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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겠지만 우린 꼭 무인도를 찾아야만 해*

NPC 주신의

장마가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여름 완성된 성모 마리아는 한때 거대한 풍채를 자랑했을 난파선을 안고 있었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천사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조난한 선원들을 지켜보는 세이렌이 있었다. 불경죄를 뒤집어쓴 그림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잡동사니 틈으로 던져졌다. 학기 내내 잡고 있던 그림을 먼지 날리는 곳에 묻으면서도 슬퍼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프지 않아? 오래 그린 그림이잖아.”

“글쎄? 평가는 끝났으니까 됐지. 짧은 생이었지만 이렇게 좋아해 주는 친구도 있고, 성공한 거 아니야?”

“네 그림을 좋아하는 애들은 나 말고도 많을걸! 네 부모님도 좋아하시지 않아?”

부모님? 못 들을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반문한 신의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눈물 한 방울을 훔쳐 가며. 복도를 울리는 소리에 몇몇은 실습실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신의가 배를 잡고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신의의 어머니가 신수재림교의 교주 비슷한 것이며 이 그림은 강경한 신도들에게 귀신 들린 그림이나 다름없다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으니까. 아, 주신의 그만 웃으라고……. 양 팔을 붙잡고 몇 번이나 흔든 뒤에야 신의는 웃음을 멈췄다.

허파에 든 바람을 다 빼내고 나서도 한참 눈을 비빈 신의는 자신이 열두 살부터 살았던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장승 대신 신수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마을, 신부와 사제의 아이들은 수도회의 낮은 담장을 지나 넓은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한 가족’으로 자란다. 수도회 부지를 나가 마을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도 해가 지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이 천국 같았던 건 친구와 조금 더 오래 놀 수 있으니까. 마을 주민들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제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제들은 그들의 봉사에 감사하며 구원을 약속한다. 심판의 날에 당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신이니 구원이니 심판이니 하는 것들은 불신론자에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이 신의의 일이라면 코웃음 치며 넘길 수 없었다. 신의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상이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내가 나에게 떳떳해야 한다고 했다. 대본을 읽듯 막힘없이 흘러나온 대사가 지나치게 희곡적이라 말을 잃은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러니까 주신의는 지금……

“신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심판도, 구원도?”

“응. 신은 존재해. 심판도, 구원도, 어쩌면 멸망도. 그러니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멸망과 가장 가까운 곳을 낙원이라 여기면서.”

단단히 미쳤다.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시대에 신이 웬 말이지. 거대한 폭발로 우주가 생겨나고 물에서 태어난 생명이 오랜 진화를 거쳐 인류가 되었다는 것이 21세기의 정설 아니었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라지만 도저히 이 믿음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네가 확신했던 일들은 전부 현실이 됐다. 1학년 1반 반장은 이 아무개가 될 것이라는 말이나, 4반의 김 아무개가 점심을 먹으러 가다 발목을 접질릴 것이라는 말이나, 8반의 박 아무개가 학교 카메라를 고장 내 변상하게 될 것이라는 말들. 그러니 이 확신은 거짓이어야 했다.

“거짓말하는 거지?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너 농담하는 거 좋아하잖아. 사람 놀리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얼마 못 참고 농담이었다면서 웃고 그랬잖아.”

“내가 그렇게 얄밉게 굴었어? 안 되겠네. 내가 혼내줄까?”

“너랑 장난칠 기분 아니야, 지금…….”

신의와 어울리지 않는 오랜 정적 끝에 한 마디가 우리의 간극을 채웠다. 미안. 왜 사과를 해? 농담이었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잖아. 농담이 아닌 걸 농담이라고 할 수는 없어. 거짓말이라도 해. 내 친구가 미친 사람인 것보다는 거짓말쟁이인 편이 나으니까. 네가 나를 믿지 않으면 되잖아. 그냥 다른 애들처럼 미친 사람 취급 해. 그게 네 대답이야? 응.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지수야, 언젠가는 너도……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오예주)

#유리된 #신의 #불발탄

① 비정형 복제품

② 검은 옷의 길잡이

③ 제멋대로인 조준경

주신의 플로렌티나 2학년 6반 한국화 전공

F · 160 · 53

신율에서 주신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자나 교역자 부모를 둔 학생들에게는 초령의 딸로 유명했고, 신화리에서 자란 학생들에게는 사고뭉치 소꿉친구로 유명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를 매사 시비조로 사람의 속을 긁거나 아무리 모나게 굴어도 미움받는 악취미가 있는 것처럼 들러붙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가 사이에서 공통된 평을 찾자면 아무튼 특이한 애, 실력으로는 흠잡을 곳 없는 애 따위의 평이 남았다. 끝을 알기 어려운 짙은 녹음의 동공과 뚝뚝 끊어지는 검은 머리 역시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3대 초령의 딸은 유독 신실하고 정결한 영성을 지녔다. 교주의 세습 체제를 반대하는 이들도 차기 초령 자리는 신의의 몫이라는 소문을 잠재우기 어려워할 만큼. 어릴 적 유독 허약했던 탓에 공동 양육되지 못하고 친모의 돌봄을 받았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병이 완치된 열두 살 무렵 다시 양육 공동체로 돌아온 신의는 그때부터 방언을 쏟아냈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때면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다.

죽마고우들에게 돌아온 신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병약했던 주신의와 활달해진 주신의를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몇몇은 헤어지기 이전의 기억을 묻기도 했다. 해가 진 뒤 몰래 호수를 보러 갔던 일이나 친구 집 마당에 타임캡슐을 묻어두었던 일을 기억하는 ‘신의’를 의심할 명분은 없었다. 의심스럽대도 믿을 수밖에. 모두가 그를 신의라 하고, 신의가 자신을 신의라고 하니.

여전히 자신을 의심스레 바라보는 누군가에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의심하면 어쩔 거야. 세상이 나를 신의라고 하는데. 너도 잠자리 날개를 잡아서 나한테 던졌다고 마음에 담아두는 나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지금의 내가 편하잖아. 그 속삭임은 오직 A를 향하고 있었다. 사시나무 떨듯 떨던 그가 어른들에게 달려가 쟤는 ‘가짜 주신의’라고 말해봤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주교들은 친절하게 그를 달랬고, 젊은 사제들은 사춘기 청소년의 망상쯤으로 취급했다.

봐.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A는 신의의 실종 소식이 학교에 퍼진 뒤에야 자신을 반쯤 협박하던 그가 울고 있었단 사실을 떠올렸다. 눈물까지 빼앗긴 자신의 처지가 우습고 부끄러워 영영 지워버리려 했던 기억이 천천히 돌아왔다. A의 기억 속 ‘주신의’는 두려워할 것이라고는 없는 여자애였다. 주교가 되어 권세를 누리겠다느니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심판의 날을 준비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신의와 영 거리가 멀었다. 노력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애쓰지 않아도 도달할 수 있는 미래를 찬양했다. 주어진 길에 불만을 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모습이 기특했던 걸까. 신은 신의에게 간절함이나 절박함 없이도 정상에 오를 재능을 허락했고, 신의는 그 재능을 십분 활용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이젤 앞에 앉아 자기 작품을 그려나갈 때 신의는 교정을 배회하다 분수 아래에 동전을 묻었다. 소원을 빌고 싶은데 동전이 없다는 이유로 돌아가면 슬프잖아.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변명을 허공에 늘어놓는 신의의 모습을 본 몇몇은 정말 정신이 나간 애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힘을 실었다. 신이든 귀신이든 보는 게 아니고서야 저렇게까지 엉뚱할 수가 있겠냐고. 속도 기준도 모를 수 있느냐고. 정작 소문의 당사자는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웃긴다며 복도가 떠나가도록 웃어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 표명은 소문에 더욱 불을 붙인 꼴이 됐지만 동시에 그를 부학생회장 자리에 올려주기도 했다.

“귀신 들린 애 소리 듣고 부학생회장 되면 좋은 거 아니야? 난 유명해져서 좋은데.”

“너는 속이라는 게 없냐, 진짜? 그 배지만 달고 있어도 풀 스펙인데 뭐래. 귀신 봐서 특별반 들어갔어?”

친구의 퉁명스러운 물음에도 침음 끝에 “몰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하며 쾌활하게 답하는 여자애와 명찰 색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의 심사를 뒤틀기 위해 골몰하는 여자애가 같은 사람이란 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는 묘사하는 재주만큼 가장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 모습을 바꿀 수 있었고, 상대가 바라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도가 텄다.

어른스러운 체하며 뻣뻣하게 구는 친구를 꺾겠다 달려들 때는 자신을 마음껏 미워할 수 있도록 날카롭게 벼른 칼을 쥐었다. 마음을 터놓을 곳이 필요하다는 친구 앞에서는 뜯어버리면 그만인 노트패드처럼 꼼꼼하면서도 가볍게 굴었다. 일탈 메이트가 필요하다는 친구에게는 기꺼이 자신의 개구멍 루트를 알려주기도 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었던 신의가 유일하게 약속하거나 가장하지 못한 것은 ‘영원’이었다.

나는 ■■ 않지만, 영원히 ■ ■■ 없을 거야.

신의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신의가 사라지고 흔적을 찾던 중 피에타라는 이름을 가진 미완성 작품이 여럿 발견되었다. 다시는 피에타를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 후로 한 번도 피에타를 그린 적 없었다는 말도, 열두 살부터 신화리에 살았다는 말도 전부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된 지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던 신의는 과연 어디까지 진짜였을까, 사실 그 애는 우리 모두를 속인 사기꾼이 아니었을까…….

19920828 朱神依 Eryngium 비밀스러운 애정

19920112 임혜림 체사리아 Alyssum

1. 신율예술고 교단 인재 전형 A, 신화리 출신

1-1. 신수재림교 3대 초령 윤지화의 딸이며, 오빠와는 열다섯 차이가 난다. 의사로 해외 의료 봉사를 나가있는 오빠는 일찍이 신실함과 거리가 멀어 내다 버린 자식 취급을 받았다.

1-2. 공동 양육 원칙에 따라 다른 교역자의 아이들과 함께 자랐으나, 초등학교 입학 직후 선천성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어 양육 공동체에서 분리되었다. 열두 살 무렵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초령인 어머니와 주교인 아버지의 돌봄을 받으며 독방에서 지냈다.

1-3. 종교와 무관한 몇몇에게는 자신이 열두 살 무렵 신화리에 살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따져 물으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잘 기억이 안 나네, 따위의 말로 넘겼다.

2. 신율예술반

2-1. 2008년 1학기에 특별반에 입반했다. 입반 사유는 ‘멋있으니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라 했다지만, 평소의 행실을 생각해 보면 전자에 무게가 실렸다. 특별반을 나타내는 문양은 왼쪽 손목에 새겨져 있는데, 그 위에 자주 낙서 했다.

2-1-1. 너도 해줄까? 낙서만 지울 수 있단 거 알잖아.

2-2. 1학년 때에는 특별반 정기 모임에 지각하거나 무단결강하는 등 전형적인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으나 선배들의 타이름으로 2학년이 되며 꽤 준수한 출석률을 보였다.

2-3. 특별반 학생들에게 유독 살갑게 군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 눈이 간다는 이유로.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만.

3. 2학년 6반 한국화 전공, 부학생회장

3-1. 그림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무렵,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무렵이었다. 풍경보다 인물을 위주로 그린다.

3-2. 2007년 개최된 전국 초·중학생 미술 실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입학 성적이 우수하여 1학년 6반 임시 반장을 맡기도 했다. 정식 학급 임원 선거에서는 반장이 된 친구에게 두 표 차이로 밀렸다.

3-3. 2009학년도 학생회 임원 선거를 앞두고 학교에는 주신의가 귀신을 본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앞에 나설 일 많은 회장이 제정신 아니라면 곤란하겠지만 뒤에서 놀고먹는 부회장이 귀신을 본다고 하면 좀 힙하고 괜히 궁금할 것 같지 않아요?” 같은 소리가 먹히기라도 했는지 당당히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3-3-1. …… 이게 진짜 되네? 그럼 이제 좀 더 성실하게 살아야 하나? 귀찮은데!

3-4. 2009년 미술제 대상 수상

4. 교지편집부 만년 지각쟁이

4-1. 입학 당시부터 쭉 교지편집부에서 활동했다. 기사 작성보다는 교지에 실릴 사진이나 그림, 레이아웃 교정을 담당하고 있다.

4-2. 학교 소유의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분수에 빠뜨릴 뻔한 뒤로 사진 찍는 것은 다른 부원들에게 양보하고 있다.

4-3. 개인 소장 영상을 남기기 위해 소니의 캠코더를 종종 들고 다닌다. 남는 건 사진과 영상뿐이라는 인생철학을 착실히 지키고 있다.

4-4. 특별반 출석률은 개선했지만 동아리 활동은 자주 지각한다.

5. 중정의 지박령

5-1. 교실 다음으로 자주 목격되던 곳은 중정의 천사 분수 근처 벤치였다. 본인은 소원을 빌지 않으면서 자켓 주머니에 늘 동전을 넣어 다녔다.

5-1-1. 저한테 소원 하나 빚 지신 거예요.

6. 닿을 수 없는 여름의 아지랑이

6-1.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다.

6-1-1. 우린 표지에 불과해. 그 애도, 나도.

7. 2009년 6월 24일 실종

7-1. 2009년 7월 ○○일 ■■

7-2. 2009년 7월 23일 실종 ?

Biography

날 부쉈다 믿었었는데 또 갇혀버렸네

깨진 유리 조각 떠다니는 이곳은 나의 집*

한로로-금붕어


*이하 공개되지 않는 항목입니다*

공명도 | 85

루프 횟수 | 1회

[필수 질문] 이 루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부 잊어버린다면 괴롭진 않을 텐데. 그렇지 않아? 모든 것을 기억해도 결코 바꾸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Q. 당신의 목숨을 바쳐 단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A. 그 마을에 가겠다고 선택했던 것. 적어도 이런 일은 겪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NPC 주신의와 자유로운 관계 설정을 허용·권장하며 ‘임혜림’ 관련 설정은 오픈 채팅으로 선 문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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