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연교

거짓 또는 진실

연교

“저기요, 이봐요!”

비가 내려 축축해진 흙길을 박차며 달려오는 소리, 그 틈을 비집는 숨 섞인 외침에 한참 앞서가던 금발 남자가 돌아봤다.

“당신 저번에 그 골목에도 있었죠? 죄다 똑같이 생긴 이 층 짜리 폐가만 잔뜩 늘어서서 음침한….”

“그래.”

그 짧은 답만을 남기고 다시 제 갈 길을 재촉하는 남자를 D는 다시 붙잡으려 들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그냥 이 지역 도서관의 사서잖아요!”

“사서가 아니라 아래 사서야.”

남자는 숲으로 들어가는 높은 바위에 손을 짚고 뛰어올랐다. D는 아직 진창길을 오 미터 정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요, 아래 사서 씨, 이름이…”

D가 고민하는 사이 Q는 한 계단을 더 올라섰다. 높은 곳에서 그가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쫓아오는 거야?”

하지만 거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D가 같은 높이로 올라설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다. 상대가 서두르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같았다.

“이상하잖아요.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거죠? 이번이 벌써 네 번째라고요! 지금 숲에 가려는 거잖아요.”

D가 쉴 새 없이 쏘아붙였다. 동시에 땀에 젖은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넘기며 숨을 골랐다. Q는 그를 숲의 숨겨진 입구, 혹은 수상한 입구로 인도하듯이 천천히 앞서갔다.

“난 특이한 데를 산책하는 걸 좋아해.”

Q의 입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나왔다. 어느 누가 오래되어 반쯤은 무너진 출판사 창고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산책하고, 날 좋은 때에 폐가뿐인 거리에서 휘파람을 불며 걸으며, 문을 닫은 도서관 주위를 새벽에 빙빙 도는 데다가, 폭우가 내린 다음 날에 산책로도 아닌 다른 길을 사용해 숲에 들어가려 들겠는가. 분명 D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Q는 생각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오히려 반가운데.”

그리고는 너스레를 떨며 낮게 쳐진 울타리를 건너갔다. 이 앞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이리저리 섞여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굵은 장대비가 몇 시간을 연이어 내렸는데도 흙이 마른 곳이 몇 군데 보였다. 어디가 길인지도 불분명했다. 분명 누군가의 발이 닿는 곳이 바로 길이 될 것이다.

D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는 그가 마땅찮았다. 평범하지 않은 행선지가 짧은 기간 안에 네 번은 겹쳤는데, 상대는 속내를 털어놓을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변명도 아닌 말들을 태연하게 해냈다. 정말로 우연이 반복되어 필연이 된 것인지 한 번쯤 자신을 의심할 정도였다.

“취향 같은 헛소리 하지 마시고요. 숲에는 왜 온 거예요?”

D가 끈질기게 물었다. 하지만 Q는 그러한 반복에 질리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아무 문제 없다는 태도로 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이런 날에 숲을 돌아보는 것만큼 특별한 일이 어디 있겠어.”

“아, 진짜!”

결국 D가 먼저 성을 냈다. 그 뒤로는 둘 다 말이 없었다. 그저 꺾여 떨어진 나뭇가지가 앞을 가로막고,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발을 위협하는 길 아닌 길을 걷기만 했다. 어느 때보다도 축축한 흙냄새가 차오른 공기 틈에, 습기를 가득 머금은 잎사귀들이 공백을 만들었다. 다윈은 숨을 쉬는 건지 물을 들이마시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묵직한 공기 속에서 도리어 숨이 트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어쩌면 나처럼 아버지… H를 조사하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만 보면 진짜 산책하는 것도 같은데.’

D가 끝없이 앞뒤 상황을 맞춰 가며 상대를 의심하는 한편, Q는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손으로 치워내고 있었다. 어떨 때는 왼쪽으로, 어떨 때는 오른쪽으로. 썩어서 쓰러져버린 나무를 둘이서 옮기려고 한 적도 한 번쯤 있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뒤로는 조금이라도 큰 장애물을 마주하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러다가 길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D에게 갑자기 Q가 짧게 물었다.

“걸을 만하지?”

“아, 네. 뭐.”

거기에 D가 빈정거렸다.

“가끔 오는 길이라 이렇게까지 난장판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가끔이 어느 정도냐면―”

“됐어요. 그런 건 안 궁금해요.”

“그래? 궁금해할 줄 알았는데. 내가 여기를 언제 오는지 알면 너도 피해갈 수 있잖아. 숲 산책은 역시 혼자 하는 게 제일이지.”

또 다른 헛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D는 이미 상대를 믿을 생각이 없었다. 이 자를 붙잡으려고 흙탕물과 진흙으로 신발을 더럽힌 순간부터, 아니면 그보다 오래전부터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D 자신도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를 잘 알 수 없었다. 일련한 사건의 시작이라면 역시 그를 처음 본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할 생각이 전혀 없나 보네요.”

Q가 충격받았다는 듯 헉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태도는 여전했다.

“난 계속 사실을 말하고 있어. 이런 작은 도시의 사서라면, 너무나 특이해서 다른 사람들이 수상하다고 생각할만한 특징 하나쯤은 가져도 괜찮지 않아?”

D는 그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이미 찌푸려진 모양새라 미간이 살짝 모여든 것을 제외하고는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자기가 수상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내 특이한 산책로들을 본 사람들한테는 수상하겠지.”

“나랑 마주친 곳 말고 다른 산책로는요.”

이제는 거의 취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Q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차치하고서. 애초에 그는 어떤 위기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무고하거나, 거짓말쟁이거나, 아니면 무고한 거짓말쟁이일지도.

“왜, 참고하려고?”

그래, 그는 또 빠져나갔다. D는 탈력감을 느꼈다. 결국 둘은 한참을 더 걷다가 정식으로 안내된 숲 입구에서 헤어졌다. Q는 산책이 만족스러웠던 사람처럼 D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반대로 D는 이 상황이 아주 불만족스러웠다. 본래 계획이었던 숲 조사도 저 사람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도 포착한 적이 없다. D가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발에 채인 돌멩이를 다시금 멀리 차버리는 모습을 본 Q는 웃으며 방금 나온 숲으로 돌아갔다. 다음 ‘산책’ 또한 둘이 함께하리라는 사실은 오직 Q만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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