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태웅대만]나의 이데아

https://youtu.be/BboMpayJomw?si=9dCkS-mgEr_LiRTT

센티넬가이드

후두둑.

코피가 비처럼 내렸다. 서태웅은 한숨을 폭, 내쉬고는 제 손으로 코를 틀어쥐었다. 분명 제 파트너이자, 선배는 이 꼴을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리라. 그 전에 멈춰야 할 텐데. 옷이 흥건하게 피로 적셔진 건, 그냥 상대방 피라고 거짓말 하면 되니까. 코를 조금 더 세게 틀어쥐고 겨우 벽에 기대어 선다. 서태웅은 제 몸을 아주 잘 아는 군인이었다. 피로감이 쌓인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나? 냉정하게 말하면 아니오. 에 가까웠다. 그래도 버텨야 했다. 흐려지는 의식을 되찾으려,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코에서 나는 피인지, 입안에서 나는 피인지. 입밖으로 내뱉으면, 피가 한 웅덩이 튀었다. 아, 진짜. 예민한 신경들이 서태웅을 갉아 먹는다. 센티넬이라는 족속들은 죄다 그랬다. 예민해서 주변을 다 파괴하고 다녔다. 신경이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재수없고, 지랄맞은 센티넬 가운데에서 서태웅은 제법 둔했고, 유순했다. 괜찮습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약이니 뭐니 먹으라고 하면 곧잘 먹었다. 그런 서태웅 조차도 지금은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속살거리는 말조차 너무 크게 다가와, 괴로웠다.

"허억, 윽."

결국 벽에 기댄 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피는 멎었고, 입안 살도 여물었지만. 서태웅의 몸상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 인물들은 죄다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다고 한들, 다른 이들에게 걸리면? 그때는 폭주 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서태웅은 긴 다리를 겨우 접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소음이라도 사라지면 좋은데. 빨리 그가 보고 싶었다.

"태, -아!"

한계치에 다다른 몸이 꺼지기 직전에, 먹먹한 귓가 틈으로 박히는 목소리와 다가오는 온기, 그리고 퍼지는 가이딩에 서태웅은 길바닥에서 뒤지지도 않고, 살아남았다. 저승으로 처박힐 뻔한 몸이 지상 위로 끌어올려진다. 눈을 깜빡이자, 숨을 헐떡이며 제 뺨을 쥔 채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서태웅은 그제야 아, 하고 숨을 내뱉었다. 온몸이 편안함에 잠식 되는 기분이었다.

"들 것! 들 것, 가지고 와!"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축, 쳐지는 그를 익숙하게 안아들며 알파 팀의 팀장이자, 가이드 정대만은 짓씹듯 고함을 내리쳤다.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들 가운데, 정대만은 그를 조금 더 끌어안으며 가이딩을 흘려 보냈다. 팀장의 센티넬. 소령 서태웅은 여전히 눈이 감긴 채로 색색, 고른 숨만 내쉴 뿐이었다.

"대만아."

"준호야. 괜찮을까? 피를,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데……."

걱정하지 마. 이제 넘겨줘야 해. 중령 권준호는 잠든 센티넬을 데리고 가야할 의무가 있었다. 정대만은 머뭇거리다 그를 놔주면, 그는 들 것에 실려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군인과 센터 사이는 이렇게나 멀었다. 정대만은 군소속이 아니었고, 서태웅은 군소속이었다. 손바닥에 남은 시린 체온이 자꾸만 정대만을 겁먹게 했다.

"이제 가요."

송태섭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그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입원 수속 밟으면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거면서. 누가 보면 영영 떨어지는 줄.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처량하게 군 차량을 내도록 눈에 담고 있는 남자는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 철수하자. 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라. 얼마나 강심장인지, 송태섭은 아직도 무리들 가운데에서 피에 적셔진 채로 거친 숨만 내쉬던 그를 잊지 못한다. 어찌나 무섭던지. 송태섭은 그대로 지릴 뻔 했다. 농담 아니고 진짜.

"그냥 스카우트 해올까?"

"선배. 아시죠? 저희 가이드 비율 현저하게 적은 거."

알아, 임마. 정대만은 뭔 말도 못한다고 하며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차량에 남아 있는 이들은 새하얗게 질린 채, 센티넬이 지나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긍. 송태섭은 조만간 또 줄줄이 나가겠군, 하고 생각하며 검고 검은 서태웅을 생각했다.

"선배."

"왜."

서태웅 말이에요. 고요한 차량에는 송태섭과 정대만의 말만 오가고 있었다. 태웅이가 왜. 아니에요. 뭐야. 진짜 아니에요. 싱거운 말에 정대만은 가만 그를 보다가 냅다 뺨을 주욱 당기며 그랬다. 내가 말했지. 할말 있으면 하라고.

"아파! 아파요! 악!"

"말해!"

그제야 차 안에 송장처럼 있던 놈들은 하나 둘 움직여 그 둘을 뜯어 말렸다. 태웅이가 뭐! 예민한 정대만이 씨근덕거리는 걸 보며 송태섭은 꾸역꾸역 참았던 말을 꽥 내뱉었다.

"안 죽는다고요! 안 죽는다고!"

"알아!"

바람 잘날없는 알파 팀은 오늘도 귓청이 나가 떨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정대만의 눈물은 쏙 들어갔고, 송태섭의 뺨에는 얼얼한 손자국이 남았다. 복귀 후에는 바로 병동으로 가야지. 그따위 생각이나 하는 정대만을 보며, 송태섭은 오늘도 이를 박박 갈았다. 이 망할 팀, 나가고 말겠다고.

나의 이데아

센티넬과 가이드가 세상에 나타나고, 새로운 인류로 규정되고, 제대로 된 인권을 챙겨 받게 됐을 때에는 많은 센티넬들이 죽었고, 가이드들이 파트너를 잃었다. 그걸 딛고 일어난 자들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자며 그렇게 굴었지만, 여전히 센티넬들은 그다지 달라진 건 없었다. 존중과 배려? 좆도 없다. 신랄한가? 하지만 진짜다. 진짜.

"서태웅 소령의 파트너 알파 팀. 팀장 정대만입니다."

"죄송합니다, 정 팀장님. 아직 서태웅 소령님은 폭주 2단계 상태로, 접근불가이십니다."

군인들은 이래서 싫었다. 빡빡해서 싫었고, 가이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센티넬을 방치하는 게 싫었다.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가이드로, 그러니 정대만은 그걸 뚫을 생각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서태웅 소령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뭐?"

"파트너이신 정대만 팀장님을 우선시하라는 명령이십니다."

와, 진짜. 미친새끼. 정대만은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기만 하는 정대만을 그들은 흔들림도 없이 바라보았다. 같은 센티넬인지,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가이드인 정대만의 살갗은 죄다 일어난 상태였다. 위급하다고. 위급한데, 이게 뭔 개같은 소리야. 정대만은 미친 놈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미친놈이었다. 그러니까 군인들을 밀치고 격리실로 들어가는 건,

"정대만 팀장님!"

당연한 수순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격리실 문은 굳게 닫힌 뒤였다. 정대만은 콧방귀를 뀌며, 격리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자에 앉아, 특수한 수갑에 묶인 그는 잠에 든 것인지 고요했다. 하지만 정대만에게는 그의 속이 엉망진창인 걸 알고 있었다. 살갗이 아팠다.

"태웅아."

절그럭, 수갑이 움직였다. 침전된 낯에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서태웅은 눈을 깜빡이다, 상대방이 누군지 깨닫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대만은 그게 꼭 길들여지지 않은 육식동물 같다는 생각을 하며, 팔을 벌린 채로 가만 있었다. 선배, 나가요. 건조한 목소리가 격리실을 울렸다. 내가 가이드인데, 어딜 가. 정대만은 옅게 웃어보였다.

"다쳐요."

"안 다쳐."

다시 절그럭. 저 소리가 거슬렸다. 꼭 짐승을 묶어두는 목줄 같아서 속이 좋지 않았다. 서태웅은 그걸 부서버릴 줄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남들은 잘만 하는 걸, 서태웅은 하지 않았다. 정대만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이리 와, 응?

한숨과 함께 거대한 몸이 천천히 정대만 품으로 기대어왔다. 언뜻 그릉, 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절그럭거리던 수갑은 짧은 타격음과 함께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품이 그리웠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폭주 1단계 진입, 폭주 전조 증상 단계 진입, 안정권으로 진입 중. 친절한 안내 음성에 킥킥, 웃음을 터뜨린 정대만은 서태웅의 등을 쓸어주며 그랬다. 태웅아. 네. 안아줘.

"무모하셨습니다."

"그거 말고."

무모해요, 선배. 알아. 정대만은 서태웅이 각을 잡을 때마다 개처럼 끌려가서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를 떠올렸다. 어린 센티넬을 데리고 가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다시 만났을 때는 각이 잡힌 군인이 되어 제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정대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돌아버린다는 게 무슨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최악이었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안정권 진입. 격리실 해제. 타이밍 좋게 열리는 격리실 문에 정대만은 씩, 웃어보였다. 병실 가서 조금 더 보자. 다정한 말에 서태웅은 가만 있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저를 따라오는 센티넬을 보려다가 문이 닫히기 시작하는 격리실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곳저곳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는 걸.

"서태웅."

"예."

나 안 오면 어쩔 뻔 했어? 약물 지급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깍듯한 말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곳은 군이었다. 정대만은 진심으로 알파 팀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여기 진짜 마음에 안 드네. 뻔히 보이는 낯에 서태웅은 가만 있다가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춰주었다.

"뭐, 뭐, 뭐해?"

"기분 푸십시오."

정대만은 여전히 허리를 조금 숙이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센티넬을 바라보았다. 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에 정대만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그랬다. 못하는 짓이 없어, 이게…….

"괜찮습니다."

"뭐?"

아무도 안 봤을 테니 말입니다. 당연했다. 서태웅은 잘 나가는 센티넬이었다. 얼마나 잘 나갔냐면, 엘리트 부대도 몇 개나 투입해야 하는 임무를 혼자 혹은 소수의 인원으로도 완벽히 수행해낸 이였으니까. 정대만은 알지 모르겠지만, 서태웅은 그런 소모품이었다. 잘 나가는 군인. 쓰임새가 좋은 소모품.

그러니 눈빛 하나에 모두가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센터에 속한 알파 팀은 대부분 센티넬의 전투 이후, 주변을 정리하거나 테러 관련하여 미리 진압하는 곳으로 센티넬 보다는 일반인 비율이 높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송태섭은 군에서 개인적인 일로 퇴출당하여 이곳으로 온 최초의 센티넬이었다. 그런 송태섭의 요즘 큰 고민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제 팀장이자, 군에 센티넬 하나 목줄 쥐고 지내는 가이드의 헐랭한 성격으로 인한 제 성격파탄을 어떻게 보상 받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분명 더 좋은 보상이 있었을 텐데도, 그에게 통하는 건 사직서 뿐일 것 같아서. 사실은 사직서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어, 송태섭은 품에 사직서를 고의 넣어두었다.

언제 내밀어야 가장 타이밍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서는 내밀자마자,

"응, 안 돼."

"아!!!"

허공에서 갈가리 찢겼다. 아주 갈가리. 형체를 볼 수도 없게.

그걸 본 송태섭은 고함을 꽥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였다. 씨발! 차마 욕은 못해서 씨근덕거리는게 다였지만, 정대만은 그런 송태섭을 보며 물었다. 왜? 송태섭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왜냐고."

"지금 능력 쓰시는 거예요?"

"아니?"

송태섭은 마른 세수를 박박 하며 목덜미가 얼룩덜룩한 걸 가르키며 그랬다. 그런 건 이제 숨길 생각도 없는 거예요? 영영? 아. 그제야 정대만은 박터지는 소리를 내뱉으며 입을 떡 벌렸다. 침대에 멀쩡히 목폴라를 챙겨 두고는 엄한 옷을 입고 온 게 그제야 생각난 탓이었다. 미안. 빠른 사과가 뒤따르는 것에 송태섭은 찢긴 사직서를 보았다. 하, 진짜.

"그래도 사직서는 좀."

"저는 싫다고요."

두 사람의 연애 그런 거 안 궁금하다고요. 정대만은 그런 말을 하는 그가 왜 예민하게 구는지는 알았다. 센티넬들은 가이드를 갉아먹으니까. 가이드가 없이 살 수 없는 건 센티넬 뿐이다. 신인류는 그런 것이다. 얌마, 나 안 죽어. 송태섭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태섭아, 형 괜찮아. 절대로.

"아, 맞다."

"하지 마요."

뭔 줄 알고 하지 말래? 그냥 하지 마세요. 송태섭은 고개를 내저으며 제발 하지 말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센터 소속 알파 팀에는 웬 기다란 인영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 인영은 지체없이 팀장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인영의 주인공이 서태웅이, 아! 하지 말라고요! 하는 커다란 고함에 노크도 없이 문을 연 건,

"아! 짜증 나, 정대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태섭……, 선배?"

"아는 사이야?"

서태웅은 홀라당 사라진 송태섭이 어딨나 했더니. 여기에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라서. 답지 않게 순한 얼굴로 그랬다. 저랑 같은 부대였습니다. 갑자기 퇴출이니, 불명예제대니, 그랬는데.

"엥?"

"키가 좀 더 컸네."

선배는 달라지셨고요. 정대만은 두 사람을 고개를  휙휙 돌려 보며 되물었다. 같은 부대?

"제가 사수였어요."

"네가?"

거기에서 서태웅이 제일 어렸고, 그 다음이 저였으니까요. 정대만은 그제야 서태웅을 어렴풋이 아는 것처럼 굴던 송태섭을 떠올렸다. 떨떠름해 하던 게 그 이유가 아니었구나. 처음에는 서태웅이 싫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그냥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런 거였을 줄이야.

"나 미워하진 마라."

"안 그래요. 도망치셨으면 되셨습니다."

서태웅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걸, 욕심 내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괜찮았다. 송태섭도 두려웠으리라. 가이드의 생을 빨아먹는 센티넬이 뭐 얼마나 좋다고. 서태웅은 그의 혐오를 이해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

그러니 도망도 이해했다. 다만, 그를 시기하고 질투를 했을 뿐이다. 그곳에 묶인 건 이제 저 뿐이니까.

"그래서 네가 여기 왜?"

"임무 때문에요."

"어?"

송태섭은 서태웅이 내미는 서류를 보고는 이윽고 미친 거 아니냐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일반인만 존재하는 이 팀에 뭐를 바랄게 있다고.

"그게 제가 파견 된 이유입니다."

"하!"

송태섭은 종이에 적힌 말이 아직도 우스웠다. 말이 좋아 테러 진압이고, 후방 지원이지. 송태섭도, 서태웅도 알았다. 이건 죽으라고 보내진 임무였다. 

접경 지역 및 내전 지역 파병.

그게 대테러 진압 알파 팀의 새로운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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