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5 P님 피드백 커미션
전체적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벽돌집 같은 느낌이에요.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모든 것을 관찰한 누군가가 꾹꾹 눌러 쓴 일기장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매우 섬세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체는 얼핏 건조하지만, ( A )와 ( B ) 사이를 다룰 때는 눈처럼 휘날리는 사랑을 느껴요.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빗발치는 것도 아니고, 조용하고 포슬포슬 내리는 눈이요.
제목인 <Neverwinter Neverland>도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영원한 겨울은 없고, 영원한 세상은 없다. ( B )의 설정과도 잘 맞습니다. 작품 속에서 이런 독백이 있지요.
“…있잖아요, ( A ) 경. 나는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종류의 말은 할 수 없어요. 언제 또 기억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고, 언제까지 이곳에 있게 될지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이니까. 당신은 또, 영원이라는 말을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이 대사는 ( B )의 설정을 모르는 독자에게 그의 설정을 알려줌과 동시에, 어떤 불안 요소를 가졌는지 알려주는, 여러 역할을 갖춘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또 기억을 잃어버릴지,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겨울 속 여인. 영원히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두 사람 중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잖아요. 겨울이 지나면 잠깐의 봄이라지만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줄 거예요.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는 있으니까요.
( A )의 캐릭터 역시 섬세하고 건조한 글이기에 잘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동봉한 자료에 ‘책임감이 강하고 자존감, 자존심이 높은 편. 자신의 실력에 대한 신뢰가 있으나 오만한 성격은 아님.’이라고 적어주셨는데, 주방장에게 식사를 요청하는 등 말 없는 배려에 더해 선물을 주는 입장인데도 그는 무뚝뚝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 B )이 홀든 가문에게 보호받고 키워지는 입장임을 생각하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도 될 텐데요. 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존심이 높은 ( A )이기에 아무리 ( B )이 보호받는 입장이라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구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거겠죠.
그러면 ( A )는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 “그런가.” 하는 짧은 말을 남긴 채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러면 또 저녁 식사 때까지는 얼굴을 못 보겠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이 문장 역시 그런 ( A )의 견실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쓰는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면서 군데군데 대사나 독백을 섞는 것은 글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문단 하나하나가 긴데도 술술 읽히는 것은 이런 박자 조절 능력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전해 주며 주방장은 “큰 도련님이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시는 일은 흔치 않은데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 B )은 불쑥 ‘특권일까요?’ 하고 물어볼 뻔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렇게 되면 ( B )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어요.” 하는 채로 넘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잘린 채 포크에 찍힌 고기를 입에 넣은 후 말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봐온 것도 있고요.) 문장이 길면 난잡하거나 읽기가 힘든 경우도 있는데, 길어도 금방금방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덕분일 거예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말줄임표를 사용하여 여운을 남기는 스타일도 좋아요. 이 작품에서 말줄임표는 1. 여운을 남기거나, 2. 캐릭터의 말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3. 문장의 끝에서 정적을 강조하거나 –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의 경우 : 이어질 말을 생략함으로써 감정을 강조
그런데도 이 거리에서 당신을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영원히 남겠지. 그것만으로도, 나는…
초반에서는 귀족 가의 여성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딸이 태어난다면 이런 부분을 보고 모범 삼을 수 있도록…같은 이율 서가에 남는 걸 허락받았겠지.
2의 경우 : 캐릭터의 소심함과 과묵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
“그…네. 급하신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럼 가지.”
3의 경우 : 감정이 벅차올라 말을 잇지 못하는 화자의 상태를 표현
무엇을 말하든 주제넘은 부탁이었겠지만, 그러나…
아아, 그렇다면 지금을 마치 영원인 것처럼…
비교적 건조한 이야기 속에서 말줄임표로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여,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재 화자의 감정을 강조했습니다. 이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에 밴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ㅋㅋ) 가까스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인물을 잘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왜, 소심하고 불안하지만 (전문용어로 아방하다고 하죠…) 자아를 억누르는 인물상. ( B )이 딱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었어요. 자료로 준 썰도 ‘(자신의 입장 때문에) 일부로 자아를 꾹 억누르고 아방하게 있는 중’이라고 적어두셨으니까요. 그런 인물상을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만큼 잘 표현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짚고 넘어갈게요. ( B )은 ( A )의 드림주라는 메타적 사정이 있지만, 그런데도 ( A )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이 너무 좋아요. 글에서도 ( A )와 ( B )의 ‘약간 엇갈린 주파수 속’ 사랑이 표현되기도 하고요. 서로를 좋아하는데 표현하지 않는? 그것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은 아니고, 성격상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해요.
썰에도 적혀있듯 연고 없이 이해관계에 휘말려 의사 없이 움직이던 ( B )이, 홀든 가문에 인계되자 새로운 ‘집’이 생겼잖아요. 처음에는 살짝 경계했겠지만, ( A )의 사랑을 받아 무언가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이제 좀만 떠밀어 주면 둘이 어떻게 될 것 같은데…완벽한 행복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A )는 보라색 튤립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준 건 아니잖아요.
자신이 무엇을 줬는지 안다면 둘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까요? 그러면 이만 마칩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