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탐정 금윤

미정

똑똑–

방금 막 제비 다방에서 돌아와 커피를 내리던 금윤의 귀에 사무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즈음은 개인 사건이 거의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우편물인가 하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우편 배달부가 아닌 노부부가 서 있었다. 급히 노부부를 의자로 안내하고 금윤 또한 마주 앉았다. 부인 쪽이 먼저 말을 하려 입을 떼었다가 이내 다물고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남편이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장가간 아들놈이 시체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에게도 조사를 맡겼지만 왜인지 며느리가 조사를 취소하자고 하더군요.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때부터 며느리가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말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며느리는 풀려나고, 저희는 며느리에게 의심만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탐정님을 찾아온 것도 며느리 몰래 찾아온 것이지요.”

“아들의 죽음을 알아보라는 말씀이죠? 의심이 가시는 건 며느리 쪽이시고.”

금윤이 수첩에 정보를 적으며 복기했다. 그러나 속물 같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혹시 의뢰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오셨는지?”

“제대로 해결만 해주신다면 사례는 두둑이 해드리겠습니다.”

노부부가 자리를 뜨자 금윤은 종로 경찰서 기무라 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딸각–

“네, 종로 경찰서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거기 띨빵형사님 되십니까~”

장난스럽게 말하자 기무라 형사가 웃음기와 한숨이 섞인 말투로 말을 이어받았다.

“예, 띨빵형사입니다. 어쩐 일로 전화하셨는지요?”

“별건 아니고, 의뢰가 들어와서 말이지. 혹시 얼마전에 한 남자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지 않았나? 그, 아내 쪽이 와서 조사받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전화기 너머로 잠시 서류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대답이 돌아왔다.

“예, 일주일 전 미제 사건으로 종결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유가족이 바로 시체를 인수해 가서 부검도 못 하고 끝났죠.”

“그 사건, 내가 맡게 됐네. 자료를 좀 열람할 수 있을까 싶은데?”

“알겠습니다. 준비해 놓을 테니 내일쯤 한번 방문해 주시죠.”

알겠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금윤은 나갈 채비를 하고는 피해자의 아내와 아이가 산다는 생전 거주지로 이동했다.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언제 모습을 바꿨는지 문을 두드리는 금윤의 모습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테 안경을 쓴 여경과 다름없었다. 물론 경찰 제복은 어디에선가 산 보세여서 경찰 관계자라면 알아보겠지만 사복 경찰들만 상대한 피해자의 아내로서는 알아차릴 수 없지 않겠는가.

이윽고 집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더 이상 경찰분들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 조사까지 받은 마당에 경찰에 대한 경계심이 없을 리가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금윤은 급히 머리를 굴려 다른 방안을 생각 해냈다.

“얼마 전 이 동네에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아동의 피해가 심각한데 이때까지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걸로 보아 주변 이웃들의 집을 한번 돌아보라는 서장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여성은 잠시 고민하는 듯 조용하더니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렇게나 자른 듯 턱까지 오는 짧은 단발머리에 수척해 보이는 얼굴과 누가봐도 심각한 수준의 다크서클, 아무래도 고생이 심해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깨끗한 거실이 보였다. 아이는 방에서 놀고 있다는 여성의 말을 듣고 방으로 찾아가 아이를 만났다. 잠시 여성을 내보내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혹시 경찰 언니한테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

경찰이라는 말을 듣자, 아이는 여성을 경계하는 듯 두리번거리다 금윤의 귀에 대고 귓속말했다.

“언니, 우리 엄마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엄마가 정해 언니를… 아니, 정해 언니가 사라진 날부터 맨날 엄청 불안해 보이고, 완전 까맣고 큰 가방을 들고 나갔다 와서는 막 울고 그래요. 엄마가 좋은건 아닌데, 그래도 계속 같이 살아야하니까 언니한테 말하는거에요. 엄마가 정해 언니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말랬어요. 난 정해 언니 좋은데…”

정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금윤이 기억을 더듬어 정해라는 이름을 찾으려 했지만,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방에서 나와 일주일 후 즈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로 경찰서로 향했다.

* * *

“아까, 그 경찰이랑 무슨 얘기 했어?”

여성이 밥과 반찬을 아이 앞에 내놓으며 물었다.

“경찰 언니가 엄마가 나 때리냐고 물어봤어! 근데 엄마는 나한테 절–대 안 그러잖아? 그래서 아니라고 했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여성을 바라본다. 여성은 그런 아이를 보고 안심하는 듯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가벼워 보이는 큰 가방을 든 채로 집을 나선다.

여성이 집을 나서자마자 아이의 표정이 굳으며 입안에서 씹던 밥을 뱉는다. 그러고는 집을 나와 옆에 지하공간으로 들어서 동화책 몇 개를 집어 들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중얼댄다.

“정해 언니가 책 읽어주는 게 진짜 재밌었는데… 엄마는 바보야.”

중얼거림을 끝으로 남은 밥을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나눠주고 책을 읽는다.

* * *

종로 경찰서로 들어가 기무라 형사의 자리로 향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지 기무라 형사의 자리에는 아무도 없고 복잡하게 섞여 놓여있는 서류들만이 가득했다. 기무라 형사를 기다리며 곁눈질로 흘깃 서류들을 보았다.

‘도난 사건… 구타 사건… 토막 살인….’

여러 섬뜩한 사건들의 서류 중 보고서가 하나 보였다.

‘한 달 전 발견된 시신 신원 파악 완료. 이름 남정해, 가출 후 근 몇 달간 실종 상태.’

그제야 금윤은 정해라는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올랐다. 얼마 전 제비 다방에 갔을 때 기무라 형사가 이렇게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사건은 처음이라며 하소연했던 날이었다.

“앗, 자리가 좀 너저분하죠?”

뒤에서 기무라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윤은 기무라 형사를 보자마자 보고서를 가리키고 말했다.

“일단 아까 부탁한 것 말고, 이 사건 자료 좀 내와 줄 수 있는가?”

잠시 후 기무라 형사가 증거를 내왔다.

“피해자는 땅에 묻혀있었습니다. 파인 깊이가 깊지 않고 손으로 한 움쿰만 파내도 바로 시체가 보일 정도여서 계획적 살인은 아닐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과 피해자의 손톱 밑에 살점, 그리고 피해자의 목에 있는 로프의 흔적을 보았을 때 아마 피해자는 범인과 몸싸움하다 질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무라 형사가 사진과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머리카락의 길이를 봐서 범인은 장발의 남성 또는 여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하고 있으니 아마 금방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금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기무라 형사에게 부검 결과가 나오면 알려달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사무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죽은 남성의 아내가 가출 학생을 죽였다. 만약 그걸 남편이 알아챘다면 살인 동기 또한 충분하다. 하지만 왜? 왜 아내는 가출 학생을 죽였을까? 아니, 아내가 죽인 것이 맞을까? 어린아이의 증언으로 이리 사람을 의심해도 되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실은 부검 결과가 나오더래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극소수, 정확한 용의자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금윤의 촉은 그 여자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이상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하기도 했지만, 우쭐댈 모습을 보려니 짜증이 나 그만두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건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생각 또한 그만두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금윤은 기무라 형사의 전화로 잠에서 깨어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보신 사건 피해자의 부검이 끝나서 연락드렸습니다. 경찰서에 한 번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금윤은 비몽사몽인 상태로 전화를 끊고 채비해 종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무라 형사가 금윤을 반겼다.

“금윤 씨, 일찍 오셨군요!”

“그래, 종로 경찰서의 누가 아침 일찍 전화를 해준 탓에 평소보다 매우 빨리 일어나서 말이지.”

금윤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기무라 형사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부검 결과를 알려주었다.

“부검 결과 수면제가 검출되었습니다. 꽤 많은 양이 투여되었던데 어떻게 범인과의 몸싸움이 있었는지가 의문이긴 합니다….”

“피해자가 수면제에 내성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네. 범인이 그걸 모르고 범인의 기준으로 많은 양을 투여했겠지. 하지만 피해자는 수면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 범인이 피해자를 묻기 전 깨어나 버렸고, 몸싸움이 일어났을 수도 있네.”

잠자코 듣고 있던 기무라 형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로프는 왜 필요했을까요? 피해자가 깨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로프는 필요 없었을 텐데.”

“자살로 위장하려 했을 수도 있지. 사고사나 다른 죽음보다 자살이 더욱 쉽게 판결이 나지 않는가. 그랬지만 피해자가 깨어나 몸싸움까지 했으니, 자살로 위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그래서 급하게 땅을 팠다면 땅을 판 깊이가 얕은 것도 이해가 되네.”

기무라 형사는 금윤이 하는 말을 받아 적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금윤에게 말했다.

“아, 피해자가 과거 가출 청소년 신분일 때 같이 다닌 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만나러 가볼 생각인데, 동행하시겠습니까?”

의뢰를 해결하려면 동행을 거절하고 남성의 죽음을 조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사건의 범인을 찾아야 의뢰를 완수할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기에 금윤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남정해 그 X이 우리 배신하고 도망갔다니까요?”

기무라 형사를 따라가 만난 가출 청소년 무리의 아이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다 똑같은 대답뿐이었다. 물론 여러 세부 사항이 다르긴 했지만, 피해자가 다른 아이들을 경찰에 신고하고 도망쳤다는 내용은 한결같았다. 결국 별 소득 없이 돌아가려던 찰나 한 아이가 금윤을 붙잡았다.

“…혹시, 신혜라는 애 경찰서에 안 갔어요? 어제 나가서는 소식이 없는데…. 찾아주시면 안 돼요?”

새로운 인물이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가출 청소년이 또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났겠거니 하겠지만 이 사건과 연관 된 이상 사람 하나라도 쉬이 무시할 수 없었다.

“신혜? 글쎄…. 혹시 신혜가 최근에 어땠는지 알려줄 수 있니? 그러면 신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게, 사실 신혜가 요즘 좀 이상했어요. 어디서 돈이 났는지 백화점에 가서는 누가 봐도 3원은 넘을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사 오기도 하고, 저녁에 나가서 돈이 가득 든 가방을 가져오기도 하니까 이상한 일에 연루된 건 아닌가 싶어요.”

돈이 가득 든 가방. 저번에 그 집에 갔을 때 아이가 말해줬던 그 가방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신혜가 갑자기 가방을 들고 오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해?”

“음…. 계속 불규칙하게 들고 오다가 주기적으로 들고 오기 시작한 건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한 달. 피해자의 사망시점도 한 달쯤 아니었던가, 어떻게 이렇게 같은 시기에 특별한 일이 생겼을까. 금윤의 머리에는 빠르게 여러 상황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기무라 형사에게 말했다.

“기무라 형사, 한 달 전 살인 사건 피해자의 아내를 경찰서로 소환해 주게. 내 세가지의 사건을 동시에 해결해 주지.”

* * *

일주일 후, 금윤은 심문 실에서 여성과 마주 앉았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는데요.”

여성은 쌀쌀한 태도를 일관했지만 금윤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성을 맞았다.

“뭐, 어찌 되었든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요? 전 금윤이라 합니다. 저희, 초면도 아닌데 이름도 모르다니 섭섭해서 잠도 못 들 것 같습니다.”

여성은 금윤을 경계하다가 마지못해 이름을 알려준다.

“…신예화입니다.”

“좋습니다. 예화 씨, 그럼 저희 빠르게 이야기해 볼까요?”

금윤은 금윤의 말을 토대로 기무라가 준비해 준 자료들을 다시 정리하며 말한다.

“최근 경성에는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구요.”

금윤이 예화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잇는다.

“예화 씨의 남편이 피해자인 살인사건 하나, 그리고 정해 양이 피해자인 살인사건 하나, 신혜 양의 실종사건 하나 해서 말이지요.”

남편을 언급할 때는 차분해 보이던 예화는 정해와 신혜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금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라, 정해 양과 신혜 양을 아시나 봅니다? 평범한 가출 청소년과 어떤 교류가 있으셨는지?”

“……정해랑은 저희 딸아이와 친해서 종종 만났지요. 신혜라는 아이는 모르겠고요. 정해도 가출한 후에는 만난 적 없습니다.”

“그러신가요? 그럼 이건 알고 계셨을런지.”

금윤은 예화의 남편과 정해가 서로를 안고 있는 사진을 내밀었다. 예화는 사진을 보자마자 흥분했다.

“알다마다요. 이 여우 같은 X이 제 남편을 꾀어서 뜯어간 돈이 얼만데. 생각해 보면 제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죽였대도 남편의 재산을 지켜주려 한 게 무엇이 잘못이죠? 어째서 법은 이런 저를 지켜주지 않는… 헙.”

예화가 자신의 입으로 자백하자 금윤은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을 쳤다.

“와, 정말 정직한 분이시군요! 자신의 죄를 이리 불어버… 말하시다니. 이제 예화 씨에게 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똑바로 말해주시죠. 정해 양을 어떻게 죽였고, 신혜 양은 어디로 보내신 거죠?”

예화는 자포자기한 듯 웃으며 말했다.

“남정해 고걸 제 손으로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남편의 돈을 뜯는 걸로도 화나는데, 내가 앞에 있는데도 내 남편과 포옹하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길래 결국에는 못 참고 납치해 버렸죠. 지하실에서 굶겨 죽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질기더군요. 그래서 밥에 수면제를 잔뜩 타서 줬어요. 걸신들렸는지 의심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잘 먹었죠. 쓰러지듯 잠들길래 그대로 산으로 끌고 갔어요. 산에서 자살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는데, 깨어났더라고요? 그래서 목 졸라 죽였어요. 근데 그X, 괜히 힘만 좋아서 내 머리를 다 뽑아놨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묻었어요.”

금윤은 타이핑하는 척 예화의 말 하나하나를 외우고 있었다. 어차피 들어올 때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왔으니, 나중에 기무라 형사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타이핑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럼 신혜 양은요?”

“아, 정신혜 걔….”

예화는 생각하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말하다 말고 헛웃음을 한번 쳤다.

“내가 남정해를 묻는 걸 봤나 봐요. 걔 죽이고 다음 날 나를 찾아왔거든요. 뭐랬더라? 아줌마가 정해 죽인 거 다 알고 있댔나. 경찰한테 말 안 할 테니 돈을 달랬어요. 난 줬죠. 계속. 근데 남편이 그걸 알았나 봐요? 나보고 맨날 돈을 어디로 내빼는거냬요. 듣다 보니 짜증이 나서 죽였어요.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더라고요. 남편에게는 계속해서 아편을 처먹였죠. 얼마 안 가서 죽더라고요. 결국. 그리고 계속 정신혜한테는 계속 돈을 주다가 그쪽이 찾아와서 맘이 바뀌었어요. 경찰이 이렇게 코앞까지 와서도 내가 살인자라는 걸 모르는데, 딱 한 번만 더 죽이자 하고요. 칼로 찔러서 죽이고 평소에 그 X이 돈 받아 가던 가방에 넣어서 집 뒤에 있는 강에 버렸어요. 얼마나 속 시원하던지.”

그 말을 끝으로 예화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금윤은 그런 예화를 뒤로하고 심문 실을 나와 밖에서 듣고 있던 기무라에게 녹음기를 건넸다. 기무라 형사가 신기하다는 듯 금윤을 바라보았다.

“금윤 씨는 신예화가 범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세 사건이 연관된 사건이라는 것도 그렇고….”

금윤은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별건 아니네, 남편 쪽이 불륜을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자네가 보여준 남정해의 사진이 남편 쪽 불륜녀와 똑같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이지. 정신혜 사건은 얼마 전부터 갑자기 정신혜가 돈을 들고 온다는 것과 신예화가 돈을 들고 나가는 것으로 둘의 연관성을 본 것이 끝이고. 솔직히 나도 정신혜 사건에는 확신이 없었네만, 저리 술술 불어주니 감사할 따름이지.”

금윤은 자신을 멋지다는 듯 보는 기무라 형사의 시선을 뒤로하고 제비 다방으로 향했다.

“오, 이게 누군가. 금윤 아니오? 이 시간에 제비 다방에 오는 걸 보니, 그다지 한가한가 보오?”

제비 다방의 끝 모퉁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상이 금윤을 발견하고는 이상 식으로 맞아준다. 그런 이상을 무시하고 이상의 앞에 앉아 팔짱을 낀다.

“네? 금윤 언니가 오셨다구요?”

무얼 하고 있었는지 주방에서 얼굴만 쏙 빼는 가화를 발견하고는 금윤은 미소 짓는다.

“나 왔다~ 화야, 미안한데 커피 한 잔만 내려줄 수 있을까?”

“그럼요, 당연하죠!”

기운차게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가화를 보고 이상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분명 얼마 전에는 나에게 가화를 시켜 먹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금윤?”

“오늘은 좀 봐주게나. 근 며칠간 사건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네.”

탁자 위로 늘어진 금윤을 보고 이상은 의아해하며 말한다.

“며칠 새에 들어온 사건이 없었는데? 설마, 개인 의뢰라도 받았나? 그걸 알리지도 않고 제비 다방에 오지도 않고?”

이상의 원망 섞인 말투를 듣고 커피를 내오던 가화가 금윤을 좀 가만히 두라면서 한 소리 한다. 금윤은 가화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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