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태웅태섭]유토피아 - 4

센티넬가이드

넓은 모래가 펼쳐진 곳은 제가 가장 잘 아는 곳이다. 그와의 첫 역사가 새겨진 곳. 죽어가는 센티넬을 살려보겠다고 달려온 이. 서태웅은 여전히 제 손바닥을 감싸고 있는 그의 온기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반정부 척살을 해오며 수많은 피를 묻힌 손을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잡아왔는지. 여전히 센티넬은 가이드를 몰랐다. 저같으면 죽어버리라고 염불을 외웠을 텐데. 유전자 변형의 폐해가 너무 큰 것 아닌가. 능력을 너무 오랫동안 써와서 망가져 버린 센티넬 따위를 뭐 그렇게 살리고 싶어서.

함선에서 내린 센티넬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북산의 가장 앞에는 서태웅과 강백호가 자리 잡았다. 전쟁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익숙한 사람과 전쟁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맞는 구석이 하나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서태웅은 그런 강백호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양호열을 지키고 싶으면 똑바로 해. 매서운 그의 말은 흔들리는 강백호를 다잡기에는 충분했다. 이러나저러나 서태웅을 이기고 싶어 안달나기는 했으니까.

"발목 잡지마라, 여우."

"강백호."

"뭐, 뭐야."

하나만 약속해. 검은 눈동자가 꿰뚫듯이 바라보는 탓에, 강백호 또한 짐짓 진지해진 폼이었다. 내가 죽어가도, 팀장에게 데려가지마. 강백호는 그 말에 눈가를 찌푸리며,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세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랄하지마. 내가 그걸 들어줄 거 같냐? 매서운 말에도 서태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약속해. 단호한 말에 강백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죽어도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고집인 걸 알아서였는지. 서태웅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믿을 뿐이었다.

강백호는 서태웅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제 팀장이 그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는 그런 감정이 서툰 강백호마저도 알았다. 그를 폭주 직전까지 몰아붙인 그날에, 송태섭은 그를 붙잡고 제발 서태웅을 몰아붙이지 말아달라며 울었다. 그가 울고, 강백호가 사과를 한 그날 이후로 그 둘은 암묵적인 서약을 맺었다. 서태웅이 이상하면 즉시 알려줄 것. 전방에서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전을 칠 것. 서태웅의 능력과 반대되는 능력이지만, 그를 지킬 것. 강백호는 그와의 약속만 알았다. 서태웅은 사실 뭐, 알 바인가.

서태웅은 강백호를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분명 그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자기는 여기서 죽을 거라는 말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인이어를 켜고, 무전을 연결하며 입을 열어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전방에 움직임 포착. 저희처럼 팀을 나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서태웅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들은 가히 징그러울 정도로 명확하고 정확했다. 강백호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서태웅이 무슨 생각으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는지도. 왜 해남이 이곳에 오지 않은지도. 강백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물었다. 무섭냐? 서태웅은 그 말에 별소리 다 듣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무서우면 빠져. 여전히 서태웅은 강백호를 긁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말이 방아쇠였을까. 빠르게 다가오는 무리들을 보며, 서태웅은 입밖으로 냉기를 내뱉었다. 교전의 시작이었다.

서태웅은 제 손아래에서 부서지는 것들을 보았다. 끈적한 피가 떨어지는 손바닥을 가만 바라보았다. 잘 세공된 얼음은 녹지도 않은 채로 단단히 모래 바닥에 박혀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 만들어진 둥근 돔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이었다. 그걸 뚫고 들어온 자는 살아서 나갈 수가 없다. 그것이 서태웅의 새로운 능력이자, 무덤이었다.

흰 입김이 수도없이 흘러나왔다. 아직까지 폭주 단계 능력을 개방할 필요는 없었으나, 수세에 밀리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았다. 돔 안에서 드디어 서태웅이 걸어나왔다. 싸움이 시작함과 동시에 만들어진 돔은 여전히 굳건했다. 서태웅은 햇빛 아래에 서서, 제게로 쏟아지듯이 밀려오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새파란 하늘 위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졌다.

모두가 그것을 바라보았다. 눈. 쨍한 사막의 하늘에 내리는 눈. 명확히 선을 긋고 반정부 세력이 모인 곳에만 쏟아지는 눈은 금세 무기가 되었다. 예전 뱃사람들이 고래를 잡겠다고 만들었던 작살들이 무작위로 쏟아졌다. 회색빛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무감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게 꼭 신神 같아서. 거기에 있는 누구도 아무런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만해."

그런 서태웅을 말린 건, 강백호였다. 서태웅은 순순히 능력을 거두었다. 반 이상이 전멸한 곳을 바라보며, 강백호 눈썹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적은 얘네가 아니라며. 그래서? 서태웅의 물음에 강백호는 씩, 웃으면서 이들이 아닌 본래 적을 치러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서태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건 횃불이다, 멍청아. 강백호는 바보처럼 눈을 깜빡였다.

"반정부 세력은 이미 본부로 모이고 있다고."

"뭐?"

"멍청이."

누가 누구보고 멍청이라는 거야! 이것은 횃불이다. 역사가 뒤바뀌려면,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 서태웅은 모래를 밟고 내려가, 얼음이 처박힌 자의 옷을 보여주었다. 정부 소속 마크에 강백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이드들은? 해남과 상양이 그곳에 있어. 다치는 건 아니지?

"나는 다치게 안해. 그 누구도."

"……."

그러니 질문 그만하고 재정비해. 연락을 받았으니, 더 많은 자들이 몰려올 거다. 서태웅은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지긋지긋했고, 더는 그만하고 싶었다. 전쟁이든, 생이든 간에. 능력이 소멸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송태섭을 놔주고 싶었다. 더는 저에게 묶이지 않길 바랐고, 센티넬은 모르고 살았으면 싶었다.

모든 게 다시 정립될 때까지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서태웅은 본부를 장악한 그들에게서 온 연락을 바라보았다. 남은 인력이 모조리 이곳으로 집결 중이라는. 이곳에 있는 센티넬 모두가 그 메세지를 보았을 테였다. 서태웅은 폭주 단계 능력을 열었다. 더이상 가이드의 승인은 필요가 없었다. 송태섭에게 오는 연락을 보았으나, 서태웅은 연락을 보지 않았다. 보면 다시금 무너질까봐. 겨우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까봐.

빽빽하게 들어서는 함선 하나를 꿰뚫으며 서태웅은 눈을 감았다 떴다.

새파란 눈동자가 함선을 올려다 보았다.

[태웅태섭]유토피아

"젠장!"

송태섭은 욕을 짓씹었다. 이 미친새끼가. 해남과 상양이 이곳에 남아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본부에 들어찬 반정부 세력과 순식간에 무너진 정부 세력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송태섭은 그리 묻고 싶었으나, 답을 줄 자들이 전무했다. 김수겸은 그런 송태섭을 보며 나직하게 읊었다. 아주 예전부터 겹겹이 쌓아온 플랜이야. 송태섭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태웅이 아니었어도 이건 일어났을 일이지."

"……."

그저 서태웅이 결집의 한 가운데를 차지했을 뿐이야. 횃불이라는 건 으레 그런 것이니까. 송태섭은 도대체 무엇이 으레 그러한 것이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런 건 그의 입에서 들으면 된다. 그만 돌아오면, 이런 것쯤은 그저 넘어가 줄 의향이 있었다. 송태섭은 컵이 깨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제가 치울게요. 다정하게 굴던 이. 깨어진 컵이 커플로 맞춘 컵이었고, 서태웅이 쓰던 컵만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갈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깨어진 컵은 커플로 맞춘 컵이었고, 하필 서태웅이 쓰던 컵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연락 안 됩니까?"

"거기는 교전 중이니까뿅."

송태섭은 이명헌을 바라본다. 이명헌 또한 초조한 듯, 얼굴이 좀 엉망이긴 했다. 당신도 얼굴이 엉망일 때가 있네요. 그의 말에 이명헌은 옅게 웃으면서 답했다. 쉽게 불이 붙는 타입이라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었다. 정대만은 이제 거의 졸도하기 직전인 얼굴에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읊조렸다. 서태웅도 있고, 강백호도 있잖아요. 정대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리 위안이 되지는 못한 듯했다. 야, 태섭아. 왜요.

"토할 것 같다……."

"하고 와요."

덤덤한 말씨에 에이씨, 하던 정대만은 그래도 팀장이라고 이를 악물고 서 있는 그를 보며 눈을 감았다. 각인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괜찮을 테였다. 권준호는 백업팀이었으니까. 정대만은 애써 들어차는 최악의 가정을 밀어내며 물었다. 너네 각인은 했냐? 그 말에 송태섭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 했어요. 왜?

"서태웅이 밀어내던데요."

"어?"

송태섭은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정대만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되물었으나, 나오는 답은 없었다. 이명헌은 그런 두 사람을 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서태웅은 죽어가고 있어. 두 사람의 고개가 이명헌을 향해 돌아갔다.

"뭐라고요?"

"가이드 없이 오래 지낸 센티넬들은 그래. 천천히 무너지지. 가이드를 만났다고 해서, 호전되지도 않고. 그저 언젠가 무너질 몸상태를 늦출 뿐이다뿅."

이명헌의 말에 그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몸상태로는 각인을 해도 얼마 못 살고 죽어. 가이드가 박살날 가능성이 높고. 매섭게 덧붙여지는 말에 송태섭은 그대로 주저앉아,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어린 날때부터 전장을 나돌던 서태웅의 이야기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송태섭이 매칭도 안 맞는 제 형을 물고 늘어질 때, 서태웅은 가이드도 없이 약으로 버티던 나날이었을 테였다. 그게 제 잘못이 아님에도. 꼭 그게 제 탓 같았다.

서태웅은 송태섭을 지키고 싶었겠지. 자기라는 족쇄를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명헌은 그 말을 하면서 제 센티넬을 떠올렸다.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자주 울던 걔. 지금도 그 전장에서 구르며 제 생각만 할 걔. 명헌이 형, 하고 웃는 걔. 어쩜 센티넬들은 이런 바보 같은 새끼들만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명헌은 그에게서 온 연락을 보았다.

"태섭."

"……."

"송태섭."

북산의 팀장이 고개를 들어, 산왕의 팀장을 바라본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은데. 날카로운 말에 송태섭의 눈이 바뀌었다. 연락 왔습니까? 이명헌은 숨을 크게 쉬었다가 내쉬며, 크게 박수를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부 세력 전멸. 사상자는 없고, 부상자는 현재 탈취한 함선을 타고 복귀 중. 각 가이드들은 정신 차리고 폭주 전조 상태인 센티넬 명단을 보고 준비를 할 것."

"……."

"이라고 전달 내려왔습니다."

이명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비하는 자들 가운데에 송태섭만이 덩그러니 그 자리에 서서, 이명헌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입을 달싹이다, 겨우 문장을 만들어 내뱉었다.

"북산 소속 S+급 센티넬 서태웅. 현재 폭주 4단계 진입. 가이딩 약물로 진정 중에 있으나……."

"하지마요."

"발작으로 인하여 약물 반응 없음."

"하지말라고 했잖아요!"

"가이드 송태섭은 서태웅의 복귀 즉시, 격리실로 갈 것. 파견된 가이딩 모두 받아드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판명."

하지말라고요. 아니라고 했잖아요. 내가,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송태섭의 말에 이명헌은 입술을 깨물고는 낮게 속삭였다. 마음에, 준비를 해야할 지도. 그의 말에 송태섭은 그의 멱살을 잡았으나, 이명헌 또한 너무 괴로운 표정이어서였는지. 제 멋대로 폭주 능력을 열어제낀 걸 이제봐서 그런건지. 그의 멱살을 잡았던 손이 그의 눈물만큼이나 천천히 떨어졌다.

[북산 소속 가이드 송태섭은 격리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북산 소속 가이드 송태섭은 격리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폭주 4단계 센티넬 서태웅 복귀 중입니다. 다시 한 번…….]

송태섭은 잔뜩 흔들리는 한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서리가 내려앉았다. 송태섭은 그 서리 위에 찍던 제 발자국을 생각했다. 네 걸음 뒤에서 내가 따라 걷고 있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하던 날을 곱씹었다. 늘 스스로를 몰아붙였으나, 제게로 돌아오던 그를 생각했다. 깨어진 컵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그를 생각했다.

송태섭은 격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나를 보며 옅게 웃어보였다. 태섭아, 울음기가 잔뜩 묻은 그녀에게 그는 괜찮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언젠가 정대만이 했던 말처럼. 우리 막내가 그런 걸로 죽겠냐? 장난스러운 말에 그녀는 그런 태섭을 안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태웅이는 그런 애가 아니었지.

이제는 송태섭이 서태웅을 살릴 차례였다. 늘 그가 저를 살려내었으니. 이번에는 제 차례였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