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the point?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따사로운 햇볕이 푸른 잔디밭과 노란 들꽃들을 비추었다. 봄비와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잔디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바로크는 일렬로 늘어선 회색 비석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망토가 알록달록한 배경에 이질적으로 비쳤다. 하지만 그 광경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죽은 자를 만나러 오는 모든 산 자들은 그런 옷을 입고 오니까.
묵묵히 묘지를 걷던 반직스는 어느 비석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국화를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토바이어스 그렉슨, 스코틀랜드 야드의 전설이자 명탐정의 영원한 친구.’
비문을 읽은 바로크는 피식 웃었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바보 같은 비문이군, 형사.”
그가 놓은 국화 옆에는 다른 꽃이 놓여있었다. 수선화였다. 죽은 자에게 바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다.
“귀공의 제자가 다녀간 모양이지. 줄기를 보아하니 길에서 꺾은 듯하군.”
수선화의 노란 꽃잎은 아직 아침 이슬이 맺힌 상태였다. 오늘은 그의 기일도 아닌데, 매일 이곳에 오기라도 하는 걸까. 참으로 충직한 제자다. 하지만 기일도 아닌데 찾아온 것은 바로크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하트 볼텍스의 재판이 있었다. 아마 곧…”
바로크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도 한때 섬겼던 은인이었다. 쉽사리 그의 처형을 입에 담기가 힘들었다.
“그가 그러더군. 귀공이 날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그 죄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계획을 세웠는지. 내가 처음 사신이 된 순간부터… 귀공이 얼마나 날 존경하고 있었는지.”
바로크가 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가 검사보로 임명되었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렉슨 형사는 손뼉을 치며 그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귀공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군. 귀공이 날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내가 귀공을 ‘형사님’이라고 부르던 시간은 나나 귀공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죽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미스터 나루호도가 귀공이 날 존경하고 있다고 했을 때도 믿지 못했어.”
손에 쥔 사진이 희미하게 떨렸다.
“하트 볼텍스가 굳이 그런 말을 한 건 ‘사신’의 업이 얼마나 고귀한 일이었는지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지. 귀공이 기꺼이 ‘사신’이 된 것도, 내가 이제껏 ‘사신’의 이름을 짊어지고 산 것도 전부 런던의 정의를 위해서였다고. 그 업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스러져갔든 말이야. 정말 그런가, 그렉슨? 책상 위에 이 사진을 올려놓고, 내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을 죽일 계획을 세우면서, 귀공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나. 또 다른 죽음의 밤을 넘길 날, 조금이라도 불쌍하게 생각하긴 했나?”
재판을 맡은 검사는 하트 볼텍스의 말에 반박했다. 토바이어스 그렉슨은 조금도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자랑스러워한 적이 없었으며, 그는 언제나 증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크 반직스는 증인석에 서서 그 발언에 동조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재판 내내 하트 볼텍스의 손에 의해 희생된 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들어야만 했다. 형님, 아소기 겐신, 형수님, 토바이어스 그렉슨까지.
그는 조금의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렉슨 형사, 귀공은 이 사진을 책상 위에 두고 바라볼 만큼 날 아끼면서도, 날 그 지옥 속에 두고 제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려고 했군.”
유일한 가족은 딸이 살인자의 자식으로 불리는 건 두려워하면서도 홀로 남겨질 나는 생각하지 않았고, 친구의 명예를 지켜주려고 했던 남자는 내게 그 어떤 진실도 알려주지 않고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했구나.
콧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둔 채로 바로크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 원망이 전부 무슨 소용인가. 그가 아무리 빌어도 받을 수 없는 용서처럼, 이 원망 또한 아무런 답도 돌려받지 못할 텐데.
그는 사진을 국화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 사진은 귀공이 갖고 있는 게 좋겠지.”
바로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떠난 후 고요함만이 남은 자리에서는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에 하얗고 노란 꽃잎들과 얇은 사진 한 장만이 흔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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