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Tokyo by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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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주택가,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가로등이 거슬려 눈길을 준다. 주변에 삶을 불태우는 하루살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셋을 세면 아스러질 생명을 보며 ‘별반 다를 건 없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회상한다. 모두 잠에 든 시간이다. 휴대폰을 킨다, 시간을 확인한다, 2시 11분. 휴대폰이 꺼진다, 암순응을 방해하던 인공 조명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는다. 간헐적으로 화면에 비치는 얼굴에서 시선을 돌린다. 서로 다른 눈동자의 색깔이 지지리도 잘 보였다.

똑같은 매일이 축척된다.


오늘은 주택가로 파견을 나왔다.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덜컹거리는 전차에 몸을 싣고, 두 번의 환승 게이트를 지나간다. 늦장을 부리기 위해 환승역에 도달할 때면 줄을 길게 선 카페를 굳이 골라 커피를 사 마셨다. 하나는 신상, 하나는 매번 시키는 그 메뉴. 지하철은 정확하게 늦장을 부릴 수 있어 참 효율적이었다. 출근 시간에 차를 타고 도쿄를 가로질렀다가는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늦을지도 모르기에. 하여간, 인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며 일상적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 3-4급 주령 무리가 다수 출현. 규모는 3급 20마리, 4급 50마리로 추정. 10시까지 3급 주술사 리이치의 파견을 요청한다.

“에- 귀찮아. 너무 많아. 나 혼자서 가는 거야?“ 육성으로 허공에 남 탓을 하던 아침의 일이었다. 전날 챙겨둔 옷을 입고 나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바쁜 도쿄, 경쾌한 기계음이 울리는 사거리의 한복판. 한 벽에 기대 교차하는 사람을 관찰한다. 매일 흰색 토트백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저 신입사원, 새로이 눈에 띄는 한 배달 기사, 오늘은 손에 바이올린까지 들고 온 저 음대생. 수많은 사람 속에 있다 보면 쉽게 느껴지지 않는 안정감을 느낀다. 10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분. 적절히 여유를 즐기다 아스팔트를 박차고 사이로 섞인다. 선명한 구두 소리가 클락션에 묻힌다.


2시 11분 3급 주술사 리이치 복귀합니다.

전철이 끊겼다. 집까지 택시를 타버리면 1만 5천엔이 족히 나올 터. 밥까지 굶어가며 벌어먹은 돈이 한순간 길바닥으로 사라지게 생겼다. “최-악.” 어딘가 틀어박힐 곳을 찾아 새벽을 보내야겠다. 일단 이 고요한 밤거리에서 나라는 불순물을 저 멀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적을 더럽히는 줄이려 조심스레 걸었다. 앞으로, 또 앞으로. 다닥다닥 주택가가 붙어있는 탓에 골목의 끝조자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남기고 온 잔예를 힌트삼아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사서 고생해 빵조각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간편하구나, 길게 이어진 백색소음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던진다.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3급 주술사에게 보조감독은 사치이다. 흔한 인사 한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약 30분 내외면 다 둘러볼 수 있는 동네. 다 마신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나이스샷-. 눈에 보이는 대로 천천히, 하나씩, 차근차근 제령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의심할까 봐 일부러 인련 끝에 먹을 묻히고, 종이를 들고 다니며 무언가를 기록하는 척을 하였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 뒤부터 샅샅이 수색하였다. 어차피 밤이 돼 모두가 집으로 들어가면 거리는 텅 비어버릴 테니. 동선을 정하는 근거는 철저히 지난 경험에서 쌓인 노하우였다.

간단하다. 설렁설렁 움직이며 퇴치한 주령은 약 20마리, 3급 주령은 3마리. 잘못 보고됐을 가능성까지 미루어보아 지금부터 약 60마리만 더 없애면 됐다. 현재 시각 1시 30분. 점심시간이랍시고 밥을 먹었다가는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야 말 것이다. “큰-일.” 탓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얼굴에 찐덕하게 붙은 오물을 왼손으로 닦아낸다. 닦아내긴커녕 손으로 옮겨붙어 버린 검은 잔해를 빤히 바라본다. 어쩐지. 그제야 제 옷을 확인한다. 검은 옷가지가 한껏 엉망이 되었다. 불투명한 액체가 잘 다려진 셔츠 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밤이라 더 잘 보이는 흔적이다. 손으로 털어내봤자 일만 커지므로, 저번에도 시도했다가 온몸에 찝찝한 얼룩만 남았으므로, 적당한 선에서 포기한다. 어차피 비주술사 눈에는 보이지도 않으며, 이 추레한 꼴을 목격할 주술사도 주변에 없다.

옷을 살피느라 한동안 앞을 보지 않았더니 모르는 사이에 대로변에 도착하였다. 시선 끝에 아스팔트 대신 보도블럭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곧게 한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고양이 한 마리와, 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범택시 한 대. 이 모든 광경이 제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3급 주령이라며-.”

“··· 뭐, 됐어. 사소한 부조리는 껌이지.”

?급 주령과의 조우. 명백한 보조감독의 실수. 기나긴 사투 예정. “이래서 내가 말을 안 하는 거야.” 한 발을 뒤로 빼 무게중심을 낮춘다. 허공에서 빙빙 돌리던 인련을 단단하게 쥐었다. 비어있는 공터에서 주령을 마주한 것이 불행 중 다행. 능숙하게 장막을 치고 싸움에 임한다. 지원요청은 사치. 기다리다가 제 목이 먼저 날아갈 터. 특별한 결의를 다지지도 않고 주령에게 먼저 달려든다. 먼저 치면 이기는 거랬어-. 더 큰 피해로 번지기 전에 해내야만 했다. 나는- 주술사잖아?


다시 시간을 확인하였다. 2시 33분.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를 걸었을까. 하루 종일 있었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자, 긴장이 슬슬 풀린다. 자각하지 않았던 통증이 밀려들어오나 침음 하나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다. 그야, 이 정도 부상은 금방 회복되는 범위 안에 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느린 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탁한 밤하늘, 매캐한 도쿄의 공기, 꺼지지 않은 네온사인과 술에 취한 행인의 고성방가. 서둘러 집에 가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까지. 좋아하는 요소와, 싫어하지 않는 요소가 가득가득 모여있는 도쿄의 야경을 바라본다.

··· ··· ···

무의식적으로 달렸다. 다친 몸을 억지로 이끌어 직선으로 내달렸다.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짓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호흡하기도 힘들어졌을 때 어딘지도 모를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건물의 모양새와, 간판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같은 하늘과 같은 공기 아래였다.

오늘따라 도쿄의 야경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답답해. 벗어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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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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