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마틴] 동거

사이퍼즈 / 데스틴(데샹마틴) / 데스틴 포타온 참여작

* 사이퍼즈 데스틴(데샹마틴) 전연령 2차 창작글입니다.

* 본 글은 2018년 4월 9일에 작성되었던 글로 수정, 첨삭하여 재발행했습니다. 수정전의 내용은 후기 다음에 조금만 넣어두었습니다. 

* 주관적인 캐릭터 해석이 있습니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아침 해가 벌써 뜬 것인지, 아니면 이미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며 의식을 일깨우고 나서야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뜨뜻미지근한 따스함이나,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기분 좋게 늘어지는 몸을 보아하니 아침과 점심의 중간 정도가 아닐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어젯밤에 걸어둔 벽걸이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10시 42분. 느긋하게 정리를 하고 점심을 만들어 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가며 마틴은 아직 잠들어 있는 까미유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브로콜리나 양의 솜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연하게도 푸슬푸슬함이나 솜털의 부드러움을 느낄 순 없었지만, 공을 쥔 것처럼 손을 둥글게 말아 힘을 조금 뺀 채로 쓸어내리면 솜사탕을 토닥이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의 권태로운 기분을 만끽하기엔 이만한 게 없었다.

“아침부터 재촉하기는.”

평소보다 조금 다운된, 굉장히 관음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든다. 어째서인지 그와의 밤자리가 떠올라 마틴이 잠시 숨을 멈춘 가운데 까미유가 손을 맞잡아왔다. 머리를 매만지던 손이 아닌 반대쪽 손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몸을 더듬거리는 습관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재촉이라뇨. 평소랑 다를 것도 없었는데. 또 하고 싶어서 그래요?”

까미유는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미소를 지은 채로 손등 위에 입을 맞추더니, 손등 위에 입술을 뭉개고 무언갈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 이내 입술을 떼어내고는 그 위에 이마를 대었다. 아직 잠을 다 떨치지 못했는지 아까부터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얽혀있는 속눈썹 위로 햇빛이 내려앉은 모양새가 퍽 보기 좋았지만 이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잠투정은 그만하고 일어나죠? 그러다 사랑스러운 제 모습마저 잊어버리겠어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제대로 눈을 마주해 온다.

“1시간만 더 시간을 내줬으면 하는데.”

“고백하는 어투로 잠잘 시간 더 달라 하지 말고요. 오후에 가구 몇 개만 더 보기로 했잖아요.”

“그건 다음에 해도 되잖아. 간만에 둘이서 여유롭게 누워있는 건데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고.”

“엄청 속 보이거든요.”

“그래도 꽤 로맨틱하지 않았어? 이대로 넘어가 줘도 좋을 것 같은데.”

서로를 너무 오래도록 알고 지낸 것인지 이미 자신의 말에 넘어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달콤하면서도 뻔뻔한 눈빛으로 마틴을 지긋이 쳐다보다 결국은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승리의 눈웃음이었다. 정말 재수 없고 또 재수 없고 재수가 없었는데도 싫지 않고 오히려 좋은 건 무엇인지. 웃음이 피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헛웃음으로 꾸밀 수 있었지만 이조차도 눈치챘을 게 뻔했다. 분명 기분 나쁠 일인데도 기꺼이 읽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또 무엇인지.

“로맨틱은 무슨. 그냥 잠이 많은 거죠.”

그래도 재수 없는 건 재수 없는 거였다.

 

아마 시작은 까미유가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였다. '우리 같이 살까?'라는, 까미유의 단순한 변덕에서 나온 말에 마틴도 '그럴까요?' 하고 대충 답하고선 가볍게 둘이 집을 샀다. 이 정도의 변덕으로는 생활에 지장이 없는 둘이었기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적당한 집을 고르고 가구도 필요한 것만 대충 간단하게 골랐다. 다만 침대는 괜찮은 것으로. 서로 바쁜 탓에 같이 산다 해도 침대 위가 아니면 집안에서 볼일이 많이 없을 둘이라 이것만은 신중히 골랐다. 그 과정에서 두근거림이란 없었던 것 같았다. 적어도 마틴에게는 그랬다. 말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진행해서 그런지 해야 하는 일을 한다는 기분이 컸다. 아예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었겠지만 까미유와 동거를 꿈꾼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어 더더욱 그랬다.

마틴은 무미건조하게 회상을 마치고는 시선을 까미유에게 돌렸다. 당신은 조금 들떠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동안 동거를 하면서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예상대로 우리는 우리의 집에서조차도 만나기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침대 위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우리가 고른 침대에서 홀로 잠에 곯아떨어진 사이 빈자리가 채워지는 그 순간의 느낌이 좋았다. 반대로 까미유가 먼저 잠들어 있고, 내가 잠든 까미유의 모습을 관찰하고 옆에 눕는 순간 또한 좋았다. 드디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만족감, 안정감, 의미 모를 고양감 따위의 감정들 사이에서 잠을 청할 때면 간혹 꿈에 까미유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자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러한 감정들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내 집’에 돌아가기보다는 ‘우리 집’에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 둘 가구를 보러 가자고 먼저 제안했던 것도, 그를 침대 위에서 잠깐 보고 가는 것으론 성이 안 차기도 했고, 우리가 함께하는 공간을 침대로 한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12시 14분. 이제는 정말로 정말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이번에도 잠투정을 부리면 귀엽든 사랑스럽든 아예 짐을 빼버릴 생각이다.

“이제 일어나요. 지금 안 일어나면 저 혼자 가구 보러 갈 거예요.”

“...그건 안 되지. 몽땅 네 취향의 가구들만 들여놓을 게 뻔한데.”

“뭐예요. 언젠 다 괜찮다고 말하더니?”

아무래도 오늘 하루가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마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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