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에도 우리에겐 울 권리가 있다¹
MPC 권다헌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
(채서곤, Cai Xukun)
권다헌
3-1(19)
관악 - 트럼펫 전공
M 178cm 65kg
자기 아들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유학 보내고 적적함을 이기지 못하던 윤향은 새로운 ‘아들’을 들였다. 친아들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쉽게 만나지 못하는 아들은 떠오르지 않되 세공 전의 원석같아 깎아내는 재미가 있는 아이였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를 가정부로 들이고 후한 대접을 해준다는 칭송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윤향은 한술 더 떠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도록 했다. 어머니를 사모님이라 부르는 아들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그래도 다헌에게는 엄연한 어머니가 있으니 자신은 이모로 만족하겠다고.
미영이 넓은 집의 때를 닦고 물건마다 광을 내는 동안 윤향은 다헌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가 제 아들이 입을 옷을 골랐다. 이 옷은 우리 민우보다 다헌이한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건 민우가 입기에는 좀 작지? 따위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귀찮은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 것은 다헌의 생존법이었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윤향은 미영과 다헌의 옷장에 걸린 것보다 0이 몇 개 더 붙은 옷들만 골라 담았고 개중 몇 개는 다헌의 옷이 되기도 했다. 다헌은 고작 열몇 살 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확실히 아들이 있으니 좋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 사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아이가 태생부터 다른 여자 어른을 이해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다.
숱한 몰이해 중 제일은 어느 날 사모님이 자신에게 선물한 트럼펫이었다. 생일 선물이라며 건넨 묵직한 가방에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금관악기가 들어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다헌을 향해 웃음을 터뜨린 윤향은 소년을 끌어안았다.
“어제 민우한테 선물할 악기를 고르느라 악기사에 다녀온 건 알고 있지? 트럼펫들을 쭉 보는데, 민우랑 다헌이가 같이 트럼펫을 부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너무 흐뭇한 거야. 마침 네 생일도 얼마 안 남았잖니. 다헌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으니 트럼펫도 금방 배우겠지? 미영이가 학생 때 바이올린을 참 잘했거든. 오케스트라 공연한다고 하면 옆 학교 남자애들이 미영이 보러 올 정도였는데…….”
다헌은 바이올린과 트럼펫의 상관관계는 몰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윤향에게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다는 것은 알았다. 평생 만져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악기에 시선을 두는 대신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의 미영을 상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 속에서 모범생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엄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촌스러운 색이 섞인 먼지떨이나 주방 세제 묻은 수세미가 아니라 활을 든 모습을. 한 번도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물은 적 없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성탄절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영상에서 유독 눈을 떼지 못한 이유도, 시내의 악기사를 지날 때면 유독 걸음이 느려졌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첫 레슨부터 정확한 음계를 짚어내는 다헌을 두고 과외 선생은 트럼펫에 재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칭찬 일색이었고, 윤향은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에 기뻐했다. 멀리서 아들의 과외 모습을 지켜보던 미영은 아들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몰래 눈물을 훔쳤다. 세기의 사랑을 하겠다며 집을 뛰쳐나오지만 않았어도, 사랑이 아니라 꿈을 좇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되었으리라는 후회를 이제는 놓아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미영의 꿈이 다헌의 꿈이 될 수는 없었다. 뿌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른들 사이에서 오직 다헌만이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 과외 선생도 분명 사모님께 돈을 받았을 테니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되지도 않는 칭찬을 늘어놓는 것일 테다. 가방을 챙겨 돌아가는 선생을 몰래 쫓아가 물었다.
“선생님, 제가 재능 있다는 거 거짓말이죠? 다들 그 정도는 하는데 그냥 이모 기분 좋아지라고 하신 말씀이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첫 수업에서 너만큼 소리 내는 애들을 본 적이 없다. 넌 정말 멋진 연주자가 될 수 있어. 거기다 네 재능을 알아봐 주고 지원해 주겠다는 분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 …….”
천재를 가르치게 됐다는 기대로 물든 선생의 눈동자를 보며 다헌은 깊은 한숨을 토했다. 아무리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않았다. 방학마다 돌아오는 민우가 늘어놓는 불평과 투정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음악 같은 건 시켜준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했다. 그런데 음악이라니. 그것도 박민우와 똑같은 트럼펫이라니. 이건 반드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시작부터 고생이 예견된 길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민우보다 잘나면 잘나서, 못나면 못나서 비교당할 것이 뻔한데.
다헌은 음악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열 개쯤 적어 미영에게 가져갔다. 아들의 진심을 받아 든 여자는 구석에 놓인 흰색 트럼펫 가방과 아들을 번갈아 보다 종이를 찢어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들이 너무 미웠다. 어린 아들을 질투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건넨 다헌의 진심은 갈가리 찢겨 3평 남짓한 방을 굴렀다. 너는 왜 네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냐는 미영의 울음에 다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부잣집 도련님처럼 살길 바란 건, 좋은 것을 입고 좋은 옷을 입길 바란 건, 남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길 바란 건 엄마의 욕심 아니었느냐는 말은 결국 삼켰다. 공연한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수가 미영이 아닌 자신을 향할까 무서웠다. 권다헌이 아니라 박다헌이 될까 봐 주저했다. 미영이 혼자 말라가게 될까 걱정했다. 자신이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갈까 두려웠다. 말하지 않아도 훤히 들여다 보이는 슬픔이 너와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²
기숙사 퇴실 15분 전. 매정하게 먼저 나가버린 룸메이트를 향해 소리 없는 원망을 쏟아내며 교복을 주워 입는다. 차곡차곡 쌓은 벌점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지 않으니, 귀신같이 이불을 정돈하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연타한다. 기숙사에 엘레베이터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지금쯤 육상 선수가 되어있을 거란 다헌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는 사람은 참 괜찮은데 잠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
“잠 많은 사람도 괜찮은 사람 될 수 있거든. 아무튼 지각한 적은 없잖아.”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고 배를 통통 두드리며 다가온 친구를 밉지 않게 흘겨보던 다헌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면 신기하게도 주위를 지나가던 누군가가 주전부리를 적선해 주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나 젤리, 식사 대용으로 손색없는 크래커 같은 것들. 어디 가도 굶어 죽을 일 없는 팔자라는 그의 품에 한 아름 안긴 간식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1반의 공동소유물이 됐다. 2년 내내 반장 자리를 놓치지 않은 이유의 7할은 아낌없이 주는 간식 덕분이라는 농담은 반쯤 사실이었다.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여 간식을 사수하려는 기색이라도 보였으나 3학년쯤 되니 누가 먹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가방에 넣고 꺼내지 않는 습관을 들인 덕분이기도 했다.
신율예고 음악과 권다헌에게 가장 큰 고역은 이른 아침 집합해야 하는 학생회 선도 활동이었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침을 포기하고 잠을 청하겠다는 다헌도 그날은 일찍 일어나야 했다. 당장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퀭한 얼굴로 복장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학생들의 이름을 적다가 실수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학생회 친구들에게 혼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특별반 활동 시간이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라는 데 감사해야 했다. 특별반 활동마저 아침이었다면 그는 분명 한 학기도 견디지 못하고 전학 가겠다 난리를 쳤을 것이다. 미영을 떠올리며 짐을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다행스럽게도 신율 생활을 버텨낸 다헌은 1평 남짓한 연습실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가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고. 성장한 것인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여름마다 찾아오는 민우는 작년부터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놀려댔다. 다헌은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윤향의 기대에 부응하고 미영의 실망을 사지 않으려면, 실력이 전부인 줄 아는 친구들과 선생들 사이에 섞이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순간의 선택들을 유예하기에 급급했던 삶에서 다헌은 한 번도 최선을 다한 적 없었다. 모든 것은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속단할까 두려워 판단을 기피했고 노력이 배신할까 두려워 매사 미적지근한 자세로 임했다. 좋지 못한 결과에는 자신의 노력을 탓할 수 있도록.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했다 위안 삼을 수 있도록. 그것이 겁쟁이의 생존법이고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는 법이었다.
신율의 아침은 지나치게 빨리 찾아왔다. 더는 꿈속에 살 수 없었다. 윤향은 다헌의 신율예고 입학부터 특별반 입반까지 모든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하진 못했어도 아낌없는 지원과 애정을 받으며 자란 천재 음악가에게 실패나 좌절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예술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에 윤향과 미영은 뛸듯이 기뻐했다. 입반 동의서에 서명하며 지었던 미영의 웃음은 다헌이 기억하는 가장 찬란한 웃음이었다. 평생을 사제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종교도 신앙도 없던 그들은 일 년에 몇 번 교단의 요청을 받아 무료 공연을 해주는 역할쯤으로 여겼다. 사이비라기에는 신율의 이름이 너무 강력했고,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많다 믿었다.
다헌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학교에는 신실한 신도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특별반이라고 예외일까. 신의 은총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특별반이라는 이름이 탐나 지원하는 애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내키지 않는 무대에 오르는 일은 도가 텄으니 어려운 것도 없었다. 사제라 하여 결혼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직업의 자유까지 보장한다면 학창 시절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평일 외출을 허락해 준다는 것도 외면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안일한 마음으로 향했던 면접고사 당일 다헌이 쥔 가지에서는 꽃망울이 돋아났다. 마법 같은 장면에 시선을 빼앗겼던 것도 잠시, 정말로 신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졌다. 이것이 신의 선택이라면 무엇을 보고 자신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녔다는 친구들을 붙잡고 당신 눈에도 내가 괜찮아 보이냐는 물음을 던져 미친놈 취급을 받았던 1학년 시절은 다헌의 흑역사로 남았다. 그와 친하거나 용감한 후배들은 그 소문이 진짜냐고 묻기도 했다. 질릴 만큼 질린 물음에 다헌은 매번 밀색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정쩡하게 웃었다.
“그게 맞기는 한데…… 그때는 나도 다 사정이 있었어…….”
민망함에 귀를 붉히는 꼴사나운 짓이나 목소리가 괜히 떨리는 솔직한 짓은 졸업했으나 여전히 그때의 일이 생각나면 외출계를 내고 신성호로 달려간다. 호수에 비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자신이 선택받은 이유를 한참 골몰하다 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겠단 결론을 내린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어린 자신을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됐으니까. 해가 지지 않는 땅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그렇게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은 이렇게 환희와 불행을 반복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닌가 싶은 날에는 차마 학교로 향하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여름부터 시작되었고
꿈에서 힘껏 도망쳐 나온 방향에서 아침이 시작된다는 것을³
1. 1991년 11월 1일 權奲軒 풍요로운 집 Medlar 유일한 사랑
1-1. 대전직할시 대덕구 출생, 대전광역시 중구 거주
1-2. 유지의 고명딸인 임윤향의 친아들처럼 살았다. 윤향의 남편은 아들 박민우와 영국에서 장기 거주 중이며, 윤향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다헌의 친모인 미영은 가정부로 윤향의 집에서 더부살이했다.
1-2-1. 형편이 넉넉해진 지금은 미영이 따로 집을 구해 살고 있으며, 대전에 갈 때면 다헌은 윤향의 집과 미영의 집을 하루씩 찾는다.
1-3. 공개 수업이며 운동회며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부모 자리에는 친모인 미영 대신 윤향이 참석했다.
1-4. 밀색 머리와 자색 눈동자가 미영의 남편을 닮아 남편의 혼외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윤향과 미영이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소문은 정리됐다.
1-5. 윤향의 친아들인 민우와는 친형제처럼 막역하다. 클래식으로 트럼펫을 시작한 민우는 재즈로 전공을 바꿨다.
2. 2007년 신율예술고등학교 일반 전형 입학
2-1. 2008년 2학년 1반 반장, 2009년 3학년 1반 반장
2-2. 2007년 1학기 신율예술반 입반, 오른쪽 손목의 특별반 문양
2-3-1. 면접용 사유: 원 없이 음악을 하며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2-3-2. 진짜 사유: 내가 말한 적 있었나.
2-4. 무신론자, 성실히 기도하는 연기는 체화했다.
3. 네 번의 2009년을 지났고 모든 죽음을 기억한다.
3-1. 왼쪽 날갯죽지의 신수 가지 문양
3-2. 시간이 계속 돌아간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4. 신율예술고등학교 오케스트라 트럼페터
4-1. 필기보다 실기에 강하고, 성적보단 성격이 좋다. 학기 말 발표되는 석차에서 늘 10위권을 맴돈다.
4-2. 특별반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으스대고 다니지 못했을 거라는 뒷말은 들려도 모른 체 한다. 피할 수 있는 싸움은 모두 피하겠다는 것이 삶의 신조다. 좀처럼 언성을 높인 적도 드물다. 예의에 어긋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을 지적하는 일도 없다.
4-3. 함부로 친절하되 멋대로 깊어지지 말 것. 가끔 쓰는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적은 다짐이다.
4-4. 모난 구석 없는 무색무취 인간인 덕에 교사나 학생들 사이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
5. 음악연습실 7번, 야간 자습 시간의 신성호, 주말의 기숙사
5-1. 특별반의 특권으로 치열한 연습실 티켓팅에서 제외된 다헌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음악연습실 7번. 이곳에서 연습할 때는 조금 더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이라나. 신은 안 믿어도 미신은 믿냐는 놀림에는 등을 때려준다.
5-2. 밤공기가 시원한 계절에는 종종 외출 신청을 하고 신성호로 향한다. 하늘색 자전거로 신성호 주변을 돌다 보면 호수 아래 잠긴 마을이 달빛에 비치는 기분이 들어 좋아한다.
5-3. 방학을 제외하면 좀처럼 본가에 가지 않는다. 사감 선생님의 “이번에도 안 가니?” 하는 잔소리는 질리도록 들었다.
5-4. 학교가 조용한 주말에는 포카리스웨트를 뽑아 옥상 정원에 출석한다.
6. 가장 마지막은 어디일까 알 수 없어서⁴
6-1. 꿈은 크게 꾸는 것이라며 적어낸 장래 희망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트럼페터.
6-2. 트럼펫을 시작하기 전 꿨던 꿈은 수의사였다.
6-2-1. 아픈 동물은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
6-3.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과 연두색.
6-3-1.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 싫어하는 계절은 여름과 장마.
6-3-2. 비 오는 날에는 유독 기운이 없다. 비가 오는 아침이면 지각을 면치 못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비가 오는 날이면 등교를 체크해주는 친구가 생겼다는 모양이다.
주신의
늘 소란과 소문을 몰고 다니던 후배. 마냥 귀여워하거나 예뻐하기에는 지나치게 시끄러웠고, 비밀을 참지 못하는 성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실종됐단 이야기에 흔적을 찾아 나섰던 건 늘 들리던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허전해서.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 이토록 괴로운 줄, 그때는 몰랐다.
4번의 루프와 모든 죽음을 기억한다. 루프는 남의 일이라는 듯 늘 최선을 다해 부정했다.
모든 삶을 한결같이 살아내고자 했다. 부정하다보면 착각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루프를 자각한 뒤부터 특별반이었던 친구들의 연락을 일부러 피했다.특별반 정례모임이나 교단의 요청이 있을 때, 1년에 한 번 신화리에 기도하러 가는 날에 그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루프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체 해왔다.
2011년 2월 재수를 통해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전공에 합격했다.
2013년 11월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 소속으로 만기전역했다.
2015년 9월 영국 교환학생에 합격하여 한 학기는 교환학생으로, 2016년 상반기는 휴학 후 민우와 함께 지냈다.
2017년 2월 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진학했다.
2018년 9월(4) 미영과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 사이 미영이 거주하던 건물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2018년 9월(1-3) 미영의 장례를 치렀다. 미영이 거주하던 건물에 큰 화재가 나 구조되지 못했다. 해당 사건의 유일한 사망자였다.
2019년 3월(4) 윤향의 장례를 치렀다. 밤 사이 발생한 화재로 윤향의 저택이 전소되고 불길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사망자는 윤향이 유일했다.
2019년 3월(1-3) 윤향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윤향과 윤향의 남편이 협의이혼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2020년 2월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횡성으로 내려왔다. 신성호 인근 예술 마을에 독립서점 ‘지호紙湖’를 열었다.
횡성에 머무는 동안 종종 신율예고의 외부 강사로 신율예술반 학생들의 강습을 맡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을.
2022년 가을(4) 독립서점 지호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더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불행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2022년 가을(1-3) 독립서점 지호를 윤향에게 돌려주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자신도 따라가겠다는 윤향을 애써 달랬다. 윤향은 다헌의 가장 큰 불행이었다.
2023년(4), 신율예술반의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2024년 8월 10일(4) 귀국 후 횡성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2024년 8월 10일(3) 귀국 후 호텔에 머물던 중 유서를 써둔 채 사라졌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¹강혜빈, 필름 속에 빛이 흐르게 두는 건 누구의 짓일까
²이제니, 숨 쉬기 좋은 나라에서
³안미옥, 아주 오랫동안
⁴안미옥, 가장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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