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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9 L님 피드백 커미션

모든 작품은 30분 내로 결판이 난다고 한다. 30분,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 이내에 흥미를 끌지 못하면 그다음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독자는 손을 놓고 만다는 뜻이다. 30분 내로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많은 작품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일단 사람을 죽이거나, 주인공의 위기 상황을 조명하거나, 파격적인 경우 결말을 미리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명>은 짧은 시간 내로 결판을 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사형대에 오른다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주인공은 [설정명]. [원작] 세계관 속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세계귀족으로, [인물 1]과 같은 소수의 몇몇 인물을 제하면 악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도 모자라 시작부터 죽인다. 상식 외의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눈길을 확 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3화까지 혁명군의 참모이자 [인물 2]이기도 한 [인물 2]가 어떤 인물인지 빠르게 조명한다. [인물 2]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인물 3]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다. 그런 한편,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른 전개로 정보를 쏟아낸다. [인물 2]의 죽음 속 숨겨진 내막을 아는 이들은 슬퍼하고, 애도하고, 분노한다. 그의 죽음에는 어쩐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그의 능력은 죽음 뒤의 전황을 예언할 정도로 출중하다. 이런 정보가 지나가는 와중에 4화의 전개는 비교적 뜬금없다. [인물 2]과 혁명군의 묘사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소년과 [단체명]을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이 소년이 누구길래?

 

정말 과감하다. 어떻게 보면 난잡하게도 보일 수 있는 연출인데 과감히 이런 방식을 선택했다. 4화를 기점으로 작품의 전개 속도는 비교적 느려지지만, 소년이 어떤 존재인지, 그를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심화하는지 깊이 있게 다룬다.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소년의 능력을 탐내는 [인물 3], [인물 2] 시절의 연락망을 통해 찾아온 [인물 4], 그 연락망이 움직인 것을 보며 [인물 2]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인물 5].

 

[인물 2]는 어째서 이 세상에 왔을까. 그 출중한 능력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소년으로 환생한 이유는? 그리고 소년이 되어 어떤 갈등에 휘말릴 것인가. 작품은 아직 20화 남짓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전개 속도에 힘입어 제시되는 많은 의문이 흥미롭다. 이것이 하나하나 어느 순간에 풀릴지 독자로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

 

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장르와 어우러지는 글솜씨다. 우선 대사가 많고, 적극적으로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며, 문단 하나하나가 짧다. 이런 스타일은 무엇보다 읽기 쉽고, 재미있다. 군데군데 들어간 초성체는 남발하면 작품이 저급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센스가 좋다.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을 곳을 포착하여 글을 맛깔나게 만든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여러 장르가 복잡하게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인물 2]은 본래 [원작] 세계관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세상에서 온 인간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세계로 넘어와 [인물 2]가 되었다. 이렇게 차원이동물의 성격을 띠는가 하면, 1화부터 [인물 2]가 사망하고 4화에 소년으로 등장함으로서 환생물의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 장르가 아닌 성향으로 해석하자면, 인물들의 생각이 매우 극단적이다. 중심인물이 되는 [인물 2] – 소년에게 집착하며, 필사적으로 그를 가지고자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렘 또는 역하렘 작품의 문법을 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인물들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주인공은 태연하다.

 

소녀는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세뇌해도 나올 수 없을 모순이 소녀의 속에 공존했다. 골방에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며 혀 끝으로 일국을 쥐락펴락하는 주제에 그 눈은 아이처럼 순하다. 한 톨의 자기 보호 본능조차 거세당한 것처럼 굴면서도 자신의 그런 상태를 정확히 관조해 방관한다. 아니, 방관했다. - 본문 발췌

 

작품 내에서도 이런 묘사를 하듯,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을 이용하면서도 그 속내를 모르는 천진한 구석이 있다. 그러면서도 드래곤에게 ‘혁명을 위해 기어코 무죄한 자신을 죽게 둘 사람’이라는 잔인한 평가를 하는 등, 꼬인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작품 내에서도 가장 꼬인 인물인가 싶다가도, 무지하고 천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제 셰헤라자드 성의 또 다른 이름, 포시어 ‘세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포시어 ‘세라’는 혁명군의 사랑받는 참모로, 자신의 죽음 이후를 예견한 수백 개의 톤 다이얼과 수천 개의 작전안이 그의 존재를 대체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지략가로 등장한다. 혁명군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는지, 드래곤은 세라가 죽은 것으로 혁명군과 그에 동조한 민중에게 염증을 느꼈으며, 사보는 그가 죽지 않았다는 감만으로 무단 행동을 벌일 정도다.

 

이런 공적을 세우고 사랑받을 정도면 목숨을 온존할 방법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세라는 죽음을 택했을까. 독자의 추측을 보면 죽음으로서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세라의 성격과 인상을 보아 이전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세라가 소년이 되었을 때, 불량배들을 이길 방법이 칼에 찔리는 것 외에 없다고 판단하여 목숨의 위기를 맞았던 걸 생각하면, 세라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살아날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셰헤라자드 성의 출중한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본래 세계에서도 가지고 있던 능력일까, 이 세계에 와서 얻은 능력일까? 얻었다면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일까. 전투 중에 ‘처음부터 모든 가능한 미래를 보고, 구미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했다’는 묘사가 나올 정도다. 몸에 밸 정도라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타고났다는 정도로 사람이 이만한 지략을 뽐낼 수 있을까?

 

즐거운 의문을 더하는 이 작품이 20화 초반까지밖에 나오지 않아, 더 추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엔딩까지 무탈하게 연재하시기를 빌며 이만 글을 마친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서류를 읽다가 시선을 알아차리고 희미하게 웃어주는 소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일상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파괴력을 지녔다.

본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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