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인 토가사쿠

빵을 살 뿐인 토가사쿠

토가사쿠

특징이라곤 없는 주택가가 늘어진다. 한참을 걸었으나 원하는 곳은 나오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지도 못한다. 애초 익숙과 거리가 먼 동네다. 토가메는 곤란한 낯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고가를 넘어 사자두련의 구역을 벗어난 이유는 대단치 않다. 전날 쵸지가 비 오는 날 나눠 먹었던 단팥빵 이야기를 하며 갓 구운 것의 맛을 아직 모른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을 뿐이다. 함께 와도 좋았겠지만, 우연히 고가 옆을 지나다 떠올린 것이라.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걸음을 옮겨 온 게 지금이다. 빵집이라면 상점가에 있겠거니 했는데, 상점가는커녕 편의점 하나 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할 줄은 몰랐다. 와본 동네라 괜찮을 줄 안 것이 우습게 됐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길을 썩 잘 찾진 못했다. 후우린의 히이라기를 만나기 전까지 다 함께 핸드폰을 붙들고 헤매던 신세였으니까. 그래도 낮에 오면 사정이 나을 줄 알았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니 머쓱하다. 일행이 없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강 짐작 가는 방향이 있어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비켜어어어어어억!”

“응?”

곤란을 여유인 척하는 건 아주 잠깐이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났다. 머리 위? 소리의 방향을 인지하고 고개를 들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 그것은 토가메를 덮치며 점점 짙고 커다래졌다. 이대로면 부딪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토가메의 눈에 노란빛이 들어박혔다. 일순 마주친 것이 서로를 비췄다. 녹음綠陰과 호박琥珀이 뒤엉킨다. 그를 받아 드는 모양새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아야야…….”

느릿하게 일어나려는데 무언가 덜컥 걸렸다. 고개만 들어 위를 보자 이번엔 강물 같은 색과 마주쳤다. 사고가 정지한 탓에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냐아- 동그란 물웅덩이가 초승달 모양으로 접히며 소리를 냈다. 눈앞에서 하얀 꼬리가 살랑거렸다. 토가메는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양이……?”

그리고 토가메를 깔고 있던, 방금 눈 마주친 고양이보다 훨씬 컸던 그림자의 주인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고양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 눈이 마주치고 먼저 이름을 부른 건 그쪽이었다.

“토, 토가메? 괜찮냐?”

“사쿠라…….”

사실 후우린의 영역에 온 이상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간신히 볼 수 있는 우연이라 기대를 안 했을 뿐이다. 봄날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나타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토가메는 얼떨떨한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놀란 건 사쿠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네가 여기 왜 있는 거야? 후우린 구역인데…….”

“빵을 사러……. 그보다 사쿠라, 무거워…….”

“흐억!”

사쿠라가 허겁지겁 일어났다. 나무 향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토가메는 먼저 그를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바닥을 털고 일어섰다. 당황스럽긴 해도 진정하고 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쿠라를 만날 줄은 몰랐는데. 하늘에서 떨어질 줄이야아.”

“윽. 아니, 이 녀석을 잡으려다가…….”

“이 녀석?”

떨어지는 사쿠라의 시선을 따라 토가메도 그의 품을 봤다. 희고 고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냐아, 울었다. 분홍 리본을 한 것으로 보아 주인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쿠라네 고양이?”

“그럴 리가 없잖아! 마을 사람이 키우는 녀석이야.”

없어졌다고 해서 찾던 중이었어. 처음은 아닌 듯한 어조다. 사쿠라는 제 품이 불편한지 도망가려는 고양이를 다시 어정쩡하게 붙들며 말했다.

“잠깐, 가만히 있어! 토가메, 미안한데 이 녀석 데려다줘야 해서. 가봐야겠다.”

우연한 만남은 보통 길지 않다. 각자의 길을 걷는 중에 아주 잠깐 교차점이 있던 것뿐이니까. 토가메는 아까 마주쳤던 맑은 빛을 떠올렸다. 보석 같기도 유리구슬 같기도 한 반짝이던 눈을. 그는 제가 무슨 생각인지 자신도 모르면서 곤란한 얼굴로 헤실거렸다.

“아, 실은 길을 잃었거든……. 그 애 데려다주고 안 바쁘면 도와주면 안될까아.”

“뭐?”

거절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곧잘 성을 내는 것과 달리 누군가를 외면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사쿠라는 큰 고민 없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 녀석부터 데려다주고. 사쿠라가 조건으로 건 우선순위에는 딱히 불만 없었다.

두 사람은 고양이를 데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할머니네에 가야 한다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따라가면 확실히 혼자서 상점가는커녕 고가로도 못 가는 신세가 될 것 같았으나 큰 걱정은 없었다. 사쿠라가 갑자기 저를 두고 가지는 않을 테니까. 토가메는 제 상냥한 친구에게 태연히 말을 붙였다. 그래서, 이 고양이 이름은 뭐야아? 엉? 리사. 엄청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에. 그런가……? 혼자 걸을 때의 적적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쿠라는 주인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산책하던 중이라고 했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리사가 사라졌다며 도움을 청했고, 그 말을 들은 사쿠라가 홀로 리사를 쫓던 모양이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 리사가 가는 대로 벽을 타고 지붕 위를 뛰다 보니 그런 거라는 설명에, 토가메의 존경심은 다른 방면에서도 싹을 틔웠다.

“후우린은 그런 일도 하는구나아.”

“뭐……. 어쩌다 보니.”

리사를 할머니에게 데려다주고 사쿠라가 감사 인사 받는 것을 지켜봤다. 잔뜩 부끄러워하면서 또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이나 하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토가메는 저 애를 부르는 ‘보후우린’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할머니가 리사를 데리고 집에 들어간 이후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듯 고가를 넘어온 이유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설명이 한 번 더 필요했다. 이전에 우메미야가 줬던 빵에 관해 얘기하자 사쿠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낯선 상호를 댔다.

“사보텐 빵?”

“가게 이름이야아?”

“응, 일단은……. 그 녀석이 준 빵이라면.”

상점가 안쪽에 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가야겠네. 사쿠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토가메는 부탁한단 말과 함께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이렇게 나란히 걷는 건 옆 마을 축제가 마지막이던가. 소속도 구역도 다르다 보니 만날 일이 드물어 걸을 때마다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며칠, 몇 주가 지나든 어제 본 것처럼 서로 친근히 대한다는 점이 기뻤다. 우메미야의 황당한 대안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친구로 생각해준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게다가 저번엔 여행도 함께 가주지 않았는가. 토가메는 점점 좁혀지는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와 가까워지는 걸 싫어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저 역시 그런 듯했다. 둘은 이전처럼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걸었다.

“사쿠라 아니야?”

낯선 목소리가 들린 건 놀이터를 지날 무렵이다.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셋 정도 있었다. 방금 사쿠라를 부른 게 그들 중 하나같았다. 하나는 다리에서 본 것 같은데, 다른 둘은 처음 본다. 토가메는 눈을 깜빡였다.

“응? 너희…….”

사쿠라는 고개를 돌리더니 놀란 얼굴을 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쪽으로 다가가자, 놀이터의 세 사람도 다가왔다. 그들은 사쿠라보다 훨씬 반가워하는 기색을 띠고 있었다. 얼결에 제삼자가 된 토가메는 가만히 서서 그들이 서로 인사하는 걸 지켜봤다.

“사쿠라, 저번엔 고마웠어. 오랜만이네.”

“어엉, 오랜만.”

“이런 데에서 볼 줄 몰랐는데. 어디 가는 길이야?”

“저 녀석이 사보텐 빵에 가고 싶다고 해서.”

“저 녀석?”

세 사람의 시선이 토가메에게 꽂혔다. 갑자기 이목이 쏠릴 줄 몰랐던 터라 토가메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그들 중 토가메가 알아봤던 쪽이 엇, 하고 소리를 냈다. 사자두련……? 중얼거린 이유는 단지 토가메가 입고 있는 점퍼 때문만은 아닐 거다. 토가메는 그날 사쿠라의 친구들에게 제법 강한 인상을 남겼으니까. 토가메를 불렀던 게 사쿠라인 걸 그도 아는지 둘이 함께 있던 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 친구들과 함께 사쿠라와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고,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들이 놀이터 쪽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사쿠라도 토가메에게로 돌아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괜찮아아. 친구들이야? 한 명은 후우린, 맞지?”

“엉? 어떻게 알았냐?”

“다리에서 봤던 것 같아서어.”

사쿠라는 대놓고 소릴 내진 않았지만, 그의 기억력에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사소한 것에도 곧잘 반응하는 건 사쿠라의 특징이다. 토가메는 그걸 굳이 짚지 않고 미소로 흘려보냈다. 대신 다른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며 대화를 이었다. 사쿠라가 담담히 답했다.

“예전에 ‘키일’이라는 팀하고 붙은 적이 있어. 쟤들이 휘말려서.”

‘키일’이라면 질 나쁜 놈들이 모인 곳인 데다가 이전에 후우린을 습격한 녀석들 중 하나다. 사쿠라는 자세한 설명 없이 말을 아꼈지만 ‘휘말렸다’라는 표현에서 대략적인 정황은 짐작이 갔다. 같은 반 친구가 키일과 엮였다면 사쿠라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키일과 충돌해 싸웠겠지. 알만하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걸 사쿠라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슬슬 주택가 사이사이에 가게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상점이 늘어진 큰 길이 나왔다. 토가메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상점가다. 주택가에선 행인 하나 찾기 힘들었는데 여기는 보이는 사람 수부터 달랐다. 하긴 상점가는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 중 하나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토가메를 사쿠라가 불렀다. 토가메, 사보텐은 저쪽이야. 아, 그래애. 상점가에 온 목적을 상기하고 사쿠라의 뒤를 쫓아 걸었다. 굳이 발을 재지 않아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였다.

“후우린은 오늘도 순찰하는 건가? 기운도 좋지!”

“얘, 어젠 고마웠다! 이것 좀 가져가!”

상점가를 거닐기 시작하자 상인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사쿠라를 발견할 때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중에는 고맙다거나 수고한다는 등의 말들도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말을 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꾸만 가게에서 파는 무언가를 선물로 주었다.

사쿠라는 쑥스러워하거나 당황하면서도 받은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들었다.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에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 지경이 됐다. ‘보후우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후우린과 마을 사람들 사이가 각별하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정도가 얼마만 한 지 실감 났다. 사쿠라가 왜 마을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도.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애정을 주는 곳이 망가지는 건 누구도 바라지 않을 테다. 토가메는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사쿠라가 예전과 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꼬마야! 오, 전에 그 친구 아니냐?”

짐을 나눠 들어주는데, 또 어디선가 사쿠라를 불렀다. 이번엔 토가메도 들어본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커다랗게 ‘크로켓’이 적혀 있는 가게가 보였다. 아, 축제에서 만났던 그 가게다. 그러고 보니 그때 후우린이지 않냐면서 자연스럽게 사쿠라와 제게 크로켓을 나눠줬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후우린에게 보답하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태도였던 듯하다. 이쪽에 와서 사쿠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른 채로 지나갔을 모습들을 보는 건 꽤 달가운 일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쿠라의 일상을 알 수 있단 사실이 기뻤다.

이번에도 크로켓집 사장은 어김없이 두 사람에게 크로켓을 하나씩 싸주었다. 토가메는 후우린도 아니고, 떡하니 사자두련의 점퍼를 입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저 후우린인 사쿠라의 친구라는 이유로. 사자두련이라 하면 일대에서는 겁에 질려 피하기 마련인데, 이 마을은 그런 것도 없었다. 후우린의 구역이라서, 사쿠라가 후우린이기 때문에. ‘후우린’ 자체보다는 ‘사쿠라’라는 개인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던 토가메에겐 묘한 일이다. 그래도 토가메는 ‘후우린’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상인들이 불러대는 통에 ‘사보텐’이라는 간판을 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사쿠라는 매번 상점가를 지날 때마다 이러는 거야아? 물어보자 평소엔 이 정도는 아니라며 사쿠라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귓가가 빨개진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토가메는 그가 더 곤란해하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사보텐에서 파는 빵은 종류가 꽤 많았지만 토가메가 살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단팥빵만 잔뜩 담았다가, 그것만 먹을 거냐는 사쿠라의 질문에 크림빵과 꽈배기를 추가했다. 이 정도 양이라면 쵸지만이 아니라 사자두련 팀원들도 다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산하려는데 사장이 작은 상자를 하나 더 내주었다. 그는 의아해하는 토가메에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후우린에겐 늘 도움받고 있으니까, 이건 서비스야.”

그러니까 여전히 사자두련의 점퍼를 입고 있는데도. 그는 둘이 함께 먹으라며 케이크용 칼과 일회용 포크를 넣어주었다. 괜찮다고 해 봤자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한 얼굴이라 토가메는 그냥 감사 인사를 했다. 옆에서 당황하던 사쿠라도 토가메가 인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서 고개를 까딱였다. 사장은 두 사람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사보텐만 들르면 됐던 거냐?”

“응, 쵸지가 여기 단팥빵을 궁금해 했으니까아.”

빵이 한가득 담긴 봉투를 보니 만족스럽다. 쵸지가 기뻐하는 모습이 벌써 선연했다. 좋아한다면 다음에 또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혼자 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사쿠라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하자 싶었다. 오늘 일로 사쿠라가 저를 도우러 와줄 거란 확신이 생긴 덕이었다.

“사쿠라, 바쁘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도 부탁해도 돼애?”

“엉? 아아…….”

표정을 보아하니 주택가에서 만났던 걸 떠올리는 모양이다. 되짚어보면 두 사람이 만난 건 상점가와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이었다. 이대로면 토가메는 또 고가까지 가지 못하고 길을 잃을 게 분명했다. 사쿠라도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왔던 길을 돌아가다 골목에 들어설 때였다. 작은 물방울이 토독, 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두 방울 정도였던 게 빠르게 수가 늘어나며 소나기로 변모했다. 여유롭게 걷던 두 사람은 비가 세차게 오기 직전 가까스로 근처 건물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옷이나 머리뿐만 아니라 상점가에서 받았던 물건들까지 전부 축축하게 젖은 후였다. 그나마 포장 덕분에 내용물은 무사한 게 다행이었다.

“우와아, 갑자기 엄청 내리네에…….”

“젠장, 비 온단 말은 못 들었다고…….”

하늘을 보니 당분간은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돌아가려면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사쿠라에게 말하니 편의점은 저쪽이라며 손가락으로 블록이 꺾이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서 뛰어갈 수 있어어?”

“뭐, 멀진 않으니까.”

두 사람은 신호와 함께 동시에 편의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지만 귓가에 바로 치고 들어오는 빗소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는 것 같았다. 점퍼 안쪽까지 전부 젖을 무렵 둘은 편의점에 도착했다. 축축한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찬가지로 비에 젖어 곤란을 겪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뭐야, 설마 다 팔린 건 아니겠지?”

“글쎄에…….”

둘은 우산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밀치며 손을 뻗어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우산이었다. 사쿠라가 서둘러 그 틈바구니에 끼어들었다.

“있다!”

마지막 하나였다. 사쿠라가 그걸 잡기 위해 손을 뻗는데 옆에서 다른 손이 튀어나왔다. 어? 방심한 순간 우산이 덜렁 뽑혀 나갔다. 마지막 우산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린 것이다.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쿠라는 실망 어린 목소리로 ‘안돼’를 외쳐야 했다. 물론 우산을 집은 사람은 양보하지 않고 계산대로 가 줄을 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쁜 직원을 붙들고 우산이 더 있는지 물었으나 거기 놓인 게 다 떨어졌다면 품절이라는 절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포기하고 편의점 앞에 서서 하늘만 올려다봤다.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네에.”

바람까지 불어 날이 더 쌀쌀해졌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 게 완전히 폭우다. 토가메는 곤란한 얼굴로 코를 훌쩍였다. 이대로면 저도 사쿠라도 감기에 걸릴 것이다. 저는 튼튼하니 괜찮지만 괜히 도와주느라 한참을 집에 못 들어가고 비 맞는 신세가 된 사쿠라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으으음, 고민을 끌어안은 침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사쿠라가 토가메를 불렀다.

“이대로 계속 서 있긴 좀 그렇고, 그, 이 근처가 우리 집이긴 하거든?”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쿠라는 멋쩍은 듯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토가메, 너만 괜찮으면…….”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보통 이렇게 비가 쏟아질 땐 빗소리에 묻혀서 뭐든 잘 들리지 않는 법인데. 사쿠라의 목소리는 되려 벽을 타고 울리듯 또렷하고 크게 들린다. 편의점에 올 때 뛰어서 그런지 가슴도 아직 두근댔다. 쏴아아아-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 집에라도 가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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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들보다 짧습니다🙇‍♂️💦💦

대신 이번엔 이어지는 다음편이 있습니다!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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