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마틴] 변덕

사이퍼즈 2차 창작 / 2021년 데샹마틴 어드벤트 합작 참가 글

합작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주옥같은 더 많은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

https://go37458.wixsite.com/destinadvent2021 

함게 데마의 매력에 푹 빠져보아용 >////<


 

- 사랑하는 닥터에게 -

 눈이 내린다 싶더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바람이 독기를 단단히 먹었는지 옷 사이사이로 매섭게 파고들더군요. 추위가 나날이 강해지는 요즘,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바람이 문을 두드리고 가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요.

 그거 알아요? 당신에 제 사무실로 찾아올 때면 늘 노크를 두어 번 하고는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들어오곤 했어요. 그 10초 남짓한 짧은 정적 속에서 우습게도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곤 했죠. 아니라 부정 말아요. 당신이 교묘하게 예의 바른 것처럼 꾸미고, 저와의 만남이 별것 아닌 양 굴고, 어른의 여유를 내세워도 저는 다 알고 있었답니다. 침묵이 품은 들뜬 기류를 제가 읽어내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그 고요는 폭죽을 하늘 위로 쏘아 올린 후 폭죽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순간과 비슷했어요. 당신은 빛이 터져 나와 밤하늘을 아름답게 밝힐 장면을 기대하며 부푼 마음에 숨죽이고 기다리는 어린아이와도 같았죠. 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키스를 퍼붓고 싶었던 걸 겨우 참아내고 서류에 집중하는 척 눈을 내리깔고는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퍽 좋아하는 눈치더군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저는 늘 당신을 기다렸어요. 제 사무실로 오는 수많은 노크에 모든 신경을 쏟았죠. 뒤따라오는 행동들로 당신인지 아닌지 가늠해봤거든요. 당신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은 이쪽 업계 비밀이라 알려드릴 순 없겠지만, 만약 당신이 듣게 된다면 기분 나쁘다고 하겠어요. 저조차도 기분이 나빠 종일 물도 마시지 않았을 테니까. 아, 오해할까 덧붙이는데 저는 그 일에 능력은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고작 그런 일로 사람들 머릿속을 일일이 읽으면 제 머릿속만 더러워질 뿐이거든요. 좋은 낚싯대로 하루 내내 쓰레기를 건진 기분이랄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제법 순수하고 깊은 감정으로 서로를 사랑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펜을 든 것도 다름이 아니라 당신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날은 춥고, 당장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당신은 내 곁에 있지를 않잖아요. 거기다 눈까지 내리고 있다고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요. 아무리 연말이라 바쁘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머리털도 안 비칠 수가 있어요? 잠시 시간을 내기는커녕, 연락 하나 넣지 않아 기어이 이쪽에서 먼저 펜을 들게 하는군요. 일이랑 사랑에 빠진 나머지 저는 물론이고 저랑 한 약속도 홀랑 잊은 건 아니죠? 저희가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교제했던 건 기억은 하는지….

 오늘 오후 5시 40분까지 우리가 늘 만나던 레스토랑으로 와요. 1분이라도 늦으면 지나가는 사람 하나 붙잡고 가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요.

- M -

 P.S. 수신인은 따로 적어두지 않았어요. 물론 발신인도요.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랑하는 연인을 홀로 두고 일이랑 알콩달콩 얼싸안고 있을 일바보가 당신밖에 더 있겠어요? 어련히 잘 전달되겠죠.


 “그래서 이 편지가 언제 왔다고 했지?”

 “수술 들어가시고 나서 2시간 뒤에 왔습니다.”

 “그럼 적어도 30분 전에는 왔단 얘기군.”

 브래든은 언짢은 말투에서나 찌푸린 미간에서나 어정쩡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제 상사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날을 비서로 일하면서 그가 이렇게 기분 나빠 보이던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 편지를 읽은 사람은? 수신인이 없어서 곧장 내게 들어왔을 것 같진 않고.”

 “다행히 없었습니다. 제가 편지를 직접 받아 바로 올릴 수 있었죠. 닥터 앞으로 온 편지인진 몰랐습니다만….”

 “잘 처리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해. 인상착의는 기억하나?”

 “인상착의라고 하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브래든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건 인간으로 보이는 형체뿐이었으므로 다소 황망한 표정으로 까미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거짓이 아니라는 눈빛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내비치고 밑으로 내려간 팔자 눈썹은 애처롭게 결백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까미유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듯 고개를 두어 번 주억이기만 했다.

 

“다른 건?”

 “아, 편지를 건네주면서 ‘닥터’에게 전해달라고….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유난히 부드러웠었던 것 같습니다.”

 “그거면 됐어.”

 못 만난다고 징징거리는 편지를 전달하러 와 놓고선 정작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가버렸단 말이지….

 톡톡, 까미유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두고는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다시금 눈으로 편지를 훑어봤다. 정갈한 글씨체나 글의 내용, 기타 정황들이 모두 마틴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문장이 있었으니….

 ‘1분이라도 늦으면 지나가는 사람 하나 붙잡고 가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요.’

 사랑스러운 제 연인이 또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제게 안 좋은 방향으로. 사랑의 달콤함을 속삭이다가도 한 번씩 폭탄을 던지고 가는 모양새가 마틴답다면 마틴다웠지만, 제 자존심에 먼저 찾아오는 일도 없던 ‘그 마틴’이 편지를 보내왔다는 사실에 꽤 기꺼워하던 참이었다. 웬일로 편지를 다 보내는 예쁜 일을 하나 싶었는데, 저 삐진 걸 풀어주지 않으면 바람피우겠다고 뻔뻔하게 선언하는 꼴이라니. 덕분에 앞 절의 내용이나 가슴의 울렁거림은 이미 휘발된 지 오래였다.

 마틴이 편지에서 언급한 내가 잊어버렸다고 한 ‘약속’은, 본래의 크리스마스이브 ‘약속’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마틴을 만나러 나왔을 시간이었지만, 저녁에 진행될 회의 때문에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하게 됐다. 크리스마스라고 큰 의미를 뒀던 것도, 특별히 무얼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연말에 서로 만난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았었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기에, 서운함 없이 당연히 괜찮은 줄로만 알았건만. 크리스마스가 몰고 온 들뜬 분위기와 느닷없이 내리는 눈까지 더해지면서 제 연인과 같이 있지 못한다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편지에 약속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써둔 것이나 자신을 외롭게 한다는 표현들도 다 어린애 같은 투정에 불과했다. 그동안 바쁜 나머지 연락 한 번 주고받지 못했던 건 나나 마틴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잠적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저 일 바쁘다고 이쪽은 신경조차 안 쓰고 있었을 게 분명한데, 그깟 눈이 뭐라고 변덕을 부린답시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편지를 보낸 건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박차고 나가서 네 성질머리대로 하라고 화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습게도 마틴은 내가 떠밀지 않아도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며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눈이 멀어도 그 꼴을 못 보겠다는 게 문제였다.

 마틴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내가 아는 것처럼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단 걸 너 또한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처한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뻔뻔하게 이런 편지를 보냈겠지. 네 생각대로 나는 기꺼이 너를 선택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협박하는 건 좋지 않을 거야, 마틴. 사랑을 ‘엄마 아빠 둘 중에서 한 명만 골라’ 따위의 수준 낮은 질문으로 확인하려고 들고,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주기 위해 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모습은 퍽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핑계로 네 같잖은 장난에 어울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란 우리 도련님께서 모를 일도 아닌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지? 보고 싶다고, 회의 끝나고 와달라고 유순하게 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것도 우리 사이에?

 덜컹,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는 황급히 까미유에게서 벗어났다. 까미유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를 낚아채듯 걸쳐 입었다. 이를 지켜보던 브래든은 닥터 까미유의 기분을 망가트린 문제의 편지 내용이 궁금했지만, 호기심은 묻어두고 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의는 다음 주로 미루면 되겠습니까?”

 “알아서 일정 조율해. 필요하면 자잘한 일정들은 취소하고.”

 까미유는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쓰지 않는 향수를 뿌려댔다. 여전히 짜증이 가시지 않은 말투였다. 바람을 피우겠다니. 그냥 두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기에 변덕에 어울려준 대가를 고민하며 밖으로 나섰다. 내리고 쌓이기를 반복하는 새하얀 눈을 보며 까미유는 추위로 빨개진 코 끝과 사랑스러운 주근깨를 떠올렸다. 빌어먹을 눈이 아름답기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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