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글러 100제
우리 재밌는 이야기할까?
먼지 냄새가 풍겨오는 다락방. 쥐고 있는 촛대를 휘두를 때마다 방 안의 어둠이 다 타버린 숯덩이가 부서지듯 물러났다. 새까만 그림자가 촛불이 일렁일 때마다 함께 흔들렸다. 고요한 방에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부산스럽지만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 때가 껴 더러운 창문으로는 별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
등 뒤로 움츠리는 듯한 얇은 목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와 함께 살랑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년은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촛대를 더 거칠게 휘둘렀다. 촛불에서 요정같은 불티가 휘날렸다. 고양이처럼 물러난 어둠은 다시 그의 발치로 살금 기어들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고동이 그의 입 안을 메마르게 했다.
다음 삭월, 달이 뜨지 않을 때 말이야.
두 아이가 어둠 속에서도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것은 그들이 이곳이 어딘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네 도서관, 버려진 구관의 오래된 창고. 그들보다 한 세기는 일찍 살았을 사람들의 분실물이 나뒹구는 곳. 삭아버린 곰 인형과 다리가 부러진 의자, 치워버린 비닐덮개가 공존하는 곳. 열쇠는 두 사람만 아는 비밀장소에 숨겨뒀다. 말라붙은 화분 더미에서 세 번째 줄, 두 번째 화분 안에 있는 열쇠는 그들이 친했던 할머니 사서가 알려준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쓸만한 물건을 가져가라고 알려준 것이라 그들이 이 건물 전체를 아지트 삼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언덕 꼭대기에서 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그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암암리 전해지는 특별한 소문이었다. 소원을 빌겠다고 올라간 아이들 몇몇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만큼 올라가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정작 소원이 이뤄졌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렇다면 찻잔에 물을 타듯 옅어져야 할 텐데 소문은 신기하게도 꼬리의 꼬리를 물고 더 퍼져나가기만 했다. 소년은 그 이유를 알았다. 자신이 바로 저번 삭월에 소원을 빈 아이였으니까. 그는 항상 싸우는 부모님들이 잠들기를 바랐다. 영원히는 아니고, 싸우는 동안 아주 잠깐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빌 때는 다 잘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12시가 지나서 소년은 나이를 한 살 먹었다. 소년은 뺨을 간질이는 선선한 바람을 느꼈다. 바람사이에 물기어린 풀 냄새가 듬뿍 배여있었다. 날이 좋았다. 달이 없어도 별이 환하고, 바람에 나뭇잎들이 사락거렸다. 오늘은 행복한 생일이 될 것 같아. 하지만 소원을 빈 그날 집에 돌아온 그는 어느 때처럼 언성을 높이는 부모를 발견했다. 소원이 이뤄지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동화를 믿기에 그는 너무 커버렸으니까. 그의 마음은 모래밭이었고, 실망은 원래도 그 속에 스며들어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바스라진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는 부모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울면서 외쳤다.
다들 그만해, 벌써 밤이야. 오늘 밤은 좋은 밤이어야지…….
그 순간 그의 부모가 비척거리며 소파로 걸어갔다. 본인들도 이해 못한 모양인지 입을 열었다가, 결국 눈꺼풀을 들지 못하고 수마에 빠져들었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소년은 놀란 채로 소파에 널부러진 채 깊이 잠에 빠진 그들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코 끝에 손가락을 대자, 언덕 위 바람보다 더 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소년은 숨을 내쉬었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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