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Gotcha!

월드 트리거. 아즈마 vs 타치카와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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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는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후일 아라후네 테츠지 같이 어태커와 스나이퍼, 두 포지션 다 운용하는 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아직은 먼 후일일 때, 아즈마 하루아키는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 총신을 아래로 내리며 짧게 혀를 찼다. 쯧. 그 역시 아직은 후일같이, 감쪽같이 기척을 숨기는 데 능통해지기 전이었다. 발각되었으니 자리를 옮겨야겠으나 상대는 그래스호퍼를 사용하는 기동력이 우수한 어태커였다. 게다가 그간의 전적에서 스나이퍼의 저격에 호되게 당한 적이 많아, 적 스나이퍼를 발견한 이상 가만히 두고 보며 놓칠 리도 없었다. 반드시 처리하러 오리라. 레이더로 저에게 점점 다가오는 한 점을 응시하던 아즈마는 제게 남은 선택지를 떠올렸다. 지금부터 이동해도 추적을 뿌리치거나 아군과 합류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렇다고 여기서 뛰어내리면 저를 분명 예의주시하고 있을 적 스나이퍼의 사선에 걸리고 만다. 이미 적은 60m 안으로 접근하여 베일 아웃이 불가한 상황. 이대로 점수를 내어주긴 싫으나 스스로 트리온체를 파괴하여 베일 아웃 기능을 강제로 활성화하는 방법은…….

"……금지되었지."

자신이 금지한 것과 다름없었고, 당시에도 딱 한 번밖에 쓰지 못하리라 각오한 수법이었으니 불만을 가질 수야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의미 없어진 백웜을 해제했다. 탁. 동시에 적 어태커가 그래스호퍼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려 내려선다. 그는, 관용구를 사용하여 표현하자면 지난날에 있었던 랭크전에서 눈앞에서 아즈마가 물을 먹인 자로, 굳이 착지할 것 없이 그대로 공중에서 내리쳤으면 한 방에 그를 베일 아웃 시킬 수 있었을 테지만 굳이 그러지 않은 까닭 역시 그에 있었다. 그 역시 새로이 추가된 규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젠 그에게 퇴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이 곧 힘이라지. 힘을 손에 넣은 자는 이번에야말로 정면에서 그를 향해 호월을 내뻗는다. 이는 그 역시 아직은 먼 후일처럼 전략을 익히기 전이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호승심은 후일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니,

"이번엔 안 놓칠 거야, 아즈마 씨."

하며 시동어를 읊는 타치카와는 이번에야말로 그를 벨 준비를 마친다. 선공, 호월.

선공은 끝으로 갈수록 그 위력이 상승하는 까닭에 맞서 방어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대응책이었다. 이에 따라 아즈마 역시 최대 강도로 실드를 펼쳐 조금이나마 그 속도와 위력을 덜어낸 후 회피하니, 그 손에 이미 아이비스가 들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뒤늦게도 그때였다. 콰쾅, 하고 난간이 우르르 무너지며 내는 요란한 소리 속에서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한 타치카와는 뻗었던 호월을 다시 몸쪽으로 당겨 가져온 후, 펄쩍 도약하는 것과 동시에 팔을 세워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내리쳐 가른다면 팔 하나 정도는 무리 없이 잘라내리다. 당연히 그럴 기세였으니 이를 막아선 또 다른 호월이 없었더라면 팔뿐이랴 다리까지 한 번에 베어낼 수 있었으리다. 카앙! 두 호월이 서로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뱉는다. 아직은 어린, 후일에 비하지 않아도 아직은 분명히 어린 소년의 입가에 분명하게 미소가, 웃음이 번진다. 아, 싸우는 걸 좋아하는 소년에겐 이보다 더한 기쁨이 따로 없다. 검을 놓은 자의 손에 다시 검을 쥐여준 뒤 대결하는 것. 후일에 있을 쿠가 유마의 블랙 트리거 탈취 작전은 아직 너무도 멀었다. 저는 참여하지도 못한 쟁탈전에서 호적수를 잃은 소년은 한동안 그가 차지했던 순위마저 비워줄 만큼 시들시들했음이다.

"이그렛 대신 챙긴 거구나."

"이렇게 될 것 같았으니까."

전략을 짤 때는 상대의 전략 수준 또한 함께 셈에 넣는다. 하지만 그뿐일까. 성향, 방식, 직전에 있었던 전적까지 모두 함께 고려하면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의 스나이퍼, 그 말인즉 그가 입대했을 적만 해도 스나이퍼란 포지션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역시 처음은 다른 포지션으로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또 다른, 새로운 포지션의 등장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숙련된 실력을 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단순히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얻은 발언권이 아니라는 뜻이겠다. 그리하여 굉장히 오랜만에 손에 쥔 호월이지만 감각이야 좀 떨어졌을지언정 휘두르는 방법까진 잊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부대에는 올라운더를 지향하는 어태커―아직은 올라운더로 인정되기 전이었다―미와 슈지가 있었다. 눈에는 계속 익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움직임이라던가, 휘둘러 베어내는 법이라던가. 깡,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두 호월이 부딪치고, 같은 소리를 내며 밀쳐내고, 찔러넣고, 베어낸다. 공방은 솔직히 말해 그리 길지 않았다. 소년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즈마의 손에 들린 호월이 타치카와의 눈썹 위를 그어냄과 동시에 타치카와의 호월이 그의 왼팔을 베어내고 이어 어깨까지 날을 미끄러뜨려 비튼 뒤 어깨마저 남김없이 베어내 버린다. 뿜어져 나오는 검은 트리온 연기에 직감한 것은 처음 호월을 맞댔을 때부터 예상한 저의 승리였다. 아즈마 역시 타치카와를 상대로 제가 이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실로 그러했다. 실로. 그리고,

콰앙! 소리와 함께 날아온 탄환이었다.

어? 하고 돌아보면 호월을 쥐고 있어야 할 손이 보이지 않았다. 손뿐일까. 팔이. 한쪽 상반신이 아이비스에 의해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즈마에게서도 같은 부위를 내리쳐 베어내 갈라낸 직후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사람, 일부러 적 스나이퍼의 사선으로 자신을 유도했다. 게다가 어차피 타치카와를 이기지 못할 아즈마 대신, 타치카와를 저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이라는 건 자명할 터.

하지만 그럼에도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아즈마 씨이."

"하하!"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 추측한 바대로 제대로 골탕 먹은 걸 모르고 싶어도 알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트리온 과다 누출을 견디지 못한 양측의 트리온체에 빠각, 하고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잠시 후 거의 동시에 솟아오르는 두 개의 빛기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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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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