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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스포츠를 연관 지은 작품을 많이 봤다. 파산 직전의 회사와 일본 실업 야구를 다룬 <루스벨트 게임>, 회사 내 세력 경쟁에서 도태된 샐러리맨이 만년 꼴찌 럭비팀을 회생시키는 <노 사이드 게임>, 그리고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던 <스토브리그>, 야구 웹툰으로 유명한 최훈의 <GM 시리즈> 등. 그리고 세 작품의 공통점은 ‘회사’ 입장에서 보는 ‘스포츠’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리맨즈 클럽>은 다르다. ‘스포츠 선수’ 입장에서 ‘회사’를 보는 작품이다. 기성 작품으로는 <클로저 이상용>, <프로야구생존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은 입스로 인해 강호 팀 ‘미츠호시 은행’에서 해고당한 ‘시라토리 미코토’를 중심으로, 재기를 노리는 배드민턴 팀 ‘선라이트 배버리지’를 다룬다. 선라이트 배버리지는 회사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배드민턴 약팀. 주인공 미코토는 일에도 경기에도 비협력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며 변화하고 다른 선수들 역시 그에 맞춰 또 변화한다.

 

주인공이 미코토인만큼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렇지만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복식 페어 타츠루, 트라우마로 실전에 약한 타케다, 타케다의 페어이자 미코토의 고등학교 동창인 토우야, 그리고 그의 형인 소타. 사에키 소타는 8화까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캐릭터다. 선라이트 배버리지의 단식 선수이며, 게임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특정한 상황을 게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이 많지는 않지만 가끔 허를 찌르는 말을 한다.

 

“그런데 너무 별나지 않아? 대중화하기 어려울 것 같아.” - 3화

“우리 할아버지 같아.” - 3화

“묘하게 차분하니까 오히려 무서워.” - 8화

그러나 8화에서 사에키 형제를 다룸으로써, 그에 대해 많은 정보가 제시된다. 8화는 사에키 소타라는 캐릭터에게 있어 큰 터닝 포인트다. 어째서 적당한 태도를 보였는지, 동생과는 어떤 관계인지,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부 드러난다.

 

우스야마 토오루가 들어오고 타케다 코우키가 코치로 전향하며 선라이트 배버리지는 격변한다. 오노 감독의 지명에 의해 우스야마는 단식, 소타는 복식 전향. 이때 소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날 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소타는 ‘전력으로 하고 싶다’는 토야의 말에 놀란다. 말을 끊고 밖으로 혼자 나가기까지 하며, 다음 날에는 퇴부 신청서를 내버린다. 토야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거짓말일 게 뻔한데도, 어째서일까.

 

“지금의 나는 그저 구멍 때우기 용이니까.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잖아.” - 8화

 

경쟁심이 강하고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동생 토우야와 달리, 소타는 언뜻 보면 어떤 일에도 적당한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소타를 동경하던 토우야를 보며 생긴 기질로,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8화에서 알 수 있다. 토우야는 소타를 보며 배드민턴에 입문했으며, 소타를 따라 선라이트 배버리지까지 왔다. 이는 선라이즈 배버리지의 상대인 유니식스, 미츠호시 은행에 각각 소속된 키리시마 형제와 대비를 이루며 8화와 10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신을 게임 속 ‘마을 사람 A’에 비유하는 소타. 소타의 이 말은 일본 실업팀 선수의 현실과 그가 보는 자신을 명백하게 정의한다.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실업팀 선수는 실적을 내지 못하면 해고된다. 그들 나름의 애환이 있음에도 ‘연습하며 논다’는 사원들의 눈총을 피할 수 없기에, 타인을 주의 깊게 살피는 소타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소타의 성격은 좋게 말하면 사려 깊은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거나 깎아내리는 자존감 낮은 성격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성향은 따지러 온 동생에게 여기는 회사니까 회사원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그를 밖으로 보내며 주변에 사과하는 장면에서 더욱 드러난다.

 

그리고 8화의 또 다른 장면에서 소타의 성실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동생인 토우야가 고생해서 만든 디자인 시안. 통과시켜 줄 수도 있겠지만 품질보증부 소속으로서 ‘이러면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다’는 근거로 토우야의 시안을 반려한다. 이로 인해 토우야는 디자이너에게 리테이크를 요구하나, 리테이크를 받지 않기로 유명한 디자이너였기에 야근까지 하며 고생한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보일 수 있는 태도다. 배드민턴 말고도 업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동생을 많이 좋아하고 챙겨주기에, 편의점 음식과 게임 친구를 알아봐 주는 등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책임감이 있는 인물이다.

 

“단식에서 제외된 시점에서 이미 끝났어. 우스야마 씨가 들어오고 코우 씨가 빠지고 남은 나를 어쩔 수 없이 복식에 앉힌 것뿐이니까.” - 8화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빛을 못 보던 이유가 있다. 소타의 특출난 책임감은 부담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7년의 공백기가 있지만, 한때 미츠호시의 이부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우스야마. 주장 타츠루까지 고생해서 데려오려고 했던 것을 보며 자신이 왜 계속 실업팀 선수로 뛰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날 하루 전, “지면 자신에게 사과하는 코우 씨 탓을 했었다”는 토우야의 말과 지금까지의 압박감을 복합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토우야와 복식 페어를 이루다 지면, 자신을 동경하던 동생이 자신을 부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토우야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소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유니식스의 세계 2위, 키리시마 하야토 역시 겪고 있는 문제다.

 

소타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이렇게 ‘형제’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고, ‘형제’라는 키워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키리시마 형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에키 소타는 동생으로 인한 부담감을 복식이라는 방식으로 이겨냈으나, 키리시마 하야토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겨내지 못하고 자멸했다. 수려한 외모로 모델과 실업팀 배드민턴 선수를 병행하는 하야토.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모델 일을 병행함으로써 자신에게 물러날 길을 내어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델을 하느라 배드민턴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니까.’, ‘내 동생은 천재니까.’ ‘세상에는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며 8화까지 노력하지 않았던 소타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 대비와 변화는 10화에서 절정을 이루고, 마지막 12화까지도 이어진다. (엔딩이 좋게 돌아간 만큼 하야토 역시 소타처럼 타쿠마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해소하지만 말이다)

 

동생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하야토와 소타. 형을 이해자로 여기고 동경했던 타쿠마와 토우야. 하야토는 승부처에서 타쿠마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소타는 토우야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한계를 깬다. 이는 “내가 못 하는 걸 토우야가, 토우야가 못하는 걸 내가 하는 거야. 멋대로 천장을 만들고 내 한계를 정하는 건 이제 그만뒀어. 지금 할 수 있는 걸 전력으로.”라는 10화의 대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받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 공은 받아내지 않던 소타가 몸을 던지며 공을 받아쳐 낼 정도로 달라진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도 포기하지 않고 토우야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노력한다.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버티는, 난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 8화

 

이야기를 바꾸어 다른 각도에서 소타를 살펴보자. <리맨즈 클럽>의 스토리를 관통하는 말이라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가 있을 것이다. 작품의 주연 중 이 말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 역시 소타다. 소타는 10화에서 독백하듯 ‘멋대로 천장을 만들고 한계를 정하던’ 인물이다. 단식을 벗어나 복식으로 전향하게 되자, 우스야마라는 천장과 한계를 정하며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동생 토우야는 8화에서 보이듯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끝없이 노력하는 인물이다. 상대의 행동을 예지 수준으로 분석하는 천재, 주인공 미코토를 대단하다고 평하지만 절대 기가 눌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스포츠와 일을 대하는 토우야의 태도는 소타를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소타가 껍데기를 깨고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마을 사람 A의 존재 가치, 조금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땐 너하고 있을 때거든.” - 8화

 

“넌 언제나 냉정하고 매사를 전체적으로 볼 줄 알아. 업무 태도도 성실하고 상사로서 트집 잡을 게 없어. 그런데 자신 마음까지 남 일로 여기고 있지 않아? 팀 메이트로서 네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 8화

 

8화, 우스야마의 이 말은 타인이 ‘사에키 소타’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근거다. 토우야의 형으로서 자신을 많이 억누르고 살았던 소타는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마음에까지 거짓말을 한다. 이는 오노 야스오미 감독의 “너, 배드민턴 좋아하냐?”는 질문에 주저하며 대답했던 장면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소타는 배드민턴을 좋아하지만, 솔직하게 대할 수 없다. 소타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여기까지 왔다. 아마 동생 토우야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했으리라.

 

<리맨즈 클럽>에서는 많이 순화되거나, 유쾌하게 넘어가거나, 보이지 않으며, 이전에도 강조한 부분이지만 실업팀 선수의 고난은 상당하다. 미츠호시 은행처럼 토양이 잘 갖춰진 실업팀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다른 작품에서 – 예시를 들었던, ‘회사’의 입장에서 ‘스포츠’를 보는 –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코토와 타츠루처럼 일과 스포츠를 병행하는 초인들은 현실에 없다. 스포츠 하나에 집중하는 프로와 실적에 대한 압박은 비슷하면서, 지원은 절반도 되지 않는 실업팀 선수는 회사와 주변에 시달리며 결국은 좋아하는 스포츠를 그만두기도 한다.

 

선라이트 배버리지 역시 전무에 의해 팀이 해체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타 작품에서 묘사된 실업팀의 예산은 약 1억 엔이다. 1억 엔이란 중소기업 입장이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절약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화에서 선라이트 배버리지의 사장이 말하듯 스포츠 선수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다. 선라이트 배버리지 배드민턴부의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승리를 추구하지만, 승리를 추구하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소타를 비롯한 모두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별로 재미가 없지.”

“그게 무슨…”

“걱정 마, 신입. 내가 제대로 가르쳐 줄게. 배드리맨의 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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