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장기 프로젝트 데이(기념일) 장기 합작 : 03월 14일 화이트 데이

기상호 드림

갑작스레 눈앞이 빠르게 흔들렸다. 상황 파악도 전, 제 손을 잡힌 기상호는 그대로 저보다 훨씬 작은 몸에 이끌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다. 형에게 빌린 옷과 나름 돈을 주고 세팅한 머리와 얼굴, 다른 한 손에 쥐어진 상대가 좋아하는 꽃으로 만든 꽃다발과 선물을 떨어지지 않게 겨우 붙잡고는 속도에 맞춰 걸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농구를 한 사람이니 이 정도 속도는 금방 따라잡는다. 그런데 어째서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걸어가야 하는 걸까.

오늘은 3월 14일. 날씨도 나름 오케이. 전날 본가로 가서 형에게 빌려 입은 옷도 좀 전에 숍에 가서 세팅한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완벽했다. 가족 중 누나가 있는 것이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생각 없이 편한 복장으로 오늘을 맞이할 뻔했다.

여자친구와의 만남은 고등학생 때. 같은 농구부인 3학년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마주하게 된 저보다 훨씬 작은 몸. 저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을 치던 그 모습이 귀여웠고 제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준비한 초콜릿 간식으로 친해지게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바로 당장은 아니었다. 상대는 모르겠지만 상호는 매일 그와 만나기 위해 한 살 많은 같은 반, 같은 부 형과 함께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싫어하는 것도 그가 좋아한다면 나도 좋다는 말을 일단은 뱉었다. 공통점이 많다며 그렇게 점점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그에게 상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면서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귀게 되고부터는 전부 드러나게 되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변명과 진심을 전부 말하고 나서야 잘 마무리가 되었다. 정말 좋게.

“좀 일찍 왔나...”

상호는 요즘 같은 스마트 시대엔 드물 수 있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가죽의 표면이 갈라질 정도로 오래된 시계지만 당장은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선물 받은 거기도 하고.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나 싶은 마음에 시곗줄이라도 새로 할까 핸드폰을 들었는데 제 핸드폰 뒤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도 아니면서 완벽하게 세팅과 선물까지 준비해서 온 이유. 상호의 얼굴이 활짝 피자 상대는 그와 반대로 당황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그의 손에 이끌려 끌려가다 지금처럼 옆에 나란히 걷게 된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이 근처에 상대가 현재 지내고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면 이런 골목길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작은 중얼거림에 상호는 말을 들으려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말하는데 잘 들리지 않으니 제멋대로 상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설마 우는 걸까. 뭘 잘못했나 싶어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얼굴을 보려 올려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잔뜩 빨개진 얼굴이 보이자 상호는 머릿속을 빠르게 지워버리고 웃으면서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 있던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과 화이트데이 선물이 든 종이가방을 쥐여줬다. 달그락. 유리병 속에 있을 사탕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 푸하하. 겨우 뱉어내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제게 얼굴을 보여준다.

“부끄러워.”

“뭐가요?”

“상호는 오늘 단단히 준비했는데 난 오늘이 화이트데이인 줄도 모르고… 아 저번달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랬네. 미안.”

“뭐가 미안해요. 저번에 사준 초콜릿 맛있었어요.”

“사탕 때문이 아니라…상호를 보니 나도 좀 꾸미고 나올 걸 싶어서.”

안 꾸며도 이쁘구먼. 상호의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같은 이유로 열이 올라 한 명은 고개를 바로 들고 시선을 반대로 또 한 명은 고개를 푹 숙인 체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손은 놓지 않았다. 이 낯간지러운 분위기는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전해졌고 지목당하는 대상이 되어 저들의 말이 오르내리고 나서야 장소를 다시 옮기자며 함께 걸었다. 걷다가 잠깐 시선이 마주하게 되자 이번 역시 숨을 짧게 뱉어낸 두 사람이 이어지는 간지러움에 소리 내 웃은 뒤 대화를 이어간다. 

“고마워.”

“저도요.”

상호의 대답에 이유를 물으려 했지만, 얼굴에서 보이는 이유에 괜히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니 상호 역시 같은 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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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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