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MATE

CHECKMATE

종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디지? 치즈펠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교회의 시계탑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이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 종소리를 듣는 것도, 제대로 된 교회 건물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기에 그는 내리쬐는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미간을 찡그린 채 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해?”

서너 걸음이나 앞서 걷고 있었음에도 모로는 기민하게 치즈펠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뒤를 돌아보았다. 국경이 가까워져 오자 이전처럼 바쁘게 재촉하는 일은 없어져서 느슨하게 풀어진 치즈펠과 달리 그의 기사는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티 내고 있진 않지만,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피로할 것이다. 괜한 부담을 지워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치즈펠은 잰 걸음으로 모로에게 다가갔다. 품에 안고 있던 식료품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무거워? 그렇게 물어오는 얼굴에 치즈펠이 고개를 저었다.

“교회 보는게 오랜만이다, 싶어서.”

“아아.”

그동안은 산길을 따라 달리거나, 교회도 없는 작은 마을을 전전하던 것이 대부분이다. 짧게 긍정한 모로가 시계탑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게 다였다. 치즈펠은 흥미 없다는 듯 눈을 떼고 걸음을 옮기는 모로의 뒤를 따랐다. 제국의 곳곳에는 교회가 퍼져 있었고 교단의 수장인 황제를 모시는 기사였음에도 모로는 신앙심이 희박했다. 어릴 적부터 교회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던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로는 기사가 되는 것을 택했다. 측근으로 둘 기사를 선발하러 수련장에 방문했을 때, 견습 기사들 사이에 서서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던 모습이 스친다.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순백의 제복에 낙인이 찍히듯 까맣게 물들어버린 것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사가 되었던 그가 ‘배신자’가 되면서 까지 황궁을 나온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모로는 언제나 치즈펠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무엇이든 돌봐주는 기사님이라니, 믿음직스럽기도 해라. 언젠가 황궁 내의 교회에서 마주쳤던 동황제의 말이 떠올랐다. 황궁에서 멀어져 갈수록 떠오르는 것은 그 안에서의 기억들 보다도 별로 가까워지지 못한 동황제의 말들이다.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를 보듯 가볍게 대하는 말투와 태도. 당시에는 그저 웃어 보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곱씹을 때 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는 했다.

생각에 잠겨 속도가 느려지자 거리는 금세 벌어진다. 치즈펠은 고개를 저었다. 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결과가 엉망이라고 해도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좁힌 치즈펠이 모로의 손을 잡았다. 장갑에 감싸여 있지 않은 손이었다. 뿌리치는 일은 없었다. 마주 잡아오는 힘에 치즈펠이 미소지었다.

*

밀비는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랑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자신 또한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왔기에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밀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앙심이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존재하고 교회는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가 황제와 그 가문의 일원들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실과는 연이 없는 귀족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맹목적으로 믿음을 바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믿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밀비는 자문했지만 제국 교회의 수장이자, 쌓아 올려진 신앙심의 꼭대기에 서 있는 그에게 답을 내려줄 사람은 없었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달래려는 듯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지나간다. 느슨하게 묶어 흐트러져 버린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긴다. 뒤따르는 발소리는 그의 기사 뿐이었다. 황궁 내의 교회까지 뒤따랐던 시종들은 주교가 추도사를 읊는 도중에 신경질적으로 뛰쳐나간 여제의 뒤를 따르는 것을 주저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죽은 이들 중에서는 여제가 총애하던 귀족 몇몇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금 더 늦게 나올 걸 그랬나?”

혼란스러운 예배당에 덩그러니 남아 추도사를 듣고 있는 이들이 들었다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장례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신의 죽음은 밀비에게 있어 그다지 마음을 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충성스러운 가신은 귀한 존재다. 잇속을 챙기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황제의 광휘 아래에서 충성심 이외의 것을 주지 못하는 가신이란 쓰다가 버릴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들은 귀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밀비의 지론이었다.

“아뇨. 적당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조금 더 들어줄까, 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의리 깊은 사이도 아니었고.”

그의 기사가 말한대로,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의리가 깊지 않았기에 밀비는 직접 그들의 처단을 명했다. 서면으로도 남지 않은 은밀한 명령이었다. 죽음의 진실에 대해 아는 것은 명령을 내린 황제인 밀비와 명령을 행한 기사, 하디 뿐이다. 황궁과 죽은 이들의 영지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지만 밀비는 하디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누구도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왕의 검’에게 오명을 뒤집어 씌우는 일이 되었지만 그것에 대한 거래는 이미 마친 상태였기에 주종은 거리낌없이 명령하고 실행했다.

“냉정하신 분이군요.”

“걱정하지 마. 하디 당신의 추도사는 끝까지 들어줄 테니까.”

“영광입니다.”

꽤 짓궂은 농담이었음에도 눈 하나 까딱 않고 받아 치는 기사를 보며 황제가 웃었다. 동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