처음 친구와 해보는 여행 일정으론 나쁘지 않았다.

물론 주말이 오기 전 후우린 친구들에게 여행 사실을 들키긴 했다. 후우린의 상점가에서 있던 추첨인 만큼, 다른 사람들 귀에도 쉽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처음 사자두련의 토가메와 같이 가기로 했다는 말엔 다들 아쉬운 티를 냈지만, 스오와 니레가 먼저 잘 다녀오라며 사쿠라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다음엔 우리끼리 가자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건 의외로 츠게우라였다. 안자이도 기념품을 사 오라며 옆에서 거들었다.

며칠 뒤 사쿠라는 간소하게 싼 짐을 챙겨 들고 토가메와 함께 전철에 올라탔다. 사람 가득한 주말 전철은 솔직히 불편했다. 차를 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리저리 치이며 넋두리하는 토가메에게 사쿠라가 물었다. 뭐야, 너 운전할 줄 알아? 못하지, 면허도 없어. 아, 그러냐……. 실없는 대화에도 짜증은 나지 않아 신기했다.

3시간가량 전철을 갈아타며 이동하니 료칸 근처라는 처음 보는 역에 도착했다. 역사에서 나오니 넓게 트인 하늘과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산맥이 두 사람을 반겼다. 목적지가 같아 보이는 여행객 몇몇은 료칸 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료칸인데, 방에서 노천탕을 즐길 수 있대.”

출입구에 비치되어 있던 홍보용 팸플릿을 들고 온 토가메가 료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료칸 인근의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노천탕이 꽤 근사했다. 팸플릿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정말 여행을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어쩐지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사쿠라는 평소보다 더 크게 뛰는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토가메가 이끄는 대로 료칸 행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짐 푼 다음엔 어쩔까? 마을도 잘 꾸며놨다고 하더라아. 아니면 바로 온천에 들어갈 거야? 식사부터 해도 된대애.”

그때 갑자기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봤다. 금세 상황을 파악한 사쿠라의 낯이 새빨갛게 익었다. 생각해보니 나오는 것에 정신이 팔려 뭘 챙겨 먹을 생각을 못 했다. 웃으려는 토가메를 주먹으로 마구 쳤다. 우, 웃지 마! 아니, 미안, 놀라서…….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받아내며 토가메가 말했다. 가면 밥부터 먹어야겠네에. 사쿠라도 고개를 푹 숙이며 동의했다. 어엉.

얼마 안 가 버스가 멈췄다. 짐을 들고 내리니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 손님을 맞이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확실히 사람이 많다. 둘은 얌전히 순서를 기다려 체크인하고 방을 안내받았다. 방으로 이동하며 이런 날은 대중탕보다 방에 딸린 노천탕을 선호한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다들 노천탕에 가셔서, 오히려 대중탕이 텅 비는 일도 있어요. 그런 날은 훨씬 넓은 탕을 혼자 사용할 수 있으니 또 다른 맛이 있지요.”

넌지시 건넨 팁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사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그리 와닿지 않았다. 애초에 온천이 처음이다. 노천탕과 대중탕의 차이 중 알아볼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탕의 크기 정도일 거다. 토가메도 그렇군요, 정도의 대답만 하니 사쿠라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널찍한 방에 들어선 순간 의문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포토스 정도 되는 크기의 넓은 다다미방이 두 사람을 반겼다. 이거 둘이 쓰는 방 맞아? 당황한 사쿠라가 이 방이 맞느냐 묻자, 직원이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의 반응을 보니 이런 식으로 묻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듯했다.

“체크인 시 요청한 식사는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직원은 마지막까지 투철한 서비스 정신과 함께 웃으며 방을 나섰다. 커다란 방에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은 식사를 기다리며 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방은 넓은 대신 단칸짜리였는데, 준비된 이부자리를 다 펴도 공간이 한참 남을 것 같았다. 편히 앉아 업무를 볼 수 있는 테이블이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고, 별도의 좌탁도 보였다. 화장실은 깔끔한 서양식이지만, 방과 분위기를 맞춰서 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은 있어도 관리를 열심히 한 게 티가 났다.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그만큼 방도 좋은 모양이었다.

“사쿠라, 여기 와 봐.”

한쪽 벽에 있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토가메가 사쿠라를 불렀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팸플릿에서 봤던 노천탕이 있었다. 문 옆으로 간단히 샤워할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는 버스를 타고 올 때 봤던 마을 전경이 보였다. 사쿠라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와아…….”

“직원분은 대중탕도 좋다고 했지만, 왜 사람들이 노천탕을 더 많이 이용하는지 알 것 같네에.”

토가메의 말대로다. 이런 풍경을 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실내에 있는 대중탕에 갈 이유가 없었다. 탕의 차이는 잘 모르지만, 멋진 경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사쿠라도 확실히 알았다.

“다른 녀석들도 오면 좋아했을 텐데.”

역시 후우린 친구들과 오지 못한 건 아쉽긴 했다. 온천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곳 풍경은 다들 마음에 들어 했을 것 같았다. 토가메도 사자두련 멤버들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합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식사 준비가 빨랐다. 내내 굶고 있던 사쿠라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문을 여니 직원이 들어와 좌탁에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바삭한 튀김과 샐러드,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된장국과 갓 구운 생선구이, 여러 반찬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다 드신 건 그대로 두시면 치우러 오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번에도 직원은 빠르고 정확한 안내와 함께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식사를 위해 좌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뜨겁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생선구이를 집는데 토가메의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토가메는 1인분을 시킨 사쿠라와 달리 음식을 추가로 더 시켰다. 온천에도 들어가야 하니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더니, 실제 나온 음식은 2인분을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시킨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자 토가메가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

“아니, 너……. 그거 다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아, 이거? 응, 적당히 시켰으니까아.”

‘적당히’치곤 밥도 산처럼 쌓여 있다. 정말 다 먹을 수 있는 게 맞을까, 의심스러운 것과 별개로 본인이 그렇다는 걸 따질 일도 아니다. 사쿠라는 토가메를 슬쩍 본 뒤 식사를 이어갔다. 토가메의 젓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토가메는 그 많은 양을 정말 다 먹었다. 조금 많다는 둥 군소리 하나 없이. 사쿠라는 제 밥그릇만큼 깨끗한 토가메의 그릇을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다 먹었네.”

“적당히 시켰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 많이 먹기가 취미거드은. 토가메는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지만, 사쿠라에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만큼 먹는 게 가능하다면 저 말도 분명 진심이다. 전에 옥상에서 다 같이 밥 먹을 땐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토가메를 새삼 다시 보며 젓가락을 내려놨다. 토가메도 식사와 함께 나온 녹차를 모두 들이켰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탕에 들어가는 건 좋지 않다는 토가메의 말에 두 사람은 소화 시킬 겸 산책을 나섰다. 마침 료칸 내에 산책로가 있었다. 산 중턱에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없는 환경을 고려해 만들어둔 듯했다. 산책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정원을 걷고 있자니 매일 같이 싸우는 날들이 꼭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싸움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후우린에 오기 전까지 싸움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후우린에 온 이후로도 싸울 줄 알기에 지키고 싶은 걸 지킬 수 있었다. 자신을 관철하고자 싸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항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걸 후우린에서 배웠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게 즐거운 일이란 걸 알게 됐다. 싸움을 통해 대화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단 것도 경험했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토가메가 그 증거다. 그렇게 얻은 평화로운 하루가 사쿠라는 싫지 않았다. 싸움 없이도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후우린의 시끌벅적함 대신 낯선 정적이 함께해도 나쁘지가 않았다. 전부 후우린을 선택해서 얻은 결과였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 정도 배가 꺼졌다. 시간은 1시간 반 정도가 지나있었다. 늘 혼자 산책했던 탓에 옆에 누군가 있으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편해서 놀랐다. 아마 요란스럽게 떠들기보다 소소한 대화만 주고받거나 말없이 걷는 시간이 많아서인 듯했다.

토가메는 싸울 땐 그렇게 묵직하고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평소엔 말투만큼이나 느긋한 녀석이었다. 가벼운 느낌은 없지만,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놈도 아니라 단둘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후우린 녀석들과 있을 땐 거의 매분 매초가 정신없는데. 토가메와의 시간은 혼자 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혼자가 아니란 느낌이 분명하게 들어 뭔가 이상했다.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방에 들어올 때쯤엔 해가 절반쯤 저물어가고 있었다. 노천탕으로 이어진 문을 열자 노을로 붉게 물든 산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두 사람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온천욕을 즐기기로 했다. 료칸에서 제공하는 샤워 물품을 챙기며 사쿠라는 노천탕 쪽을 힐끔거렸다.

이미 말했지만, 온천은 처음이다. 살면서 들어가 본 탕은 동네 대중목욕탕이 전부다. 여기서 사쿠라의 고민이 생겨났다.

어쨌든 무언가 다르니 온천과 목욕탕으로 구분이 된 걸 텐데, 겉보기엔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온천은 목욕탕과 이용 방법이나, 그런 게 다른가?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민망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와버렸다. 이제 와 토가메에게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사쿠라는 옷을 벗다 말고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응?”

토가메가 고개를 돌렸다. 사쿠라는 황급히 옷을 마저 벗는 척했다. 허둥지둥 바지를 내리는 사쿠라를 향해 토가메가 말을 걸었다.

“그냥 대중탕이랑 다를 것 없으니까아.”

“누, 누가 뭐래?!”

“후후, 그렇네.”

잘 모른다는 사실을 들켰단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히 소리 지르자, 토가메는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곤 먼저 씻겠단 말과 함께 노천탕으로 나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사쿠라는 더 성도 못 내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토가메 나름의 배려일 거다. 대중탕과 다를 것 없다는 말에 사쿠라는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는 맨몸에 수건을 걸치고 토가메가 나갔던 문으로 향했다. 빼꼼 고개를 내미니 샤워 부스 쪽에서 몸을 씻고 있는 토가메가 보였다.

밤이 되면 쌀쌀해지는 날씨였지만, 온천의 열기 때문인지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방 안으로 습기가 들어가지 않게 문을 닫고 몇 걸음 더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풀과 나무 담벼락이 옆 방과 이어진 길을 막고 있어 안정감이 들었다. 들리는 거라곤 저 멀리 어렴풋한 새 소리,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온천의 맑은 물소리가 전부였다. 사람 대신 자연이 온통 자신을 감싼 것 같아서 사쿠라는 기분이 묘해졌다.

“사쿠라도 씻어.”

그때 뒤에서 토가메가 다가왔다. 그도 젖은 몸에 수건만 걸친 상태였다. 사쿠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샤워 부스로 걸어가는 동안 토가메는 탕 안에 들어갔다. 좋네에, 늘어지는 목소리가 샤워 부스 너머로 들렸다.

간단히 샤워하고 나왔을 때도 토가메는 탕 안에서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사쿠라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다가가서 토가메 옆에 자리를 잡았다. 물이 일렁이는 걸 느낀 토가메가 감았던 눈을 떴다. 사쿠라는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런 모습으로 남과 함께 있는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그동안과 비슷하게 대화는 많지 않았다. 후우린이나 사자두련의 근황은 어느 정도 서로 알고 있고, 서로에 대해 캐묻는 타입도 아니라 크게 할 말이 없었다. 긴장을 풀 겸 아까 보았던 풍경을 다시 내다보았다. 산 아랫마을은 드리우는 어둠을 피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인파가 몰린 걸 보니, 이곳 료칸 손님 중 내려간 이가 꽤 있는 듯했다.

“사람이 많네. 우리도 가볼 걸 그랬나.”

“아쉬워?”

“그렇다기보단, 다들 가니까…….”

“아아. 그래도 우리는 1박 예약이니까, 이쪽을 즐기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아.”

하늘도 예쁘잖아. 토가메가 마을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올리니 언젠가 보았던 색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때 옥상에서 봤던 하늘과 비슷하다. 사쿠라는 어쩐지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싸움이 아니어도 즐겁다던, 말을 나누는 것도 꽤 재밌다던 누군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하긴 친구……랑 이런 걸 하는 건 처음이니까.’

옆을 힐끔거리니 나른하게 풀린 녹빛이 노을의 영향을 받아 붉게 물든 게 보였다. 저건 저기 산의 나무들과 같은 색이다. 사쿠라는 순간 그 색이 하늘보다도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아, 응.”

만족할 때까지 온천을 즐기고 나와 료칸에서 준비해둔 유카타를 입었다. 아직 뜨끈한 몸을 벽에 기대고 쉬려는데, 토가메가 무언가를 건넸다. 받고 나서 보니 익숙한 모양의 병이었다. 사쿠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또 언제 구해온 거야?”

“요 앞 복도 자판기에서 팔더라고오.”

전에 사쿠라가 병을 열지 못했던 걸 기억했는지, 이미 병 안에 구슬이 동동 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라무네를 마셨다. 차가운 게 목 안쪽에서 톡톡 터져서 시원했다.

라무네를 다 마신 뒤엔 각자 양치하고, 이부자리를 폈다. 그사이 해가 완전히 저물어 마을의 희미한 불빛만이 밖을 밝히고 있었다. 문 틈새로는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나란히 편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니 오늘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용히 하루를 보낸 건 난생처음 같았다.

‘그래도…….’

“있지, 사쿠라.”

“어, 어엉?!”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토가메 역시 누운 채로 고개만 사쿠라를 향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가 미소 짓고 있는 건 또렷하게 보였다.

“덕분에 좋은 온천을 즐겼네에. 데려와 줘서 고마워.”

“뭐, 뭣……. 그, 아니. 나도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 했고…….”

저도 모르게 이불을 코끝까지 올리자 소리가 먹혀들어 갔다. 사쿠라는 방 불을 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안 갔다.

“오, 온천. 좋아한다……며.”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아직도 익숙지 않다. 게다가 이건 무언가를 도와서 받는 감사도 아니다. 그저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해서 옆에 있던 사람을 부른 것뿐인데. 고맙다는 소릴 들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불을 잡아당기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고개는 놔둔 채로 시선만 천장을 올려다봤다. 옆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응, 좋아하지이. 그래도 사쿠라랑 같이 와서 더 즐거웠어.”

그 말까진 사쿠라가 감당하기 좀 버거웠다.

“너, 너는 뭔 그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며 사쿠라가 언성을 높였다. 숨기려 해도 이미 얼굴에 열이 바짝 오른 채였다. 아니, 오히려 이불에 묻혀서 더 열을 받은 게 분명하다. 코토하나 후우린 친구들이 있었다면 사쿠라가 또 부끄러워한다며 놀려댔을 게 뻔했다.

갑자기 일어난 사쿠라에 놀라 덩달아 몸을 일으켰던 토가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씩씩거리는 사쿠라를 바라보다가, 곧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후, 후후……. 하하하!”

“뭐, 뭐야! 웃지 마!”

“아~ 미안, 미안.”

사과해도 이미 한바탕 웃어버린 뒤라 사쿠라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사쿠라는 분풀이처럼 토가메를 향해 베개를 던졌다. 주먹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징이었다. 물론 폭신한 베개 따위가 토가메에게 유효타로 먹힐 리는 없었다. 토가메가 아무렇지 않게 베개를 돌려주는 탓에 사쿠라의 목소리가 배는 더 커졌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엉켜 바깥의 풀벌레 소리를 잠재웠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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