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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철학논고 벤소피

백업 by 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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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학교라고 해서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괴짜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천재의 감투를 쓴 괴짜들로 넘쳐나는-허나 누구도 그들이 천재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학교, 사립 리케이온은 오히려 매일매일 누군가가 저지른 사건사고 탓에 바람 잘 들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의 사건은 그전까지의 가벼운 사건사고와는 궤를 달리했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상당히 죄질이 나쁜 사건이었다.

본관을 지나다 다른 연극부 학생들의 눈에 띄어 한참 동안 짐을 옮기고 녹초가 된 소피아는 지나가는 학생들의 잡담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마주했다. 방금까지 수저를 들 힘조차 없던 팔은 앞뒤로 흔들리며 마찬가지로 지친 다리의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소피아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일찍 보건실에 도달했다.

"괜찮아?!"

"이 목소리는…소피네. 우리 학교, 소문이 진짜 빠르긴 빠른가 봐. 너같이 둔한 애도 벌써 알고 찾아올 정도면."

"지금 그런 쓸데없는 말 할 때야? 너 칼에 찔렸다면서!"

"찔리진 않았어. 멀쩡하니까 소리는 안 질러도 돼. 목 아프게."

2학년 수리과, 어떤 애가 칼에 찔렸다던데. 누구? 아, 그 맨날 검은 반팔에 교복 셔츠만 입고 다니는 걔…. 스피노자는 저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와전되었는가를 대충 이해한 뒤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을 슬쩍 들춰 제 허리 쪽으로 눈짓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상처는 없었다. 그저 그가 늘 입고 다니던 셔츠에 마치 표식처럼 선명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안 다쳤다니까 다행이긴 하다만…. 와, 이 칼자국 좀 봐. 진짜 죽이려고 했던 거 아니야? 어떻게 상처가 없는 건지."

"글쎄, 그냥 힘이 엄청 약했던 거 아니야? 비실비실하던데."

"넌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냐. 내 생각에, 넌 물에 던지면 분명 입만 둥둥 뜰 걸."

"칭찬으로 알아들을게."

됐다, 말을 말자. 소피아는 더 실랑이해 봤자 제 손해라는 걸 깨닫곤 입을 닫았다. 큰 사건이 있던 뒤라 어수선할 것을 각오하고 찾은 보건실은 어째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의문을 가지고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의중을 알아챈 스피노자는 제 뉘인 몸을 일으켜 설명을 시작했다.

"르네랑 라이프니츠, 앤이랑 수리과 애들은 한참 전에 왔다 갔어. 그 외에도 소문에 밝은 애들 몇 명이 다녀가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일일이 반응해 주긴 힘들더라. 그래서 선생님들께 부탁해서 혼자 있고 싶다고 했어. 안정을 취하고 싶다… 뭐 그런 식으로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시더라."

그 덕에 스피노자가 지금껏 혼자 자리에 누워 있었던 것일 테다. 소피아는 바퀴 달린 의자를 그의 침대 옆으로 끌어서 앉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뛰어왔나 보네."

"응. 아주 죽을 맛이야."

"걱정했어?"

"…뭔 말을 그렇게 낯간지럽게 해? 사람이 칼에 찔렸단 소리를 들었는데 당연히 뛰어오지."

그래, 연극부 일을 마치고 교실로 걸어가던 도중 사고 소식을 들었고, 그 뒤는 솔직히 잘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당시의 자신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추리해 볼 뿐이었다.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 탓에 소피아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걱정했어. 그런데 이렇게 실없는 소리나 하고, 괜히 찾아왔나 봐. 내 소중한 점심시간 다 가겠다."

"잠깐만, 소피."

"왜?"

"내 말 들으면 지금 못 나갈 텐데, 들을래?"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네. 말해 봐."

스피노자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 찌른 사람, 외부인 아니고 우리 학교 학생이다?"


소피아는 결국 5교시 내내 수업을 빼 버렸다. 어차피 제 평판은 선생들 사이에선 나빠질 대로 나빠졌을 테니 신경쓰지 말자는 합리화와 함께. 이대로 평판이 계속 나빠지게 내버려 뒀다간 리케이온에 잔류하며 그곳의 학생들과 친해지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걱정을 잠깐 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신경 쓸 부분은 따로 있었다.

"누군지는 기억나?"

"아, 나 찌른 선배?"

"선배라고 부르지도 마. 그 미친놈."

스피노자는 잠깐 소피아가 어떤 부분에서 쉽게 분노하는지 따위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고 의미 없이 스러지는 상황을 싫어했다. 또한 그 상황을 있게 한 억압에 분노하고, 독단에 분노했다. 그런 그녀의 사고에서 이상한 점을 찾는 것은 어려웠지만 사고 뒤에 따르는 행동이, 말하자면 과했다. 마치 내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스피노자는 제가 노려진 경위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글쎄. 솔직히 그때 경황이 없어서 누군지 잘 못 봤어. 우리 학년은 아니었고, 일 학년한테 날 찌를 만한 동기는 없을 테니까 아마 삼 학년 아닐까 하고 추측했던 것뿐이라서."

"뭐야, 그럼 아는 게 없는 거 아니야? 그리고, 삼 학년이라고 쳐도 딱히 너를 찌를 만한 이유는 없잖아."

이유, 이유라. 스피노자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 이유라 하면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짚이는 부분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웠다. 그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리케이온 같은 미션스쿨에서 펼치기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상.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소수의 학생들. 어떤 경위로 삼 학년에게 그게 흘러들어간 걸까. 그는 숨을 작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저기, 내 말 듣고 있지?"

"어? 소피, 뭐라고 했어?"

"별 말은 아니었고… 아무리 미수라고 해도 범인은 제대로 잡아야지. 선생님들한테도 이야기드렸나 싶어서."

"아니, 아직 이야기 안 드렸는데. 굳이 학교 시끄럽게 만들고 싶진 않아서. 그 중심이 나라면 더욱. 누가 나 가지고 뒤에서 이야기하는 건 기분이 별로더라. 그래서 이번 일은 그냥 나 혼자 해결할까 싶은데."

아, 이거 혹시 기회인가? 소피아는 우습게도 그러한 선언을 듣고는 너무나도 이방인스러운 생각을 했다. 다만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 그거 내가 도와줄까? 범인 잡는 거."

"뭐?"

"아니, 네가 아니더라도 솔직히 우리 학교에 사람 찌르는 녀석이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겠어? 이번에는 너만 노렸다고 해도 타겟이 내가 되고 다른 수리과 애들이 될 수도 있잖아. 그 전에 잡아야지."

"그, 하…. 소피, 그거 정말 너다운 발언이네."

"동의한 걸로 알아들을게. 아는 거 전부 말해 볼래?"

이런 전개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장난기, 혹은 충동 비슷한 것이 소피아에게 진상을 이야기하라고 저를 유도한 것일 테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일까. 스피노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검은 머리."

"안 미안한데 우리 학교 절반 정도가 검은 머리거든."

"남자였고…."

"너를 찌르려고 할 정도의 피지컬이면 당연히 남자겠지.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우리 학교 엄청 남초인 거 알면서 자꾸 의미 없는 소리를 하네."

아니, 너처럼 운동 잘하고 힘 센 여자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 따위의 말을 하려던 스피노자는 머리만 긁으며 화제를 돌리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있어. 낮은 목소리에 머리카락은 곱슬기 있는 짧은 머리였고, 안경은 안 쓰고 있었지.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나."

"드디어 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네. 그래 봤자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그랬어. 그래도 그 사람 이름은 몰라. 애초에 한 학년 선배들이랑은 교류가 딱히 없었거든."

한 학년 위라… 소피아는 중얼거리다 무릎을 탁 쳤다.

"그럼 오늘 교문 앞에서 잠복이나 할까."

"뭐?"

"아니, 얼굴은 안다면서? 그럼 교문 지나는 선배들 얼굴 하나하나 확인하고 족치면…아니, 찾아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수업 끝나자마자 교문으로 달릴 테니까, 따라와. 몸은 이제 괜찮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내 쪽에서 먼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

스피노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피아를 따라 앉아 있던 침대를 정리했다. 소피아는 수업 끝났으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교실로 뛰어갔고 스피노자가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저기, 소피? …진담일 줄은 몰랐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나는 그런 말종이 학교에 돌아다니는 꼴은 못 보겠다고 말했잖아?"

"그렇다고, 그렇게 갑자기 뛰어가면…."

스피노자는 지쳤다는 듯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저만치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의 무리가 교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온다. 잘 봐? 흑발에 너보다는 키 작고 안경 쓴 남자란 말이지. 곱슬머리고."

"소피, 그 열정으로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뭐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소피아는 스피노자의 신랄한 말에 간단히 대꾸한 후 교문에 모여드는 학생을 빠르게 훑었다. 대부분 1학년이었고, 소피아는 3학년이면 남아서 공부라도 좀 하고 가려는 사람이 많겠지, 따위의 생각을 했다. 하교하지도 않고 계속 교문 앞에 죽치고 서 있자니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그녀는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일에 부끄러워할 것 같았으면 쌍둥이 지구고 뭐고 진작에 그만두었을 터였다. 어때, 있어? 아니.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비밀 요원이라도 된 듯 작은 목소리였다. 스피노자는 다리가 아프다며, 자신은 병자라는 되도 않는 핑계를 대고 벽 쪽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를 서서 눈에 불을 켜고 지나는 학생들을 살폈지만 스피노자의 증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이지 않았다.

"있잖아, 소피. 계속 찾아봐도 없잖아. 역시 포기하는 편이……."

"응? 아직 끝났다고 보긴 이르지. 너도 기숙사 살잖아?"

"그게 무슨…설마."

대한민국에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명언이 있단다. 소피아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교를 하지 않는 기숙사생. 아직 용의선상에는 그들이 남아 있었다. 스피노자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교문을 통과하는 소피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

"별로 좋은 아침은 아닌데…좀 졸려서."

"예의상 하는 인사지. 넌 매일 졸리잖아."

"시비 거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유치한 대화가 둘 사이에 오갔다. 소피아는 어제 고민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언제나처럼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 설마하니 리케이온에서 일어날 줄이야, 같은 생각은 그녀의 머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고등학생일 때, 철학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공부하고자 철학자들과 관련된 일화 몇 가지를 찾아보던 그녀는 우연히 스피노자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 보았다. 그의 사상이라던가, 그가 자신이 속한 종교 집단에서 파문당했다던가, 같은 것들이 쓰여 있는 책 말이다. 허나 당시에는 그저 제 시험 점수를 깎아먹을지도 모르는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던 '바뤼흐 스피노자'에게 연민을 느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는 단지 교과서의 텍스트인가? 자신의 앞에 살아 있고, 실제 역사대로 칼마저 맞을 뻔했다. 그러다 소피아는 어째서 이제껏 눈치채지 못했나 싶을 정도의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가 타겟이 된 이유는…

"소피, 일어나. 급식 시간이야."

"아…벌써야? 또 수업 듣다가 무심코 졸아 버렸네. 깨워 줘서 고마워."

소피아는 주위를 대강 살폈다. 이내 어라, 하는 작은 목소리가 입가에서 새어나온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어라…혹시 스피노자 어디 있는지 알아?"

"벤이라면 아까 수업 끝나자마자 어디 급하게 나가던데? 어디 갔는지는 나도 몰라."

"…그렇구나. 알겠어."

다시 한 번, 고마워. 소피아는 짤막한 감사 인사를 남기곤 문을 나섰다. 앤, 밥 먼저 먹어- 하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디 있지? 그녀는 치마를 입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움직임으로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어디로 간 거지. 단지 점심을 먹으러 갔을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한 번 불안한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하니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대부분…적중했었지. 생각하는 와중에도 찬 공기 때문에 목에서는 피 맛이 났다. 그럼에도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

찾았다. 그것도 예감이 적중했다. 소피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벤 스피노자와, 그가 말한 외모 그대로 생긴 학생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는 멈췄지만, 여전히 비린 느낌이 올라오는 목은 먼저 반응해 소리를 냈다. 잠깐만! 그것은 적극적이라기엔 말뿐이었고, 소극적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말이었다.

"…소피?"

벽 끝에 몰린 꼴을 하던 스피노자는 제가 헛것을 보고 있나 눈을 문질렀다. 시야는 잠깐 흐릿해졌다 이내 더욱 또렷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소피아가 맞았다. 불행하게도.

"넌 뭐야?"

전형적인 악역 같은 말을 하는군, 이라고 소피아는 생각했다. 그의 손에는 날붙이가 들려 있었으므로 상황은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빼앗을 수 있으려나. 역시 조금 더 지켜보다가….

"소피, 소피아. 네가 여기에는 왜…."

"왜냐고? 그야 자고 일어났더니 네가 안 보여서 찾았지."

소피아는 지금까지 나를 찾고 있었냐 따위의 농담 섞인 대꾸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볍게 무시해 줄 심산이었으나, 스피노자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래, 너한테 안 들키게 여기로 빨리 왔는데, 왜 벌써 온 거야?"

"뭐?"

"어제 일 말이야…아무리 생각해도 소문이 퍼지면 너까지 위험해질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나 혼자 조용히 해결 볼 생각이었어."

저를 습격하고 사라진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까지도 제게 살의가 남아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본 결과, 스피노자는 결론을 내렸다. 수소문을 통해 해당 3학년 학생을 알아내고서 불러낸 것이다. 말로 해결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고 그도 아니라면 제압을, 최악의 경우 한 번 찔려 주고 확실한 증거를 잡으면…. 물론 다른 이가 들었다면 무슨 멍청한 소리냐고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어쩌냐. 실패했는데."

그리고 소피아도 아마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였다. 어제부터 계속 말하던 그 미친놈이 지금 제 앞에 칼을 들고 서 있고, 스피노자나 소피아는 지금 당장 칼에 찔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마저도. 그러다 소피아의 머리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다. 리케이온에서 다치면, 현실의 '나'는 어떻게 되지? 하지만 이런 의문은 찔리는 순간부터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단지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인 건, 역시…신에 대한 생각 때문인가요?"

리케이온은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통칭 미션스쿨이고 그곳에 스피노자의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이는 필연적인 의심인 것이다. 그러나 거의 확신이나 마찬가지인 질문이었기에, 아니나 다를까 긍정하는 말이 들려왔다. 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것 때문에 사람을 찌르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소피아는 그런 질문을 해 놓고서야 드디어 제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빠졌는지를 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원래 미친놈에게 말은 통하지 않는 법이다.

"아, 이 미친…."

불안정한 첨단의 궤도가 돌진했다. 소피아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곤 그를 발로 약하게 밀었다. 균형은 무너졌으나 팔은 자유로웠다. 칼을 든 손끝이 떨렸고, 그의 사고는 소피아의 발이 칼끝을 짓밟는 것보다 느렸다. 손에서 벗어난 칼은 스피노자의 쪽으로 미끄러졌으며, 제압은 거짓말처럼 수월했다. 모든 것이 단지 하나의 연극 같았다. 미친놈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행동으로 보여 주면 되는 것이다. 이게 태권도의 힘이다, 서양 놈들아… 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스피노자는 제가 헛것을 본 것마냥 눈만 깜박거렸다.

"소피."

"뭐?"

"…너를 걱정한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네."

"뭔 소리야. 나 방금 되게 위험했거든. 멍하니 있지 말고 선생님 불러."

아, 응. 스피노자는 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 아이콘을 눌렀다.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광신자 학생은 징계를 받을 것이다. 심하면 퇴학까지도. 일의 전말을 전해 들은 소피아는 기함했다. 점점 성적이 떨어지는 와중에 벤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학교에 제 신앙심이라도 증명해 보겠다는 미친 생각을 해서 그걸 실행에 옮겼다…라는 이야기. 조금만 더 운동 신경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자신은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걸 알게 되니 다리에서는 힘이 풀렸다. 물론 주저앉을 정도의 체력은 아니었기에, 잠깐 벽을 짚는 정도로 끝났다.

"끝났네. 아예 처음부터 나 부르지 그랬어?"

모든 것이 마무리되니 입에서는 허세가 떠돌고 여유를 가진 눈은 반응을 살핀다.

"네가 제압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도, 절대 널 부르지는 않았을 거야."

"왜?"

"위험하잖아."

"뭐래? 어제 잘도 그런 말을 해 놓곤, 너야말로 날 걱정하네."

아, 물론 농담… 어라? 소피아는 스피노자의 표정이 가라앉은 것을 발견한다. 뭐야, 그렇게 기분이 나빴나.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질문이다.

"있잖아, 너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생각이라면 무슨 생각을 말하는 거지. 그것을 잠깐 고민하던 소피아는 이번 사건을 떠올리곤 그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그답지 않았다. 소피아의 신랄한 생각이 이어졌다. 어울린다면 데카르트 같은 멘헤라 천재한테나 어울리겠지.

"이상한 질문을 하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넌 인정할 거야? 네가 잘못 생각했고, 리케이온이야말로 옳다고?"

"…아니."

"그러면, 너는 네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스피노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다만 표정이 부정의 뜻을 표한다. 확신의 미소였다.

"고마워. 덕분에 생각 정리가 됐어."

"고마울 것도 없지. 그건 네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잖아."

그는 문득 소피아의 눈을 바라본다. 이곳의 어떤 것도 비추고 있지 않은 채로 빛나는, 날카로운 회색의 눈동자. 그것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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