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금 기둥

월드 트리거. 니노하토

비자림 by 비
3
0
0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그들이 놓고 온 것을 놓지 못하고 돌아본 여인의 몸은 소금 기둥으로 변해 그 자리에 굳어졌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하이얀 가루 날리며 깎여 스러지는 기둥이 되어 받칠 천장 없이 길게 웃자란 풀이 풀어헤친 머리채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에 서서 자신을 부서뜨렸다고 한다. 놓지 못한 까닭이야 분명하니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땅, 그를 일궈내고 길러낸 모든 것과 함께 공유했던 공지가 시야 닿는 먼 곳 닿을 수 있는 곳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돌아보면 네 반드시 죽으리니 예언 내지는 저주에도 그예 몸을 돌린 것은 죽어도 좋으니,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땅을 보고 서서 여기 그 땅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증좌 되는 기둥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방인가. 나는 이 땅에 남겠으나 너희는 나를 두고 갈 것을 나는 안다는 힐난인지도 모르지. 모르나, 굳은살 하나 잡히지 않은 흰 손끝에서 흰 눈의 흰자에 이르기까지 온통 희어지는, 모래 되는, 그의 입 안에도 머금은 소금 혀의 짠 기가 가득했으리다.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스스로 놓고 왔던 것을 돌아보는 우자의 어리석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발이, 다리가 기둥처럼 딱딱히 변하고 나무처럼 뿌리내리니 그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고 한다. 굳고 말았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거뭇한 잿가루 흩날리는 가운데 남자는 그가 받칠 천장을 하늘로 두고 저는 그 아래 머리가 부서져, 꺾여 스러지는 기둥이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길게 웃자란 풀이 풀어헤친 머리채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에 앉아서 부서진 채로 그 자리에 놓인 남자가 입을 열어 말했다. 가라. 그렇게 말하는 그가 먼저 떠나지 못한 까닭이야 자명하니 그를 달리게 하고 달아나게 해야 할 다리, 그를 받치고 중심을 잡게 하여 그가 시야 닿는 먼 곳 닿을 수 있는 곳 끝에 이를 때까지 균형을 이루며 붙어 있어야 할 다리가 잘린 채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네 시야 닿는 곳에서 죽게 되리니 남자의 명령, 실은 경고에도 그예 몸을 돌린 그를 보고도 남자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마주 응시하는 까닭은 뭔가. 그럼에도 바뀔 게 없는, 다가온 죽음 앞에 선명해진 의식 아래 침전하지 않고 다만 침착해지는, 나는 너를 보았으니 그것으로 되었고 네가 나를 본다면 책임질 자는 네가 되리란 지독한 고집의 표방인가. 내가 이 땅에 영원토록 남는 것과 네가 살아가는 것은 조금의 연관도 없다는 당당한 주장인지도 모르지. 모르나, 굳은살 하나 잡히지 않은 흰 손끝에서 흰 눈의 흰자에 이르기까지 온통 붉어진, 충혈된, 출혈 있는 그의 입 안에는 머금은 피의 쇠 맛이 가득할 뿐이다. 이것은 그가 전투체가 아닌 살아있는 육신으로 있기 때문이다. 아니, 죽어가는 육신으로 있기 때문이다. 이 이유를 너는 아는가?

몰라요. 모르겠어요. 니노미야 씨.

질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리 내서 말하지도 않은 질문에 너는 어떻게 대답하는지. 그렇구나. 꿈이구나. 그러나 꿈이라 한들 그가 해야 할 말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가라.

하토하라.

근계에서 다시 만난 이들의 재회는 지금보다 일렀으나 그럼에도 지금껏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하지 않은 그들이었다. 때를 놓친 대화의 때는 너무 늦고, 대화를 놓친 이들의 대화는 그만큼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하토하라의 트리온체를 파괴한 자는 끝내 니노미야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멀리서, 하토하라는 인지하고 있었을 방향에서 날아온 라이트닝―하토하라의 트리거에는 라이트닝이 장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도 이미 그 아래 제자를 두었던 전적이 있었다. 가르치는 것엔 익숙하다는 뜻이다―의 탄환이 니노미야의 트리온체를 꿰뚫었으니, 이것으로 그들의 재회가, 대화가, 관계가 더 이어질 일 없이 종결되었음을 알렸다고 생각하고 니노미야에게서 몸을 돌린 하토하라였다. 돌아가요, 니노미야 씨. 그러나 그 말대로라면 두 번째 탄환은 그가 의도한, 인지하고 있던, 알고 있던 탄환이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탕, 소리가 먼저, 퍽, 하고 육신이 꿰뚫리는 소리가 그다음. 니노미야 씨! 그리고 그를 붙잡는, 니노미야에겐 처음 듣는 목소리가 마지막. 하토하라. 습격이야. 가야 해. 잠깐만요!

그리고 그 역시 입을 열어 말한다. 하토하라.

가라.

니노미야 씨.

‘갈 거라면 돌아보지 마라.’ 뒤돌기 전 했던 마지막 경고가 하필 그러한 것이라 그들이 놓고 온 것을 놓지 못하고 돌아본 그의 몸은 그 자리에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다.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스스로 놓고 왔던 것을 돌아본 그는…….

이윽고 결정했다.

‘돌아가요, 니노미야 씨.’

하토하라?

바람이 불면 하이얀 가루 날리며 깎여 스러지는 기둥이 되어, 받칠 천장 없이 길게 웃자란 풀이 풀어헤친 머리채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에 서서 자신을 부서뜨린다.

한 번은 두고 갔으면서 두 번은 그러지 못하겠다는 건지.

부서지는 모래 속에서 미안해요, 라고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굳은살 하나 잡히지 않은 흰 손끝에서 흰 눈의 흰자에 이르기까지 온통 희어진 자가 입 안 가득 메운 짠 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멀리서, 니노미야 씨! 하고 그를 다급히 부르며 달려오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니 그들과 그는 실상 나이가 몇 살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인처럼 새어 버린 이 머리카락은 어찌 된 것인지. 이 이유를 너는 아는가? 물어도, 흩어진 모래에선 대답이 없었다. 영영 듣지 못할 대답이었다.

‘미안해요.’

환청으로 치부할 생각이 없어 오래도록 함께할 그 소리와 함께 남자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나는. 너는.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