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오늘

마법의 역사(9월 27일) 수업 이후 자신의 견해

ARK by 척추

bgm : from sunset to sunrise


오늘은 그랬다. 연회장에서 괜히 수프 그릇이 엎어져 샤워해야 했다. 복도를 뛰는 길에 스텝이 꼬여 넘어졌고 조금 쉬려고 들린 기숙사 휴게실은 선배가 둘러앉아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수프는 다시 떠서 먹으면 됐고, 샤워는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넘어져도 일어나면 됐고 휴식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취하면 됐다.

아크는 마법의 역사 수업까지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교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둘러보니 다른 룸메이트 없었다. 각자 도서관에 갔거나 연회장에 있겠지. 어제부터 학교 내부에 떠돌고 있던 주제는 외면할 수 없었다. 발 닿는 곳마다 온통 그 얘기뿐이었으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데 시간은 흘러, 마법의 역사 수업 시간이 목전이었다.

“아, 늦었다!!!”

이렇게까지 늦장을 부릴 생각이 아니었는데. 아차 싶은 마음에 후다닥 교실을 뛰어나갔다. 한참 교실로 향하던 중에 알았다.

‘젠장~ 교과서 두고 왔잖아아아아~!!!!’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리다 눈에 익숙한 친구들 모습에 숨을 돌렸다. 문제가 있다면 교실 앞을 막고 있는 선배들. 일련의 소동.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연 막았나?’란 생각이 들던 때. 책상을 내리치던 교수님. 교수가 토로하는 내용에 반박하면서 드는 무력감. 외면하는 친구들. 외면하지 않는 친구들. 그리고 타당하다고 말한 친구들.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의 신기루를 본 것처럼 몽롱한 정신에 들리던 말은…

“ 어차피 저런 소리를 안 해도 학교에서 사라질 존재잖아. 순수혈통이 아닌 '잡종'들이라는 건. ”

“ 저러니까 머글 태생이 잘리는 거 아냐? ”

“ 저 교수님... 저 상태로 수업을 계속하시다가는 조만간 호그와트에서 사라지실 거야. ”

“ 과제 없는 건 좋네. ”

트리스탄 콜린스, 마법의 역사를 가르치는 래번클로의 교수. 그가 뱉었던 비난의 말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여과없이 들어서일까. 숱한 소음에 익숙한 자신이었지만 손끝이 저렸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고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할 힘이 없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선배 하나를 막아설 때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던가. 교수가 토로하는 바를 이해했지만, 그를 막아설 힘도 부족했다. 교수가 뭐라고 했더라.

“사람 본연의 천성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순수혈통에 대한 적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교수님은 이후 어떻게 될까. 우리 교수님과 완만한 대화를 나누셨을까. 과연 ‘그’ 폭언에 노출되었던 우리에게 사과하실까. 이후의 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때 또… 지금과 같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기숙사로 돌아가는 친구의 등을 보았다. 가만히 선 채 보기만 하니 곧 친구들의 형체가 점점 작아졌고 이내 사라졌다. 시야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뗐다. 유수프에게 알려주었던 장소로 걸어가는 동안 주변이 어두웠다. 마치 지금의 무력감처럼 어둡기만 했다. 평소라면 넘어져도 일어나고, 뭐든 헤쳐 나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게 참 힘들었다. 해는 떠오른다고 그랬는데, 지금의 어둠은 언제쯤 밝아지는 걸까. 전쟁은 끝났다고 했는데 어둠이 가시질 않았다.

“엄마가 호그와트는 재밌는 일만 있다고 그랬는데.”

답할 사람이 없지만 한 번 뱉기 시작한 말은 멈추지 않았다.

“혈통에 상관없이 모두가 마법을 배우고”

답할 사람이 없기에 비로소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그랬는데.”

교실에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늦가을의 찬바람에 몸이 떨렸는데 지금은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 시간을 죽였다. 당장 후플푸프 기숙사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는 환하게 웃는 낯으로 있을 자신이 없었다. 오늘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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