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짐의 의미
청소년 소설로의 파과
p.24 나는 그쪽 어머니가 아니에요
이 책의 두 가지 묘미는 주인공이 노년의 여성인 점이고, 그 여성이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끝없이 스스로를 노년이라고 인식한다. 10년 전부터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고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그래도 무너져가는 자신의 몸에 대한 쓸쓸함은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삶이 주는 무너짐에서, 무너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연하게 행동한다. 과거 자신의 창립했던 회사의 직원이 자신을 무시하고 명예퇴직을 은근히 압박해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어머님'이라고 불러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책 첫부분에서 말하는 '나는 당신 어머니가 아니예요.' 는 그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동료들과 스스로 만든 가족들이 그의 곁을 떠나가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그는 살아간다.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점은, 이 스토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볼 수 있다.
p.11 그리하여 이 모든 자태가 혐오적이지도 이색적이지도 않아서 타인들이 원하는 기준치 - 실제 평균치와는 무관한-에 들어맞아 어떤 이목도 끌지 않는 그녀는(중략)
타인들이 원하는 기준치의 노부인, (그게 실제와 부합하는지는 상관없이) 그게 조각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그러나 겉모습과 다르게 조금 특별한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게 파과이다. 끝을 다룬 것도 아니고, 처음을 다룬 것도 아니다. 허물어져 가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남자들은 그런 조각의 인생을 비유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이자 사랑과 열정을, 장년 시절이자 다정함을, 그리고 마지막 강박사라는 인물은 현재의 조각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과 같은 설레임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그의 가족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이는 시간은 흘렀으나, 조각이 과거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한다. 낡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노년이지만 여전히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p.204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한 평생 다른 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던 조각은 이제 노인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고, 공감을 한다. 이는 늙어서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없던 감수성이 생긴 건 아니다. 김박사의 가족을 따뜻하다고 느끼는 게 감수성이다. 동질감과 감수성의 차이는 크다. 동질감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인지하는 거고, 감수성은 '외부'에 대한 감정이니까. 소설 내에서 스스로의 묘사와 다르게, 사랑에 빠지고 될 수 없는 가족을 동경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고 추억을 회상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묻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건 원래 조각이 다정한 사람이라 그렇다. 모진 세상은 그에게 소중한 사람을 만들 틈을 주지 않았으나, 조각은 의리가 무엇인지 알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돌봄을 귀찮다고 버리지 않는 원래부터 다정한 사람이다.
청소년 소설 작가라는 타이틀의 구병모 작가가 이 소설을 썼다는 점은 굉장히 인상 깊다. 독자층의 대부분이 청소년인데도 노년의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건 용기 있는 일이다. 우리는 노인의 이야기를 대부분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기인데다 사회에서 들은 이야기도 그러니까.
p. 138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에.
p. 172 성별에서 나이로, 백안시하는 이유가 추가된데 불과하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늙음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만연하다. 가치관의 차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으나, 사회 자체가 노년에 대해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같은 자동화시스템에서 노인들은 점점 배제되어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청소년들은 자신의 미래에서 노년을 지워버린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대부분의 매체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시절이다 . 인생의 가치관이 정해지는 청소년 시절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찬란하지 않은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내가 늙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상상되지 않는다. 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하다. 요즘 사회는 인력이 넘쳐나고, 30대만 되도 늙었다고 하기에 더 미래의 모습까지는 그릴 여유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소중한 것이다. 허물어져가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 자신이고,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은 많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도 있고, 삶의 불안함에 시달릴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나이만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절과 비슷한 그 시절을 보낼 것이다. 오랫동안 했던 질문에 여전히 답을 못 하는 조각처럼 의문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파과는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배제된 공포를 독자들이 좀 더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병모 작가 특유의 판타지적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을 통해서 청소년들은 성장이 아니라 허물어짐에 대해 혐오와 무시가 아닌 공감과 안심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정체성의 확립. 그것이 이 소설이 주는 의미아닐까.
잼게 읽으셧다면 제게 5배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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