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0
츠카다이라 유우야
우뚝, 멈춘다. 지금 내게 대답을 바라는건가? 지금 상처를 받았냐고? 이 내가? 말도 안되는 소리.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관계였다. 그러니 상처 받을 것도 뭣도 없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아, 그래. 그건 그냥 이 글러먹은 자식도 마찬가지로 결국 자신을 실망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실망했지? 그건…
기대했기 때문에.
무엇을?
저 자식도 다른 녀석들처럼 내가 줄 떡고물이 탐나서 그렇게 접근했던 거겠지.
시안의 머리는 0.3초 안에 이 모든 계산을 끝냈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무시하고 걷던 걸음을 계속 이어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살아온 야쿠젠 시안이니만큼 누군가의 ‘긁는 소리’를 쉽게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떠나기엔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분노하며 대꾸할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했다. 그야 아까 다 큰 성인을 때리겠답시고 팔자에도 없는 체력을 끌어치기 한데다, 특히나 이 리빙 데드돌 같은 몸뚱이는 연약해 빠지기까지 했으므로 배는 진이 빠진 상태였다. 이제보니 주먹질을 한 손등이 까지다 못해 물러지고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도 통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에 다시금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또 한번 자각하고 말았다.
망자는 산 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어떤 관계는 사별하는 것 만으로도 크나큰 상처니까.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까?
죽어버린 야쿠젠 시안에게 있어, 살아있는 츠카다이라 유우야는 상처를 줄 수 있는가?
정해진 대답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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